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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예술밥상, 함께 하실래요?

예술공간 이아

인문쟁이 양혜영

201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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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은 골목에서 시작된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맨발로 달리며 흘리던 웃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상기된 뺨, 노을과 함께 번지는 저녁밥 냄새. 널따란 도로와 반듯한 아파트로 가득한 신도시와 달리 골목길에는 찌개 냄비를 놓고 수그려 함께 먹는 소박한 일상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오래된 골목을 만나면 각박한 도시생활에 지친 마음이 풀리는 건지 모르겠다.

 

공간 이아 전면사진공간 이아 벽면 간판

▲ 공간 '이아' 전면사진 / 공간 '이아' 건물 간판

 

 

ㅣ구도심의 중심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예술공간 ‘이아’에 가려면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을 지나야 한다. 원도심이라 불리는 그곳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천주교당, 교회, 도립병원, 행정관청과 은행이 세워진 제주 역사의 중심지다. 지금은 상권과 행정기관이 신도시로 빠져 나가 침체된 낡은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이아’가 있는 옛 제주대학교병원은 조선시대 제주목사를 보좌하는 행정기관에서 자혜병원과 도립병원을 거쳐 2009년 이전하기 전까지 100년 가까이 제주 사람들의 아픔을 치료한 유서 깊은 곳이다. 아플 때만큼 누군가의 손길이 간절한 때가 없다. 어둠에 잠긴 텅 빈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의 등불을 그리워했다. 그런 염원이 모여 지난 5월 13일,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고 밝은 도시의 미래를 꿈꾸는 문화예술공간 ‘이아’로 거듭났다. 이아의 모토는 예술로 치유하는 마음이다. 마음 속 병이 들기 쉬운 현대인을 위한 치유 공간인 셈이다.

 

이아는 지하 1층과 지상 3~4층, 연면적 2462㎡ 규모로 조성됐다. 지하 1층은 전시장 2개와 함께 연습공간, 소규모 공연장이 꾸려졌고, 3층은 창의문화교육 공간과 자료실, 카페로 4층은 창작공간 9실과 아트랩 3실, 영상편집실 등으로 구성됐다.


공간 이아 층별 안내도이아 개관과정

▲ '이아' 내부안내도 / 지하전시장 벽면 전시물

 

현재 지하에는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이 선보이는 「프리-뷰 전」과 원도심을 주제로 만든 「원도심 탐구생활」이 전시되고 있다. 「프리-뷰 전」에는 제주 4・3에서 DMZ에 이르는 한국의 심리적 풍경을 기록한 고승욱 작가의 ‘당신△우리’, 독일 마을의 모습을 담은 이재욱 작가의 ‘Inside Safety’, 로베르토의 ‘Roberto Santaguida’, 김태균 작가의 ‘임진강’, 박선영 작가의 ‘Seoul Rice Cake', 김범준 작가의 ’Desire Fall', 박종호 작가의 ‘그날’, 옥정호 작가의 ‘미술관 무지개’, 반달의 ‘다음인생’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프리-뷰전 전시작품 김태균 임진강프리-뷰전 전시작품 박종호 그날

원도심 탐구생활 전시물(이원호 공-공에대한 인터뷰)원도심 탐구생활 전시물(조성득 꿈꾸는 제주바다)

▲ ‘프리-뷰전’ 전시작품 (김태균, '임진강')(박종호, '그날') / 원도심 탐구생활(이원호, 공-공에 대한 인터뷰)(조성득, ‘꿈꾸는 제주바다’)

 

「원도심 탐구생활」에서는 7명의 작가가 3개월 동안 원도심을 관찰해 만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최정수 작가는 옛 제주대학병원의 의사, 간호사, 약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원도심 지도를 그렸고, 조윤득 작가는 과거 제주 탑동 바닷가의 먹돌밭을 재현했다. 옥인 콜렉티브는 제주 원도심에 위치한 카페 까사돌에서 바라본 예술을 영상으로 담았다. 세 시간 여행사는 제주도 오메기떡을 모큐멘터리 영상으로 표현했고, 권혜원 작가는 수백 년된 건물의 과거와 현재를 목소리로 상연하고, 진나래 작가는 분재와 수석의 형식을 차용해 제주의 자연을 형상화했다.

 

전시장을 돌다보면 나도 모르게 전시물을 가리키며 파안대소를 하게 된다. 집안 장롱 깊은 곳에 있는 앨범 속 사진이랑 흡사해서다. 오래전에 사라진 금붕어가 뛰놀던 관덕정 분수대며 미끄러질까 네발로 기어 다니던 탑동의 먹돌들. 찰나를 담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 지나온 세월의 영상이 펼쳐진다.

 

3층에서 열리는 문화예술교육3층 북카페3층 문화자료실

▲ 3층 교육프로그램(바당에서 봉가온 보물) / 3층 건물 내부 북카페, 문화자료실

 

 

ㅣ먹고 만들고 즐기는 문화 식탁

 

이아의 3층은 주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꾸며졌다. 6월 8일부터 8월 말까지 1기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인생, 이야기 한 귀퉁이’, ‘바다에서 봉가온 보물’,‘행복푸리 몸짓학교’,‘업사이클링 음악단’, ‘제주의 그물 기술을 예술로’ ‘낭푼이아 : 함께 하는 식탁’이 진행된다.

 

강의실마다 7세 아이부터 60세 이상의 어르신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를 듣고 예술작품 만드는 모습이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처럼 단란하다. 제주에는 큰 낭푼(양푼)에 밥을 퍼 나눠 먹는 풍습이 있다. 소반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낭푼 위로 밥을 수북이 올리고 식구 수만큼 수저를 꽂았다. 이제는 개인 식기가 당연한 일이라 쉽게 볼 수 없게 됐지만, 결국 예술이란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떠먹는 낭푼밥상이 아닐까.

 

길은 길로 이어지고, 어제는 오늘로 오늘은 내일의 어제로 이어진다. 함께 머문 시간을 저장해두는 공간으로 예술만큼 훌륭한 것이 없다. 근 100년간 제주도민의 질병을 치료했던 병원에서 이제는 시간을 공유하고 나누는 예술 공간으로 돌아온 ‘이아’를 마주한 소감이 푸짐한 낭푼밥상을 받은 것처럼 든든하고 행복했다.

 

 

사진= 양혜영

 

장소 정보

  • 인문쟁이
  • 제주
  • 예술공간 이아
  • 제주대학교병원
  • 원도심 탐구생활
  • 구도심
  • 치유공간
양혜영
인문쟁이 양혜영

2017,2018 [인문쟁이 3,4기]


양혜영은 제주시 용담동에 살고 거리를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매일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만 집중된 편독에서 벗어나 인문의 세계를 배우려고 인문쟁이에 지원했고, 여러 인문공간을 통해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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