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뮤덕’*이다. 6개월 동안 본 공연만 50개가 넘을 정도로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 빠져들게 된다는 특징이 있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언제 연뮤덕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2025년 2월 1일 그날을 떠올릴 것이다. 그날은 정말, 아주 우연한 하루였다. 딱히 특별히 큰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이 맞아 가볍게 예매했던 공연이었다. 평소에 ‘뮤지컬을 좋아한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1년에 2번 정도밖에 보지 않았던 18살의 나는 그렇게 ‘웃는 남자’를 만났다.
그날의 두 시간 반은 내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 무대 위 배우의 숨결, 노래에 스며든 절망과 사랑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흉터를 지닌 채 웃음을 강요받는 그윈플렌은 비극적인 인물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다. 가난하지만 사랑했던 그윈플렌과 데아, 행복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며 툴툴대지만 둘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우르수스, 자극적인 걸 찾다가 그윈플렌의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깨닫고 변화하려는 조시아나 여공작까지, 나는 그들을 통해 ‘인간의 존엄’이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배웠다.
공연 직후 난 집에 와서 뮤지컬이 왜 매력적인가에 대해 밤새 고민했고,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뮤지컬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본 이후 나는 ‘인문학’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기 시작했다. 교과서 속 철학자들의 말보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온몸으로 외치는 한 문장이 훨씬 더 크게 들렸다. 예술은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공감이야말로 인문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뮤지컬을 단순한 취미로 두지 않았다. 무대예술을 통해 사람을 연구하고,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하며 캐릭터의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는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예술과 인문학의 경계가 얼마나 희미한지를 실감했다. 생각과 몸이 만나는 지점, 그것이 무대였다. 나는 더 작은 공간으로 눈을 돌렸다. 대극장의 화려함과는 다른, 한 줄기 조명만으로도 인간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소극장의 세계가 궁금했다. 그렇게 나는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를 만났다.
세트 하나 바뀌지 않는 작은 극장에서 두 명의 배우가 네 명의 인물을 오가며 조명과 목소리만으로 세상을 만들었다. 그 단순한 공간 속에서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대단한 기술이나 장식 없이, 오로지 조명과 목소리로 인물의 감정이 전해졌다. 조명이 움직일 때마다 시간과 인물이 바뀌었고, 작은 소품 하나가 인간의 내면을 새롭게 그려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인문학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피어나는 조용한 진심이라는 것을.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빛’이었다. 배우가 위치를 옮길 때마다 조명은 그에 맞춰 새로운 인물의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그 변화만으로 공간과 시간이 달라졌다. 배우의 얼굴과 의상은 그대로지만 빛 하나로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조명의 색깔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다 같이 과거로 돌아가는 게 좋았다. 무대가 프로젝션 하나로 하나의 거대한 책이 되어 함께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 행복했다. 배우가 시간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순간 진짜 그곳이 1940년 서울이 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대학로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그 거리감이 너무 좋았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진 순간, 나는 예술의 본질이 ‘공감’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거기에는 기술적인 완벽함보다 진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심이 바로 인간의 언어였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조명이 사라진 어둠을 바라보았다.
연뮤덕 사이에서 유명한 문구가 있다. 1년 365일 중에서 하필 그날, 하필 수많은 공연 중에서 그 공연을, 또 하필 그 배우의 그 레전드 무대를 만난 것도 운명이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만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건 기적이라고. 어찌 보면 내가 ‘웃는 남자’와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를 만난 건 기적일지도 모른다.
무대는 인문학의 압축이다. 막이 오르는 순간, 배우는 언어 대신 몸으로 철학을 말하고 조명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불빛이 된다. 서사를 노래하는 음악은 감정의 논리였고, 침묵은 인간이 품은 한계의 표현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단지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거대한 서사의 한 부분으로서. 나는 이제 인문학을 ‘사람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라고 정의한다. 인문학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삶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 나는 무대 위에서,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연뮤덕: 연극·뮤지컬을 열성적으로 즐기는 팬덤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로, 연극·뮤지컬 애호가의 줄임말이다.
그것이 내가 만난 인문이자, 나를 완전히 바꾼 인문이다.
사업소개 청소년 인문교실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인문·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인문소양을 높이고 자기 존중감과 공동체 소속감을 기를 수 있도록 전국 5개 권역별(수도권,강원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로 제공하는 인문·문화프로그램 지원 사업입니다.
인문 사업 아카이브
[수기공모전] 무대 위의 인문학
2026-01-15
이 글은 2025 청소년 '일상 속 인문' 참여 수기공모전 대상 작품입니다.
나는 ‘연뮤덕’*이다. 6개월 동안 본 공연만 50개가 넘을 정도로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 빠져들게 된다는 특징이 있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언제 연뮤덕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2025년 2월 1일 그날을 떠올릴 것이다. 그날은 정말, 아주 우연한 하루였다. 딱히 특별히 큰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이 맞아 가볍게 예매했던 공연이었다. 평소에 ‘뮤지컬을 좋아한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1년에 2번 정도밖에 보지 않았던 18살의 나는 그렇게 ‘웃는 남자’를 만났다.
그날의 두 시간 반은 내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 무대 위 배우의 숨결, 노래에 스며든 절망과 사랑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흉터를 지닌 채 웃음을 강요받는 그윈플렌은 비극적인 인물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다. 가난하지만 사랑했던 그윈플렌과 데아, 행복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며 툴툴대지만 둘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우르수스, 자극적인 걸 찾다가 그윈플렌의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깨닫고 변화하려는 조시아나 여공작까지, 나는 그들을 통해 ‘인간의 존엄’이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배웠다.
공연 직후 난 집에 와서 뮤지컬이 왜 매력적인가에 대해 밤새 고민했고,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뮤지컬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본 이후 나는 ‘인문학’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기 시작했다. 교과서 속 철학자들의 말보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온몸으로 외치는 한 문장이 훨씬 더 크게 들렸다. 예술은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공감이야말로 인문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뮤지컬을 단순한 취미로 두지 않았다. 무대예술을 통해 사람을 연구하고,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하며 캐릭터의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는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예술과 인문학의 경계가 얼마나 희미한지를 실감했다. 생각과 몸이 만나는 지점, 그것이 무대였다. 나는 더 작은 공간으로 눈을 돌렸다. 대극장의 화려함과는 다른, 한 줄기 조명만으로도 인간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소극장의 세계가 궁금했다. 그렇게 나는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를 만났다.
세트 하나 바뀌지 않는 작은 극장에서 두 명의 배우가 네 명의 인물을 오가며 조명과 목소리만으로 세상을 만들었다. 그 단순한 공간 속에서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대단한 기술이나 장식 없이, 오로지 조명과 목소리로 인물의 감정이 전해졌다. 조명이 움직일 때마다 시간과 인물이 바뀌었고, 작은 소품 하나가 인간의 내면을 새롭게 그려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인문학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피어나는 조용한 진심이라는 것을.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빛’이었다. 배우가 위치를 옮길 때마다 조명은 그에 맞춰 새로운 인물의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그 변화만으로 공간과 시간이 달라졌다. 배우의 얼굴과 의상은 그대로지만 빛 하나로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조명의 색깔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다 같이 과거로 돌아가는 게 좋았다. 무대가 프로젝션 하나로 하나의 거대한 책이 되어 함께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 행복했다. 배우가 시간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순간 진짜 그곳이 1940년 서울이 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대학로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그 거리감이 너무 좋았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진 순간, 나는 예술의 본질이 ‘공감’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거기에는 기술적인 완벽함보다 진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심이 바로 인간의 언어였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조명이 사라진 어둠을 바라보았다.
연뮤덕 사이에서 유명한 문구가 있다. 1년 365일 중에서 하필 그날, 하필 수많은 공연 중에서 그 공연을, 또 하필 그 배우의 그 레전드 무대를 만난 것도 운명이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만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건 기적이라고. 어찌 보면 내가 ‘웃는 남자’와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를 만난 건 기적일지도 모른다.
무대는 인문학의 압축이다. 막이 오르는 순간, 배우는 언어 대신 몸으로 철학을 말하고 조명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불빛이 된다. 서사를 노래하는 음악은 감정의 논리였고, 침묵은 인간이 품은 한계의 표현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단지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거대한 서사의 한 부분으로서. 나는 이제 인문학을 ‘사람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라고 정의한다. 인문학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삶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 나는 무대 위에서,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연뮤덕: 연극·뮤지컬을 열성적으로 즐기는 팬덤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로, 연극·뮤지컬 애호가의 줄임말이다.
그것이 내가 만난 인문이자, 나를 완전히 바꾼 인문이다.
사업소개
청소년 인문교실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인문·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인문소양을 높이고 자기 존중감과 공동체 소속감을 기를 수 있도록 전국 5개 권역별(수도권,강원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로 제공하는 인문·문화프로그램 지원 사업입니다.
사업대상 청소년
사업연도 2025년
주최·주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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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공모전] 국경을 넘어 같은 아픔을 지닌 우리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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