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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위법(違法)의 벽을 넘어 위법(爲法)으로 : 3,000명의 밥을 지으며 나를 잊다

2026-02-13

이 글은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위법(違法)의 벽을 넘어 위법(爲法)으로
: 3,000명의 밥을 지으며 나를 잊다

박0관(서울강서지역자활센터)



법을 위해 몸을 잊는다(爲法忘軀).

나는 이제야 비로소, 죄의 장벽을 넘어 진짜 삶의 법칙을 마주한다.

방석 위에 앉아 척추를 곧게 세우고, 허리를 펴며 소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힌다. 가부좌를 튼다. 왼손 등을 오 른 손바닥 위에 포개어 놓고, 입은 굳게 다물되 어금니는 지그시 물고 혀끝을 입천장에 가볍게 댄다. 

처음 명상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은 누구나   있어요, 가장 평범한 일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리고  곁에  다른 이들도 말을 듣고 자세를 잡다 균형이 무너져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뒤로 서늘한 자괴감이 스쳤다. 지금까지의 삶이, 결국 몸과 마음이 각기 다른 사연으로 망가진 수들과 나란히 앉아 눈을 감기 위해 존재했단 말인가?

서울구치소 취사장. 3,000 명의 수용자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이곳에 자원하여 일하던 어느 새벽 4시였다. 수용 생활 숱하게 우울증을 겪어 나였기에 감정 기복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거대한 밥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안의 불안 때문이었을까.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일종의 공황 상태가 덮쳐왔다.

나는 끓어오르는 국통 앞에서 다급히 무너지는 나를 추스르려 애쓰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릴 적, 인생의 계획표 어디에도 내가 감옥에 갇혀 쇠창살 사이로 새벽 별을 보게 되리라는 악몽은 없었다.

삶이 내가 기대하거나 바란 대로만 풀리지 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았 다는 건, 사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이 몹시도 운이 좋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고된 새벽 일을 마치고 사동으로 돌아가려는데 취사장 게시판에 붙은 낡은 종이 장이 눈에 들어왔다.

종교 봉사원 모집.”


여기까지 오기까지,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어릴 적,
내 인생의 계획표 어디에도 내가
감옥에 갇혀 쇠창살 사이로 새벽
별을 보게 되리라는 악몽은 없었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평소라면 거들떠보 지도 않았을 단어들이 그날따라 구명줄처럼 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마음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이상은, 이렇게 무의미하게 짐승처럼 혀 살 수는 없었다.

매일 아침, 뜻도 모르는 오래된 경전의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집에서 나만을 기다리며 홀로 늙어가고 계실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 세상의 법(違法)을 어기며 질주하던 과거의 나를 생각한다.

처음 인문학적인 교리 공부를 시작했을 동료는 명뿐이었다. 취사장에 있는 사람은 혼자였고, 수용자들 머리를 깎는 이발원 , 구내 청소원 명이 전부였다

우리는 매주 화요일에는 삶의 이치를 배우는 공부 모임 으로, 금요일에는 200 명이 모이는 대강당 행사에 나가 간식을 나르고 자리를 정돈했다.

일주일에 있는 공부 시간에는 수천 전의 지혜가 담긴 텍스트를 장씩 읽고,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되새겼다. 50 반의 선생님은 오랫동안 수많은 수용자를 만나온 분이었다

우리는 서툰 발음으로 오래된 노래 같은 경전을 암송하 고, 나는 선생님을 따라 목탁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나무 깎는 소리가 어색하기만 했고, 종교라는 틀에 거부감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조로운 리듬이 안의 소음을 잠재워주었다. 그러나 문득 눈을 뜨면 현실이 보였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굴러떨어졌는가 생각하면 혼란은 다시 파도처럼 밀려왔고, 자신을 향한 분노가 치밀었다.

우리는 고전 텍스트를 단락씩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곤 했다. 공부를 마치고 나면 각자의 지난날에 대해 어놓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사회에서는 감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가장 수치스럽고 암울한 바닥을 그들에게 보였다. 놀랍게도 누구나 그렇게 했다. 가면을 벗어던진 맨얼굴들 사이에는 사회 어디에서도 경험하 지 못한 기묘한 신뢰와 유대감이 싹텄다

술에 취해 뱉는 하소연이나 감상적인 밤의 대화와는 달랐다. 맨정신으로 자신의 과오를 직시하는 그 이야기들은 다음 날에도 또렷이 가슴에 남았다. 나는 노력했다. 

나에게 묻는 질문에 가 장 솔직해지려 애쓰고, 타인의 고백에 온전히 귀 기울이려 했다. 이 좁은 담장 안에서만큼은 모범적인 구도자가 되 고 싶었다. 경전을 글자씩 베껴 쓰며(寫經) 생각했다

나에게 정말로 문제가 있었고, 내가 와야 곳에 와서 추게 되었구나. 이것은 형벌이 아니라 멈춤이었다.

사회에 있을 나는 하나 곳이 없는 듯한 불안 속에 살았다. 물리적인 공간은 넓었으나, 마음의 공간 턱없이 비좁았다. 

참을성이 없었고, 끝없는 탐욕과 이유 없는 분노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혔다. 출근길 만원 하철에서는 타인들에게 짓눌려 막혀 했고,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비싼 물건들을 모으느라 허덕였다. 

려한 물건들 사이엔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었다.

성인들의 지혜를 배우는 동안 나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하는 이 행위가 어떤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남길지를 인과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챕터씩, 달에 권씩 공책에 옮겨 적는다. 이제 30번째 공책이다. 끝에서 번지는 잉크 자국만큼, 마음의 얼룩도 조금씩 옅어지기를 바란다.

한겨울 구치소의 하늘은 어둑한 새벽 상태에서 이상 밝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종일 회색빛이지만, 래도 저물녘이라 부를 있는 시간이 오면 이제 나는 내일의 해돋이를 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는다.

종교나 인문학은 결국 초월적인 무언가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몸부림이다. 내가 무언가를 깊이 믿고, 미래의 문을 열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일단 시도는 해봐야 했다. 자신이 200 명의 죄수들 앞에서 사회를 보고, 목탁을 치며 그들의 마음을 모으게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간절하게, 모를 주문 같던 경전을 영혼의 언어로 암송하게 줄은 몰랐다. 

펜을 쥐고 종이가 뚫어져라 글씨를 쓰는 일에 이토록 몰두하게 되리 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제 나는 사무치는 벅참으로
거대한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인다.
남을 해치지 않고 살겠다는 다섯
가지 약속을 가슴에 새기고, 이
공덕으로 나만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평안을 바라는 넓은 마음
(菩提心)을 일으키려 한다.


인간 존재는 때로 우연에 의해 지배되는 보인 다. 그 우연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된다. 우연 히 어떤 때에 어떤 장소에 있게 되었다가, 그 우연이 사람의 존재를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우연한 리듬에 묶인 포로다.

그러나 나는 천행 같은 우연으로 감옥이라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가르침을 만났다. 

행복해야만 하는 삶, 항상 즐겁고 기쁜 인생이 어딘가 따로 있다고 믿으며 탐욕과 분노로 스스로 만든 고통의 바다를 헤매던 나였다.

이제 나는 사무치는 벅참으로 거대한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인다. 남을 해치지 않고 살겠다는 다섯 가지 약속을 슴에 새기고, 공덕으로 나만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평안을 바라는 넓은 마음(菩提心)을 일으키려 한다. 몸은 갇혀 있으되 정신은 영원한 자유를 실현하고, 타인에 대한 연민을 생명으로 삼아 삶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 나기를, 나는 차가운 독방 바닥에 이마를 대고 간절히 발원한다.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는 속에 인연 닿는  이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세상의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것을 약속한다

나의  변화가 다시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기를(回向) 거듭 맹세하며, 내 안의 가장 선한 의지에 의지하여 기도한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인간은 변할 있다는 사실을 믿는 태도다. 다만 변화는 아주 천천히 온다. 누구나 소나기 속을 걸으면 금세 온몸이 젖으리란 안다. 

하지만 진정한 내면의 변화란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을 과정과 비슷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헤매며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새 안개 입자가 옷깃에 스며들어 국 온몸을 축축하게 적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변화의 물리학이다.

나무석가모니불.

안의 참된 성품에 귀의합니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나는 다시 손을 펴서 왼손 등을 오른손 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맞대어 작은 타원을 만든 다. 그것은 마음속에 만든 작은 우주다. 

배꼽 아래 단전에 손을 대고 몸을 전후좌우로 흔들어 중심을 잡는다. 가늘게 뜨고 쇠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줌의 빛을 응시한다. 입은 다물었으나 내면의 외침은 멈추지 않는다. 

거칠었던 숨이 코끝을 통해 천천히 들어오고, 다시 고요하게 나간다. 들이마시는 숨에 세상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내쉬는 숨에 나의 평온을 내보낸다.

3,000명의 밥을 짓던 뜨거운 증기 속에서도, 이제 나는 나를 잊고 너를 위하는 법을 배운다. 벽은 여전히 기에 있지만, 나는 비로소 벽을 넘고 있다.

 

 

 


 

 

 

사업소개

한국형 클레멘트코스 <디딤돌 인문학>은 배제와 단절의 자리에 학습공동체를 세루는 참여형 인문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제 1회 팬지문학상은 팬지꽃의 꽃말 ‘나를 생각해 주세요’처럼 교정시설·노숙인시설·자활센터 등에서 상실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희망과 회복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입니다.

 

사업대상 노숙인 시설, 지역자활센터, 교정시설                              

주최·주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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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딤돌인문학
  • 팬지문학상
  • 위법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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