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전자디자인고등학교 디자인과에서의 학교생활은 언제나 색과 형태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번 인문학 프로그램들을 통해 이전까지의 내가 눈으로만 보던 세상을 마음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디자인은 결국 사람과 이야기를 담는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인문학이라는 개념은 그 언어의 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부산 역사 강의’였다. 솔직히 처음엔 단순한 지역사 수업쯤으로 생각했지만 강의를 들으며 부산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연대기나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지층처럼 느껴졌다. 선사 시대의 조개더미에서부터 근대 조선소의 쇠망치 소리까지, 바다는 늘 우리 부산의 역사 한가운데 있었다. 강사님께서는 “바다는 부산 사람들에게 생명이고, 기억이며, 정체성이다”라고 하신 그 한 문장이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았으며, 우리가 매일 오가는 거리, 무심히 지나치는 건물들, 그리고 항구의 냄새 속에도 시간의 결이 스며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도시를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쌓인 인문학적 결정체로 바라보기 시작한 게 이번 프로그램의 시작이자, 나의 시선이 달라진 첫 순간이었다.
며칠 뒤 우리는‘영도 깡깡이 예술 마을’로 현장 체험학습을 떠났다. 아침 햇살 아래 버스를 타고 도착한 마을은 바다와 철의 냄새가 동시에 느껴지는 곳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마치 오래된 배의 잔해가 새로운 예술로 다시 태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선생님께서 체험학습에 대해 사전 공지를 해주실 땐 이름부터가 깡깡이 마을인 탓에 반 친구들의 웃음을 자아냈는데,‘깡깡이’라는 이름이 배를 고칠 때 쇠망치가 부딪치는 소리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 소리가 내 귀에 생생하게 울렸으며 그 소리 안에는 노동의 땀, 산업의 기억,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함께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마을 곳곳을 걸었는데, 깡깡이 생활문화센터에서는 옛 조선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거칠고 단단한 손,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눈빛은 놀랍도록 따스했다. 그리고 동명 철공 창고 벽화 앞에 섰을 때는, 녹슨 철제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이 벽화의 인물 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과거의 노동자들이 지금의 우리를 바라보는 느낌이 너무도 생생해서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했다. 뱃머리 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걷자, 멀리서 키네틱 아트 작품이 바람에 따라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쇠붙이와 바람, 햇살이 만나 만들어내는 소리와 그림자가 어쩐지 철학적으로 느껴져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그 순간 나는‘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이 마을은 그 형태를 예술로 바꿔 숨 쉬고 있는 게 아닐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들었던 그 생각은 나에게 묘한 감동을 주며 이 공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오전의 햇살 속에서 본 마을도 아름다웠지만, 마음 한편에서는“노을이 질 때의 깡깡이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상상이 피어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이 공간의 또 다른 얼굴, 또 다른 시간을 보고 싶은 인문학적 호기심 같았다.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 안에 존재할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마음 말이다.
마지막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은‘부산 관광 그래픽 굿즈 제작’이었다. 디자인과 학생으로서 이번 작업은 내 전공과 인문학적 감수성이 만나 교차한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에 우리는 부산의 상징을 담은 굿즈를 직접 기획했다. 나는 머그컵 디자인을 맡았고, 자연스럽게 가장 인상 깊었던 깡깡이 예술마을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찍어둔 사진을 참고하여 나는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본 그대로의 풍경을 그리지 않았다. 그때 들었던 호기심을 발자취 삼아 오전에 찍었던 사진을 노을이 번진 오후의 풍경으로 재해석했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선박 위, 주황빛으로 물든 벽화 그리고 바다 위로 비치는 노을의 잔광같이 깡깡이 마을의 이미지를 색으로 번역하며, 나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시간을 디자인 안에 담으려 노력했다. 현실에서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상상으로 완성된 그 장면은 마치 나만의 기억 같았다. 그 안에는 나의 시선과 감정, 그리고 깡깡이 마을에서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완성된 머그컵을 손에 들었을 때, 단순한 디자인 작품이 아니라‘하나의 이야기’를 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 세 가지 인문학 프로그램은 이전까지의 색과 형태만 보던 내게 새로운 눈을 열어 주었으며, 전학을 오고 나서 처음으로 의미 있는 디자인을 한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고,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시간의 결을 읽으려 하는 나의 내면 또한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의 나는 어떤 작품을 만들든, 그 안의 장소나 사람 개개인의 의미와 이야기를 담고 싶다. 노을빛 깡깡이 마을을 그리며 인문학이란 세상을 더 깊이 사랑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마음을 내가 가진 언어, 즉‘디자인’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장 큰 성장의 증거였고, 디자인이란 결국, 보이지 않는 마음과 시간까지 형태로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인문학의 진짜 의미이며, 내가 깡깡이 마을에서 찾은 가장 따뜻한 노을빛이다.
사업소개 청소년 인문교실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인문·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인문소양을 높이고 자기 존중감과 공동체 소속감을 기를 수 있도록 전국 5개 권역별(수도권,강원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로 제공하는 인문·문화프로그램 지원 사업입니다.
인문 사업 아카이브
[수기공모전] 노을을 디자인한 햇빛
2026-01-14
이 글은 2025 청소년 '일상 속 인문' 참여 수기공모전 우수상 작품입니다.
부일전자디자인고등학교 디자인과에서의 학교생활은 언제나 색과 형태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번 인문학 프로그램들을 통해 이전까지의 내가 눈으로만 보던 세상을 마음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디자인은 결국 사람과 이야기를 담는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인문학이라는 개념은 그 언어의 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부산 역사 강의’였다. 솔직히 처음엔 단순한 지역사 수업쯤으로 생각했지만 강의를 들으며 부산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연대기나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지층처럼 느껴졌다. 선사 시대의 조개더미에서부터 근대 조선소의 쇠망치 소리까지, 바다는 늘 우리 부산의 역사 한가운데 있었다. 강사님께서는 “바다는 부산 사람들에게 생명이고, 기억이며, 정체성이다”라고 하신 그 한 문장이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았으며, 우리가 매일 오가는 거리, 무심히 지나치는 건물들, 그리고 항구의 냄새 속에도 시간의 결이 스며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도시를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쌓인 인문학적 결정체로 바라보기 시작한 게 이번 프로그램의 시작이자, 나의 시선이 달라진 첫 순간이었다.
며칠 뒤 우리는‘영도 깡깡이 예술 마을’로 현장 체험학습을 떠났다. 아침 햇살 아래 버스를 타고 도착한 마을은 바다와 철의 냄새가 동시에 느껴지는 곳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마치 오래된 배의 잔해가 새로운 예술로 다시 태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선생님께서 체험학습에 대해 사전 공지를 해주실 땐 이름부터가 깡깡이 마을인 탓에 반 친구들의 웃음을 자아냈는데,‘깡깡이’라는 이름이 배를 고칠 때 쇠망치가 부딪치는 소리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 소리가 내 귀에 생생하게 울렸으며 그 소리 안에는 노동의 땀, 산업의 기억,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함께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마을 곳곳을 걸었는데, 깡깡이 생활문화센터에서는 옛 조선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거칠고 단단한 손,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눈빛은 놀랍도록 따스했다. 그리고 동명 철공 창고 벽화 앞에 섰을 때는, 녹슨 철제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이 벽화의 인물 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과거의 노동자들이 지금의 우리를 바라보는 느낌이 너무도 생생해서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했다. 뱃머리 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걷자, 멀리서 키네틱 아트 작품이 바람에 따라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쇠붙이와 바람, 햇살이 만나 만들어내는 소리와 그림자가 어쩐지 철학적으로 느껴져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그 순간 나는‘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이 마을은 그 형태를 예술로 바꿔 숨 쉬고 있는 게 아닐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들었던 그 생각은 나에게 묘한 감동을 주며 이 공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오전의 햇살 속에서 본 마을도 아름다웠지만, 마음 한편에서는“노을이 질 때의 깡깡이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상상이 피어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이 공간의 또 다른 얼굴, 또 다른 시간을 보고 싶은 인문학적 호기심 같았다.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 안에 존재할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마음 말이다.
마지막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은‘부산 관광 그래픽 굿즈 제작’이었다. 디자인과 학생으로서 이번 작업은 내 전공과 인문학적 감수성이 만나 교차한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에 우리는 부산의 상징을 담은 굿즈를 직접 기획했다. 나는 머그컵 디자인을 맡았고, 자연스럽게 가장 인상 깊었던 깡깡이 예술마을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찍어둔 사진을 참고하여 나는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본 그대로의 풍경을 그리지 않았다. 그때 들었던 호기심을 발자취 삼아 오전에 찍었던 사진을 노을이 번진 오후의 풍경으로 재해석했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선박 위, 주황빛으로 물든 벽화 그리고 바다 위로 비치는 노을의 잔광같이 깡깡이 마을의 이미지를 색으로 번역하며, 나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시간을 디자인 안에 담으려 노력했다. 현실에서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상상으로 완성된 그 장면은 마치 나만의 기억 같았다. 그 안에는 나의 시선과 감정, 그리고 깡깡이 마을에서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완성된 머그컵을 손에 들었을 때, 단순한 디자인 작품이 아니라‘하나의 이야기’를 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 세 가지 인문학 프로그램은 이전까지의 색과 형태만 보던 내게 새로운 눈을 열어 주었으며, 전학을 오고 나서 처음으로 의미 있는 디자인을 한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고,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시간의 결을 읽으려 하는 나의 내면 또한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의 나는 어떤 작품을 만들든, 그 안의 장소나 사람 개개인의 의미와 이야기를 담고 싶다. 노을빛 깡깡이 마을을 그리며 인문학이란 세상을 더 깊이 사랑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마음을 내가 가진 언어, 즉‘디자인’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장 큰 성장의 증거였고, 디자인이란 결국, 보이지 않는 마음과 시간까지 형태로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인문학의 진짜 의미이며, 내가 깡깡이 마을에서 찾은 가장 따뜻한 노을빛이다.
사업소개
청소년 인문교실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인문·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인문소양을 높이고 자기 존중감과 공동체 소속감을 기를 수 있도록 전국 5개 권역별(수도권,강원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로 제공하는 인문·문화프로그램 지원 사업입니다.
사업대상 청소년
사업연도 2025년
주최·주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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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수기공모전] 노을을 디자인한 햇빛'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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