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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낭독자들] 7회 - 김중혁 소설가

글쓰기를 부르는 문장들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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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낭독자들'은 국민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기획된 실시간 OTT 라이브 방송으로 문화 예술계의 다양한 명사가 낭독자로 출연해, 직접 선정한 문장을 낭독하고 국민의 사연을 통해 진솔한 소통을 나눕니다.

 

 

한밤의 낭독자들 7회차 

 

주제 : 글쓰기를 부르는 문장들

낭독자 : 김중혁 소설가

낭독 책 : 노라 애프런 등 공저 <진짜 이야기를 쓰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 한창훈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주요 낭독 문구

 

'내러티브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한테서 배울 수 있는 것' / 진짜 이야기를 쓰다 

- 노라 애프런

 

내가 저널리스트로 일할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시나리오 작가를 하면서 배운 것도 있다. 젊은 저널리스트로서, 이야기는 단순히 무슨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것인 줄 알았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나는,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내러티브를 부여해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조는 내러티브의 열쇠이다. 이야기꾼이라면 다음의 중요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그 일은 어디서 시작됐나? 첫 시작은 어디쯤에서 끝났고, 중간은 어디서 시작됐나? 중간은 어디쯤에서 끝났고, 끝은 어디서 시작됐나? 영화 학교에서는 고전적인 3막 구조로 위의 세 가지질문을 가르친다. 이 구조는 영화계 사람들에게 사실상의 종교이다. 저널리스트는 본능적으로 이를 배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나는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적어도 산문을 쓰는데 있어서는 말이다) 이 동기들은 작가들마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가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대 최상층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그런가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여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미학적인 동기가 상당히 약한 작가들도 많긴 하지만, 팜플렛이나 교과서를 쓰는 저자라 해도 비실용적이지만 매력과 애정을 느끼는 낱말들과 문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글꼴이나 여백 같은 것들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수가 있다. 철도 안내책자수준을 넘어선다면, 어떤 책도 미학적인 고려로부터 딱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 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것이다.

 

……

 

마지막 한두 페이지를 돌이켜보니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오로지 공공의식의 발현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듯하다. 나는 그것이 마지막 인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서문

 

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 옮기는 하겠지만 좋지는 않다.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 차라리 쓰고 있는 사람을 지켜본 이가 답하는 게 더 좋다. '쟤는 아마 그것 때문에 맨날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을 거야', 이런 답이 나올 테니까. 왜 안 좋은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니까. 왜 사는가를 물어오면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면 대부분 부끄럽고 쪽 팔리니까.

 

글쎄, 왜 쓸까. 당장 대답하기 좋기로는 원고료 때문이다. 이거틀린 말 아니다. 원고료 없으면 쓰지 않는다. 내가 일기를 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원고료가 없기 때문이다(동네 주민들 탄원서 또는 파산신청서 같은 것을 쓰거나 고쳐주는 경우는 간혹 있다). 나는 직업이 작가다. 소설가다. 원고를 쓰고 돈을 받아야 쌀 사고 전기료와 수도세, 방세를 내고 딸아이 납부금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답하면 성의 없다고 할 것이다. 이것도 맞다.

 

정확히 말해보면 쓰는 행위가 먼저 있다. 왜 쓰는가에 대한 대답은 뒤에 생긴다. 늙은 농사꾼이 작물을 심고 가꾸어온 자신의과거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것과 같다. 시작부터 이유와 의미를 정해놓는다면 '네 지금은 창대하나 나중에는 심히 미약해지리라' 소리 듣기 십상이다. 내가 어디로, 어떻게 갈지 아무도 모르니까. 살아본 다음에야 팔자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전까지는 잘 모른다. 우리 동네엔 해녀들이 대여섯 명 남았다. 평생물질을 해온 그들이 오늘도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가는 이유는단 하나이다. 어제도 나갔기 때문에.

 

물론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름의 이유가 없진 않았다. 거창한 이유를 대는 것은 볼썽사납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덤벼드는 것은 볼품없으니까. 가장 안 좋은 대답은 '그냥'이니까.

 

스물여섯이 끝나는 겨울에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했다. 이유는 단 세 가지. 물론 그것도 여러 날 고민해서 정한 것이다. 첫째, 돈을 못 벌어도 욕 안 먹는 직업은 무엇일까 고민해보니 예술가였다. 어떤 놈이 아침나절에 산책 나섰다가 옆 도시까지 걸어가고 거기서도 돌아오지 않고 국도 따라 바닷가까지 걸어간다면 보통의 경우 묶어서 병원으로 데려가거나 무당 불러 굿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예술가면 그냥 둔다. 좋다,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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