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는 대부분 호기심이 많다. 눈앞의 거의 모든 게 새로우니 당연하다. 게다가 그 안에 무궁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음을 알고 나면 호기심은 더욱 증폭된다. 나 역시 그랬다. 풍선처럼 부푼 호기심에 다락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틈만 나면 그곳에 기어 올라가, 먼지 가득한 그 시간의 흔적들을 쓰다듬고 뒤적거렸다. 누가 보던 것인지 모를 만화책 더미와 김추자의 베스트 노래를 모은 레코드판, 처음 보는 얼굴의 까까머리 중학생의 졸업 사진... 과거의 순간이 그대로 박제된 물건들을 매만지고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꿀처럼 흘렀다. 내가 겪지 않았던 미지의 순간을, 눈앞의 여러 실체들이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예술을 기억하는 거의 모든 방법
아르코예술기록원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 다락방을 떠올리게 했다. 단 한 사람의 예술인이라도 거의 평생에 걸쳐 쌓아온 흔적들이 오롯이 모이면 거대한 자료가 된다. 수많은 예술인이 남긴 삶의 기록들이 여기에 있다. 엄혹하고 험난한 시절을 거친, 한국 근대의 빛나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귀한 사료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은 예술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해, 예술 창작 및 연구·교육에 가치 있게 쓰일 수 있게 설립한 국내 최초의 예술 기록보존 전문기관이다. 1979년 5월에 개관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료실을 그 모태로 하는, 국내 유일의 종합예술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 아르코예술기록원 서초 본원 ⓒ아르코예술기록원
그동안 자료실, 도서관, 자료원에서 기록원으로 명칭도 여러 차례 바뀌었고 서초동과 대학로로 이원화하여 운영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긴 시간과 변화의 모색은 아르코예술기록원의 목적을 점점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등 한국 근현대 예술사 연구를 위해 영구적 보존가치가 인정된 기록물의 전문적 관리’가 그것이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의 자료는 방대하다. 단행본과 연속간행물을 포함한 도서 자료 101,177점 및 프로그램과 대본, 포스터 등의 비도서 자료 204,031점, 영상 자료 34,345점, 음악 자료 38,184점 등 377,737여 점의 자료를 소장 중이다.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료실을 모태로 하는 아르코예술기록원의 옛 모습 ⓒ아르코예술기록원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구술채록연구나 공연 영상 콘텐츠 제작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자체 생산 방법이 있다. 그리고 예술인에게 직접 자료를 받는 기증과 최신의 다양한 자료를 구비하기 위한 구입 등의 방법으로 예술 자료를 수집한다.
특히 구술채록 컬렉션은 각 분야 예술인들이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한 기록물로, 우리의 근현대 예술 풍경을 다층적이고도 깊이 있게 접근하게 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술채록의 내용은 과거에 있었던 객관적 사실 정보라기보다는 구술자의 시대적 경험과 가치관의 변화, 일정한 상황에 대한 당사자의 해석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구술기록을 접할 때에는 구술자의 발화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며, 이는 독자뿐 아니라 구술채록을 진행하는 연구자와 기록자들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다.
▲ 무용가 김매자 선생의 구술채록 현장 ⓒ아르코예술기록원
과거와 대화하며 오늘을 채우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의 수장고에는 수많은 예술인의 삶이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다. 구술채록 음성과 영상은 물론, 오래 전 주고받은 서신과 추억이 담긴 사진 등이 자료에 담긴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도록, 프로그램, 대본, 포스터, 회의록, 시청각 자료, 도면 등 예술 활동에 관련한 자료들 역시, 예술인의 지나온 삶을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다. 당시에 벌써 ‘종합예술인’의 면모를 보였던 신동헌 기증콜렉션 앞에서는 영화감독이자 만화가, 음악가로서 그의 천재적 재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르네쌍스 다방’의 설립자 박용찬 선생이 기증한 오래된 음반들 앞에서는, 1950~60년대 다방에 모여 젊은 열정을 나누었을 젊은 이중섭, 김환기 선생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진다.
▲ 작곡가 이만방 선생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가 엿보이는 그림 악보 자료들 ⓒ아르코예술기록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유명한 역사학자의 말을 곱씹어본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은 오늘의 내가 과거를 살았던 수많은 예술인과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그 자체로 새로운 예술이 태어나는, 특별한 역사적 순간을 품는 공간이기도 할 터이다. 여기에서 예술 자료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이들의 묵묵하지만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카이브는 살아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2019-10-21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_ 역사학자 E.H. 카
어린 아이는 대부분 호기심이 많다. 눈앞의 거의 모든 게 새로우니 당연하다. 게다가 그 안에 무궁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음을 알고 나면 호기심은 더욱 증폭된다. 나 역시 그랬다. 풍선처럼 부푼 호기심에 다락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틈만 나면 그곳에 기어 올라가, 먼지 가득한 그 시간의 흔적들을 쓰다듬고 뒤적거렸다. 누가 보던 것인지 모를 만화책 더미와 김추자의 베스트 노래를 모은 레코드판, 처음 보는 얼굴의 까까머리 중학생의 졸업 사진... 과거의 순간이 그대로 박제된 물건들을 매만지고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꿀처럼 흘렀다. 내가 겪지 않았던 미지의 순간을, 눈앞의 여러 실체들이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예술을 기억하는 거의 모든 방법
아르코예술기록원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 다락방을 떠올리게 했다. 단 한 사람의 예술인이라도 거의 평생에 걸쳐 쌓아온 흔적들이 오롯이 모이면 거대한 자료가 된다. 수많은 예술인이 남긴 삶의 기록들이 여기에 있다. 엄혹하고 험난한 시절을 거친, 한국 근대의 빛나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귀한 사료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은 예술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해, 예술 창작 및 연구·교육에 가치 있게 쓰일 수 있게 설립한 국내 최초의 예술 기록보존 전문기관이다. 1979년 5월에 개관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료실을 그 모태로 하는, 국내 유일의 종합예술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 아르코예술기록원 서초 본원 ⓒ아르코예술기록원
그동안 자료실, 도서관, 자료원에서 기록원으로 명칭도 여러 차례 바뀌었고 서초동과 대학로로 이원화하여 운영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긴 시간과 변화의 모색은 아르코예술기록원의 목적을 점점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등 한국 근현대 예술사 연구를 위해 영구적 보존가치가 인정된 기록물의 전문적 관리’가 그것이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의 자료는 방대하다. 단행본과 연속간행물을 포함한 도서 자료 101,177점 및 프로그램과 대본, 포스터 등의 비도서 자료 204,031점, 영상 자료 34,345점, 음악 자료 38,184점 등 377,737여 점의 자료를 소장 중이다.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료실을 모태로 하는 아르코예술기록원의 옛 모습 ⓒ아르코예술기록원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구술채록연구나 공연 영상 콘텐츠 제작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자체 생산 방법이 있다. 그리고 예술인에게 직접 자료를 받는 기증과 최신의 다양한 자료를 구비하기 위한 구입 등의 방법으로 예술 자료를 수집한다.
특히 구술채록 컬렉션은 각 분야 예술인들이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한 기록물로, 우리의 근현대 예술 풍경을 다층적이고도 깊이 있게 접근하게 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술채록의 내용은 과거에 있었던 객관적 사실 정보라기보다는 구술자의 시대적 경험과 가치관의 변화, 일정한 상황에 대한 당사자의 해석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구술기록을 접할 때에는 구술자의 발화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며, 이는 독자뿐 아니라 구술채록을 진행하는 연구자와 기록자들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다.
▲ 무용가 김매자 선생의 구술채록 현장 ⓒ아르코예술기록원
과거와 대화하며 오늘을 채우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의 수장고에는 수많은 예술인의 삶이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다. 구술채록 음성과 영상은 물론, 오래 전 주고받은 서신과 추억이 담긴 사진 등이 자료에 담긴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도록, 프로그램, 대본, 포스터, 회의록, 시청각 자료, 도면 등 예술 활동에 관련한 자료들 역시, 예술인의 지나온 삶을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다. 당시에 벌써 ‘종합예술인’의 면모를 보였던 신동헌 기증콜렉션 앞에서는 영화감독이자 만화가, 음악가로서 그의 천재적 재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르네쌍스 다방’의 설립자 박용찬 선생이 기증한 오래된 음반들 앞에서는, 1950~60년대 다방에 모여 젊은 열정을 나누었을 젊은 이중섭, 김환기 선생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진다.
▲ 박용찬 선생이 운영했던 고전음악감상실, '르네쌍스 다방' 간판과 SP음반 ⓒ아르코예술기록원
▲ 작곡가 이만방 선생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가 엿보이는 그림 악보 자료들 ⓒ아르코예술기록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유명한 역사학자의 말을 곱씹어본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은 오늘의 내가 과거를 살았던 수많은 예술인과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그 자체로 새로운 예술이 태어나는, 특별한 역사적 순간을 품는 공간이기도 할 터이다. 여기에서 예술 자료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이들의 묵묵하지만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그것을 증명한다.
인터뷰이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정보원 학예사
인터뷰어 : 민소연
현장 촬영 : 이중일, 강신환
소장 자료 촬영 : 최정호(아르코예술기록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archive.arko.or.kr/
장소 정보
사람과 공간, 그리고 그들에 깃든 이야기를 보고 들어 글을 쓴다. 언젠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 이미지_ⓒ오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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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방 - ③ 건축가 임형남, 노은주
민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유진 박사
이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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