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된 역사적인 해였다. 국가사업 외에도 시민들이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항일운동의 발자취를 찾는 행사들도 많이 기획됐다.
지난 2019년 12월 14일 광주에서 열린 골목콘서트 <광주 정신으로 이어진 흥학관 정신>에서는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 역사관에서 광주,전남 지역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광주제일고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호남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 지역 유지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하였다. 일반인들에게는 선동열, 이종범, 김병현 등 유명 야구선수들을 배출한 야구 명문학교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역사적으로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의미 있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광주 지역의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많았다는 손예빈 작가는 “유서 깊은 광주제일고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었던 ‘광주정신’과 그 태동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되돌아보고 소통하고자 했다”며 골목콘서트의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골목콘서트 <광주정신으로 이어진 흥학관 정신>은 광주제일고 내에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 역사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관장님의 해설과 함께 각종 사진과 연표를 살펴보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했던 배경과 그 치열했던 전개과정들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광주 독립운동의 산실, 흥학관을 아시나요?
흔히 광주를 민주주의의 성지라고 부르며, 그 밑바탕에는 광주정신이 있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이날 골목콘서트에 참석한 광주 시민들에게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게 바로 ‘광주정신’이라는 단어였다.
손예빈 작가는 “광주정신, 광주정신 하지만 막상 많은 이들이 광주정신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저 역시도 그랬다. 그래서 광주정신이 뭔지, 또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개인적으로 큰 호기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발자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흥학관’이라는 곳의 존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흥학관은 일제에 저항했던, 광주의 이름난 대부호 최명구 선생이 3.1만세운동 실패로 실의에 빠진 광주 지역의 청년들을 격려하고자 1921년 설립한 200여평 규모의 목조 건물이다. (현재 건물은 철거됐고, 그 터에는 사적지 표적이 설치되어 있다.)
설립 이래로 흥학관은 1920~30년대 광주 지역의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광주 전라 일대에서 활동했던 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족계몽운동가들은 흥학관에 모여 민족의 앞날을 토론하고 야학과 강연을 통해 후학을 기르는데 힘썼다. 심지어 김구 선생과 안창호 선생도 흥학관에 초청되어 청년들에게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광주와 호남 청년들은 이를 바탕으로 항일정신과 불의에 저항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었는데, 이것이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부터 5.18 민주화운동이 광주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다.
이번 골목콘서트에서는 단순한 역사 해설에 그치지 않고, 실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흥학관을 설립하고 운영했던 최명구, 최상현 선생의 후손 등이 참여하여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도 마련됐다.
광주정신으로 이어진 흥학관 정신, 배려와 소통
골목콘서트를 마무리하며, 손예빈 기획자는 인문이란 “배려와 소통을 위한 과정”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을 들으며 이번 골목콘서트의 주제였던 광주정신이나 흥학관 정신이 담고 있는 애국애족의 밑바탕에도 ‘배려와 소통’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자만 잘살기보다는 자기 것을 기꺼이 나누며 광주제일고, 흥학관을 설립했던 뜻있는 명망가들의 후원과 암울했던 시대에 정의를 위해 떨치고 일어났던 민초들의 독립운동도 우리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인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 광주정신으로 이어진 흥학관 정신
광주 독립운동의 산실, 흥학관을 아시나요?
2020-02-27
호남 인재양성의 요람, 광주제일고
2019년은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된 역사적인 해였다. 국가사업 외에도 시민들이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항일운동의 발자취를 찾는 행사들도 많이 기획됐다.
지난 2019년 12월 14일 광주에서 열린 골목콘서트 <광주 정신으로 이어진 흥학관 정신>에서는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 역사관에서 광주,전남 지역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광주제일고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호남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 지역 유지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하였다. 일반인들에게는 선동열, 이종범, 김병현 등 유명 야구선수들을 배출한 야구 명문학교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역사적으로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의미 있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광주 지역의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많았다는 손예빈 작가는 “유서 깊은 광주제일고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었던 ‘광주정신’과 그 태동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되돌아보고 소통하고자 했다”며 골목콘서트의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골목콘서트 <광주정신으로 이어진 흥학관 정신>은 광주제일고 내에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 역사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관장님의 해설과 함께 각종 사진과 연표를 살펴보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했던 배경과 그 치열했던 전개과정들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광주 독립운동의 산실, 흥학관을 아시나요?
흔히 광주를 민주주의의 성지라고 부르며, 그 밑바탕에는 광주정신이 있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이날 골목콘서트에 참석한 광주 시민들에게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게 바로 ‘광주정신’이라는 단어였다.
손예빈 작가는 “광주정신, 광주정신 하지만 막상 많은 이들이 광주정신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저 역시도 그랬다. 그래서 광주정신이 뭔지, 또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개인적으로 큰 호기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발자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흥학관’이라는 곳의 존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흥학관은 일제에 저항했던, 광주의 이름난 대부호 최명구 선생이 3.1만세운동 실패로 실의에 빠진 광주 지역의 청년들을 격려하고자 1921년 설립한 200여평 규모의 목조 건물이다. (현재 건물은 철거됐고, 그 터에는 사적지 표적이 설치되어 있다.)
설립 이래로 흥학관은 1920~30년대 광주 지역의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광주 전라 일대에서 활동했던 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족계몽운동가들은 흥학관에 모여 민족의 앞날을 토론하고 야학과 강연을 통해 후학을 기르는데 힘썼다. 심지어 김구 선생과 안창호 선생도 흥학관에 초청되어 청년들에게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광주와 호남 청년들은 이를 바탕으로 항일정신과 불의에 저항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었는데, 이것이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부터 5.18 민주화운동이 광주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다.
이번 골목콘서트에서는 단순한 역사 해설에 그치지 않고, 실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흥학관을 설립하고 운영했던 최명구, 최상현 선생의 후손 등이 참여하여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도 마련됐다.
광주정신으로 이어진 흥학관 정신, 배려와 소통
골목콘서트를 마무리하며, 손예빈 기획자는 인문이란 “배려와 소통을 위한 과정”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을 들으며 이번 골목콘서트의 주제였던 광주정신이나 흥학관 정신이 담고 있는 애국애족의 밑바탕에도 ‘배려와 소통’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자만 잘살기보다는 자기 것을 기꺼이 나누며 광주제일고, 흥학관을 설립했던 뜻있는 명망가들의 후원과 암울했던 시대에 정의를 위해 떨치고 일어났던 민초들의 독립운동도 우리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인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리뷰 및 인터뷰 정리 - 임귀연
○ 영상 촬영/편집 - 김상혁
○ 사진 촬영 - 박주영
○ 도움 주신 곳 -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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