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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평화공원 교육을 끝내고 -4·3 평화공원 방문을 마치고 나서

2026-02-12

이 글은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평화공원 교육을 끝내고
-4·3 평화공원 방문을 마치고 나서

양0원(제주사랑원)

 

 

1948. 8 큰아버지 21 돌아가시고 큰고모부도 당시 중학교 교사셨는데 돌아가셨고 나는 큰아버지 때문에 4·3 유공자가 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행사를 때마다 큰고모 살아 계실 때엔 매년 같이 참석하고 이름 <양행숙>에서 그날을 기리며 큰아버지를 그려보았다. 

그런데 오늘 교재지에 있는 평화공원에 가게 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그 당시 큰고모부는 학교 교사셨고, 

폭도들에게 잡혀 돌아가셨다는 것과 큰아버지는 <신례2리> 공천포 바닷가에서 <신례1리> 마을로 올라오시다가 폭도들에게 죽창으로 찔려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었었다. 

 

오늘 4·3 평화공원에 와서 당시의 상황을 그려본다. 해방이 되었어도 육지와 많이 떨어져 있고, 모르긴 몰라도 정부의 상황을 빠르게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해방되기 전에도 일본 군부들은 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제주도 바닷가에 많은 진지를 구축하고 우리 대한민국 국토 제주도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했었다.

해방이 되고 일본이 패망하여 물러갔어도 친일파였던 이들이 군이나 경찰에 종사하게 되었고 육지뿐만 아니라 제주도에도 많은 이들이 군경찰들에게 고통받았다.

해방이 되어도 매한가지였다. 돌아가신 큰아버지도 당시 16세.

우리 선산으로 모시려고 묘지를 파헤쳤을 상당히 거구였다는 것을 뼈대가 증명해 주었다. 

아무튼 80년대의 광주 민주화 운동은 나라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제주 4·3 사태는 80년에 가까워 지지만 아직 미로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얼마나 많은 아버지, 삼촌, 어머니들이 죽어 갔을까?

아이들도 말이다. 제주 도민이었지만 서울에 살아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러던 1982 9 광주 기갑학교에서 부사관 교육을 받을 외출하러 광주 시내로 나왔을 때 군인들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역사가 말해 준다고 하지만 가장 문제는 6·25 전쟁 때문에 3·8선이 가로막혀 8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언젠가는 평화로운 통일이 이루어지리라고 염원해 본다. 

아니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내가 살아 있을 평양 거리를 가보고 싶다. 그날이 오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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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내가 살아 있을 평양거리를 가보고 싶다.

그날이 오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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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소개

한국형 클레멘트코스 <디딤돌 인문학>은 배제와 단절의 자리에 학습공동체를 세루는 참여형 인문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제 1회 팬지문학상은 팬지꽃의 꽃말 ‘나를 생각해 주세요’처럼 교정시설·노숙인시설·자활센터 등에서 상실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희망과 회복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입니다.

 

사업대상 노숙인 시설, 지역자활센터, 교정시설                              

주최·주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형클레멘트코스
  • 디딤돌인문학
  • 팬지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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