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경남 합천에서 ‘아동·청소년 연극 교육 서비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연극 교육’이라 해서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이 시작되자,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수업의 대상은 8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이었다. 그 순간, 나는 조금 의아했다. ‘어르신들이 과연 연극 수업을 좋아하실까?’,‘혹시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실까?’ 솔직히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장면은 내 생각의 틀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연극 강사는 인형들을 꺼내 놓고, 어르신들에게 하나씩 마음에 드는 인형을 선택해 보시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인형이 여러분의 마음속 누군가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세요.” 그 순간, 어르신들의 얼굴에 잠시 어색한 미소가 스쳤다.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던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들의 표정이 서서히 바뀌었다. 첫 번째로 말을 꺼낸 것은 한 할머니였다. 그분은 작은 곰 인형을 손에 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인형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얘들아, 요즘 많이 바쁘지? 그래, 다 이해한다. 살아가느라 힘들지.”
그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따뜻했다. 처음에는 웃으며 말씀하시더니, 이내 눈가가 붉어졌다. “그래도 엄마가 잘 지내고 있어. 그냥…. 한 번쯤 얼굴만 보러 오면 좋겠다.” 할머니는 인형을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말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식과 진짜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을 보며, 내 마음속 깊은 곳이 뭉클해졌다. 요즘 세상은 너무 편리해졌다. 전화 한 통이면 안부를 전할 수 있고, 메시지 하나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직접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인형 대화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의 통로’를 여는 행위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내 부모님 생각이 났다. 10분 거리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계시지만, 정작 집에서는“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이 갑자기 너무 미안하게 느껴졌다. 다른 쪽에서는 또 한 분의 할머니가 작은 아기 인형을 품에 안고 계셨다. 그분은 손녀를 떠올리며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이쁜 손녀, 요즘은 학교 잘 다니고 있겠지? 밥은 잘 먹고 있나 몰라.” 할머니는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치 진짜 손녀를 재우듯 인형을 품에 꼭 안으셨다. 그분의 얼굴에는 그리움과 사랑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비록 인형을 매개로 한 짧은 상황극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향한 진심과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연극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인형을 이용해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누구는 가족의 식사 시간을 표현했고, 누구는 어린 시절 고향집 마당을 떠올렸다. 그때마다 교실 안에는 웃음과 눈물이 뒤섞였다. 연극은 무대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치유하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수업에는 분명한 ‘인문학의 힘’이 있었다.
연극은 단순히 대사를 외우거나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어르신들이 인형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순간, 그들은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치유의 언어였다. 나는 그날 수업을 보며, 인문학이 결코 어려운 철학이나 책 속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모든 과정에 존재했다. 할머니들의 눈빛 하나, 목소리의 떨림 하나에도 인문학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가장 따뜻한 공부였다. 수업이 끝날 무렵, 어르신들은 인형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 인형은 집에 가져가면 안 될까?” 웃으며 하시는 말에 강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인형 하나가 그분들의 하루를 위로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짜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을 나서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날따라 유난히 구름이 따뜻해 보였다.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구나.’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예술은 화려함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보듬는 언어였다. 그날 나는 인문학을 책에서가 아니라, 사람의 표정 속에서 배웠다.
나에게 인문학은 이제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수업을 통해 깨달았다. 예술은 단순한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 닫힌 문을 두드리는 따뜻한 손길이라는 것을. 그날의 연극 교실에서 나는 인문학을 만났다. 그리고 그 인문학은 내 마음을 바꾸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때, 그것이 곧 인문학의 실천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형을 쓰다듬던 할머니의 손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손길 안에는 사랑, 그리움, 그리고 삶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예술은 그렇게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날의 장면을 떠올리며 다짐한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곧 인문학이다.”
사업소개 청소년 인문교실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인문·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인문소양을 높이고 자기 존중감과 공동체 소속감을 기를 수 있도록 전국 5개 권역별(수도권,강원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로 제공하는 인문·문화프로그램 지원 사업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수기공모전] 인형이 건넨 위로 “연극 속에서 만난 인문학의 마음"'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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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공모전] 인형이 건넨 위로 “연극 속에서 만난 인문학의 마음"
2026-01-14
이 글은 2025 청소년 '일상 속 인문' 참여 수기공모전 우수상 작품입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경남 합천에서 ‘아동·청소년 연극 교육 서비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연극 교육’이라 해서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이 시작되자,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수업의 대상은 8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이었다. 그 순간, 나는 조금 의아했다. ‘어르신들이 과연 연극 수업을 좋아하실까?’,‘혹시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실까?’ 솔직히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장면은 내 생각의 틀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연극 강사는 인형들을 꺼내 놓고, 어르신들에게 하나씩 마음에 드는 인형을 선택해 보시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인형이 여러분의 마음속 누군가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세요.” 그 순간, 어르신들의 얼굴에 잠시 어색한 미소가 스쳤다.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던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들의 표정이 서서히 바뀌었다. 첫 번째로 말을 꺼낸 것은 한 할머니였다. 그분은 작은 곰 인형을 손에 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인형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얘들아, 요즘 많이 바쁘지? 그래, 다 이해한다. 살아가느라 힘들지.”
그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따뜻했다. 처음에는 웃으며 말씀하시더니, 이내 눈가가 붉어졌다. “그래도 엄마가 잘 지내고 있어. 그냥…. 한 번쯤 얼굴만 보러 오면 좋겠다.” 할머니는 인형을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말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식과 진짜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을 보며, 내 마음속 깊은 곳이 뭉클해졌다. 요즘 세상은 너무 편리해졌다. 전화 한 통이면 안부를 전할 수 있고, 메시지 하나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직접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인형 대화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의 통로’를 여는 행위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내 부모님 생각이 났다. 10분 거리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계시지만, 정작 집에서는“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이 갑자기 너무 미안하게 느껴졌다. 다른 쪽에서는 또 한 분의 할머니가 작은 아기 인형을 품에 안고 계셨다. 그분은 손녀를 떠올리며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이쁜 손녀, 요즘은 학교 잘 다니고 있겠지? 밥은 잘 먹고 있나 몰라.” 할머니는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치 진짜 손녀를 재우듯 인형을 품에 꼭 안으셨다. 그분의 얼굴에는 그리움과 사랑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비록 인형을 매개로 한 짧은 상황극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향한 진심과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연극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인형을 이용해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누구는 가족의 식사 시간을 표현했고, 누구는 어린 시절 고향집 마당을 떠올렸다. 그때마다 교실 안에는 웃음과 눈물이 뒤섞였다. 연극은 무대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치유하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수업에는 분명한 ‘인문학의 힘’이 있었다.
연극은 단순히 대사를 외우거나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어르신들이 인형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순간, 그들은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치유의 언어였다. 나는 그날 수업을 보며, 인문학이 결코 어려운 철학이나 책 속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모든 과정에 존재했다. 할머니들의 눈빛 하나, 목소리의 떨림 하나에도 인문학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가장 따뜻한 공부였다. 수업이 끝날 무렵, 어르신들은 인형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 인형은 집에 가져가면 안 될까?” 웃으며 하시는 말에 강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인형 하나가 그분들의 하루를 위로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짜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을 나서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날따라 유난히 구름이 따뜻해 보였다.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구나.’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예술은 화려함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보듬는 언어였다. 그날 나는 인문학을 책에서가 아니라, 사람의 표정 속에서 배웠다.
나에게 인문학은 이제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수업을 통해 깨달았다. 예술은 단순한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 닫힌 문을 두드리는 따뜻한 손길이라는 것을. 그날의 연극 교실에서 나는 인문학을 만났다. 그리고 그 인문학은 내 마음을 바꾸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때, 그것이 곧 인문학의 실천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형을 쓰다듬던 할머니의 손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손길 안에는 사랑, 그리움, 그리고 삶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예술은 그렇게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날의 장면을 떠올리며 다짐한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곧 인문학이다.”
사업소개
청소년 인문교실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인문·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인문소양을 높이고 자기 존중감과 공동체 소속감을 기를 수 있도록 전국 5개 권역별(수도권,강원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로 제공하는 인문·문화프로그램 지원 사업입니다.
사업대상 청소년
사업연도 2025년
주최·주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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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수기공모전] 인형이 건넨 위로 “연극 속에서 만난 인문학의 마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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