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인문학 열풍 속에서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오히려 갈증을 느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인문이란 무엇인가?’ 이 우문에 현답을 들려주실 여덟 번째 손님으로 이보은 마르쉐 대표를 모셨습니다.
Q. 인문과 삶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인문은 자기 삶의 지혜를 구하는 본성적인 노력이 아닐까 싶어요.”
‘삶을 어떻게 지혜롭게 살 것인가’가 요즘 제 인생의 화두예요. 보다 더 지혜롭게 살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도구들이 필요해요. 그게 종교가 될 수도 있고 공부가 될 수도 있는데, 그것들을 통해 내 삶을 계속해서 다른 각도에서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우연한 기회로 주역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사람들이 가져왔던 삶에 대한 질문을 볼 수 있어요. 내가 질문한 것들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다양한 생각의 방식이나 관점을 열어주는 거죠. 이런 질문은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인문의 시작은 여기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문은 자기 삶의 지혜를 구하는 본성적인 노력이 아닐까 싶어요. ‘문화(Culture)’라는 말 자체가 ‘경작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잖아요. 문화의 기원으로 올라가면 신석기 시대 농사지을 때부터 먹고사는 모든 것이 다 인문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죠. 밥상 하나를 차릴 때도 그렇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까지, 삶의 모든 순간이 다양한 역사와 철학을 담고 있는데, 그것들을 내 의식으로 확장시켜서 읽어내려는 노력들이 삶의 풍요와 새로운 시야를 가져다 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자기 삶에 매몰되지 않고 확장해 나갈 때, 함께 살아야 할 이유 같은 여러가지 가치들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Q. ‘마르쉐’라는 도심 속 농(農) 시장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시장은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시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가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해지는 시간을 마련해볼 수 있어요.”
시장은 인간의 사회성이 가장 고도화되어 구현되던 공간이에요. 옛날의 시장은 온갖 정치 이야기가 이뤄지고, 축제가 펼쳐지던 곳이었어요. 우리나라만 해도 동학 농민 점주들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장터를 다니며 농민군을 조직했잖아요. 3.1만세운동도 장날 열렸고요. 우리나라의 평범한 시민들이 가졌던 문화적 의미들은 다 시장에서 발현됐거든요. 시장이라는 공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소통하는 곳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행위들이 이뤄져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그 모든 관계와 행위들을 거세하고 바코드랑만 대화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시장의 의미가 축소된 거죠. 그리고 모든 것들이 브랜드화되면서 상품에 표기된 정보에만 의존해서 사야 하잖아요. 어떻게 재배되고, 어떤 요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맛있는지 바코드에 물어볼 수는 없으니까요. 교환가치는 잘 드러나지 않고, 돈으로서의 상징만 보여지니까 그런 것들에 많이 지친 사람들이 시장에 오는 것 아닐까요? 실제의 가치를 알고 싶고, 다르게도 보고 싶고, 본질을 찾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마르쉐라는 작은 시장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인 것 같아요.
어떤 물건이 나에게 갖는 의미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시장의 힘을 느낄 수 있어요. 시장에서 살구 하나를 사먹으면서 살구 나무를 키운 농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농부가 살아가는 작은 텃밭과 시골집을 생각하고, 살구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잼 같은 것들의 맛을 알고, 심지어 대화를 통해 그 농부의 딸과 그들의 삶을 알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시장이 우리 삶에 주는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그건 대형마트에서 사는 살구의 느낌과는 분명 다르죠. 그런 느낌이 사람들에게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시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가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해지는 시간을 마련해볼 수 있어요.
Q. 마르쉐 시장이 도심 속 새로운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A.보다 적극적으로 시민들이 하고 싶은 것이 펼쳐질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하고, 그걸 포용하는 열린 시스템이 필요해요.”
안정적인 곳을 찾으려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공간실험을 하게 돼요.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게 되고 욕심과, 열정이 생겨요. 제가 마르쉐를 시작해 시장이라는 시민활동을 공공의 공간에서 구현해보겠다는 욕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마로니에라는 곳과 제가 무슨 관련이 있었겠어요. 여기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니까 공간에 대한 굉장한 이해가 생기더라고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지켜내기 위한 시스템적인 노력들도 보이고, 이 공간을 두고 생겨나는 다양한 각축들, 위계들도 느껴져요.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들이 상충되는 지점에서 생기는 공백이 느껴지기도 해요. 너무나 많은 욕망이 얽혀있다 보니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 된 거죠. 그런 것들을 보면서 도시에 대한 배움이 많이 생겼어요. 공원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지 알게 돼요. 다만 공원을 다양하게 향유하는 의식이 필요한데 아직은 다양한 시민들에게 잘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민들이 하고 싶은 것이 펼쳐질 수 있는 노력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필요하고, 그걸 포용하는 열린 시스템 역시 뒷받침되어야 해요. 요즘 유럽의 젊은 사람들은 다 공원에서 놀아요. 그 속에서 놀고 소통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있죠. 우리에게도 그런 게 필요해요. 공원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Q. 나눔과 연대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관계를 담은 먹거리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르쉐는 처음엔 친구들끼리 시작했어요. 친구가 친구를 부르고, 또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부르면서 넓어지고 시장이 된 거죠. 처음 출점자들을 모을 때 저는 옥상텃밭을 했었으니까 도시농업에 관심있는 농부들을 초대하기 시작했고, 요리에 관심있는 다른 친구는 요리사를 초대하고, 다른 친구는 수공예자를 초대해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진 시장이에요. 친구가 친구를 부른다는 개념으로 일본에 ‘우산우소’라는 말이 있는데, 친구가 생산하고 친구가 먹는다는 뜻이에요. 원래 로컬푸드 운동으로,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먹는다는 ‘지산지소’가 있었어요. 이것이 정말 일본의 보편적 가치가 됐는데, 3.11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땅이 오염돼버렸어요. 후쿠시마의 농부 입장에서는 땅이 오염됐으니 지산지소가 맞다고 생각되지 않는 거죠. 그 이후에 방사능 오염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우산우소 개념이 생겼어요. 우리 지역에서 먹거리를 생산할 환경이 아니라면, 다른 지역의 친구가 생산한 것을 먹는 것. 도시적인 삶을 접고 자급적이고 생태적 삶을 지향하면서 지역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도시와 다시 연결되는 거죠. 도시의 친구와 시골의 친구가 연결되고, 우산우소라는 새로운 생태가 생겨나는 거예요. 관계를 담은 먹거리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젊은이들이 농사와 연결되는 삶 속에서 자기 삶의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르쉐에 오시는 분들은 젊다는 것에 놀라세요. 나이 많으신 분들도 없지 않지만 젊은 농부의 비율이 높아서 시장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저는 농산물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장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어디에서, 어떻게, 누가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매력이 있어요. 좀 더 멋진 시장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 농(農)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시장에서 농부들과 즐겁게 만나고, 친구들과 함께 와서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농사와 연결되는 삶 속에서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출점자들도 농장주인이면서 창업자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어요. 처음엔 시장을 통해 자립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죠. 그런데 농부와 요리사라는 꿈을 꿨던 사람들이 지금 실제로 그렇게 됐고, 어떻게 보면 다른 삶의 카테고리를 살게 된 거잖아요. 자기 삶을 주인공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시장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도 인문이라고 볼 수 있죠. 관계 속에서 세상을 보게 되는 힘, 그것이 인문학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지혜가 아닐까 싶어요
글로벌화 될수록 지구 건너편의 위협의 나의 위험이 되는 시대잖아요. 그러다 보니 점점 여러가지 불안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낙오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도태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속에 사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속도에 짓눌려 있는 게 크죠. 마르쉐는 그 속도의 궤도 밖으로 벗어난 삶이에요. 마르쉐를 통해 이런 삶도 살 만하다, 괜찮아 보인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안심을 얻고, 이런 공간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길 바라요.
Q. 속도의 궤도를 벗어난 삶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A.“분명한 건 더 지혜롭고 풍요로워졌다는 거죠.”
보통 농부들은 형질이 우수한 씨앗을 사서 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 씨앗을 키워 꽃을 피우고 거기서 다시 씨앗을 받아 심기도 해요. 이것을 ‘씨앗을 이어간다’라고 하는데, 씨앗을 이어간다는 것은 씨앗이 경험한 기후, 환경에서 발현된 특성을 이어나가는 거예요. 이건 굉장히 의미가 있죠. 처음 씨앗을 채종 해서 심으면 다시 원래의 형질로 돌아가버려요. 그런데 끈기 있는 농부들은 그걸 계속 심어가면서 좋은 형질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해요. 이어가는 씨앗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씨앗을 채종한다는 것은 사실 농부에게 굉장히 번잡스러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씨앗을 이어나간다는 건 농사에 대해서 자신의 자립도를 높여가려는 노력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땅과 환경과 씨앗 관계들을 씨앗에 담아가려는 노력들이에요. 씨앗을 따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해요. 파나 배추는 꽃이 피어버리면 상품가치가 없어서 ‘망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마르쉐에는 그런 꽃이 핀 것을 튀김이나 샐러드로 파는 분들이 계세요. 새로운 미식의 신세계가 열리는 것, 그게 요리사에게는 하나의 기회이자 도전이고 흥미진진한 세계 인거죠. 꽃이 핌으로써 나비와 벌이 모여드는 아름다움도 볼 수 있고요. 균질화되지 않고 새로운 것들이 발생하는 매력이 있어요. 마트에는 늘 한결같이 똑같은 채소가 있고, 똑같아야만 납품하거나 판매할 때도 효율적이에요.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재료와 맛에서 오는 즐거움은 느낄 수 없죠. 물론 이런 것들은 상업화하기 어려워요. 그러나 분명한 건 더 지혜롭고 풍요로워졌다는 거죠. 이런 경험들이 농사 기술만큼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Q. 마르쉐를 통해 추구하시는 삶의 방향은 무엇인가요?
A.“마을과 농부가 삶을 공유하는 작은 시장을 꿈꿔봅니다.”
고민하는 과제가 세 가지 있어요. 먼저, 도시에서 이런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새로운 컨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이 일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시장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정하고 나들이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몇 명의 농부를 늘 일상적으로 만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해요. 마지막으로 이 사고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시장을 더 지역화할 수 있을까. 마르쉐 뒤에 ‘@’을 붙였는데, ‘마르쉐’라는 이름 뒤에 마을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동네의 분위기를 내고 싶었거든요. 시장이 지역으로, 작은 마을로, 더 일상의 공간으로 스며들었으면 좋겠어요. 매주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에 들를 수 있는 곳이 되고, 도심의 빌딩가에서 열리기도 하고, 동네 어린이 집 앞에서 열릴 수도 있는 시장이 됐으면 해요. 마을과 농부가 삶을 공유하는 작은 시장을 꿈꿔봅니다.
Q. 좋은 시대란 어떤 것일까요?
A. 자립하는 인간이 되고 또 그런 사람을 기르는 게 이 시대의 과제이자 이후의
미래의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의 과제가 되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 대부분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술과 자본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본연의 것들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내 안의 다양한 가능성들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요. 농사짓는 삶이라는 것도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가져온 DNA같은 것이잖아요. 전승되어 오는 다양한 지혜들, 내 몸 안에 이미 쌓여있는 기억들을 하나 둘씩 복원해내는. 그래서 조금 더 유능한 인간, 곧 자립하는 인간이 되고 또 그런 사람을 기르는 게 이 시대의 과제이자 이후의 미래의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인간의 존엄성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부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궁극적인 존엄함은 내 스스로가 가치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자립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자립하는 삶과 비즈니스.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요리연구가 이보은
풍요로운 삶을 향하여
2017-06-27
계속되는 인문학 열풍 속에서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오히려 갈증을 느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인문이란 무엇인가?’
이 우문에 현답을 들려주실 여덟 번째 손님으로 이보은 마르쉐 대표를 모셨습니다.
Q. 인문과 삶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인문은 자기 삶의 지혜를 구하는 본성적인 노력이 아닐까 싶어요.”
‘삶을 어떻게 지혜롭게 살 것인가’가 요즘 제 인생의 화두예요. 보다 더 지혜롭게 살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도구들이 필요해요. 그게 종교가 될 수도 있고 공부가 될 수도 있는데, 그것들을 통해 내 삶을 계속해서 다른 각도에서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우연한 기회로 주역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사람들이 가져왔던 삶에 대한 질문을 볼 수 있어요. 내가 질문한 것들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다양한 생각의 방식이나 관점을 열어주는 거죠. 이런 질문은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인문의 시작은 여기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문은 자기 삶의 지혜를 구하는 본성적인 노력이 아닐까 싶어요.
‘문화(Culture)’라는 말 자체가 ‘경작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잖아요. 문화의 기원으로 올라가면 신석기 시대 농사지을 때부터 먹고사는 모든 것이 다 인문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죠. 밥상 하나를 차릴 때도 그렇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까지, 삶의 모든 순간이 다양한 역사와 철학을 담고 있는데, 그것들을 내 의식으로 확장시켜서 읽어내려는 노력들이 삶의 풍요와 새로운 시야를 가져다 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자기 삶에 매몰되지 않고 확장해 나갈 때, 함께 살아야 할 이유 같은 여러가지 가치들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Q. ‘마르쉐’라는 도심 속 농(農) 시장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시장은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시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가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해지는 시간을 마련해볼 수 있어요.”
시장은 인간의 사회성이 가장 고도화되어 구현되던 공간이에요. 옛날의 시장은 온갖 정치 이야기가 이뤄지고, 축제가 펼쳐지던 곳이었어요. 우리나라만 해도 동학 농민 점주들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장터를 다니며 농민군을 조직했잖아요. 3.1만세운동도 장날 열렸고요. 우리나라의 평범한 시민들이 가졌던 문화적 의미들은 다 시장에서 발현됐거든요. 시장이라는 공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소통하는 곳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행위들이 이뤄져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그 모든 관계와 행위들을 거세하고 바코드랑만 대화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시장의 의미가 축소된 거죠. 그리고 모든 것들이 브랜드화되면서 상품에 표기된 정보에만 의존해서 사야 하잖아요. 어떻게 재배되고, 어떤 요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맛있는지 바코드에 물어볼 수는 없으니까요. 교환가치는 잘 드러나지 않고, 돈으로서의 상징만 보여지니까 그런 것들에 많이 지친 사람들이 시장에 오는 것 아닐까요? 실제의 가치를 알고 싶고, 다르게도 보고 싶고, 본질을 찾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마르쉐라는 작은 시장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인 것 같아요.
어떤 물건이 나에게 갖는 의미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시장의 힘을 느낄 수 있어요. 시장에서 살구 하나를 사먹으면서 살구 나무를 키운 농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농부가 살아가는 작은 텃밭과 시골집을 생각하고, 살구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잼 같은 것들의 맛을 알고, 심지어 대화를 통해 그 농부의 딸과 그들의 삶을 알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시장이 우리 삶에 주는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그건 대형마트에서 사는 살구의 느낌과는 분명 다르죠. 그런 느낌이 사람들에게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시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가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해지는 시간을 마련해볼 수 있어요.
Q. 마르쉐 시장이 도심 속 새로운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A.보다 적극적으로 시민들이 하고 싶은 것이 펼쳐질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하고,
그걸 포용하는 열린 시스템이 필요해요.”
안정적인 곳을 찾으려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공간실험을 하게 돼요.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게 되고 욕심과, 열정이 생겨요. 제가 마르쉐를 시작해 시장이라는 시민활동을 공공의 공간에서 구현해보겠다는 욕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마로니에라는 곳과 제가 무슨 관련이 있었겠어요. 여기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니까 공간에 대한 굉장한 이해가 생기더라고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지켜내기 위한 시스템적인 노력들도 보이고, 이 공간을 두고 생겨나는 다양한 각축들, 위계들도 느껴져요.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들이 상충되는 지점에서 생기는 공백이 느껴지기도 해요. 너무나 많은 욕망이 얽혀있다 보니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 된 거죠.
그런 것들을 보면서 도시에 대한 배움이 많이 생겼어요. 공원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지 알게 돼요. 다만 공원을 다양하게 향유하는 의식이 필요한데 아직은 다양한 시민들에게 잘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민들이 하고 싶은 것이 펼쳐질 수 있는 노력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필요하고, 그걸 포용하는 열린 시스템 역시 뒷받침되어야 해요. 요즘 유럽의 젊은 사람들은 다 공원에서 놀아요. 그 속에서 놀고 소통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있죠. 우리에게도 그런 게 필요해요. 공원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Q. 나눔과 연대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관계를 담은 먹거리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르쉐는 처음엔 친구들끼리 시작했어요. 친구가 친구를 부르고, 또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부르면서 넓어지고 시장이 된 거죠. 처음 출점자들을 모을 때 저는 옥상텃밭을 했었으니까 도시농업에 관심있는 농부들을 초대하기 시작했고, 요리에 관심있는 다른 친구는 요리사를 초대하고, 다른 친구는 수공예자를 초대해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진 시장이에요. 친구가 친구를 부른다는 개념으로 일본에 ‘우산우소’라는 말이 있는데, 친구가 생산하고 친구가 먹는다는 뜻이에요. 원래 로컬푸드 운동으로,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먹는다는 ‘지산지소’가 있었어요. 이것이 정말 일본의 보편적 가치가 됐는데, 3.11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땅이 오염돼버렸어요. 후쿠시마의 농부 입장에서는 땅이 오염됐으니 지산지소가 맞다고 생각되지 않는 거죠. 그 이후에 방사능 오염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우산우소 개념이 생겼어요. 우리 지역에서 먹거리를 생산할 환경이 아니라면, 다른 지역의 친구가 생산한 것을 먹는 것. 도시적인 삶을 접고 자급적이고 생태적 삶을 지향하면서 지역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도시와 다시 연결되는 거죠. 도시의 친구와 시골의 친구가 연결되고, 우산우소라는 새로운 생태가 생겨나는 거예요. 관계를 담은 먹거리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젊은이들이 농사와 연결되는 삶 속에서 자기 삶의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르쉐에 오시는 분들은 젊다는 것에 놀라세요. 나이 많으신 분들도 없지 않지만 젊은 농부의 비율이 높아서 시장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저는 농산물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장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어디에서, 어떻게, 누가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매력이 있어요. 좀 더 멋진 시장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 농(農)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시장에서 농부들과 즐겁게 만나고, 친구들과 함께 와서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농사와 연결되는 삶 속에서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출점자들도 농장주인이면서 창업자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어요. 처음엔 시장을 통해 자립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죠. 그런데 농부와 요리사라는 꿈을 꿨던 사람들이 지금 실제로 그렇게 됐고, 어떻게 보면 다른 삶의 카테고리를 살게 된 거잖아요. 자기 삶을 주인공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시장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도 인문이라고 볼 수 있죠. 관계 속에서 세상을 보게 되는 힘, 그것이 인문학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지혜가 아닐까 싶어요
글로벌화 될수록 지구 건너편의 위협의 나의 위험이 되는 시대잖아요. 그러다 보니 점점 여러가지 불안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낙오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도태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속에 사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속도에 짓눌려 있는 게 크죠. 마르쉐는 그 속도의 궤도 밖으로 벗어난 삶이에요. 마르쉐를 통해 이런 삶도 살 만하다, 괜찮아 보인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안심을 얻고, 이런 공간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길 바라요.
Q. 속도의 궤도를 벗어난 삶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A.“분명한 건 더 지혜롭고 풍요로워졌다는 거죠.”
보통 농부들은 형질이 우수한 씨앗을 사서 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 씨앗을 키워 꽃을 피우고 거기서 다시 씨앗을 받아 심기도 해요. 이것을 ‘씨앗을 이어간다’라고 하는데, 씨앗을 이어간다는 것은 씨앗이 경험한 기후, 환경에서 발현된 특성을 이어나가는 거예요. 이건 굉장히 의미가 있죠. 처음 씨앗을 채종 해서 심으면 다시 원래의 형질로 돌아가버려요. 그런데 끈기 있는 농부들은 그걸 계속 심어가면서 좋은 형질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해요. 이어가는 씨앗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씨앗을 채종한다는 것은 사실 농부에게 굉장히 번잡스러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씨앗을 이어나간다는 건 농사에 대해서 자신의 자립도를 높여가려는 노력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땅과 환경과 씨앗 관계들을 씨앗에 담아가려는 노력들이에요. 씨앗을 따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해요. 파나 배추는 꽃이 피어버리면 상품가치가 없어서 ‘망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마르쉐에는 그런 꽃이 핀 것을 튀김이나 샐러드로 파는 분들이 계세요. 새로운 미식의 신세계가 열리는 것, 그게 요리사에게는 하나의 기회이자 도전이고 흥미진진한 세계 인거죠. 꽃이 핌으로써 나비와 벌이 모여드는 아름다움도 볼 수 있고요. 균질화되지 않고 새로운 것들이 발생하는 매력이 있어요. 마트에는 늘 한결같이 똑같은 채소가 있고, 똑같아야만 납품하거나 판매할 때도 효율적이에요.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재료와 맛에서 오는 즐거움은 느낄 수 없죠. 물론 이런 것들은 상업화하기 어려워요. 그러나 분명한 건 더 지혜롭고 풍요로워졌다는 거죠. 이런 경험들이 농사 기술만큼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Q. 마르쉐를 통해 추구하시는 삶의 방향은 무엇인가요?
A.“마을과 농부가 삶을 공유하는 작은 시장을 꿈꿔봅니다.”
고민하는 과제가 세 가지 있어요. 먼저, 도시에서 이런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새로운 컨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이 일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시장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정하고 나들이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몇 명의 농부를 늘 일상적으로 만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해요. 마지막으로 이 사고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시장을 더 지역화할 수 있을까. 마르쉐 뒤에 ‘@’을 붙였는데, ‘마르쉐’라는 이름 뒤에 마을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동네의 분위기를 내고 싶었거든요. 시장이 지역으로, 작은 마을로, 더 일상의 공간으로 스며들었으면 좋겠어요. 매주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에 들를 수 있는 곳이 되고, 도심의 빌딩가에서 열리기도 하고, 동네 어린이 집 앞에서 열릴 수도 있는 시장이 됐으면 해요. 마을과 농부가 삶을 공유하는 작은 시장을 꿈꿔봅니다.
Q. 좋은 시대란 어떤 것일까요?
A. 자립하는 인간이 되고 또 그런 사람을 기르는 게 이 시대의 과제이자 이후의
미래의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의 과제가 되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 대부분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술과 자본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본연의 것들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내 안의 다양한 가능성들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요. 농사짓는 삶이라는 것도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가져온 DNA같은 것이잖아요. 전승되어 오는 다양한 지혜들, 내 몸 안에 이미 쌓여있는 기억들을 하나 둘씩 복원해내는. 그래서 조금 더 유능한 인간, 곧 자립하는 인간이 되고 또 그런 사람을 기르는 게 이 시대의 과제이자 이후의 미래의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인간의 존엄성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부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궁극적인 존엄함은 내 스스로가 가치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자립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자립하는 삶과 비즈니스.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월간 『Chaeg』『TheSeoulive』 에디터(기자). 책의 물성과 글의 냄새를 좋아하여 자연스레 글 쓰는 일을 하며 산다. 자신만의 세계를 선명하게 써내려가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지나온 길에 찍힌 발자국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매일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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