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마을 풍경이 바뀌고 있다. 동네에 매일 지나쳤던 빵집이 없어지고, 과일가게가 생겼다. 그 빵집 앞을 지날 때면 빵 굽는 냄새가 났다. 과일가게가 생긴 지금도 거기를 지날 때마다 빵 냄새를 찾게 된다. 그 빵집에서 자주 빵을 사먹었던 것도 아닌데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드물다. <양림기억창고>는 양림동 토박이 주민들을 13차례 만나 양림의 옛 이야기를 수집했다. 주민들의 기억을 토대로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주요한 사건과 인물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를 살려냈다. 지금의 카페 TAYO 자리는 원래 아이스께끼를 팔던 <양파당>이었고, <꼬마상회>는 아직도 양림오거리를 지키는 68년 터줏대감이다.
▲ <양림기억창고> 전경 / <양림기억창고> 인터뷰 ⓒ김한경
Q. ‘양림기억창고’라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요.
A. 지역에 도시재생, 지역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그 지역 안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가치 있는 도시재생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을 아카이빙 작업을 하면서 옛날의 양림동 지도부터 모았어요. 익숙한 공간이 다시 읽힌 순간이었어요. 예컨대 ‘이 길은 정말 오래 전부터 있었던 길이구나.’, ‘이 골목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곳인데, 60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네.’ 이런 것들을 알아야 마을의 가치 있는 것들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민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옛 양림동’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아카이브 작업은 주민들과 만남을 통해서 이야기를 얻고, 마을 관련한 자료를 최대한 찾아서 카테고리화 하는 작업들도 같이 진행했어요. 아카이빙 작업 특성상 과정에 의미를 두는 작업이기 때문에 전시를 했을 때, 화려하게 ‘짜잔’하면서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런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어요.
▲ 이제는 사라진 거리와 상가를 소환하고 있다. ⓒ김한경
Q. 저는 ‘인문’이란 것이 인간 사이의 오고가는 대화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것 또한 지극히 인문학적 행위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의 흔적을 기억하고, 수집하고, 기록하는 행위에는 어떤 인문학적 의미가 있을까요?
A. 요새 인문학이나 인문이라는 이야기 정말 많이 하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엔 ‘인문’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에 의해서 행동하게 되는 모든 것들인 것 같아요.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한 관심을 갖고, 탐구하는 시선들이 필요해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처럼 우리가 앞으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관점에서 아카이빙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갖죠. 또 하나는 마을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하는 사람들을 늘려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한 작업을 보고, ‘이런 작업들을 있네?’ ‘나도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러한 사소한 작업이 계속 될 수 있도록 지지하는 데 의미가 있죠.
Q.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난 자리에 신식 건물이 들어선 지금의 양림동은 어떻게 보이세요?
A. 2012년도에 처음 양림동을 왔는데, 지금 정말 풍경이 많이 변했죠. 다음날이 되면 새로운 가게가 생겨 있을 정도로 빨리 변하고 있어요. 무조건 옛것을 허물고 새로 들어선 것들은 나쁘다는 시선보다 그런 과정에서 마을과 상생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림동이란 지역성을 고려해서 기념상품을 만드는 상인들도 계세요. 그런 크고 작은 시도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 들어오는 분들도 양림동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온 것이기 때문에 상인들에게도 양림동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마을과 상인이 상생해야한다는 인식이 넓어져야 할 것 같아요. 상업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상업시설이 들어와 발전될 때 마을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생각해요. 이 공간처럼 이야기를 수집하고, 마을의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능이 지금 필요한 거죠.
▲ 양림동 옛 지도 ⓒ양림기억창고 / 마을 주민 인터뷰 ⓒ김한경
Q. 양림동 주민 이야기를 수집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A. 매주 주민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넋 놓고 들었어요. 재밌는 게 한결같이 처음 만나면 자신이 살았던 옛집 위치를 알려주세요. 지금도 양림동에 사시면서, 옛 추억을 누구한테 이야기함으로써 어린 시절 추억과 풍경을 떠올리며 그리워하세요. 이야기 들을 때마다 그런 게 느껴졌죠.
Q.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A. 일단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주민을 모으는 것부터 어려웠어요. 또 이런 작업이 중요하다 인식 시켜주는 것이 중요한데, 한 문화해설사 분께서 여기 오셔서 이런 주민들의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역사적 장소가 중요한데 왜 이런 것에 중점을 두었냐고 오히려 혼났던 적도 있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과거에 있다가 없어진 것들에 대해 기록하는 건 중요하지 않죠. 관심도 없고요. 이런 것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한데, 변화를 시키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메모리박스 / 메모리박스 메뉴얼 / 메모리박스에서는 양림동에 대한 기억을 녹음할 수 있다. ⓒ김한경
Q. 개인이 자아를 찾아 ‘나다움’에 대해 고민하듯이, <양림기억창고>라는 공간 또한 하나의 자아가 형성되어 진정한 ‘양림다움’에 대해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양림다움’에 대해 고민하겠지만, 그동안 생각해온 ‘양림다움’이란 무엇인가요?
A. ‘양림기억창고’는 아직 첫 단계이기 때문에 ‘양림다움’에 대해 규정하지 않기로 했어요. 규정한 순간 거기에 갇힐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고민은 했죠. 양림동은 선교사가 처음으로 정착하고, 기독교 전파가 시작된 곳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고, 교육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죠. 여기 있었던 <최병채약방>도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자선사업을 했던 곳이에요. 양림동은 이런 나눔과 베품의 정신이 이어져오고 있어요.
또 1930년대 양림동에 당대 걸출한 문화예술인이 정말 많이 나왔어요. 시인 김현승, 음악가 정율성, 화가 한희원 등 예술가들이 어떻게 여기 많이 몰려 있었을까 생각하게 해요. 양림동은 다양한 문화들이 융화될 수 있는 개방성을 갖고 있어요.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서로 부딪히고, 또 화합하면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가 된 거죠. 한마디로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동네였죠.
▲ 기록은 누군가 읽고, 봄으로써 기억된다. ⓒ양림기억창고
❝단 한 줄이라도 계속 기억되는 문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길…❞
Q. <양림기억창고>에서 하고 있는 ‘현재’ 양림동에 대한 기록이 나중에는 또 창고에서 낡아가는 ‘과거’가 되겠죠. 머지않아 과거 될 현재의 양림동이 어떻게 기억되고 회자되었으면 좋을까요?
A. 양림동은 예쁜 카페, 음식점 같은 상업공간도 있지만 근대역사문화공간들이 있어서, 와서 또 볼거리가 있고, 반복해서 봐도 가치 있는 장소들이 많아요. 지속적인 장소 가치를 지닌 곳이죠. 양림동은 반짝 뜨는 공간이 아니고, 오래 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책도 베스트셀러로 반짝 떠서 한번 읽어보고 덮는 책이 있는가하면 오래도록 회자되는 스테디셀러가 있잖아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단 한 줄이라도 계속 기억되는 문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길 원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런 것에 대해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김한경은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시가 좋아서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지만 지금은 시를 쓰지 않는다. 예쁜 옷을 입고 예쁜 개인 카페에서 사진을 찍고 싶지만 겉으론 이런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하루는 기대하고, 하루는 절망하며 산다. 기독교지만 매일 오늘의 운세를 확인한다. 힘들 때 같이 울어주던 문장들을 기억하고 있다. 인문학에서 얻었던 위로를 모두와 나누고 싶다. 문학에 빚을 갚는 마음으로 인문쟁이 2기에 지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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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록
양림기억창고
인문쟁이 김한경
2017-07-11
하루가 다르게 마을 풍경이 바뀌고 있다. 동네에 매일 지나쳤던 빵집이 없어지고, 과일가게가 생겼다. 그 빵집 앞을 지날 때면 빵 굽는 냄새가 났다. 과일가게가 생긴 지금도 거기를 지날 때마다 빵 냄새를 찾게 된다. 그 빵집에서 자주 빵을 사먹었던 것도 아닌데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드물다. <양림기억창고>는 양림동 토박이 주민들을 13차례 만나 양림의 옛 이야기를 수집했다. 주민들의 기억을 토대로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주요한 사건과 인물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를 살려냈다. 지금의 카페 TAYO 자리는 원래 아이스께끼를 팔던 <양파당>이었고, <꼬마상회>는 아직도 양림오거리를 지키는 68년 터줏대감이다.
▲ <양림기억창고> 전경 / <양림기억창고> 인터뷰 ⓒ김한경
Q. ‘양림기억창고’라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요.
A. 지역에 도시재생, 지역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그 지역 안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가치 있는 도시재생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을 아카이빙 작업을 하면서 옛날의 양림동 지도부터 모았어요. 익숙한 공간이 다시 읽힌 순간이었어요. 예컨대 ‘이 길은 정말 오래 전부터 있었던 길이구나.’, ‘이 골목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곳인데, 60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네.’ 이런 것들을 알아야 마을의 가치 있는 것들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민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옛 양림동’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아카이브 작업은 주민들과 만남을 통해서 이야기를 얻고, 마을 관련한 자료를 최대한 찾아서 카테고리화 하는 작업들도 같이 진행했어요. 아카이빙 작업 특성상 과정에 의미를 두는 작업이기 때문에 전시를 했을 때, 화려하게 ‘짜잔’하면서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런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어요.
▲ 이제는 사라진 거리와 상가를 소환하고 있다. ⓒ김한경
Q. 저는 ‘인문’이란 것이 인간 사이의 오고가는 대화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것 또한 지극히 인문학적 행위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의 흔적을 기억하고, 수집하고, 기록하는 행위에는 어떤 인문학적 의미가 있을까요?
A. 요새 인문학이나 인문이라는 이야기 정말 많이 하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엔 ‘인문’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에 의해서 행동하게 되는 모든 것들인 것 같아요.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한 관심을 갖고, 탐구하는 시선들이 필요해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처럼 우리가 앞으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관점에서 아카이빙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갖죠. 또 하나는 마을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하는 사람들을 늘려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한 작업을 보고, ‘이런 작업들을 있네?’ ‘나도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러한 사소한 작업이 계속 될 수 있도록 지지하는 데 의미가 있죠.
Q.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난 자리에 신식 건물이 들어선 지금의 양림동은 어떻게 보이세요?
A. 2012년도에 처음 양림동을 왔는데, 지금 정말 풍경이 많이 변했죠. 다음날이 되면 새로운 가게가 생겨 있을 정도로 빨리 변하고 있어요. 무조건 옛것을 허물고 새로 들어선 것들은 나쁘다는 시선보다 그런 과정에서 마을과 상생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림동이란 지역성을 고려해서 기념상품을 만드는 상인들도 계세요. 그런 크고 작은 시도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 들어오는 분들도 양림동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온 것이기 때문에 상인들에게도 양림동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마을과 상인이 상생해야한다는 인식이 넓어져야 할 것 같아요. 상업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상업시설이 들어와 발전될 때 마을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생각해요. 이 공간처럼 이야기를 수집하고, 마을의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능이 지금 필요한 거죠.
▲ 양림동 옛 지도 ⓒ양림기억창고 / 마을 주민 인터뷰 ⓒ김한경
Q. 양림동 주민 이야기를 수집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A. 매주 주민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넋 놓고 들었어요. 재밌는 게 한결같이 처음 만나면 자신이 살았던 옛집 위치를 알려주세요. 지금도 양림동에 사시면서, 옛 추억을 누구한테 이야기함으로써 어린 시절 추억과 풍경을 떠올리며 그리워하세요. 이야기 들을 때마다 그런 게 느껴졌죠.
Q.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A. 일단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주민을 모으는 것부터 어려웠어요. 또 이런 작업이 중요하다 인식 시켜주는 것이 중요한데, 한 문화해설사 분께서 여기 오셔서 이런 주민들의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역사적 장소가 중요한데 왜 이런 것에 중점을 두었냐고 오히려 혼났던 적도 있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과거에 있다가 없어진 것들에 대해 기록하는 건 중요하지 않죠. 관심도 없고요. 이런 것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한데, 변화를 시키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메모리박스 / 메모리박스 메뉴얼 / 메모리박스에서는 양림동에 대한 기억을 녹음할 수 있다. ⓒ김한경
Q. 개인이 자아를 찾아 ‘나다움’에 대해 고민하듯이, <양림기억창고>라는 공간 또한 하나의 자아가 형성되어 진정한 ‘양림다움’에 대해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양림다움’에 대해 고민하겠지만, 그동안 생각해온 ‘양림다움’이란 무엇인가요?
A. ‘양림기억창고’는 아직 첫 단계이기 때문에 ‘양림다움’에 대해 규정하지 않기로 했어요. 규정한 순간 거기에 갇힐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고민은 했죠. 양림동은 선교사가 처음으로 정착하고, 기독교 전파가 시작된 곳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고, 교육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죠. 여기 있었던 <최병채약방>도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자선사업을 했던 곳이에요. 양림동은 이런 나눔과 베품의 정신이 이어져오고 있어요.
또 1930년대 양림동에 당대 걸출한 문화예술인이 정말 많이 나왔어요. 시인 김현승, 음악가 정율성, 화가 한희원 등 예술가들이 어떻게 여기 많이 몰려 있었을까 생각하게 해요. 양림동은 다양한 문화들이 융화될 수 있는 개방성을 갖고 있어요.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서로 부딪히고, 또 화합하면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가 된 거죠. 한마디로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동네였죠.
▲ 기록은 누군가 읽고, 봄으로써 기억된다. ⓒ양림기억창고
❝단 한 줄이라도 계속 기억되는 문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길…❞
Q. <양림기억창고>에서 하고 있는 ‘현재’ 양림동에 대한 기록이 나중에는 또 창고에서 낡아가는 ‘과거’가 되겠죠. 머지않아 과거 될 현재의 양림동이 어떻게 기억되고 회자되었으면 좋을까요?
A. 양림동은 예쁜 카페, 음식점 같은 상업공간도 있지만 근대역사문화공간들이 있어서, 와서 또 볼거리가 있고, 반복해서 봐도 가치 있는 장소들이 많아요. 지속적인 장소 가치를 지닌 곳이죠. 양림동은 반짝 뜨는 공간이 아니고, 오래 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책도 베스트셀러로 반짝 떠서 한번 읽어보고 덮는 책이 있는가하면 오래도록 회자되는 스테디셀러가 있잖아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단 한 줄이라도 계속 기억되는 문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길 원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런 것에 대해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양림기억창고, 김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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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2기]
김한경은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시가 좋아서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지만 지금은 시를 쓰지 않는다. 예쁜 옷을 입고 예쁜 개인 카페에서 사진을 찍고 싶지만 겉으론 이런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하루는 기대하고, 하루는 절망하며 산다. 기독교지만 매일 오늘의 운세를 확인한다. 힘들 때 같이 울어주던 문장들을 기억하고 있다. 인문학에서 얻었던 위로를 모두와 나누고 싶다. 문학에 빚을 갚는 마음으로 인문쟁이 2기에 지원하게 되었다.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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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머무는 그곳, 솔랑시울길을 걷다
인문쟁이 한초아
푸짐한 예술밥상, 함께 하실래요?
인문쟁이 양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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