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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마음에 관한 사자성어 인문학 :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

박수밀

2016-02-18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


새해가 오거나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곤 한다. 그러나 결심만 할뿐 실제로 시작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고 했던가. 우물쭈물 하다가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곤 하는 것이 나의 새 다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또 다시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 과거의 경험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다시 출발하려는 마음을 망설이게 하고 체념하게 한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전을 공부하다 보면 새 출발의 의미를 새겨주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 중 몇 개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면서, 나의 마음도 새롭게 다잡아보려 한다.


종이부시(終而復始): 끝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다


밤하늘 별

 

먼저는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는 뜻의 종이부시(終而復始)가 있다. 『근사록』에서는 ‘천하의 이치는 끝나면 다시 시작된다(天下之理, 終而復始)’고 했다. 『손자병법』에서는 ‘끝나면 다시 시작하는 것은 해와 달이 지면 다시 뜨는 것과 같다.(終而復始,日月是也)’고 했다. 모든 만물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서 다시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하고, 해가 지면 반대편에서는 해가 뜨기 시작한다. 가을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겨울이 시작되고, 낮이 끝나는 순간 밤이 생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끝없이 변화하는 가운데에 있을 뿐이다.

 

인생도 하나의 일이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고 신영복 선생은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고 했다. 삶은 날마다 새로운 시작이고 달마다 새로운 출발이다. 하나의 일이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새로운 일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때 지나간 것들에 너무 연연해하거나 매달릴 필요는 없다. 과거의 일은 그것이 어떻게 끝맺었든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고, 새로운 일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의미가 있을 따름이다. 새로운 시작에 새로운 마음을 담아 새로운 끝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동산재기(東山再起):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 시작하다


도로

 

동산재기(東山再起)라는 말도 있다. 은퇴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 새 출발한다는 뜻이다. 그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東晉)의 사안이란 자는 명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고위층이 그의 능력을 높이 사서 벼슬을 권했다. 자꾸 권하자 어쩔 수 없이 응했으나 병을 핑계대어 곧바로 물러났다. 사안은 회계의 동산(東山)으로 들어가 은둔하면서 당대의 명사들과 어울려 지냈다. 반면 그의 동생인 사만은 일찍 벼슬길에 나아가 중책을 맡았다. 사안의 행동에 가장 속상해한 것은 그의 아내였다. “집안 남자들은 모두 출세해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데 당신은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어찌 그리 욕심이 없는가요?” 아내가 따지자 사안은 대답했다. “지금 상황에서 관직에 있게 되면 내 신변이 위태로울 것 같아서요.” (당시 국내적으로는 문벌 세력끼리 다툼이 심했고, 국외적으로는 전진(前秦)이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보는 상황이었다.)

 

그의 나이 40이 되었을 때, 대장군이었던 환온(桓溫)이 문벌 세력을 제압하고 세력을 넓혀갔다. 그가 사안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자, 그제서야 사안은 동산에서 나와 관직을 맡았다. 환온이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 왕위를 넘보자 이를 저지하였고, 그 공으로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다. 진나라 왕실은 사안의 능력에 힘입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안을 지켜낼 수 있었다. 『진서(晉書)』 「사안전(謝安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훗날 사람들은 한번 실패했다가 재기에 성공할 때 ‘동산재기’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사안은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그가 다시 시작한 나이는 40이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늦어 보이는 나이이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기도 하고, 간절히 바라는 바를 얻지 못하기도 한다.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못 미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무언가 딱히 이룬 것도 없는데 세월만 속절없이 흐를 때면 괜히 초라해지고 자괴감이 든다. 나이를 생각하노라면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안은 가장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참고 인내할 줄 알았다. 빨리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한 발 물러섰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실력을 기르면서 내실을 다졌다. 그리곤 때를 기다려 기회가 찾아오자 다시 일어나 꿈을 펼쳤다.

 

낚시꾼으로 유명한 강태공은 수십 년을 낚시하면서 인내하다가 나이 일흔이 되어서야 때를 만났다. 그 사이에 아내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참고 기다린 결과 기회를 잡아 천하를 호령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수많은 세월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참고 기다린 결과 한 번의 기회를 잡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삶에는 쓰러지는 날도 있고 물러날 때도 있다. 누구나 재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조급함이 성취를 망친다. 잘 준비되지 않은 출발은 또 넘어진다. 재기에서 중요한 건 나이 여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쌓았느냐에 있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해서 꿈을 이룬 이는 많다. 실패는 끝남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방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더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제구포신(除舊布新): 낡은 것을 없애 새로운 것을 펼쳐내다


혜성

 

마지막은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의미의 제구포신(除舊布新)이다. 소공 17년 겨울에 혜성이 대화성(大火星)을 지나 그 꼬리의 빛이 은하수까지 미쳤다. 노나라의 대부인 신수(申須)가 말했다. “혜성은 낡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내는 별이다. 하늘의 현상은 항상 조짐이 있다. 지금 혜성이 대화성 자리를 청소하고 있으니 대화성이 다시 나타날 때는 반드시 재앙을 퍼뜨릴 것이다. 각 제후국에 화재가 있을 것이다.” 재신이란 자가 동조했다. “나도 예전에 혜성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그 징조가 나타난 것이다. 그때는 대화성이 나타날 무렵에 그것이 보였다. 지금 혜성이 대화성 자리에 나타나 더욱 밝게 빛나고 있으니, 대화성이 사라지면 반드시 혜성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 17년 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대화성은 짙은 붉은 색을 띤 별의 이름으로 고대에는 하늘나라의 임금 별로 불리었다. 어느 날 혜성이 대화성을 지나자 사람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혜성(彗星)은 ‘빗자루 별’이란 뜻이다. 긴 꼬리를 끌며 움직이는 까닭에 꼬리별이라고도 부르며 꼬리 미(尾)자를 써서 미성(尾星)이라고도 한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엔 혜성을 불길함의 징조로 생각했다. 혜성이 나타나면 나라에 재앙이 있거나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신수는 반대로 해석했다. 혜성이 긴 꼬리를 끌고 지나가면 낡은 것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칠 것이라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백성들의 막연한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고 불길함의 상징을 변혁의 상징으로 바꾸었다.

 

제구포신은 과거의 구태와 구습을 과감히 벗어나 변혁과 희망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말이다. 물은 고이면 썩듯이 예전의 습관, 과거의 생각, 기존의 태도를 그대로 놔두면 그 인간, 그 사회는 썩고 만다. 조금도 변하거나 발전한 데가 없는 것을 구태의연(舊態依然)하다고 한다. 구태(舊態)와 구습(舊習)은 새롭게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큰 장애물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부조리, 학연과 지연으로 인맥을 만드는 패거리 문화, 지역감정 조장 등은 사회의 발전을 막는 구습이다. 예전의 게으른 습관, 편견과 선입견, 되는 대로 사는 것은 나의 발전을 막는 구태이다.


비긴어게인 영화 포스터

 

성경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라고 했다. 새 술을 낡은 가죽부대에 담으면 딱딱한 가죽 부대가 발효하는 술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버리고 만다. 구태와 관습을 고집하면 새로운 술을 담을 수가 없다. 낡은 것을 버려야 새 내용물을 채우고 변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살다보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련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변심한 사랑에 깊은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관계의 단절로 고통 받기도 한다. ‘내 인생은 최악이야! 이젠 끝이야!’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새로운 시작이 있다. 마치 우연히 시작되는 것 같지만 “끝나는 곳엔 반드시 다시 시작이 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두 주인공처럼 과거를 벗어던지고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자. 두려움은 희망이 되고 새로운 끝이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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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수밀
박수밀

고전문학자. 시민행성 운영위원. 『고전필사』,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 『알기 쉬운 한자 인문학』, 『새기고 싶은 명문장』,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기적의 한자 학습』 외 다수의 저·역서와 논문을 썼다.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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