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인문포럼 <제1회 인간과 문화>

변화의 시대에 공부의 의미란? -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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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순 : 여러분 안녕하세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360°인문포럼]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덕성여자대학교의 장태순이라고 합니다. [인문360°인문포럼]은 사회, 문화, 기술, 과학 등 여러 분야의 변화에 대한 인문적 가치와 해법을 모색하고 사회적 담론을 확산하기 위해서 매년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인간과 문화>, <인간과 기술·과학>이라는 두 분야로 나누어서 총 8번 진행이 됩니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5년 후 우리의 삶’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제정세, 기술, 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큰 변화가 그동안 있었고요. 특히 코로나 이후에, 우리 삶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죠. 변화의 시대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를 우리가 느끼고 있고. 그래서 올해 인문360 인문포럼에서는 5년이라는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히 먼 미래를 설정을 하고 그 5년 후의 우리의 삶을 그려보면서 지금을 살피고 다가올 미래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께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두 파트 중에서 아까 말씀드렸던 인간과 문화 분야의 네 번의 포럼에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훌륭하신 강연자분들께서 많이 오시는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기쁘고 또 많이 기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장태순 : 먼저 오늘 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강연자이신 최재천 교수님의 강연이 끝난 다음에 저와의 간단한 대담 시간이 있고요. 아마도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 그리고 교수님께서 미처 말씀하시지 못하신 내용을 제가 질문을 드리고 교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런 시간을 가진 다음에 이제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그동안 사전에 온라인으로 질문해주신 분들도 계시고 아까 입장하실 때 이 자리에서 질문해주신 분들도 계시고 또 입장하실 때 하지 못한 질문을 플로어에서 해 주실 수도 있는데요.
그런 모든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시간, 이런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요. 질의응답이 끝난 다음에 현장에 오신 분들 중에서 총 10분을 추첨에서 교수님의 책을 증정해 드리는 시간을 갖고, 그리고 그 책에 교수님께서 사인을 해 주시고 또 여러분들 중에서 희망하시는 분들께서 교수님을 직접 만나시고 사인을 받는 그런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예, 오늘 진행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될 것 같고요. 

장태순 : 그러면 오늘 강연자이신 우리 [인문360°인문포럼]의 첫 포문을 열어 주실 최재천 교수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최재천 교수님을 소개한다는 게 실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최재천 교수님이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안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형식상 소개를 드리자면요. 최재천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하신 다음에 펜실베니아 주립 대학교에서 생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으시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박사과정 중에 중남미 열대의 밀림과 자연 속을 돌아다니면서 굉장히 많은 연구를 또 하셨고요. 아마 제 생각엔 나중에 오늘 강연 중에 이 연구에 관한 말씀을 해 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다가 한국에 돌아오셔서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교수를 지내셨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도 역임하셨고요. 그리고 한국생태학 회장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거쳐서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그 이후에도 굉장히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제가 사실은 얼마 전에, 조금 전에 교수님의 명함을 받고 보니까 굉장히 많은 직책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중에서 지금 말씀드렸던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이신 것 말고 ‘제인 구달’의 정신을 잇는 생명다양성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계신 것도 있고요. 그리고 통섭아카데미의 대표를 맡고 계시고 국회기후변화포럼의 공동대표도 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이 굉장히 많은 책을 쓰셔서 제가 다 소개를 하면 이 시간이 그냥 끝나버릴 것 같은데요. 교수님 책 중에서 아마 가장 먼저 유명해진 게 1999년에 나온 《개미 제국의 발견》이라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도 많이 알려져 있고요. 《통섭의 식탁》이라는 책. 다른 책들  소개해 주신 책에 대해서도 많이들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오늘 강연의 주제가 되는 《최재천의 공부》라는 대담집을 내주셨는데요. 여기서 공부벌레이신 교수님의 공부에 관한 이야기와 공부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펼쳐 주셔서 우리한테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셨습니다. 사실은 제가 개인적으로 이 책을 소개해야 된다는 임무를 받고 나서 책을 사기가 좀 아까워서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도서관에 한 권도 없습니다. 전부 다 예약을 걸어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책을 구입해서 굉장히 열심히 읽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아직 이 책을 안 읽으셨다면 굉장히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이 사회와 별도로 강추하는 책 중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교수님을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재천 교수님을 모시겠습니다.

최재천 : 고맙습니다. 인문360, 인문360, 그랬는데, 참 이상한 분들이 많이 오셨군요. 좀 쉬시지. 뭐 이렇게 밤에 까지 공부를 하시려고 이렇게들 모이셨습니까.
첫 화면이 영 부담스럽습니다. 한때 유행하던 저 표현으로 하면 이 양반 엄친아 맞죠. 예, 엄마 친구와 아들이 맞습니다. 이것만 쭉 보면 저는 평생을 그냥 승승장구한, 실패란 단어 자체를 모르는 그런 사람처럼 아마 느껴지실 텐데. 네, 제가 반전을 좀 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에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되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시인으로 태어난 줄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한 8년 전에 저 송년회, 고등학교 동창 송년회에 한번 갔다가 제가 어쩌다가 그 동기들 중에 제법 뭐 유명한 사람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날 아주 제 친구들이 저를 작심하고 영어로 우리가 토스팅이라고 그러잖아요. 가져다 놓고 잘근잘근 씹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나와라” 그러더니 앞에 서 있으라 그러고 한 일곱 여덟 명이 번갈아 가면서 옛날에 중고등학교 시절의 저에 대한 얘기, 좋은 얘기 해 줄 줄 알았는데, 아휴~ 그중에 뭐 절반 이상이 한마디로 밥맛없었다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그렇게 밥맛없는 놈이었나. 근데 그중에 한 친구가 왜 밥맛 없었나를 설명을 하더라고요. 모든 장면에서 시인처럼 그윽하게 행동했다는 겁니다. 밥맛없는 거 맞죠? 네. 근데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그냥 우연히 백일장에 다른 친구들 가는데 그냥 휩쓸려갔다가 ‘낙엽'이라는 제목의 시를 한 편 써냈는데 그게 덜커덕 장원급제를 하는 바람에 그 중고등학교 6학년 전체가 모여 있는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금메달을 제 목에 걸어 주시면서 시인 최재천이 탄생했다. 뭐 이런 멘트를 날리시는 바람에 저는 그냥, ‘아, 내가 시인으로 이 세상에 내려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그 뭐 저만 그런 건 아닐 것 같은데 이번에는 대부분의 분들이 그런 아픈 과거를 우리 다 갖고 있잖아요. 우리 지금 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빼놓고 대한민국에서 하는 어른들은 전부 장애인이잖아요. 우리는 전부 장애인입니다. 학문장애인. 우리는 학문의 절반을 배워보지 못한 장애인들이잖아요. 중학교 3학년 때 대충 판가름 나잖아요. 글을 하나 써서 냈는데 담임선생님이 읽어보더니, “야. 솔직히 너 이거 글이라고 썼냐? 야~ 이건 뭐.” 그러다가 뭐라고 그러시냐면“야. 넌 안 되겠다. 그냥 이과나 가라.” 수학 시험을 좀 잘못 보면, “야 . 수학도 못하는 주제에. 넌 그냥 문과나 가라.” 대한민국의 교육은 굉장히 오랫동안 못하는 걸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고, 못하는 걸 피해가도록 요령을 부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전 국민이 학문의 절반을 배워보지도 못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거죠. 저는 이것은 뭐 제가 사회의 발언을 하기 시작한 이래로 줄기차게 떠들었습니다. 이거는 전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고소를 할 일이다. 그 국가가 우리에게 저지른, 어떻게 보면 정말 가장 악랄한 인권 유린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배움의 기회를 국가가 조직적으로 박탈한 거니까요. 참. 뭐. 저에게도 이게 예외가 아니래서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그냥 그때가 부임하신 교장 선생님이 저를 이과로 배정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교장 선생님실로 쳐들어갔죠. “교장 선생님 새로 오셔서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제가 우리 학교 문과 0순위입니다. 제가 별명이 시인이에요. 제가 문과를 안 가면 여기서 문과 갈 놈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뭐 교장 선생님이 3년 동안 저를 피하시면서. 그때는 학생이 인권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잖아요. 그냥 저는 그냥 운명처럼 이과로 가야 되는데, 수학을 끔찍하게 못하는 사람으로서 이과를 간다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내가 선택한 일도 아닌데 갈라진 저 철길을 따라서 저는 구조조정의 희생물로 이과로 진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오늘 여러분 앞에 인문360인데 과학자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근데 생각해 보면요. 제가 만일 문과로 갔었다고 그러면 저는 제가 오늘 부름을 못 받았을 것 같아요. 제가 아마 문과 쪽의 삶을 살았으면, 그냥 뭐 많은 분들 중의 한 분이 되고 말았을텐데. 오히려 저는 이과 쪽의 삶을 살면서 약간의 희소가치 때문에 오히려 더 득을 본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 저는 참 많이 하고 삽니다. 그래서 그 교장 선생님이 은근히 고맙습니다. 

최재천 : 제가 어렸을 때는 뭐 이런 얘기 자꾸 하다 보면 제가 굉장히 늙은 사람처럼 또 될까봐 약간 찔립니다만 책이 참 귀하던 시절이었어요. 저희 집엔 진짜 제 기억에, 제가 초등학생 때, 저희 교과서 빼놓고는 집에 책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어느 날 대청마루에서 책을 한 권 제가 발견했습니다. 두툼한 책인데 백과사전이더라고요. 저의 부친은 일거리를 늘 집에 가져와서 저녁 내내 꼼꼼하게 결재서류를 보시고 그러시던 분인데 아마 뭔가를 찾아보시려고 갖다 놓으신 것 같아요. 저는 학교만 갔다 오면 가방 집어 던지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일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거든요. 그 당시 저는 지금 생각해도 저보다 더 잘 노는 놈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고 제가 살았습니다. 저의 동네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전부 저희 집 앞에 모였어요. 제가 나가서 “오늘은 이런 놀이를 하자.”라고 선언을 해야 그날 이제 오후의 놀이가 시작이 됩니다. 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해야 된다.” 하면 그걸 하는 거고요. 그러다 보니 언제나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그러는데 어머니가 공부하라고 저를 묶어두는 거죠. 대문을 잡아 걸고. 그렇게 빈둥빈둥하다가 찾은 이 백과사전이 뜻밖에 재미있더라고요. 저 백과사전이라는 걸 처음부터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읽는 바보는 천하에 없잖아요. 그런 짓은 절대로 안 합니다. 백과사전은 사실 잘 생각해 보니까요. 요즘 여러분이 하고 계시는 활동이더라고요. 검색. 이게 검색 활동을 하는 거예요. 뭔가를 내가 보고 싶은 거죠. 뭐 백두산, 그리고 백두산을 찾아 가지고 그걸 이만큼 읽는 거잖아요. 길이도 딱 보면 스마트폰 하나에 들어갈 정도의 길이로 설명해 놓은 겁니다. 게다가 거기 그림도 사진도 많고. 이게 밖에 못 나가서 억울하긴 한데, 이게 뜻밖에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얍하고 펼쳐서 여기도 보고 여기도 보고 그러는데, 저희 어머니가 그러고 있는 큰아들을 물끄러미 보시면서 우리 맏아들이 독서를 좋아하는구나. 이제 저의 어머니도 착각을 하시고, 그 무렵에는 왜 집집마다 전집을 팔러 다니던 외판원 아주머니들이 많았습니다. 저희 집에 와서 “아이고 어머니 전집 하나 넣으시지요” 이러고요. 저희 어머니가 이제 그 사탕발림에 넘어가셨는지 세계 동화 전집을... 그때 제가 가졌던 동화 전집은 1권이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였구요. 그다음에 《집 없는 천사》,《빨강 머리 앤》 이런 식으로 쭉 나가는데. 뭐 어렸을 때 다 읽어보셨잖아요. 이게 또 뜻밖에 재미있더라구요. 저는 이런 건 제 삶에 없는 줄 알았어요. 저는 나가서 놀아야 되는데, 내 친구들이 다 내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제가 뜻밖에 이걸 읽고 있더라구요. 저게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부분 유럽 나라들의 얘기,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의 얘기? “야. 세상에 무인도가 있구나.” 뭐 이런 뜻밖의 저의 상상력이 총동원되는 일을 하게 되는 거죠. 중학교에 입학을 했더니, 사실 저희 요즘 생각하면 저희 어머니가 뜻밖에 대단하셨다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당시에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신 분인데 그렇게 공부를 썩 잘하셨던 분도 아니고. 근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근데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저의 어머니가 한국단편문학전집을 또 사주셨어요. 김동인 선생님의 《배따라기》로부터 시작해서 제일 마지막이 선우휘 선생님 글이었던 것 같은데. 이게 한 20권 되는 건데. 그 무렵에 사춘기를 겪는 소년한테는 또 이게 참 괜찮은 거였잖아요. 단편문학, 단편소설에 보면 가끔은 야릇한 성적인 묘사도 좀 있고, 장면도 있고. 읽을 게 귀하던 시절에 저는 아마 이거를 정말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었던 것 같아요. 과학자지만 제가 처음 참 복이 많은 게, 저는 여러분이 많이 알고 있는 유명한 문인들하고 이렇게 어떻게 알고 지냅니다. 저 김훈 선생님하고도 얼마 전에 통화도 한번 했고요. 그 소설과 김영하씨는 저 동네 친구고요. 동네에서 어쩌다 만나기도 하고. 은희경 씨, 정유정 씨 이런 분들이 가끔은 책이 나오면 사인해서 저한테 보내주기도 하고. 네, 제가 이런저런 행운을 누리고 삽니다. 어쩌다 드물게나마 그런 분들하고 자리를 같이하게 되면 여러분 이제 소설 쓰시는 분들은 예를 들어서 뭐 술들을 마신다 그러면 무슨 얘기를 나눌 것 같아요. 네, 소설 얘기합니다. 네. 소설을 쓰시는 분들이 그럴 때는 좀 다른 얘기 좀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그분들 소설 얘기하더라고요. 근데 가끔가다가 이런 일도 있었어요. 그중에 어떤 분이 어떤 소설인지 지금 기억이 안 나는데요. 뭐 그러면서 장면을 묘사합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생물학자인 제가 그거 오영수 선생님의 《메아리》에 나오는 장면인데요. 그러면 이제 전부 저를 다 쳐다보는 거예요. 아니 교수님은 어떻게 생물학 하는 사람이 그런 걸 다 기억하고 계세요. 제가 한국단편문학전집을 씹어 먹은 사람입니다. 뭐 이러고 지내는데. 또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더니 뮤ㅗ 어머니가 무슨 설명을 보탠 건 아닌데 지금 제가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아 이게 한국 문학에만 눈을 돌리지 말고 세계문학으로 이제 안목을 넓혀라. 아마 이러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 또 노오벨상 문학전집이라는 걸 또 들여놔 주셨어요. 제가 왜 노오벨이라고 그럴까. 네 저 거짓말 안 합니다. 요즘엔 우리 분명히 노벨상, 노벨상 합니다. 그런데 저 때 왜 노오벨상이라 그랬는지 저도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데, 굉장히 재미있는 개념의 전집이었어요. 전집을 구입했잖아요. 근데 그해 말이 되면 그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됩니다. 그럼 이건 더이상 전집이 아니잖아요. 뭔가 빠진 거예요. 그래서 되게 재미있는 걸 해요. 그러면 빠른 속도로 저 번역을 해가지고 한 권이 책방에 나옵니다. 그러면 나가서 그걸 사서 내가 갖고 있는 전집에 이렇게 추가하는 형식으로 전집을 늘려가게끔. 그래서 저것도 참 재밌었다고 생각하는데. 

최재천 : 제가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러시아의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이 그해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달려 나가서 그분의 책을 샀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뭐 솔제니친 선생님에게는 이게 누가 되는 말씀인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솔제니친은 당시의 문학성보다는 어떤 의미에선 사회운동가로서의 그게 훨씬 더 선정되는 데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걸 저는 어떻게 이해했냐면 다른 책들과 달리 약간 얇았어요. 저분의 책이. 게다가 들여다보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군도》희곡 몇 개 들어 있고요. 작품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례적으로 뒷부분의 이만큼을 저분의 수필을 번역해서 페이지수 를 채워 넣는 그런 짓을 했더라고요 출판사에서. 그런데 저는 저분의 소설이나 희곡도 읽었지만 수필을 읽다가 《모닥불과 개미》라는 수필을 읽었는데 이게 그야말로 반 페이지짜리 짧은 수필입니다. 러시아의 추운 겨울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계시다가 이제 불이 스러져 갈 무렵에 장작개비 하나를 더 붙들고 집어서 거기다 얹었다는 거예요. 근데 그 안에 개미집이 있는 줄 모르고 놓으셨다는 겁니다. 개미들이 이제 막 불에 타면서 도망쳐 나올거 아니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개미들이 불 주변을 맴돌더니 다시 불 안으로 뛰어들더라는 거죠. 개미들은, 일개미들은 알, 애벌레 얘네들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또 들어가잖아요. 그거를 묘사하는 겁니다.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통나무를 붙잡고 바둥거리면서 그대로 거기서 죽어가는 것이었다. 이게 끝입니다. 이가 솔제니친 선생님이 무슨 답을 갖고 계신 건 아니었고요. 그냥 개미는 왜 이래. 근데 왠지, 무슨 까닭인지, 이 수필이 제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어요. 제가 대학을, 수학도 못하는 주제에 제대로 갔겠습니까. 두 번이나 대학입시에 낙방을 하고, 그 당시 참 묘한 제도가 있었는데요. 제2지망이라는 제도가 있어가지고, 자기가 지망했던 학과에서 탈락하고 난 다음에, 제 기억으로 총점에서 15점인가를 감점당하고 제2지망으로 써낸, 상당히 낮춰서 인기 없는 과, 거기를 하나 적어내면 거기서 또 한 번 기회를 주는, 저는 제2지망 칸을 건방지게 빈칸으로 냈는데, 제가 동물학과에 붙었다하고 친구가 연락을 해오는 바람에 달려가서 봤더니, 진짜 그때는 학교 안에다가 이렇게 방을 붙였잖아요. 그 방에 가서 보니까 진짜 제가...저는 의예과 시험을 봤는데 의예과에는 없고 동물학과에 제 이름이 붙어 있더라고요. 이게 웬일일까. 그래서 교무처에 가서 확인을 해 보니까 제 수험번호랑 맞더라고요. 이게 뭘까 생각 해보니까. 이걸 알 수 있는 분은 분명히 옛날 담임선생님, 그분한테 제가 원서를 냈으니까... 공중전화에 가서 담임선생님한테 전화를 드렸어요. “혹시 선생님이...” 그랬더니 “그래 내가 썼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근데 왜 하필이면 동물학과를 쓰셨어요?”그랬더니 “야, 뭐, 의예과도 해부하고 동물학과도 해부할 꺼 같아서 썼는데 뭐 잘못됐냐?” 그러시더라고요. 지금은 저의 연구실에 1년에 적어도 대여섯 차례는, 작은 꼬마가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찾아옵니다. 그 부모님은 앞에 앉자마자 정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쉽니다. 저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왜 그러시죠?”그러면 “아, 예, 교수님이 얘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구요. 그냥 허구한 날 사슴벌레나 기르고 뭐 이러는데 아이가 다음에 밥이나 제대로 먹을까, 참 걱정입니다.”저는 이렇게 얘기하죠. “저 아버님 보시기에 제가 굶는 것처럼 보입니까?” “어휴 교수님이 왜 굶으세요?”, “그럼 뭐가 걱정이세요. 제가 어렸을 때 딱 저랬는데요.” 그리고 저는 상담이고 뭐고 이제 등 떠밀어서 내보냅니다만. 지금은 그래도 그렇게 찾아오신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부모님이 아이의 그런 취미나 그런 걸 어떻게 하면 지원해 주는 방법이 없을까를 이렇게 찾아보시는 거잖아요. 제가 서울대학교 동물학과에 다니던 시절에는 참 암담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나와서 취직할 수 있는 곳이 없었고요. 그 하다못해 제일 암담한 것은, 소개팅을 나가면 아주 힘들었어요. 소개팅을 나가면 왜 우리는 꼭 그렇게 처음 만난 남녀가 그렇게 악착같이 호구조사를 해야 되는지. 네, 우선, “무슨 과세요?” 이러고 묻잖아요. “동물학과입니다.” 그러면 “어휴, 우리 집에 요새 쥐가 많이 나오는데 그거 어떻게 하면 좋죠.?”, “우리 엄마가 부엌의 바퀴벌레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어떻게...” 이게 처음 만난 남녀가 나눌 대화가 아니잖아요. 저는 소개팅도 거의 해본 적이 없이 참 찌질하게 대학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4학년 때 우연히 그래도 내가 여기에 발을 들여놨는데 그래도 뭔가 해보고 끝내야 되는 게 아니냐. 대학교 4학년 때 정신 차리고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다가 그게 어떻게 이어져서 저도 유학까지 가게 됐습니다. 펜 스테이트라는 곳에 유학을 갔는데, 저는 아마 제 자유의지로 대학을 진학을 할 수 있었다고 그러면 제 생각에 무슨 과를 갔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아마 사회학과를 갔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 같아요. 그 어린 마음에 “세상은 왜 이럴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까?”, 뭐 이런 거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수강 편람을 새 학기 때인가, 보는데 소시오바이올로지(sociobiology)라는 과목이 있더라고요. 소시오(socio), 사회, 바이올로지(biology), 생물학, 사회학하고 생물학을 합쳐놓은 것 같은... 제가 비록 이제 생물학자가 되겠다고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제 마음 한구석에 사회학이 들어 있는데, 어우 이건 뭐 내가 당연히 신청해서 들어야지. 들어가서 앞자리에 앉아가지고 첫 시간인데 교수님이 딱 들어오시는데 칠판에다가 분필로 ‘왓이즈소이소바이올로지(What is sociobiology)?’ 딱 쓰시더니. 소시오바이올로지란 이러고 설명을 하시는데 이를테면 일개미들이 왜 자기를 희생 하면서까지도 사회를 위해서 일하느냐. 그런 것들이 어떻게 진화했을까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 얘기 듣자마자, 어? 솔제니친 선생님이 궁금해하셨는데. 당시 솔제니친 선생님은 미국의 망명을 하셔서 제가 다니던 이 학교에서 불과 한 대여섯 시간 떨어진 뉴햄프셔주의 어디에 계셨거든요. 거기 와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저도 궁금했거든요. 이 과목을 들으면서 저는 그냥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냥 이 공부하면서 내 삶을 만들어가리라. 부교재로 읽은 책이, 여러분 중에 분명히 읽으신 분이 계실텐데 《이기적 유전자》였던 겁니다. 저에게는 이 책이 제 삶을 바꿔 놓은 책이 되었습니다. 요즘 《이기적 유전적》를 서점에서 사시면 제가 한 말이 띠지에 이렇게 붙어 있거든요. 출판사가 저한테 뭐 한 푼도 준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냥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써먹었을까. 네, 책 한 권으로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본 경험이 있느냐. 내게는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제가 그랬는데. 그걸 띠지에다가 이렇게 써 가지고... 뭐 지금 대한민국 과학책 중에는 영원한 베스트셀러 넘버원이잖아요. 넘버원, 넘버투 세이건의 《코스모스》랑 둘이 권좌를 다투는 책인데. 네 그냥 제가 한 말이 아니구요. 저한테는 정말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선사한 그런 책이었습니다. 저는 이 과목을 들으면서 바로 이 책을 이 소시오바이올로지 텍스트북을 쓰신 에드워드 윌슨 교수님, 하버드 대학의 교수님이었는데 언감생심 제가 저분에게 편지를 내고 제가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 저를 만나주시겠습니까? 제 미국 친구가 네가 감히 이런 분한테 편지를 내느냐. 그렇게 얘기를 할 정도로. 그런데 그 친구가 제가 미국에 가서 처음 사귄 제 미국 친구인데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고, 너무나 친한 친구인데 그 친구가 제게 처음 가르쳐 준 미국이, 미국이라는 걸 처음 가르쳐주면서 가르쳐 준 표현이 있었거든요. “You never know untill you try.”라는 표현이었어요. 시도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그게 미국이라는 사회다. 우리가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부르잖아요. 그게 바로 그 뜻이잖아요. 덤벼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네가 나한테 맨날 그랬잖아. ‘You never know untill you try.’ 그래서 지금 try 하는데 왜 네가 난리냐.”“ 아, 그래도 그렇지, 아니, 네까짓 게 어떻게 특히 윌슨 교수님한테...” 근데 보냈는데. 일주일 만에 답장을 제가 받았고 그러고 가서 만나 뵙고 이게 말도 안 되게 제가, 이제 그분의 제자가 돼서 하버드에 입성을 합니다. 저의 연구실은 저기 있는데요. 갔는데, 생물학과 과사무실에서 저를 부른다고 그래서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제 폴더에 뭔가 하나 비어 있다고. 예, 미싱(missing) 뭐가 있다고 그래서 뭐냐. 그랬더니 서울대 성적표가 안 왔대요. 그래서 알았다고, 내가 연락 한 번 하고. 예, 절대로 연락 안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지금도 제 하버드 대학의 폴더에는 서울대학 제 성적표가 없습니다. 제가 그때 하버드 ,예일, 코넬, 미시간, 네 군데를 지원으로 했는데 서울대의 학적과의 편지를 냈고 나머지 세 대학에는 전부 성적표가 다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하버드에만 배달 사고가 난 겁니다. 아마도 이 배달 사고 덕택에 제가 붙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저는 진짜 제가 여러분에게 만일 제가 한국의 서울대학의 성적표와 제가 미국에서 받은 성적표를 같이 보여드리면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이게 한 사람의 성적표일 리가 없다.”라고 얘기하실 겁니다. 서울대 성적표는 뭐 D마이너스에 F가 줄줄이 있었는데 정말 미국에 가서 제가 받은 성적들은 거의 뭐 거의 전부가 A를 받았어요. 참 신기하더라고요. 남의 나라 말로 공부를 하는데, 아마 10배, 100배 힘들었을 텐데, 이상하게 미국에서는 제가 잘 하더라구요. 이게 무슨 조화인가. 이건 저도 생각해도 신기했습니다. 저는 정식으로 교수 생활을 한 것은... 물론 하버드에서는 전임강사로 2년을 보냈지만. 그것은 그저 정교수가 되는 그런 과정은 아니니까. 교수로서는 제가 세 대학을 거쳤는데요. 미시간대학 서울대 그리고 이화여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습니다만. 세 대학의 연구실은 제가 똑같이 이름을 갖고 다녔습니다. ‘Lavoratory of behavior and Ecology’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는 연구실이다. 제가 서울대학에 1994년에 부임을 했는데요. 그 이른바 분자생물학이라고 우리가 통칭해서 부르는 실험실에서 세포 하나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단백질 유전자. 이런 걸 연구하는. 그런 분야를 전공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찾아뵐 교수님들이 많죠. 그런데 저 자연에 나가서 동물연구를 하고 싶다는 학생들은, 제가 서울대에 부임하고 난 다음에 찾아올 사람이 전국에 어떻게 보면 저밖에 없는 거였어요. 그래서 거의 100명 가까운 학생이 1년에 찾아오더라고요. 근데 제가 윌슨 교수님이 아무것도 아닌 저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저의 인생의 엄청난 전환기를 제가 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어느 학생도 제가 거부하지 않았어요. 다 만나주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거의 100명 가까이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고, 오는 학생마다 그냥 한다는 얘기가. “코끼리를 연구하고 싶습니다.”,“코뿔소 연구하고 싶습니다.”그러면 저는 “나도 아직 아프리카에 못 가 봤는데...”, “고래를 연구하고 싶습니다.”“어휴, 저 옆에 해양학과도 배가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고래를 연구하냐.” 제가 한 1년, 거의 2년 가까이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저는 변명을 하고 있더라고요. 못한다, 못한다, 못한다. 그 당시 서울대 교수 월급이 정말 쥐꼬리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저는 열대를 연구한 사람인데요. 아마 제가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열대를 연구한 제가 최초의 인물일 겁니다. 저 이전에 열대를 다녀오신 분은 있을지 몰라도 열대의 정글에서 몇 년씩 머물면서 연구하고 그런 삶은 아마 제가 우리 역사에 제가 처음일 것 같은데. 저는 열대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인데 열대지방은 대체로 생활비가 싸기 때문에. 사실은 제가 비행기표만 마련하면 가서 웬만큼 개길 수 있거든요. 저는 이제 비행기표를 마련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절약을 하면. 근데 제가 이 학문을 발전시키려면 제 대학원생들을 제가 데리고 가야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친구들의 비행기표까지 제 월급에서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 고민을 자꾸 하다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제가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그냥 어느 순간에 제가 학생들에게 선언을 해버렸어요. 내 연구를 접겠다. 그러니까 저는 열대에 가서 하는 저의 연구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하고 싶어하는 연구를 어떻게든 뒷바라지하는 사람이 되겠다. 그래야만 제가 이 학문 분야를 대한민국 땅의 대한민국 토양의 뿌리라도 어떻게 내려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를 죽이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상당히 고귀한 생각을 한 거겠죠. 근데 금방 후회할 수밖에 없었던 게, 해외학회에 나가면 금방 웃음거리가 되더라고요. 대개 제 분야의 교수들은 평생에 한 동물만 연구합니다. 그냥 한 동물만 수십 년 연구하다 보면 그 동물에 대해서 그분이 뭐 50대, 60대가 되면 세계 최고의 대가가 되는 거죠. 근데 학교에 가서 저녁때 뭐 술 한 잔 하려고 모였는데 어느 친구가 이렇게 얘기를 해요. “넌 얼마 전에 보니까 무슨 진딧물 논문 썼더라?”근데 옆에 있는 친구가 “얘 뭐 바퀴벌레 논문도 썼고, 얼마 전엔 조랑말 논문도 쓰고 말이야. 얘 웃기는 놈이야.” 또 저쪽에 있는 친구가 “야 너 동물원장이냐.” 참 듣기 싫었어요. 그리고 제가 제 논문 목록을 이렇게 봐도, 제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거예요. 귀뚜라미 논문 몇 편, 개미 논문 몇 편... 이놈은 뭐하는 놈인지를 알기 힘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학회를 건너뛰기 시작하더라고요. 핑계를 삼아서. 금년에는 안 갈란다. 뭐 이런 식으로. 학회에서 저를 부르면, 뭐 와서 홍보를 해달라. 그러면 이제 가고 그렇지 않으면 안 가고... 그 무렵의 제가 실토는 못하지만 마음속의 제가 제 제자들을 미워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생각하니까 내가 왜 저놈들한테 내 인생을 바쳤을까. 그런 작고 이상한 생각이 마음속에서... 그걸 제가 드러냈는지 어떤지는 전 잘 모르겠는데 아직 제 제자들 중에 저한테 실토한 사람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근데 이 와중에 참 이상한 일이 하나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자연과학분야에. 뜻밖에, 제가 오늘 뜻밖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쓰네요. 백과사전을 만드는 붐이 일었습니다. 이게 참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요. 요즘 시대에 백과사전을 누가 봅니까. 게다가 자연과학 분야의 이게 도대체 뭘까. 끌려 들어가고 난 다음에야 그게 뭔지를 뒤늦게 알았어요. 이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었더라구요. 자,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자 우리 분야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연구한 거 요약해서 주세요. 누가 주겠습니까? 근데 백과사전을 만듭니다. 한 꼭지 부탁드립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당신이 세계에서 제일 권위자니까 당신이 써주면 좋겠습니다. 이건 사람들이 넘어간다는 거죠. 그래서 다 모아가지고, 이게 다 모아지니까 그걸 데이터베이스화하더라고요. 이게 워낙 방대한 작업이니까 처음에 세 권으로 묶였는데 각 분야마다 에디터들이 하나 추대가 된 거죠. 모두 열일곱 명이 추대가 됐는데, 네, 보시다시피 저 위에 제가 있습니다. 제가 사회행동분야의 편집장으로 추대가 됐는데 이게 너무 말이 안 되는 초대였어요. 이웃 나라의 일본은 동물행동학회라는 게 있습니다. 저는 몇 번 초대받아 가서 강연도 하러 가고. 그런데 가보면 거의 1,000명 정도가 모입니다. 이게 규모가 상당한 거죠. 우리나라는 동물행동학회 만들어달라고 지난 10년 동안 제가 참 많이 요청받았는데 제 대답은 언제나 “회원 스무명으로도 하겠느냐?” 뭐 그러니까 뭐 몇 명 안 되거든요. 거의 기본적으로 제 제자들이 거의 전부인데, 그런 열악한 나라의 학자를 편집장으로 모셔준다. 너무 황송해서 저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 책이 나왔고요. 근데 2016년에, 2010년에 나왔고, 6년 후에 출판사에서 이메일이 날아오더라고요. “개정판을, 세컨드 에디션을 만들기로 했는데 뭐 어떻게 생각하냐.” “어 좋은 생각이다.” 근데 그다음 이메일이. 그런데 네가 총괄 편집장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이 열일곱 명을 총괄하는 편집장님이 계셨거든요. 영어로 얘기하면 editor in chief라고 우리가 얘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펄쩍 뛰었죠. 이건 아니다. 봐라, 나 빼고 열여섯 명 전부 영어가 모국어인 백인, 흑인도 없고요. 동양인 없고요. 저만 동양인이고 저만 영어를 배워서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누구를 시켜도 나보다 나을 거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아주 정말 완곡하게 제가 고사를 했는데 그다음 답장이, 총괄 편집장을 하시던 분이 80대 초반이 되시는 바람에 더 못 하시겠다고 물러나시는데 그분이 너를 지목을 했다. 아니 왜? 이러면서 이제 저는 뭐 계속 고사를 했죠.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해서 한 달을 거의 매일같이 이메일이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아 제가 왜 그랬을까요. 한 달 만에. 제가 참, 말도 안 되게 수락을 하고, 네, 제가 열다섯 명의 분야별 편집장들을 선임하고. 함께 3년 동안 일을 해서 이번에는 네 권의 책으로. 전체 페이지 수가 한 3,000페이지 정도 되고요. 저희 분야의 학자들 600명 정도가 총동원돼서 만든. 겉장에 보시면 제 이름이. 예 editor in chief하고 제 이름이 이렇게 박혔습니다. 네, 고백합니다. 저 이 책 받아들고. 예, 문 닫고. 책 붙들고 한참 울었습니다. 울면서 저 생각해 보니까 제자들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어떻게 나한테 이런 영예가 주어졌을까. 제가 뒤늦게 알았는데 여러 사람이 저를 천거를 했다는 거예요. 근데 그 천거한 사람들이 누군가 봤더니 학회 때마다 저를 술안주삼아서 골려 먹던 그 사람들이었어요. 동물원장이라고 골려 먹던 그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를 했느냐 하면. “우리는 한 동물만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제 미국 이름이 제이인데, “제이는 다양한 동물을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 백과사전의 총괄 편집장으로 저놈보다 더 나은 놈을 생각할 수가 없다.”라는 식으로 천거를 했다는 거죠. 예, 제가 제 제자들 덕택에. 제 제자들이 뭐 그냥 엉성한 연구를 했으면 제가 그런 추대를 못 받았을 거예요. 다들 참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좋은 학술지의 국제 학술지에 논문들을 각자 다 내주고 내줄 때 제 이름도 넣어줘가지고. 제가 이렇게 그냥 뭐 여러 동물을 제대로 연구한 사람에 대해서 이런 참 기가 막힌... 그래서 저 정말 그날부터 그냥 죽을 때까지 제자들을 사랑하기로... 네, 제 제자들을 한없이 떠받들고 살리라. 네, 절대로 제자들의 발은 밟지 않으리라. 이렇게 잘하고 삽니다. 

최재천 : 자, 이제 제 얘기는 이 정도 마치고요. 제가 이제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좀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한 번 여쭙겠습니다. 기적을 믿으시나요? 그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면 적어도 이 기적은 믿으셔야 되잖아요?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자기 민족을 데리고 홍해에 다다라서 지팡이를 한번 들었다 놨는데 홍해가 그냥 갈라지고 그리로 건넜다. 그러곤 애굽의 병사들이 왔을 때는 말을 타고 건널 수도 없을 정도로 다 휩쓸렸다. 뭐 이거잖아요. 네, 저는 결혼을 좀 잘못해가지고 독실한 기독교인 아내를 모시고 삽니다. 진화학을 하는 바람에 제가 세례를 받을 수는 없고. 네, 결혼할 때 교회는 같이 가겠다라고 약속을 해서. 네, 벌써 교회를 몇십 년 동안 다니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그 유명한 강원용 목사님께서 하루 저한테 물으시더라고요. 돌아가시기 전에. “최선생은 진화학을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교회를 오느냐.” 그래서 “네, 독실한 운전기사로 오고 있습니다.” 껄껄껄 웃으시더라고요. 참 이건 못 받아들입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실 지금 몇 년 전부터 외국의 저의 기후변화 관련 동료들이랑 데이터를 뒤지고 있습니다. 지구의 역사를 놓고 보면 지금은 우리가 남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어서 바닷물 수위가 지금 점점 높아지고있는 상황이지만 빙하기에는 상당한 물이 얼음으로 잡혀서 바닷물 수위가 낮았던 거죠. 그러니까 바닷물의 수위는 지구의 역사에서 계속 낮아졌다 높아졌다 한 겁니다. 모세가 홍해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혹시 바닷물의 수위가 상당히 낮지는 않았을까. 이걸 옛날 데이터들을 한번 찾아보고 그러고 있는 중이에요. 제가 왜 이런 짓을 할까요? 우리나라에서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지잖아요. 물이 많이 빠져가지고 섬에까지 그냥 걸어서 갔다 오는 거죠. 혹시 이게 가능할까? 제가 이 기적은 믿어볼 용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고 싶어서 지금 찾고 있는 건데요. 제가 진짜 못 믿는 기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랍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 정도로 잘 사세요? 믿으셔야죠. 근데 종종 우리 정부는 대국민 사기를 저지르는 정부라서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국민을 그냥 속이잖아요. 그런 일들을 가끔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만약 여기서 계속 사셨다고 그러면 아니 그냥 믿으실 수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70년대 말에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갔다가 15년 만에, 90년대 중반에 다시 돌아왔는데요. 그 제가 미국에 가기 전에 학교에서 저는 이렇게 배웠거든요. 불쌍한 북한 동포들을 구해야 된다. 그는 미국에 가서 데이터를 보니까 북한이 우리나라보다 잘 살더군요. 국민소득이 북한이 더 높더라고요. 70년대 말, 80년대 초반까지는. 야, 속았구나. 근데 거기서 세계 최고의 부자의 나라에서 기죽고 살다가 15년 만에 내 나라에 돌아왔는데 신문을 딱 펼쳤는데 우리나라가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그걸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저는 여지껏 좀 이걸 믿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러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한테도 약간의. 여러분도 그런 걸 좋아하시나요? 음모론? 네, 제가 음모론을 좀 지핀다면, 우리나라의 어디든 파면. 우린 뭐 그냥 시커먼 액체가 훨훨 쏟아져 나오잖아요. 우리 뭐 기가 막힌 산유국 아닙니까. 우리가. 지지리도 가진 거 없는 나라잖아요. 우리나라에서 뭐 제법 나는 게 있나요. 뭐 값진 게 나는 게? 자, 그런가 하면 전국의. 여기저기 모퉁이마다 이다음에 우리가 참 힘들 때 꺼내 쓰라고 조상님들이 금괴를 여기저기 묻어 놓으셨잖아요. 그래서 우리 힘들면 하나씩 꺼내쓰는 거잖아요. 말이 됩니까? IMF때, 우리 손가락에 있는 금반지 뺀 사람들이에요. 뭘 꺼내 쓰기는... 제가 무슨 얘기해 드리고 있습니까? 지지리도 가진 거 없고, 지지리도 물려받은 것도 없고, 그런 참 아휴 참 박복한 나라가 불과 67년 전에 세계전쟁역사의 가장 참혹한 전쟁 중의 하나로 기록이 되죠.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완벽하게 쑥대밭이 된 나라입니다. 그런데 반세기 만에 다른 나라들은 우리 잘하라고 그냥 박수만 치고 옆에서 그냥 지켜만 봤나요? 아니잖아요? 우리가 다 경쟁했는데. 우리가 이 악조건을 뚫고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경제 대국이 됐다. 세상에 이 기적. 모세의 기적은 이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기적이잖아요. 우린 이미 어떤 나라가 됐습니까. 우리 이런 나라가 됐어요. 아니 봉준호 감독이, 저 오스카 먹더니, 이젠 또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까지 거머쥐고.이게 무슨 말이나 됩니까? 네. BTS가 세상을 주무르고, 얼마 전에는 저 열여덟 살 소년, 저게 말이 됩니까. 임윤찬이 열여덟 살인데요. 저 친구의 기교는 외국 피아니스트들이, 지금 그런데요. 기교로 치면 거의 세계 탑이다. 이게 어떻게 말이 되냐?쟤 겨우 열여덟 살이다. 야 우리 이런 나라가 됐잖아요. 우린 또 손흥민 보유국입니다. 예 이게 도대체 어떻게 이런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저는 여전히 안 믿습니다. 사실 여긴 뭔가가 있을 것 같다. 이게 뭔가 허상이고, 뭔가 있을 것 같다. 아주 끔찍하게 음모를 지금 피고 있는건데. 뭐 안 믿으면서도 이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 수 있을까, 그건 또 제가 답을 압니다. 바둑이도 공부해야 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얘기 드릴까요? 지지리도 가진 거 없고, 지지리도 물려받은 것 없고 완전히 쑥대밭이 됐던 나라가 완전 무에서 어마어마한 유를 창출해 냈는데 그건 어떻게 가능했냐? 우리는 오로지 여기에 투자해서, 오로지 공부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대통령 잘 뽑으면 혹시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언제 나지 않을까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요. 뭐 갑자기 조상님들이 팔만대장경 뒤에 보니까... 뭐 그냥 다이아몬드 광산이... 그럴 리도 없을 것 같고요. 동의하시죠? 여러분도. 우리 상황이 갑자기 좋아질 리 절대로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우리는 가는 건데요. 그럼 그러면 앞으로도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옵션은 뭡니까? 우리는 공부하는 것밖에는 아무런 무기가 없습니다. 그냥 오로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밖에는, 우리를 자신을 믿고 뭔가를 이룩해내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나라입니다. 근데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데. 4차 산업혁명의 전문가들은 제가 만나본 제가 읽어본 전문가들은 완벽하게 100% 동의하더군요. 지금 교육으로는 안 된다.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한데 지금 교육은 창의성을 키워주는 교육이 아니다. 그러면 뭔가 우리는 달리 해야 될 거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걸 지켜보면 제가 몇십 년 전에 배운 거랑 뭐 그렇게 달라 보이지도 않아요. 이래도 될까? 그게 저 걱정스러운 사람입니다. 제가 어쩌다가 하버드 대학의 작은 직책을 하나 맡고 있어서 가끔 갑니다. 회의도 하고, 뭐 일하러 가는데. 한 7년 전인가 갔다가, 누구 만나려고 학교 카페에 이렇게 앉아 있는데, 제 등 뒤에 학부생들이 몇 둘러앉아 있더라고요. 근데 그중에 어떤 한 놈이 “나 언제 때려치울까 요즘 고민 중이다” 그러더라고요. 제가 하버드대학 입학사정관을 20년 동안 했거든요. 정말 세상의 부모란 부모 중에 자기 자식을 하버드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부모, 아마 거의 없을 것 같은데, 그 기가 막힌 대학에 들어왔는데 때려치울까 생각 중이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근데 이 자식이 어떤 놈이길래 이렇게 돌아보는데. 더 놀라운 건 옆에 있는 친구들이 전부 맞장구를 치더라는 겁니다. “야, 그래도 2학년은 마치고 때려치우는 게 어떨까?” 어 아니 이놈들이 미쳤나. 이 두 놈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요. 네 마크  주커버그와 빌 게이츠 둘 다 중퇴한 놈들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에게 명확한 목표가 생겨버렸습니다. 성실히 공부해서 졸업하면 이 두 놈 밑에 가서 일해야 되는 거고요. 때려치우면, 어쩌면 이 두 놈과 같은 놈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때려치우는 게 목표입니다. 차마 그걸 못하고 졸업하는 상황이 돼버린 거죠. 하워드 대학이 이 모양이면 저와 다른 대학들은 어떨까요? 저는 오래전에 TV에 나가서 이런 소리를 한번 질러댔습니다. 제가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이 대학들을 고발하겠다. 멍텅구리대학으로 고발하겠다. 900년이 넘은 옥스퍼드 대학, 800년이 넘은 케임브리지 대학, 거의 400년 된 하버드 대학, 300년 넘은 예일대학, 우리가 다 저 대학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들 중에 넷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들은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잖아요. 융합의 세기잖아요. 근데 학과 이름도 안 바꾸고 주구장창 옛날부터 지금까지 몇백 년 동안, 그냥 셰익스피어, 호모의 일리어드, 기초과학, 이딴 것만 가르쳐요. 그거 해서 됩니까? 우리나라 대학들은 거의 매 학기 이름 바꿉니다. 독어독문학과 없어요. 지금은 ‘독일 문화 융합 서비스 학과’ 이런 식으로 이름 다 바꿨어요. 그래야 이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춰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한다 이거잖아요. 이것들은 뭐 하는 것들이에요? 근데 진짜 이 대학들이 몰라서 이러는 걸까요. 제가 오래전에 이런 얘기를 한번 해 봤습니다. 저들은 곁쇠 교육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영어로 얘기하면 마스터키 에듀케이션(Master key education)을 하는 것 같다. 제가 미국 펜 스테이트에 처음 가서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진짜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공부를 안 하다가 이제 뒤늦게 어떤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 그래서 정말 4층짜리 건물에 제가 있던 제 연구실만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거죠. 뭐 다 저처럼 열심히 하는 놈이 없다. 그런데 다른 연구실에 불이 항상 켜있습니다. 누구 연구실이냐? 조교수. 우리나라는 대학에서 일단 임용이 되면 조교수부터 정교수까지 그냥 일사천리로 다 가자나요. 미국은 안 그렇습니다. 정교수가 되어야 되는 그 과정이 굉장히 힘들거든요. 그래서 진짜 대학원생보다 더 열심히 일합니다. 근데 저하고 친했던 데이비드 쉐틀러라는 교수가 있었는데 결국은 정교수 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오클라호마 어느 작은 대학으로 간다. 그런데 그날 밤 제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는 내일 떠난다 그래서 둘이 끌어안고 또 만나겠죠. 이려는데 저한테 너한테 선물 줄 게 있다 그러면서 오른쪽에 있는 것 같은 이런 키를 제 손에 쥐고 주면서, 갖고 있으라고 그래서 제가 “이게 뭔데요.” 그랬더니 “마스터키야. 이 건물의 모든 문을 다 열 수 있어.” 그러더라고요. 그 양반이 워낙 장난을 잘 치는 양반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떠나는 순간까지 이렇게 장난을 치고 가야 되냐. 이게 뭐 톱니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이게 뭘 여냐.” “갖고 있어 봐.” 그리고 가시더라고요. 예. 새벽 두 시 반인데 궁금하잖아요. 그래서 4층짜리 건물에 학과장님 방부터 시작해서. 야, 이게, 꼽는 문마다 다 열리는데, 아 겁이 나더라고요. 이게 뭐야? 근데 인터넷 시대가 아니니까 조금 기다려야 되죠. 날이 밝고 난 다음에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마스터키 뭐 이런 책들을 뒤지고 어느 책에 보니까 마스터키를 만드는 법 뭐 이런 섹션이 있더라고요. 읽어 봤더니, 여러분들 줄이라고 그러죠. 그걸 가져다가 여기 이 톱니들을 다 갈아서 없애라 그러면 마스터키가 된다. 이게 마스터키 맞더라고요. 키는 그때야 알았습니다. 열쇠는 뼈대가 중요한 거지. 저 톱니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저 톱니는 왜 만드는 줄 아세요. 모든 문이 다 열릴까봐 걸리게 하느라고 만들어놓은 겁니다. 한 문만 열어라하고 그것만 남겨놓고 걸리라고 만들어놓은 게 저거였어요. 그러니까 저 장애물을 다 제거하면 모든 문이 다 열리는 겁니다. 저 뼈대가 없으면 꽂을 수가 없으니까 그건 열쇠가 아니고요. 그 꼽는 게 중요한 거지 저 다른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가 생각할 때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예일, 하버드는 학생들에게 마스터키를 깎아주는 겁니다. 기초학문을 제대로 가르쳐서 그 사람들이 그 졸업생들이 언제든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자기가 거기다가 조금만 보태면 그 문을 열 수 있게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대학은 제가 보기에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대학은 한결같이 서울대학을 포함해서 국민의, 민족의 대학이라는 서울대학을 포함해서 졸업생들에게 첫 직장을 얻어 주기 위해서 오로지 그것만 목표로 달립니다. 그래서 온갖 스펙을 다 쌓아가지고 키를 잘 하나 깎아주는 거죠. 요행 첫 직장은 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40 후반 50 초반이면 첫 직장에서 대개들 나오잖아요. 대기업의 경우, 임원이 되지 못하면 나와야 됩니다. 임원은 100명 중의 한 명도 안 됩니다. 그러면 99%는 전부 길바닥으로 다시 나와야 됩니다.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들은 환갑잔치를 받느냐 못 받느냐 수준으로 돌아가셨으니까. 아유, 50 후반에 직장에서 나오고 뒷방 노인 몇 년 하다 보면 돌아가셨어요. 그러나 지금은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남녀 공히 80년을 사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제일 오래 사는 나라거든요. 조만간 우리 아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거의 100세까지 삽니다. 95세 이상은 살 겁니다. 그런데 60에 50에 첫 직장에서 쫓겨나면 어쩌라는 겁니까. 저는 이화여대에서 끊임없이 학생들을 충동질하고 있습니다. 이다음에 오십 초반에 직장에서 쫓겨났다, 이화여대를 상대로 고소를 해라. 그거는 학교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거니까 고소해서 학교에서 돈을 뜯어가지고 그걸로 사업자금을 쓰면 된다. 총장님이 들으면 기절하시겠지만 그런 얘기를 저는 지금 뭐 십몇 년째 떠들고 있습니다. 대학이 이제는 졸업생이 9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겁니다. 그걸 제대로 하지 않는 대학은 제가 보기엔 직무유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벌써 17년 전입니다. 2005년에 제가 이 책을 썼는데 고령화, 저출생, 이런 문제 때문에. 그때 제가 정년을 없애라는 주장을 했다가 뭐 욕을 무지하게 먹었는데. 요즘엔 논의가 슬금슬금 지금 진행 중이죠. 없애느냐 아니면 몇 년이라도 뒤로 이렇게 미뤄 보느냐.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우리 대학생들은 지금 평생을 살면서 적어도 직업을 대여섯 번은 바꾸게 될 거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20대 초반 4년 동안 겨우 배운 거. 전공이래봐야 한 다섯 과목 정도만 배우면 대충 졸업할 수 있는데 그거 가지고 직업 대여섯 번을 갈아 타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마디로 꿈 깨라는 소리밖에는 할 게 없는 거죠.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미래학자셨고 경영학의 대가셨던 피터 드러커 선생님, 돌아가신 피터 드러커 선생님이 ‘지식의 반감기가 줄어들고 있다.’라고 얘기하셨잖아요. 이제는 그래서 배워서 써먹고 또 배워서 써먹고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사실은, 통섭형 인재가 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남기 어려울 거다. 어느 한 분야에 매몰된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섭렵할 수 있는 그런 인재가 되어야만 이 긴 인생을 무난히, 직업을 얻는다, 직장을 얻는다는 건 반타작해서 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한 번만이라도 못 얻으면 그걸로 작살나는 거잖아요. 아, 내가 20대 때는 잘했고 30대도 직업 얻었고 뭐 60대, 70대 다 괜찮았어. 근데 40대, 50대는 직업이 없었거든? 이게 허용되는 얘기입니까? 아닙니다. 그냥 일은 계속 해야되는 거기 때문에 직장은 계속 성공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통섭형 인재가 아니면 잘못하면 이빨이 빠지는 거죠. 내가 잘하는 게 어느 한 분야에 치우쳐 있다 그러면 그런 것만 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그게 아니면 안 통한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일찌감치 이런 얘기를 떠들면서 도대체 우리 교육이 이렇게 해서 될 거냐 하는 지적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통섭형 인재를 만들어도 시원치 않은데 지금 우리는 체조선수를 육성하는 교육을 하는 거잖아요. 수능에서 한 문제만 더 틀려도 수도권 바깥으로 밀려난답니다. 그러니까 저 평행봉에서 한 번만 삐끗해도 인생이 그냥 작살나는 거잖아요. 반복훈련을 끊임없이 하는 거죠. 거의 고등학교 2학년 후반부부터 고3 거의 1년 반 동안 똑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절대로 실수하지 않도록 그것만 하는 거잖아요. 인생을 살면서 80년을 살면서 가장 두뇌활동이 활발할 때가 아마도 제 생각에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일 텐데, 그때 우리는 그냥 입시 준비, 취업 준비만 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 이것처럼 낭비가 어디 있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게 다음 슬라이드 넘겨주실래요? 하실 수 있나요? 안 됩니까?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말콤엑스라는 분은 저 인권운동가였잖아요. 흑인운동가. 흑인운동가가 하신 말씀이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이에요. 지금 우리가 뭘 교육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야, 이거 뭐 흑인운동을 하신 분이 저런 말씀을 하신다는 게 참 대단한 거죠. 대한민국에서 책을 써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의 출판사들이 절대로 저자에게 허락해 주지 않는 게 하나 있습니다. 책 제목입니다. 책 제목은 굳세게 자기네들이 지어야 된답니다. 그래야 팔 수 있다고. 이번에 뭐 《최재천의 공부》. 이름을 어떻게 제목에다가 이름을 저렇게 대놓고 하냐. 제가 아휴, 이거는 안 된다고, 사실 내가 제목을 지어 놓은 게 있다 그랬더니 “뭔데요?” 그러더라고요. 《교육으로 흥한 나라 교육으로 망하다.》 그랬더니 그냥 단칼에 자르더군요. 한 권도 못 팝니다 이러더라구요. 네. 그래서 또 양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양보를 잘 했나 봐요. 제가 책을 제법 많이 썼는데, 제 책은 이렇게 확 팔려본 적이 없거든요. 그냥 찔끔찔끔 오랫동안 그냥 찔끔 팔리는 책밖에 써본 적이 없는데, 이거는 뭐 그냥 전체 순위에도 막 올라간 적도 있고요. 그래서 저도 지금 놀라고 있습니다. 이게 뭔 일이다요라며 지금 놀라고 있는데. 제 본심은 제가 제목으로 쓰고 싶었던 저게 제 본심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인데, 지금 우리가 이 교육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 저는 그냥 현상 유지가 되는 게 아니라 나라가 망할 것 같은 걱정이 정말 많이 듭니다. 그래서 이 정말 조금 뭔가 근본적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에 일찌감치 저는 우리나라는 대학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 된다고 제가 주장을 했습니다. 20대 초반 학생만 가르치는 대학만 필요한 게 아니라. 또 새로운 직업을 얻어야 되니까, 30대, 40대, 심지어는 70대를 가르치는 대학들이 만들어져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주장을 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신문 기사 제목으로 가장 기가 막힌 제목이라고 하는 게 뭔지 아세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 닫는다.’라는 제목이 신문기자들이 뽑은 최고의 제목이랍니다. 네, 지금 지방대학들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거든요. 그런데 그게 벚꽃 피는 순서대로 온답니다. 무슨 얘기예요. 수도권에서 먼 대학부터 시작해서 온다는 거죠. 결국은 살아남는 건 수도권에 있는 몇 대학만 살아남고 다 문을 닫게 될 거라는 거죠. 이미 금년도에 천안 이남의 대학 중에 정원을 제대로 채운 대학이 없습니다. 국립대학 포함해서. 대전에 있는 어떤 대학은 신문에 광고까지 내더군요. ‘입학하시는 순간 계좌로 500만원 쏴드립니다.’ 이게 광고 문구였어요. 등록금은 안 내는거고요. 그러니까 전원 그냥 무료고, 거기다가 생활비 조로 500만원을 쏴드리겠다. 왜 그래요? 대한민국은 국, 공립, 사립 할 거 없이 교육부가 먹여 살리는 구도거든요. 교육부의 돈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대학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육부의 돈을 받으려면 정원을 어느 정도 채워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호객행위를 해서라도 정원을 채워야 되는 거죠. 500만원 씩 뿌리면서라도 채워야 되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이제 조만간 다 없어지고 수도권에만.

최재천 : 대한민국은 이미 그런 나라가 돼버렸습니다. 수도권 인구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버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지방을 살려보려고 무지무지 애를 쓰셨습니다. 그때는 저는 몰랐습니다. 그게 왜 저걸 저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 당신이 저 부산에서 계속 떨어진 게 억울해서 그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제야 제가 이해합니다. 이제는 우리는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습니다. 정치는 지방을 절대로 절대로 거들떠볼 리 없습니다. 표는 수도권에 다 몰려 있거든요. 50% 이상이 여기에 몰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될 사람은 뭐 이번에 보신 것처럼 몇 표만 더 얻으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여기 여기가 50% 이상인데 저 밑을 생각할 이유가 이제 앞으로 점점 없어지는 거죠. 참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될까? 앞으로 참 큰 고민입니다. 

최재천 :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벌자(閥)를 참 싫어하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하려면 보수 진보 할것 없이 일단 재벌을 욕을 해야 일단 정치인으로, 뭔가 이게 서는 거고요. 파벌 싫어하고요. 학벌도 참 욕먹더라고요. 괜히 제가 어디 가서 하버드 나왔습니다 그러면.,하버드 나왔으면 다야. 자기가 뭐 어쩌구. 욕을 괜히 하세요. 그래서 말하기도 힘들어요. 근데 제가 오래전부터 “제가 책벌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아무도 욕을 안 하시네요. 저는 책을 많이 사고, 많이 모으고, 책 열심히 읽고, 책 많이 쓰고 삽니다. 그런데 “아, 저 책벌 같은 놈.” 아무도 안 그럽니다. 이건 좋은 일인가 봐요. 대학을 대여섯 번 갈 수 없다면. 저는 우리나라 교육부가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고 대학을 훨씬 많이 만들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게 우리 우리가 오히려 역발상을 해서 세계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저는 확신하는데. 그게 될 리가 없겠죠. 그러면 그다음에 하셔야 될 일은 뭔가? 네. 책을 읽는 일이죠. 책을 읽어서 내 지식의 영토를 조금씩 조금씩 늘려 놓다 보면, 내가 어느 날, 뜻밖에 나한테 주어진 기회를 내가 살릴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생기는 겁니다. 대가가 되어서 그 일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남보다 요만큼 더 알기 때문에 그 일에 뛰어들 수 있는 겁니다. 입시, 면접도 다섯 명이 쭉 앉아서 같이 하는데 옆에서 친구들보다 내가 요만큼 나은  것 같아서 뽑힌 거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삼성전자에 제가 턱 들어간 게 아니잖아요. 네, 우리 삶이 그런 겁니다. 남보다 책 한 권 더 읽은 덕에 내가 그 분야에 먼저 입문하게 됩니다. 저는 책을 읽는 게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재천 : 이 자리에 아무래도 제 연배의 분도 한두 분 보이시기는 하는데, 젊은 분들이 많이 오실 것 같아서 제가 특별히 마련한 슬라이드인데요. 저는 제법 오래 살았는데요.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무지무지 열심히 하면서 굶어 죽는 분을 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 얘기를 중고등학교 특강을 제가 많이 다니는 데 가서 끊임없이 합니다. 학생들에게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이재용 부회장처럼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장담 못 한다. 다만 굶지는 않을 거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다. 그리고 제가 뭐라고 그러냐 하면. 여러분들이 뭐 이화여대로 날 찾아오면 한 스무 명이 한꺼번에 와도 내가 점심 살 정도의 돈은 언제든지 내 주머니에 있다. 학교에서 점심 한 4000원 정도 하죠. 20명이 와도 8만원 정도, 8만원 정도는 제가 가끔 쓸 수 있어요. 그 정도면 난 부자다. 그 정도면 난 대한민국에서 내가 제일 부자인 거 같다. 그 대신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 나는 그냥 하고 싶은 일만, 내가 하면서 사는데 그 정도 돈은 갖고 산다. 나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떼부자가 되리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굶지 않는 그런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는 거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최재천 : 얼마 전에 어느 매체랑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이 책을 쓴 사람으로. 저는 평생 논 사람입니다 이랬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습니다. 교수님이 놀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 뭐 이런 식으로 하시던데. 저 이거 진심에서 한 말이거든요. 사실 저 대학 들어가기 전에 진짜 공부하기 싫었어요. 어머니가 하라고 해서 어머니 잔소리에 할 수 없이 했습니다. 겨우 서울대 바닥에 턱걸이해서 들어갔고요. 그 들어간 학과가 마음에 안 들어서 대학 내내 공부 안 했고요. 그런데 미국에 갔는데 이게 너무 잘 되는 거예요. 이상할 정도로 공부가 잘되는 거죠. 근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그건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저한테 놀이였습니다. 그냥 좋아서 한 짓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니까 평생 공부한 적이 없더라고요.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열심히 놀았고요. 미국에 가서도 열심히 놀았어요. 지금도 놀고 있습니다. 제 주변 분들은 저 건물 안에서 일하면서 야근도 하고 뭐 그러던데, 저는 그 시간에 열대 정글에서, 정글에 돌아다니면서 동물들 구경하고 이러고 사는데, 아이고, 저도 월급도 주시고. 아, 이게, 뭐, 너무 고맙습니다. 근데 저처럼 사는 방법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학생들 만나면 줄기차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악착같이 찾아야 된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걸 왜 남이 하라는 일을 하고 사냐. 그냥 눈만 뜨면 하고 싶은 짓. 그걸 악착같이 찾아서 그걸 하면서 살라고, 저는 그렇게 삽니다. 제가 아마도 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에 하나겠죠. 저는 뭐 정말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최재천 : 그걸 못 하는 이유는 뭐죠? 아이들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부모가 문제잖아요. 부모가 아이들을 학원으로 몰고 하잖아요. 근데 그 부모님들하고 제가 얘기를 해보니까. 저한테 다 그러시던데요. 옆집이 안 보내면 나도 안 보내고 싶다고. 그래서 제가 촛불집회 하고 싶어요. 뭐 이게 되겠습니까만. 제가 대한민국의 자식을 기르는 모든 분 광화문으로 다 모이자. 근데 만약에 호응을 하셨다. 그래서 제가 선창을 하겠죠. “학원 보내지 말자.”다 같이 촛불을 들고, 다 같이 안 보내면 그냥 한 번에 끝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게 참 어리석은 이상주의자라고 저를 비웃으셔도 저 할 말 없는데요. 이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 그러면 “하나, 둘, 셋”하고 그냥 뛰어내리면 그냥 끝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닐까? 이걸 논의를 하고 대한민국의 5,000만 전부 교육학자거든요. 대한민국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의견을 갖고 있는 게 교육 문제입니다. 전부 교육 전문가들이거든요. “교육부 저거 틀려먹었어. 내가 생각할 때는” 이러고 사시는데 백날을 떠들어 봐야 아무것도 안 변할지도 모릅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냥 하루아침에 다 같이 뛰어내리면 되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예. 제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삽니다. 네. 일단 제가 이 정도로 제 강의는 마치고요. 네 대담을 이제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장태순 : 최재천 교수님께서 옆에서 보니까 여러분들을 들었다 놨다 하시면서 마지막에 선동까지 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시 여러분 다 아시겠지만 명강사시기도 하시고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젊은 세대, 그리고 저처럼 나이 들어가는 세대를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지, 사실 이 강연 시리즈는 5년 후의 미래만 보고 있었는데 최 교수님이 50년 후까지 준비해 가지고 오신 것 같은 느낌이 좋습니다. 너무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어요.

장태순 : 제가 어쩌다 보니까 대담자라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요. 사실은 제가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을 좀 불편합니다. 제가 옆에 무릎 꿇고 앉아서 말씀 드리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최 교수님하고 일대일로 앉아 있는 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교수님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서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교수님께서 개인적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더 많으실 것 같아요. 특히 이 최 교수님의 책 지금 여기 앞에 나와 있는 《최재천의 공부》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기 있는 내용 중의 한 절반 정도는 교수님 어떻게 공부하셨는 지에 대한 이야기이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우리가 어떻게 공부해야 될지 우리나라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될지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사실 교수님의 삶 자체만 가지고도 우리가 한 세 시간 얘기를 들어도 부족할 정도로 재미있는 말씀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제가 아까 강연 시작하기 전에 뵙고서 좀 죄송하지만 “이렇게 요약하면 될까요?”라고 말씀드렸던 게 ‘한국에서는 꼴찌, 미국에서는 1등’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맞는 말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아까도 잠깐 말씀 하셨듯이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이게 사실 좀 궁금한 점이긴 한데요. 이 책에도 나오는 얘기입니다만 교수님 뵙고서 꼭 들어보고 싶은 얘기 중의 하나가 수학 공부에 관한 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수학 때문에 이과를 그렇게 싫어하셨는데 미국 가서는 “수학 부전공해라.”, “너는 수학해도 잘했을 거다.” 이런 말씀 들으셨다면서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최재천 :저도 참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저는 진짜 고등학교, 고3 내내 제가 모의고사를 매달 한 번씩 보는 거잖아요. 수학을 30점 넘어 본 기억이 별로 안 납니다. 그러니까 이게 거의 수포자, 요즘 하는 말로는 거의 수포자 수준인 거죠. 

장태순 :　찐 수포자신데요?

최재천 : 네. 근데 이제 마지막에 그 배치고사라는 걸 마지막에 하는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모의고사를 봐서. 한 열흘 동안 열 번을 보고 그 성적으로 마지막에 학과를 선정해주고 이러더라고요. 그때 이상하게 제가 좀 잘 봤어요. 그래서 이제 그래도 의예과라도 갈 수 있게 되는 성적이 이제 뒤늦게 됐는데. 워낙 이 기초가 안 된 상황에서 덤벼서, 두 번이나 낙방을 한 거죠. 근데 미국에 갔는데. 뜻밖에 가자마자 제가 수학 천재라고 소문이 이미 나 있더라고요. 이게 시골대학이다 보니까 동양 학생들이 아직은 많이 안 와가지고. 그 GRE 시험에. 거기에 수리 부분의 성적을. 미국 아이들은 그렇게 높은 성적을 받는 케이스가 없는 거죠. 내가 우리는 웬만한 친구들은 그때 다 맞았다고요. 그러니까 그걸 만점 받은 놈이 동양에서 하나 온다. 그래가지고 제가 도착하기도 전에 제 이름이 학교에 알려져 있더라고요. 지미 푸(Jimmy F)oo가 온다. 누가 이름도 잘못 알려줘 가지고, 예 제가 처음에 도착했는데 “아 유 지미 푸?” 그러는 거예요. 아니라고, 인제 그랬는데. 그게 처음에 가서 소문이 이렇게 났는데. 이게 확정적인 일이 돼버린 사건이 하나 터졌어요. 제 분야에서는 《이기적 유전자》 얘기를 아까 제가 했는데 그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은 사실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이 아니라 윌리엄 해밀튼이라는 분의 수학적 논문의 내용을 도킨스가 풀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책이거든요. 사실 근데 그분의 논문, 그게 1964년에 무려 52페이지짜리 1, 2편의 논문인데 그냥 매 페이지마다 수학 공식이 나오는 논문입니다. 그런데 저의 분야 사회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되는 입문인데. 미국 친구들이 그걸 못 읽는 거죠. 대부분의 분들이. 대부분의 친구들이 못 읽는 건데. 저는 그걸 모르고 처음에 디스커션 그룹에 들어갔는데 영어를 못하니까 끼어들 수가 없어서 이제 이러고 살던 시절인데, 다른 친구들이 얘기하는 걸 아무리 한 시간 내내 듣고 있어도 내가 읽은 그 논문하고 뭔가 괴리가 있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이것들은 전부 속된 표현으로 구라를 풀고 있는 거예요. 그 논문을 읽은 게 아니라 그 논문을 소개하는 글들을 읽고, 읽은 것처럼 하고 와서 토론을 하는 거죠. 근데 저는 그게 너무 이상해서 나는 “뭘 잘못 읽었나?” 그 토론이 거의 끝날 무렵에 겨우 용기를 내고 손을 들었는데. 그때 여자 교수님이었는데. “그럼 너는 읽었느냐?”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분은 알고 있었던 거예요. 토론을 진행하면서 “이거 다 안 읽었구나.”라는 걸 알고 계시면서. 근데 제가 저는 지금 이 대화의 내용과 제가 읽은 논문과 좀 너무 안 맞는 거 같아서 잘 모르겠다. 이런 발언을 제가 하니까 저한테 “너는 읽었느냐?” 대번에 저한테. “네. 하여간 어떻게든 읽기는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다음 시간에 네가 논문 해설을 한번 하겠느냐고. 영어를 못하는데 그거를 제가 어떻게... 그런데“한번 해볼래?”, “하겠습니다.” 이런 거예요. 근데 저 화이트보드에다가 영어는 잘 못해도 수식을 쓰면 되잖아요. 수식을 쓰고 "from this, this" "from this, this" 네 이러면서 하는 거죠. 약간 한 시간 가량을 제가 52페이지에 걸친 그 수학을 이제 풀어냈어요. 그랬더니 이제 뭐, 과에 완전 소문이 동양에서 온 수학 천재가 해밀턴 논문을 해설했다 이거예요. 뭐 저는 그냥 천재로 입증이 된 거지요. 며칠 있다고 인류학과에서 펜스테이트의 인류학과가 제법 쎈 곳인데, 인류학과에서 초청 강연이 왔어요. 그 대학원생들하고 교수들 전부 있는데 강연을 해 달라. 그리고 지금 미국에 온 지 1년이 안 된 상황에서.

장태순 : 석사과정 학생이셨던 거죠?

최재천 : 예 석사과정. 강연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인류학과에서도 소문이 퍼지고 교정에 거의 뭐 관련된 사람들은 쟤가 그 수학 천재다. 그때부터 제 삶이 풀리기 시작하는데 저는 절대 뭘 못하는 놈이 아닌 게 됐어요. 제가 뭘 못해도 쟤는 아직 영어가 뒷받침이 안 되서  못한... 쟤가 못할 리가 없다. 이제, 네. 그래서 제가 뭐 수학 얘기를 하라고 그러는데 수학만 그런 게 아니라 제 삶이 그냥 다 너무나 쉽게 풀려버렸어요. 공부하는 것도 즐거웠고, 주변에서 다 이렇게 떠받들어주니까 즐거웠고, 또 하는 것만큼 효과도 나고 그러니까 그냥 모든 게 잘 풀려나갔던 것 같아요. 너무 신기해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이제 수학을 저 부전공으로 하라고 제 지도교수님이 밀어붙였는데 끝내 제가 거부하고 수학과 교수님한테 그랬어요. 내가 수학으로 밥벌어 먹고 살 거면 난 집에 가겠다. 나는 수학이 정말 싫다. 근데 인제 그 수학과 교수님하고 저희 지도 교수님하고 두 분이 전화로 합의를 봤더라구요. 얘는 생태학 석사와 수학 석사 두 개를 같이 하는 걸로 하자. 제 지도 교수님이 그때 수학 생태학을 하신 분이에요. 근데 그분의 말씀이, 제가 안 하겠다고 그러니까, 제가 미국 이름이 제이인데. 제이야 한번 앉아 보라고,“ 네가 만일 수학과 생태학을 같이 하면, 너는 네가 가고 싶은 대학을 그냥 네가 골라서, 나 너희 대학에 교수하고 싶어. 그러면 그냥 할 수 있다. 근데 왜 안 하냐?” 나는 수학이 싫다. 그래서 굳세게 고집을 부리고 안 했는데 훗날 제가 하버드에 가서 이렇게 공부를 하는데 수학을 배우면 생태학이 다른 차원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 발로 인제 수학과에 가서 학과장님 만나서 그간의 얘기를 다 해드리고 저한테 맞는 수학 수업을 하나 골라 주십시오. 너한테 딱 맞는 거 내가 안다 그러더니 하나를 골라 주셨는데 1, 2학기 연강으로 하는 건데 나중에 그 교수하고는 친구가 됐어요. 또 알고 보니까 저랑 동갑이던데. 벌써 유명한 교수가 되어 있는데, 그 양반이 저한테 “뭐. 좋아. 들어와서 들어.” 근데 정말 재미있게 뭐라고 그러냐면 “계단식 강의실인데 저 뒤에 앉아 가지고 팔짱 끼고. ‘그래, 그렇겠네.’ 이럴 거면 들어오지 마. 제일 앞에 가운데 자리 내가 하나 너 줄테니까 넌 매일 거기 앉아. 거기 앉아서 숙제 다 해. 시험도 다 봐. 내가 채점 다 해 줄게. 그 대신 넌 학점은 못 받아. 니가 손해냐? 내가 손해지. 난 너 해 줄 필요가 없는데 다 해 주는 거야.” 진짜 그 양반 수업을 1년을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그 방안에는 제 수업에, 제 섹션에 들어오는 놈도 있더라고요. 저는 30대 중반인데 거기 앉아서 1년을 꼬박 배웠어요. 진짜 한 한 달 반 정도 배우는 어떤 시점에서 제 마음속에서 그냥 이렇게 울컥 올라오는 생각이 ‘저 친구가 내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었으면 나 수학자 했다.’ 그런 생각이 정말 들더라고요. 나중에 인제 그 양반이랑 점심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됐는데. 어느 날 진짜 샌드위치 먹으면서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너 수학했어도 잘했을 것 같다.” “에이, 웃기지 마.” “근데 진짜 나 진심으로 얘기하는데 너한테는 이런 수학적 직관 같은 게 있다.” 숙제를 제가 늘 해서 내고 시험문제도 내잖아요. 제대로 한번 풀어본 적 없어요. 답을 제대로 못 냈어요. 근데 그 푸는 과정을 보면서 그런 코멘트를 늘 적어 주더라고요. 상당히 새로운 각도에서 이 문제를 넌 접근을 했다. 요런 부분만 네가 보완하면 참 좋을 것 같다. 뭐 이런 식으로. 그랬더니 직접 저랑 앉아서 얘기하는데 너한테는 아주 독특한 수학적 직관이 있다. 그거 배우고 저는 수학생태학 논문을 쓰는 사람이 된 겁니다. 그 수학 때문에 대학을 두 번이나 떨어졌던 제가 수학생태학자가 되는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결론은 하나예요. 우리나라 수학교육이 뭔가, 제가 보기엔 뭔가 문제가 있는 거죠.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너무 길게 또. 

장태순 : 아닙니다. 아닙니다. 다들 박수치고 계시는데요. 최 교수님께서 미국에서 태어나셨다면 허준이 교수님 전에 필즈상을 받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그러면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 수학 교육의 문제가 뭘까요? 구체적으로 미국에서 그런 체험을 하셨으니까 수학은 이런 게 아닌데 한국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라고 생각하시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최재천 : 구체적인 것 하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해 전에 교육부 교과과정위원회라는데 위원으로 불려 가서 한 1년 봉사를 했는데요. 거기서 진짜 어느 날 수학교육의 현황 문제점 이래갖고 교육부 과장이 보고를 하고, 또 사교육계 쪽에서 어떤 분이 오셔서 또 말씀하시는데. 그냥 두 분이 다 합의를 본 내용이. 대한민국의 수학교육은 사교육 시장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아주 지능적으로 진행되는 그거다. 그 외국의 대단한 수학자들도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못 푼다는 거잖아요. 특히 수능의 한 문제, 반드시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서 거의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하나 반드시 낸다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함으로써 수학 사교육 시장이 끊임없이 활성화될 수 있다. 이 마피아를 교육부가 알고 있더라고요. 그걸 그냥 발표를 하는데, 저는 경악 했어요. 이걸 못 깨고 있는 건가. 그런데 그 아주 구체적인 하나는 제가 배우고 들은 하나는 그겁니다. 왜 이 말도 안 되는, 그 농간에 우리 아이들이 다 죽어가고 있다. 전 이건 용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들이... 제 아들까지 등단을 시켜서 참 죄송한데,

장태순 : 아드님 교육에 대해서 사실은 굉장히 인상적인 글을 많이 써주셔서요.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긴 했습니다.

최재천 : 제 아내가 귀국을 안 하려 그래가지고요. 여성이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닌데 거기를 내가 왜 다시 기어 들어가야되냐. 근데 저는 서울대학에 교수가 됐으니까 이걸 거부하기가 힘들어서 저는 들어왔고. 안 들어오겠다고 그러는데, 한 2, 3년을 헤어져 살았는데요. 뭐 가서 싹싹 빌어가지고, 이제 결국은 모시고 왔는데 들어오면서 저한테 조건으로 내 걸은 게 우리 아이만큼은 한국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그걸 당신이 받아들이면 하겠다. 그래서 저의 아이는 외국인 학교를 다니고  대학으로 그냥 갔어요. 근데 이놈의 외국인학교라는 데가 공부 제대로 못 시켜요. 제가 가서 참관해보면 우리 좋은 고등학교에 비하면 영 별볼일  어요. 우리나라에 외국인학교라는 게. 너네는 고2인데 수학을 기껏 이런 걸 하고 앉아 있냐? 제가 늘 그러고 , 고3 시간 생물 시간에 ‘세포 소기관 색칠하기’ 뭐 이런 숙제 하더라고요. 참 미치겠더라고요. 제가. 근데 그놈들이 어느 날 무슨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걸 우리 집에 와서 하는데, 제가 언제나 뒷바라지하고 뭐 과일도 깎아내고 했는데. 과일 깎아가지고 이렇게 들어갔는데 우리 아들이 서서 친구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더라고요. 얘가 수학을 못하거든요. 저만큼 못하는데, 다행히 거기 그 외국인학교의 수학 수준 자체가 낮아서 저보다는 성적이 좋은데 저보다 실력이 없는 걸로 저는 판단하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제가 아들이 저기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제가 놀랐어요. 자, 그러면 우리가 지금 풀어야 되는 이 문제는 결국 X다. 근데 이것을 우리가 풀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이거, 그걸 A라고 두자. 그리고 우리가 B를 하는데, 여기서 지금 변수가 뭐냐. 이러면서 이놈이 공식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저는 그걸 보고 저게 제가 하버드에서 배운 수학인데. 그러니까 우리는 수학 문제를 풀어서, 35, 이 답을 내라는 걸 가르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사실은 수학은 그런 학문이 아니잖아요. 그건 계산이고. 수학은 자연을, 시스템을, 묘사하고 그걸 이해하기 위한, 그거를 추상화하기 위한, 그런 학문이잖아요. 근데 우리는 그런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상황이 이런데 답이 뭐냐?”만 끊임없이 묻는 수학교육을 하는데 알고 보니까 수학을 다 못하는 놈들이던데 걔네들은 진짜 수학을 조금은 배웠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문제가 나오면 그걸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짓을 하더라고요. 얘네가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니구나. 그게 참 다른 거죠. 어떻게 보면 저는 우리 수학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허준이 교수님도 그거는 비슷한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들어보니까.

장태순 :　지금 말씀 들으니까 사실은 아드님도 수학 천재가 아니실까　하는 의심이 다시 듭니다. 정말로 저도 이제 수학이라든가 물리학 전공하시는 교수님들한테 그런 말씀 많이 들었는데요. 학부 때 성적 잘 나오는 학생들이 반드시 연구 잘하는 게 아니다라는 그게 아마 그런 식의 고등학교 때까지 교육의 한계가 대학원에 가서 드디어 들통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지금 교수님 말씀해 주신 것처럼 사실은 우리나라 수학교육이 사교육을 먹여 살리기 위한 조직이라면 이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분명한 현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마찬가지일 텐데요. 한국 교육이 바뀌어야 된다는 점에는 동의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나는 이렇게 노력해봤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고요. 지금 사실 최 교수님께서도 어떤 의미에서 그런 노력을, 여기 있는 분들보다 좀 더 영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조금 큰 걸음으로 하고 계시는 것 같기는 한데. 근데 이런 노력하시는 분들이 언제나 하시는 얘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개인이 노력하려고 하면 제도가 가로막고, 제도를 바꾸려고 하면 개개인이 안 움직입니다. 후자 같은 경우는 예를 들면 중학교 선생님들이 타성에 젖어 있는 분들이 계신다던가 아니면 저 같은 대학교수들이 수업 방식을 바꿔라라고 하는데 귀찮아서 안 바꾼다든가, 바꾸는 척 만 한다든가 이런 경우도 있거든요. 사실은 제도도 안 바뀌고 사람도 안 바뀌면 어떻게 바꿔야 되는지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떤 사람들은 이 사회의 심층적 구조에 문제가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심층적 구조를 바꾸라고 말하는데 교수님께 제가 한번 이런 걸 여쭤보고 싶어요. 교수님께서는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셨고 진화를 공부하신 분인데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혹시 이런 변화를 위해서 배울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자연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지혜를 좀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재천 : 저는 이게 답이 될지 개인은 모르지만. 저는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혹시 요즘 우리 사회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그런 토픽 중에 ESG라는 걸 많이 들으시죠? 어떤 세계적인 투자 회사들이 기업이 이윤만 내는 게 아니라 environmental 그러니까 환경, social 사회 G, governance 지배구조, 이런 부분에 뭔가 성과를 내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겠다. 이러는 바람에 지금 보고 우리나라 기업들 다 다 난리 났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소셜 부문은 제법 조금 그래도 했거든요. 장학금도 내놓고, 사회봉사도 하고 했는데, 지배구조 문제 있구요. 오너가 다 말아먹으려고 그러고, 사외이사 전부 거수기 세워놓고, 그러면 안 된다. 그걸 지금 뜯어고치느라고 애쓰고 있고 제일 힘들어하는 게 environmental 환경 분야더라고요. 환경 파괴하다가 지금 환경을 어떻게 살려내라고 그러니까 너무 힘든데 그게 나오자마자 저한테 ESG에 대한 강연을 해달라고 그러는데 제가 처음에 생각해 보고 고사를 했어요 한 15분 정도는 떠들 거리가 있는데, 90분 해달라고 하니깐 못하겠더라고요. 할 얘기가 없어서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사를 하다가, 한 몇 달 전부터 제가 강연 수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제가 하나 발견을 했어요. 우리나라 기업들은 물론이고 해외의 많은 기업들도 제가 가만히 관찰해보니까 이 세 개를 다 따로따로 공략을 하더라고요. 지배구조 어떻게 개선할까? 뭐, 이거, 어떻게 할까 이건. 근데 제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그 세 개가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이 있더라고요. 그게 뭐냐 다양성입니다. diversity. 지배구조 다양하게 하라는 거잖아요. 오너가 그냥 혼자 말아먹지 말아라. 이걸 영어로 제가 표현을 좀 해봤는데 말하자면 이 executive diversity를 좀 늘려라 이거고요. social 부분은 뭐 social diversity, cultural diversity 이런 걸 늘려라 하는 거고, environmental 뭐 당연히 biological diversity를 좀 확충해라 뭐 이런거니까, 이게 어떻게 보면 따로 공략할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diversity라는 어떤 핵심 개념을 가지고 그 걸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저절로 이런 문제들이 따라서 풀려질지도 모른다. 근데 이게 저한테는 왜 굉장한 발견이냐 하면. 저는 평생 자연을 관찰하면서 살아온 사람인데 일찌감치 제가 자연이 갖고 있는 해답이 뭔지를 저는, 제 나름대로는 파악했거든요. 자연은 거의 모든 문제를 그냥 다양성으로 다 풀어냅니다 거의 모든 문제의 답이 다양성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그대로 두면 끊임없이 다양화합니다. 우리 코로나 겪으면서 다 보셨잖아요. 처음에 알파 변이가 나왔다가, 베타 변이 나왔다가, 델타 때 우리가 되게 고생 했구요. 오미크론 나와서는 뭐 적당히 앓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아졌고. 그 짧은 한 2년여 기간 동안에 변이가 지금 뭐 너댓 차례 지금 막 나타나잖아요. 자연은 그런 곳입니다. 계속 변이가 생기고 계속 다양화하는 건데. 그 자연의 일원이어야 되는 호모 사피엔스는 제가 평생 관찰한 것에 의하면 끊임없이 다양성을 줄이거든요. 우리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래놓고 누가 삐딱한 소리 하면 다 째려보잖아요. 우리는 반드시 한목소리여야 되고요. 반드시 일사불란, 반드시 질서 정연해야지 다양하면 정신 사납다고 다들 싫어해요. 제가 보기에 우리 인류가 가진 가장 큰 어려움. 우리의 이 우리가 가진 불행의 기원이 우리는 다양성을 없애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 여기서 온 게 아닐까. 교육도 제가 보기에는 그냥 보면 다양성이에요. 제 생각에. 제 연구실에 드나드는 놈들이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그냥 어느 날 찾아왔다가 제가 이제 대응을 해주니까 끊임없이 오는데. 아. 저도 뭐 찌든 사람이라서 가끔은 걔네들한테 “야, 근데 학교 공부는 잘하냐?” 이렇게 제가 물어야 되는데. 왜냐하면 걔가 그래도 괜찮은 대학에 가야 뭘 저랑 같이 이런 일을 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좀 걱정되니까.“아, 예, 공부요? 근데 교수님 이거 제가 잡은 벌렌데요.” 그러니까 항상 기, 승, 전, 벌레로 되거든요. 근데 그 아이들이 초등학생은 중학교 가면 못 와요. 부모의 입시망에, 입시 레이더망에 잡힌 거고요.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대학 갈 무렵부터 어느 날 소식 없이 사라져요. 그러다가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 이메일이 날아옵니다. “교수님은 지금도 참 재미있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뭐 지금 이런 일 하고 있습니다. 네. 하지만 아직도 꿈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뭐 이런 이메일을 보내와요. 대한민국에서 산으로 들로 개미 잡으러 다니던 친구가 수능을 제대로 하고 좋은 대학에 가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그 친구들이 대충 타협하고 성적이 되는 뭔가를 찾아서 그냥 가고, 그런 일을 하고 사는 거죠. 제가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걔네들은 좀 그냥 놔두면 안 되냐. 제 연구실에 30만 명이 드나드는 거 아니거든요. 열 몇 명 드나드는 거거든요. 걔네들은 그냥 수능도 안보고 뭐 그냥 그런 짓 하고 그냥 평생 살게 내버려 두면 안 될까. 왜 우리는 악착같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아이들을 수능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기어코 일렬종대로 줄을 세워야 되고, 모두 아이들을 전부 똑같은 틀에다가 넣어놓고 도토리 키재기를 꼭 시켜야 될까? 다양성의 문제라고 전 생각 합니다. 이 다양성을 어떻게 허용하고 이 다양성을 어떻게 증진하느냐. 제가 이제, 사실 여기서 고백했는데요. 십몇 년 전부터 이런 책 쓰고 싶었는데 못 쓰다가 드디어 낸 건데. 그래도 용기를 지금 내게 된 배경 중의 하나는 여기다 쓰진 않았는데요. 요즘 우리 저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우리나라 청년들을 한번 보시면요. 이게 전부 그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그 아주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다 보면 임윤찬이도 서울음대를 갔으면, 전 절대로 저렇게 못 됐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음대를 가려면 딴 것도 다 해야되거든요. 한예종은 좀 교육 방법 자체가 다르거든요. 걔는 동네에 피아노 학원 다니다가 한예종 가서 골방에 앉아 갖고 피아노만 친 녀석이에요. 인터뷰하는 거 들으셨죠? 산에 가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이런 거 안하고싶고. 왜 손흥민이는 브라질 유학 가고 유럽 유학하고 그런 얘가 아니잖아요. 그 괴팍한 아버지 밑에서 혼자 배운 친구에요. 유튜브로 배워서 구글에 취직해요. 우리나라 대학에 안 가고. BTS도 SM이나 JYP 아이들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요즘 우리나라 사람으로 뜨는 사람들을 보면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풀어주면, 우리 아이들을 풀어주면, 더 많은 손흥민, 더 많은 BTS가 나올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약간의 확신, 자신감 같은 게 저한테 좀 생겼어요. 그래서 한번 해봅시다. 그리고 제가 질러대는 거죠. 모든 사람, 모든 아이들을 다 그렇게 만들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양하게 해주자. 누구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착실하게 공부해서 가는 길을 갈 수 있게 해주고 누구는 딴짓하게 해 주자. 근데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가 그 얄궂은 공정이라는 이상한 개념 때문에 모두가 다 같이 해야 되는 걸로 그 틀을 못 벗고 있는 거잖아요. 아, 근데 이제는 좀. 우리가 거의 모든 면에서 세계가 우리를 칭송하기 시작한 그런 나라인데. 이제는 우리가 좀 여유를 가지고. 그래 뭐 쟤는 그런 짓 좀 하라고 그래. 뭐, 우리는 이런 거 하면 되지. 이제는 좀 우리가 그런.... 아, 그게 쉬울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얘기하면서도 이건 안 되는 거 알면서 하는 얘기다는 건 알지만. 조금 이제 그런 논의를 우리가 사회 수준에서 해서 어느 순간에, 그래. 그리고 한 번 훅 털어버리는 그런 과정을 거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 하는 겁니다.

장태순 :아까 교수님 친구분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안 해보고 어떻게 알아　이렇게 되는 거겠죠. 마지막 대담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제 질문에 대해서 굉장히 희망적인 답변을 주셨습니다. 교수님께 감사드리고요. 바로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동안 사실은 온라인에서 여러분들께서 해 주신 질문도 있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서 들어오시면서 사전에 이벤트라는 것도 있었죠. 그래서 질문지를 주신 것도 있고 한데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질문을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여기 오신 분들, 혹은 인터넷에서 질문해주신 분들 질문 중에서 흥미로운 게 있어서 그 중에 몇 개를 뽑아 봤습니다. 먼저 지금 분위기로 볼 때 이 질문을 꼭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제가 아까 교수님 소개해 드릴 때 결례를 하나 범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요즘 인기 유튜버시잖아요. 교수님이 하시는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이 구독자가 40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거 박수를 드려야죠. 오기 전에 확인을 했더니 40만 7000명이더라고요. 정말 많이 있는데요. 그래서 중년 힙스터로 지금 살고 계시는데, 어떤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런 질문 주셨는데요. 이 <최재천의 아마존>이 너무나 지금 잘 되고 있고 1년도 되지 않아서 이슈화가 되고 있다고 저도 사실은 뉴스 기사 검색하다가 교수님 최근에 나온 이 영상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라는 기사를 본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주목을 받고 있는데 유튜브처럼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매체 혹은 기술에 대해서 준비하고 그 흐름에 맞춰서 변화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가/
교수님의 성공 비결을 훔치겠다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어떻게 성공하셨는지 좀 비결을 나눠주시죠.

최재천 : 글쎄요. 뭐 특별한 비결이 있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제 아내가 가끔 저한테, 저한테 하는 게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한테, 자기가 평생 같이 살아봤는데, 세상 엉터리인데. 이런 엉터리를 왜들 불러다가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제가 사실 좀 엉터리 맞거든요. 그러니까 뭐 그래도 포장해서 얘기하면. 제가 어쩌다가 우리 사회의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졌잖아요. 십몇 년 전에,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난 다음에 제 삶의 변화 중의 하나가요. 제가 기조 강연 전문가가 됐다는 겁니다. 참 세상에 이게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하여간 온갖데서 저를 보고 기조 강연을 해달라고 연락이 옵니다. 뭐 제가 듣도 보지도 못한 어떤 분야인데 기조 강연을 해 달래요. 제가 그 분야에 대해서 아는 게 저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답장으로 하면 와서 통섭의 얘기를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몇 군데 끌려갔어요. 진짜 거기 계시는 분들이 뭐 하는지도 저는 몰라요. 근데 그냥 내 뭐 분야를 넘나드시고. 뭐 이러고 인제 떠들고 오는 거죠. 제가 아내가 볼 때는 저는 이해가 안 되는 놈이에요. 저게 무슨 깡다구로 거기 가서 그렇게 얘기를 하고 오나. 근데, 글쎄요. 저는 이 책에서 제가 그런 발언을 이미 했는데요. 세상의 모든 게 이렇게 벽돌 쌓듯이 차곡차곡 쌓아가고 가는 길만 있는 건 아닐 거다. 그리고 괜히 한마디 더 붙인다. 그러면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너무 짧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엉성하게 이렇게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상태로라도 자꾸 이렇게 도전하다보면 저도 어떤 분야는 십몇 년씩 이렇게 하게 되는 분야들이 있거든요. 그렇게 살아보니까 어떤 분야가 이렇게 그래도 틀을 어느 정도 잡아가고 한 이만큼 올라와 있으면, 저쪽 옆의 엉성하게 올라온 것도 얘가 대충 이렇게 붙들어 주더라고요. 제가 엉성하긴 한데, 그래도 이런저런 여러 분야를 흔들흔들 하면서도 이렇게 줄로 이렇게 이렇게 연결돼 있어요. 저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쪽에 잘 구축해 있는 사람들과 제가 소통하면서 하다 보면, 제가 혼자 뭘 이루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뭐를 이뤄낼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냥 덤벼보시라. 들이대시라. 제가 이 책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요, 만약에 이 질문 주신 분이 젊은 분이시고, 앞으로 도전의 기회가 많다면, 제가 아까 마무리 발언으로 악착같이 찾아야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뭔지 근데 그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요. 덤비기 전에는 못 찾는 거잖아요. 이리저리 덤벼봐야 찾는 거죠. 근데 그렇게 덤비다 보면 실패합니다. 근데 그 실패처럼 고마운 게 없는 겁니다. 해봤는데 남이 하는 거 보고는 아, 너무 좋을 것 같다. 아, 나도 저거 하고 싶다. 그래가지고 거기 덤벼들어서, 한참 덤벼봤는데 막상 해 보니까 이건 아닌 것 같다. 이건 나하고는 안 맞는 것 같다. 그래서 포기하게 되는, 그 과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맙습니까? 제 주변에는 그걸 못해보고 지금까지도 그 짓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희 때는 웬만하면 다 무조건 이공계에 보내던 시절인데, 제 친구들 지금도 저는 중학교 때 친구들 일곱 명을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참 되게 행복한 사람인데요. 그중의 절반 이상이 되게 감성적인 친구들이에요. 그때 전부 공대에 나왔어요. 그런데 이제와서 후회해요. 이 나이에. 야, 진짜 내가 그때 이과 안 가고 난 사실 예술 쪽으로 갔어야 되는데, 이런 얘기를 이제와서 합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이에요. 이게 나한테 안 맞는 일이다 라는 걸 찾는 것, 그것처럼 소중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그냥 덤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덤벼서 그러고 인생 살아보니까. 참 길더라고요. 만회할 기회가 여러 차례 나타나더라고요. 저는 여러 번 만회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몇 년, 내 인생의 몇 년 날려 보내는 거 그렇게 무서워할 거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덤벼보고, 한 몇 년 덤볐는데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다.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그 몇 년이 얼마나 고마운 겁니까? 그걸 안 했더라면 남들이 하라는 것, 주변에서 좋을 거라는 것을 내가 평생 하고 사는 그 끔찍한 인생이 나를 맞이할 텐데 그것처럼 억울한 게 어디 있습니까.

장태순 :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건 단순히 뉴미디어나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굉장히 중요한 자세인 것 같습니다. 미리 준비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마음에 들면 꽂힌 것을 일단 한번 해봐라, 흔들 흔들 하면서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런 말씀도 해 주셨고요. 다음번에 이런 주제로 책을 내시면서 <최재천의 취권> 정도의 제목을 붙이자면 아주 재미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재천 : 네. 제가 유튜브 백만이 되면 한번 하겠습니다. 이게 유튜브 제가 뭐 제대로 기획하고 한 게 아니거든요. 1년 동안 만 명도 안 돼서 질질 매다가, 어떻게 하다가 그냥 뻥 터졌어요. 그러니까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개통령 강현욱씨 덕도 좀 있을 것 같은데요. 콜라보 영상을 하셨죠.

최재천 : 맞아요. 그분의 도움도 좀 있었고. 네. 하여간 세상일은 모를 일이더라고요. 네. 제가 유튜버가 될 줄이야.

장태순 : 역시 과감하게 일단 저질러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바꿔 말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젊음을 잃지 않고 계시는 분이 최 교수님이신 것 같은데요. 좀 다른 색깔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최 교수님께서 굉장히 잘 대답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 질문을 드렸는데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지다 보니 오히려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될지 더 막막해지는 기분입니다. AI도 공부 해야 될 것 같고, 코딩도 알아야 될 것 같고, 아까 말씀하신 ESG 기후변화도 알아야 될 것 같고, 또 이런 거 이외에 철학, 심리학같은 인문학도 공부해야 될 것 같고.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심을 잡으면 좋을지요? 이런 질문을 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최재천 : 이건 진짜 실용적인 질문이시겠죠? 그래서 아주 저도 무슨 깊이 있는 대답이 아니라. 아주 실용적인 답을 한번 드리겠습니다. 여기 이렇게 몇 가지 언급한 걸 보니까 문과 쪽에 공부를 하셨는데 범접하기 어려운 자연과학이나 이공계도 좀 알아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네. 제 책부터 읽으십시오. 농담입니다. 자연과학 중에 그래도 제일 말랑말랑한 게 생물학이에요. 그래서 너무 처음부터 양자역학에 도전하시기보다는 생물학적 책들을 조금씩 읽으면서 약간씩 발을 들여놓고 그다음에 이제 조금 더. 그래서 이제 저희가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을 연성과학, 말랑말랑한 과학이라고 얘기하거든요. 소프트 사이언스 라고 하고. 그러면서 경성과학으로 물리학이나 뭐 이런대로 진출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도 뭐 이런 걸 정할 때 약간은 실용적인 차원에서 조금 쉬운 것부터 이렇게 하셔도 좋지 않을까. 하다가 보면 요령이 생깁니다. 제가 다른 건 제가 남들에게 이렇게 대놓고 막 “내가 해 봤는데요.” 이렇게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책 읽는 것만큼은 제가 가끔 좀 뻐깁니다.

장태순 : 책벌이시잖습니까. 책벌이시니까 당연하죠.

최재천 : 책은 뭐 진짜 엄청나게 많이 쌓아놓고 읽기도 하고. 근데, 이른바 어려운 책이라는 거, 우리가 흔히 벽돌 책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 책을 한번은, 한번은 덤벼 봐야, 그래야 다른 책들도 이렇게 건드려볼 용기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너무 말랑말랑한 것만 하지도 마시고요. 처음에 시작은 말랑말랑한 걸로 좀 하고,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그런 진짜 힘든 걸 한 번 덤비셔야 됩니다. 그래서 그놈하고 씨름해가지고 그런 책을 한 두권 정도, 이게 엎어치기를 한번 해보고 나면 그다음엔 무서운 책이 별로 없어요. 근데 이게 참 책이라는 게, 저는 어쩌다가 되게 다양한 분야를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뭐 여러 가지 이유때문에. 추천 써달라는 것도 그중의 하나인데요. 왜 저한테 자꾸 그 분야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추천사를 써 달라고 저자가 즉 연구실까지 찾아오셔서. 저는 어떻게든 교수님의 추천사를.... 아휴, 또 거절을 못하고 인제, 제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그러고는 이제 매일 밤 후회를 하는 거죠. 이걸 내가 왜 한다고 그랬나? 책이 읽혀야 추천사라도 쓸 거 아니에요. 근데 해 보니까, 그걸 몇 번을 하고 나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분야의 책인데도, 아, 이게 읽히더라고요. 이게 책도 이게 공략하는 어떤 전략이나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그런 걸 조금 익힌 거 같아요. 그래서 사실은 제가 그래서 더 겁 없이 덤비는지도 모르죠.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기조 강연을 해달라고 그러는데. 수락해 놓고는 그쪽 분야 책들을 몇 권  구해가지고 읽기 시작합니다. 그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는 어느 정도는 파악이 돼야 제가 구라라도 풀 것 아녜요 가서. 그런 게 제가 살면서 그래도 뭔가 해봤다는 게 그 분야인 거 같아요. 책을 읽는 그런 노하우가 생긴 게, 그래서 하여간 여러분에게 그냥 그런 말도 안 되는 구체적인 조언을 드립니다.

장태순 : 아닙니다. 굉장히 좋은 말씀이셨습니다. 이 질문을 해 주신 분께서는 일단 최재천 교수님의 책을 당장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주 뒤에는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님께서 오시는데요. 아마 이제 김상욱 교수님도 그때는 물리학책은 이런 걸 읽으라는 조언을 해줄 것 같습니다. 예. 마지막 질문일 것 같은데요. 이분은 온라인에 질문을 올려주시고 여기 또 직접 와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간단히 쓸 수 있는데. 온라인 질문이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사실은 최 교수님이나, 저나, 중년들이 실질적으로 같이 얘기를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여긴 물론 젊은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여러분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청중 웃음) 이런 질문을 해주셨어요. 중년에 들어서면서 청년 시절과는 다르게 공부의 재미를 느낍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문물이 발달해도 아날로그식 공부 방법이 좋기도 하고.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중년 공부에 있어서 질이 확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게. 노안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독서를 너무 좋아하고, 책을 만드는 직업인데, 노안이 시작되면서 기쁨이 사라지고, 그리고 매우 피곤해지고, 혹시 중년이나 노년을 위한 아날로그 방식의 공부법으로 획기적인 것이 없을까요? 이런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최재천 : 없는데요. 저는 오히려 반대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세대는 사실은 지금 젊은 세대는 컴퓨터하고 같이 태어났잖아요. 그래서 그냥 너무 익숙하잖아요. 삶에. 그런데 우리는 배웠어야 되잖아요. 이거를 어른이 돼서 배웠어야 되겠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은 저도 PDF로 보내주면 그걸 출력을 해 갖고 읽어야 되죠. 이게 여기서 보면 안 되는거에요. 그리고 가능하면 책으로 주시면 안 됩니까? 이러고 귀찮게 굴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에 저는 도리어 바꿨습니다. 이걸. 왜냐. 노안이 왔으니까. 노안이 왔는데요. 책은 제가 확대할 방법이 없는데 PDF는 제가 저 모니터를 이따만한걸 쓰거든요. 이제 제 노트북 요만한 거에 모니터는 앞에 이만한 게 있습니다. 그걸 이만하게 확대해가지고. 예, 독서, 이러고 있어요. 이러고 읽고. 딱 하고 다음 페이지. 예. 글씨가 이만하니까요. 다 보여요. 오히려 아날로그 포기하시고요. 누구인지 모르지만 디지털로 가십시오.

장태순 : 그런데 이것도 굉장히 좋은 충고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 같은 경우도 최 교수님보다 저는 한참 아래이기 때문에 디지털 원주민은 아니고 디지털 1.5세대 정도 되거든요. 초등학교 때 정도의 처음으로 PC를 배웠고 했기 때문에 익숙한데, 한동안은 저도 피디에프를 인쇄해서 봤는데 습관의 문제더라고요. 한 번 바꾸니까 PDF 파일을 그냥 모니터로 읽는 게 참 편하다. 특히 노안이 올수록 더 편하다는 걸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질문해주시는 분께서는 하루빨리 큰 모니터를 사시기 바랍니다.
장태순 :시간이 많지는 않은데요. 오늘이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사실 최 교수님을 모셨는데 시간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아무도 늦었다고 불평하시는 분은 안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지금 하시고 싶으신 질문, 미처 못하신 질문이 있으시면 이 자리에서 한번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착순입니다. 먼저 손 드시는 분께 질문 기회를 드립니다. 아 뒤쪽에 계신 분 마이크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자 : 질문은 아닌데. 그냥 제가 유튜브가 왜 잘된 건지 알 것 같아서. 그거 한번 말하면 어떠신지 의견을 들을 수 있을지. 일단 저는 과학을 재미있게 전달하시고 그런 게 1번이라 생각하고요. 그리고 또 그것 때문에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셔가지고, 그래서 저는 잘 된 걸로 생각하고. 더 잘 되실 것 같아요. 

최재천 : 질문이 아니시고요?

장태순 : 그냥 축사를 해주신 것 같습니다.

최재천 : 고맙습니다.

장태순 : 사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 게 좀 무례할지 모르겠지만 최 교수님 되게 귀여우시잖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늘 귀여우신 것 같아서 그래서 그 점도 굉장히 큰 유튜브 성공의 요인이 아닌가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재천 : 실 제로 댓글에 저보고 귀엽다고 그러는 분들이 많대요. 아 참 정말.

장태순 : 예. 혹시 다른, 아, 예, 저쪽 분이 먼저 손드신 것 같은데요. 

질문자 : 안녕하세요. 저는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구요. 직장생활 한 20년 정도 한 회사원입니다. 오늘 강연 너무 재미있게 잘 들었고요. 우리가 아무것도 없던 세대에서 뭔가 썸띵 을 만들어내는데 공부가 굉장히 중요했다라는 그 키워드를 잘 배웠습니다. 제 질문은 너무 많은 것들이 있겠는데, 조금 다른 각도에서 좀 외국계 회사에 다니면서 영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근데 이제 교수님 인터넷 유튜브보면 제인 구달 교수님 오셔서 강연 진행해주시고, 어드렉팅해 주신 게 인상 깊었거든요. 영어는 우리 공부에도, 학습에도,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잖아요. 아까 수학 말씀해 주셨는데, 영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처음에 말씀하실 때, 펜 스테이트에서 from this, this. from this, this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케임브리지의 제인 구달 교수님을 모시고 굉장히 자연스럽게 표현하시는 걸 보고서 제가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 비결을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재천 : 아휴. 제가 허락하시면. 그 저는 생각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 가끔 자랑질을 하거든요. 미국에 갔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언어를 해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다른 공부보다 말을 빨리 배우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같이 펜 스테이트 다니던 많은 분들이 저를 약간 돈 놈이라고 그랬대요. 그분들을 만나서 일체 한국말을 안 했거든요. 한국말을 하면 할수록 영어 배우는 속도가 늦어질까봐. 그런데 그때도 벌써 뭐 한국 학생들이 한 30명 정도 있었는데, 그 카페테리아에 들어가면 저쪽 구석에 모여 있어요. 그 밑에 저는 이걸 들고 저쪽에서는 벌써 손짓을 해요. 그런데 가다가 혼자 앉아 있는 미국인 앞에 그냥 앉았어요. 마치 아는 사람인 것처럼. 근데 저기서 보면 그렇게 보이잖아요. 제가 앉으면서 그 사람한테 제가 양해를 구할 거 아니에요. 나 여기 앉아도 되냐? 뭐 이러는데. 저 뒤에서는 “쟨 한국서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뭐 저렇게 아는 놈이 많아?”하는 거예요. 근데 어쩌다가 불려가더라도 저 진짜 말 한마디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 아내랑 결혼하게 되는 과정에서 제 아내가 처음엔 제가 완전 숙맥인 줄 알았다는 거예요. 말도 못 하고 나중에 둘이 만나서 제가 얘기를 하기 시작하니까 제가 얘기를 잘하거든요. 그래서 저 놈이란 결혼하면 심심하진 않겠다 그래서 결혼을 해 주셨다고 그러는데. 영어를 어떻게든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낮에 뭔가 그 표현하고 싶었던 그런 것을 저녁에 아주... 처음에 사귄 제 친한 친구가 참 좋은 친구였어요. 그러니까 “you never know untill you try.” 뭐 그걸 가르쳐 준 친구인데. 저녁에 둘이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 둘이 이렇게 마주 앉으면 제가 손짓, 발짓해가면서 오늘 나는 이런 표현을 하고 싶었다. 그걸 어떻게 하면 하는거냐하면 그 친구가, 그 영어권 사람이 아니면 나를 알지 못할 그런 표현까지 포함해서 한 대여섯 가지 종류로 그럴 때 이렇게 말해도 되고 그 책에 있는 표현이 아닌 거죠. 때로는 우리는 이렇게도 얘기한다. 뭐 이로운 그런 것을 가르쳐주면. 저는 그냥 대개 이제 한 새벽 두 시의 정도의 기숙사로 돌아가니까 펜스테이트는 국립공원 같았거든요. 이런 아름드리나무들이 즐비한데 밤에 두 시에 걸어가면 아무도 없어요. 옆에. 저는 혼자서 큰 소리로 연습하고 가는 거죠. 연습하고 가고, 낮에도 그냥 캠퍼스에 걸어 다니면서 큰 소리가 아닌 중얼거리는 소리로 하면 한국 사람이 옆에 지나가도 그냥 이러고 지나가니까. 쟤 약간 돈 것 같다. 이런 거예요. 근데 그러면서 또 생각하니까 이걸 연습을 해야 되는데 어디 가서 연습을 하나. 그래서 제가 바에 가기로 했습니다. 시끄러운 바에 가면 가서 미국놈 하나를 만나서 거기서 해 갖고, 마주 앉아서, 마주 서서 얘기를 맥주 들고 얘기를 하는데 안 들리거든요. 노래 때문에. 영어 막 떠들면 이놈이 What? What? 그래요. 상관없잖아요. 얘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근데 이걸 벽에다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실물 사람 앞에서 얘기하면 저는 연습이 충분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끔 가다가 또 통하면 얘하고 대화도 되고. 그렇게 해서 한 한 학기 정도 겨우 지났을 거예요. 근데 그때 엄청난 사고 사건이 터졌어요. 학교 신문에. 거의 학교 학생들이 하는 신문이 <컬리지언>이라는 신문이 있었는데 거기 1면에 외국에서 온 조교들 영어 못한다, 이게 1면 기사로 떴어요. 그런데 경제학에 인도의 온 조교. 이름만 안 적었지, 누군지 다 아는 거예요. 뭐 바이오 쪽 누구. 그래 갖고 인제 학교가 발칵 뒤집혀 가지고 모든 외국인 조교들을 전부 영어시험을 보게 됐어요. 그 후 갑자기 끌려가서 필기시험도 보고 저 면담 시험도 보는데. 들어와서 하는데. 앞에서 하시는 분이 저한테 “온 지 8개월 됐다며? 근데 넌 어떻게 이렇게 말을 잘하냐?”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 열심히 했습니다.” 뭐 이런저런 이제 뭐 싹 통과를 했는데 얼마 있다가 학교에서 연락이 왔는데 신입 저 대학원생들 앞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영어를 배우는지에 대해서 한마디 스피치를 해달라고 또 연락이 왔어요. 하여튼간 미국 생활이 참 저하고 뭐가 잘 맞나 봐요. 그래서 이제 큰 강당에서 신입 대학원생들 몇백 명이 모여 있는데 총장님도 뒤에 앉아 있고 뭐 이러는데 거기 마이크에다 대고 제가 어떻게 하면 영어를 빨리 배우나 뭐 이걸 하는데 거기서 제가 폭탄을 던졌어요. 펜 스테이트가 미식축구를 잘하는 학교거든요. 토요일 날이면 그 작은 마을이 완전히 술독에 빠집니다. 미식축구 경기하는 내내 경기 끝나고. 온 마을이 다 술 마시고 있는데. 그 학교가 알콜 때문에 굉장히 걱정을 하는 학교거든요. 거기서 마이크를 잡고 “제가 술집에 가라.”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난리가 났어요. 뒤에서 급기야는 뭐 학장님 누가, 제가 말하고 있는데 나와 가지고, 마이크를 잡고, 술 얘기는 하지 말라고. 하여간 제가 별짓을 다 했어요. 하여간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연습을 했는데 1년 조금 지난 어느 시점에, 어느 날 저 파티 석상에서. 이렇게 미국 사람들 파티는 이렇게 서서 웅성웅성 이야기 하는 그런 거잖아요. 뭐 한 잔씩 들고, 누구랑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 양반이 저한테 혹시 고향이 사우스 캐롤라이나냐? 제 친구가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이에요. 약간 남부 사투리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친구의 발음을 거의 성대 모사하듯이 훈련을 했거든요. 그 친구가 하는 발음을 그대로, 수백 번 반복하면서 했기 때문에, 제가 약간 남부 사투리를 배운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이 저더러 한국에서 왔느냐라고 묻지 않고. 저한테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이냐. 무지무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됐구나. 이제. 그때부터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수학 천재로 이름이 날렸고 영어를 뭐 한 1년 반쯤 된 수준에 미국에서 태어났는줄 착각할 정도의, 물론 저보고 영어 한 시간 동안 하라 그러면 들통이 나오겠지만. 그 짤막짤막하게 하는 거는 거의 뭐 미국 놈 흉내를 제가 내면서 하니까 굉장히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들린거죠. 이런 것들이 다 어떻게 보면 맞아떨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보통 놈이 아니구나 처럼 인상이 박히게끔, 그런 게 다 제가 미국 생활을 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장태순 : 예. 영어 천재라고 말씀드려도 될 것 같긴 하지만 사실은 반복 학습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굉장히 어학에 있어서 너무나 평범한 진리인데요.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결국은 어학을 잘하게 만든다. 언어를 잘하게 만든다는 말씀을 또다시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오늘 질문 질의응답 순서는 이걸로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걸로 첫 번째 강연이 마무리됐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셨습니까. 즐거우셨나요? 다들 좋아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오늘은 즐겁기까지 했는데요. 사실은 즐거움뿐만 아니라 이 인문360 인문포럼은 여러분들께 의미와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다른 강사분들이 이미 준비돼 있습니다. 이 시간을 포함해서 여덟 번의 강연이 준비돼 있고, 그중에서 앞으로 일곱 번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쪽 벽에 보시면 앞으로 제가 사회 보는 네 번의 섹션에 나와주시는 교수님들, 박사님들 이름이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정확히 다음 주는 아니고 2주 후에는, 다음 시간에는 김누리 교수님께서 나와주시고요. 그 다음 시간에는 김상욱 교수님, 그리고 마지막 장동선 박사님께서 와주시거든요. 앞으로 남은 다른 강연에도 여러분들 많은 성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오늘만큼 개그콘서트에 가까운 재미를 드릴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네. 오늘 와주신 모든 여러분들, 그리고 유튜브로 시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오늘강연 순서를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재천 교수님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변화의 시대에 공부의 의미란?
2022년 <인문360˚> 인문 포럼 PART 1은 ‘5년 후, 우리의 삶’이라는 대주제로 기획되었습니다. 우리는 숨 가쁘게 변해가는 과학기술‧국제정세‧기후환경의 물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여유도, 자신을 성찰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먼 미래를 조망할 시각은 더더욱 없었고요. 그래서 올해 <인문360˚> 인문 포럼에서는 ‘5년 후, 우리의 삶’을 그려보며 네 분의 연사를 모시고 ‘지금, 여기’를 논해보고자 했습니다. 5년 후라는 가까운 미래를 설정해 적절한 거리 감각으로 지금 우리 삶의 의미와 방향을 가늠하기 위함입니다.
PART 1은 ‘5년 후, 우리의 삶’이라는 대주제 아래 ‘변화의 시대에 공부의 의미란?’, ‘미래사회 공존을 위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물리학자의 미래준비법은?’, ‘뇌와 AI 합체가 가능할까?’ 등 네 가지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2022년 9월 21일(수)에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변화의 시대에 공부의 의미란?’을 주제로 열정적인 강연을 해주셨는데요. 먼저, 강연이 열린 화사한 무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강연을 기다리는 청중들의 모습을 한번 볼까요?
강연 전 무대 사진 강연 시작 전 청중 사진
강연 전 무대 사진 강연 시작 전 청중 모습
드디어 등장한 오늘의 연사 최재천 교수님.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시며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이시고, ‘최재천의 아마존’이라는 채널을 운영하시는 유튜버이기도 하시죠. 최재천 교수님은 중고등학교 시절 ‘시인 최재천’의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백일장에서 일등을 할 정도로 문과적 재능이 있었지만 이과로 진학해야만 했던 개인사. 어머니가 사주신 문학 전집을 탐독했던 유소년 시절. 문학 전집에서 운명처럼 마주한 솔제니친의 수필 ‘모닥불과 개미’ 이야기. 선생님 때문에 ‘동물학과’에 진학해 미국으로 유학까지 가게 된 삶의 여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들려주셨습니다.
최재천 교수님 강연 모습
미국 유학 시절에는 ‘Sociobiology’라는 학문을 만나게 되는데, 『Sociobiology』를 쓴 하버드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에게 직접 편지를 써 그분의 제자로서 하버드에 들어가게 된 일화도 들려주셨죠. 이후 미시건대, 서울대, 이화여대에서 교수를 역임하셨는데 그때마다 연구실 이름을 ‘Laboratory of Behavior and Ecology’라고 똑같이 달고, 학생들을 가르친 이야기를 풀어주셨습니다.
원래 최재천 교수님의 전공 분야는 ‘열대’였다고 해요. 하지만 ‘동물학’ 분야가 열악한 한국 상황에서 이 분야가 대한민국에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기 연구를 접고 제자들의 연구를 뒷바라지하셨다고 합니다. 원래 ‘동물학’ 분야 교수들은 평생 한 동물만 연구하는 게 일반적인데, 최재천 교수님은 제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이 동물 저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자, 이런 비아냥도 받으셨다죠. “너는 동물원장이냐?” 그때는 제자들이 좀 미워지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최재천 교수님 강연 모습
이런 과정은 훗날 자연과학 분야 백과사전 작업에서 최재천 교수님이 총괄 편집장을 맡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바로 “너는 동물원장이냐?”고 놀렸던 친구들이 최재천 교수만큼 총괄 편집장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고 추천했다고 해요. 참 놀라운 이야기죠?
최재천 교수님이 제작에 참여한 백과사전
최재천 교수님이 살아온 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린 시절에 읽은 책과 여러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이 어떻게 한 명의 훌륭한 과학자를 만들어냈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최재천 교수님은 ‘통섭형 인재’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 매몰될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섭렵할 수 있는 인재가 되어야만 이 긴 인생에서 무난하게 직업을 얻는다.”는 이야기였죠. 우리에게는 20대 초반 학생만 가르치는 대학을 넘어 30대부터 70대까지 가르치는 대학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곁쇠 교육(Master Key Education)’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고 하는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하버드, 예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학과 이름도 안 바꾸고 셰익스피어, <일리아드>, 기초과학만 가르친다는 거죠. 우리나라 대학들은 ‘독어독문학과’를 ‘독일문화융합서비스학과’라는 식으로 바꾸며 급변하는 세상에 맞춘 교육을 하는 상황인데요. 그런데 이 대학들은 4차산업혁명을 진짜 몰라서 이런 교육을 하는 걸까요?
여기서 최 교수님은 ‘마스터키’를 빗대어 기초 학문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열쇠는 뼈대가 중요한 거지, 톱니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한 문에만 들어맞게 만든 것이 열쇠의 톱니인데, 그 톱니를 다 제거하면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가 된다는 것입니다. 최 교수님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학생들에게 기초 학문을 가르치는 것은 곧, ‘마스터키’를 깎아주는 것이라고 본 것이죠. 세계 최고 대학들의 ‘곁쇠 교육’에 비추어 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어떤 교육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은 문제 제기를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어 지식의 영토를 늘려가라고 조언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뜻밖에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그 과정에서 배양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책 읽기로 ‘지식의 대가’가 되는 게 아니라, 남보다 독서를 한 만큼의 지식이 쌓여 어떤 일이든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죠.
최재천 교수님, 장태순 교수님 대담 모습
최재천 교수님과 장태순 교수님 대담 모습
이어서 사회자인 덕성여대 철학과 장태순 교수님과의 대담, 관객 및 유튜브 시청자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포럼을 마무리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었음에도 현장에 계신 관객, 유튜브 시청자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습니다. 뜨거웠던 <제1회 인간과 문화> 포럼 중계 영상은 인문360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연사 추천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