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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박재동

모든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

2017-06-16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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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

박재동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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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인문학 열풍 속에서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오히려 갈증을 느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인문이란 무엇인가?’
이 우문에 현답을 들려주실 일곱 번째 손님으로 박재동 만화가를 모셨습니다. .
Q. 인문이란 무엇일까요?
A.“그만큼 살 만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

과거의 전통적인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구별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 시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구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가 인문학의 중요한 골조란 말이에요. 옛날 자연과학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과 생명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접근했어요. 그러나 철학이라고 생각했지만 과학으로 밝혀진 것들이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하물며 우리 생명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 자연과학이에요. 과학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지식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것들이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죠. 화엄경에 ‘한 티끌 속에 온 세상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 있어요. 작은 DNA를 통해 생명, 인류, 우주에 대해 연구할 수 있죠. 그림을 그릴 때도, 그 속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전 우주를 느낀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옛날엔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뗄 수 있었어요. 그만큼 자연에 대해 몰랐고 다른 영역이었던 거죠. 그러나 지금 시대는 자연과학을 인문학과 뗄 수 없다고 봅니다. 과학과 경제의 발달로 인해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때문에 사람이 연구하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볼 수 있어요.

Q. 인문학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자기를 넘어서는 도리, 아름다움과 같은 것들을 구현하는 것 ”

살만 하니까 그런 열풍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어요. 당장 먹고사는 것이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먹는 것이 곧 삶이었죠. 첫째로 생존이 우선하고 그 다음엔 대를 잇는 것을 중요시했어요. 결혼할 때도 가문을 고려해야 했어요. 가문의 이름이 지금으로 따지면 하나의 브랜드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경제가 발달하고 먹는 것이 풍부해졌잖아요. 이제는 가문에 기대고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에요. 그만큼 살 만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고, 이제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할 시대가 온 거예요. 지금의 우리는 왜 사는지,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문학 열풍이 왔다고 생각해요. 또, 인문학은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재미가 있잖아요. 초·중·고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리에게 심어진 것은 시험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거예요. 심지어 미술이나 노래에도 점수를 매기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신의 점수에 빗대어 스스로 낙인을 찍는 것 같아요. 성적을 떠나 즐기지 못하는 거죠. 인문학은 그런 점에서 부담이 없어요. 이제 ‘나는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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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중 인문학은 열풍인 데 반해 대학 내 인문학은 쇠퇴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A.“열심히 공부해 졸업해봤자 당장 취직도 보장이 안 되는데 인문학이 눈에 들어오겠어요?”

옛날을 알아야 지금을 알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요. 옛날만 해도 대학생이 드물기 때문에 데모하거나 놀거나 해도 대학만 졸업하면 무조건 취직이 됐어요. 지금은 다 대학생이잖아요. 다들 잘하고 자리도 없으니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자격을 취득해도 취직이 보장이 안 되는 거예요. 사실 대학 자체가 변했어요. 대학에서 배운 학문이 나가서 사는 데 도움이 되는지 확신할 수 없죠. 자신이 공부한 것이 직업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일치를 다 기대할 수는 없어요. 대학에서의 학문이나 자격은 일종의 투자비인 셈이죠. 그렇게 보면 옛날은 어쩌면 인문학을 하기 편한 대학이었던 것 같아요. 취직이 잘 되니까 다른 일이나 공부를 할 시간이 있었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해 졸업해봤자 당장 취직도 보장이 안 되는데 인문학이 눈에 들어오겠어요? 과제하기 바빠 학문을 즐길 시간이 없는 거죠.

Q. 대학 내 인문학을 장려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어릴 때부터 인문학적 사고를 키워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생활화돼야 해요. 대학에 와서 갑자기 시작한다고 해서 활성화되지는 않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만 너무 보지 말고 어릴 때부터 인문학적 사고를 키워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공통시험을 쉽게 통과할 수 있게 만들고 대신 인문 소양을 기르는 수업 시간을 확보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인문학을 생활화하면 대학에 와서도 저절로 이어지는 거죠. 그러면 자연히 대학 내의 인문학이 활성화되지 않을까요? 나중에 일을 할 때, 자신이 이것을 왜 하고, 이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그것을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인문학은 바로 그런 힘을 주는 것이에요. 만약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 한다면 돈이 잘 안 벌렸을 때 그 일을 꼭 해야 할 이유가 사라질 수 있어요. 가치를 느끼고 그것을 찾는 사람은 무엇이든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아름다움을 위해서, 또 진정한 기쁨을 위해서 산다고 할 때 가치가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고 가치의 힘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대학에서도 최소한의 철학 시간이든 인문학 프로그램이 있어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기본소양으로 갖출 수 있는 쉬운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서로 생각을 나누고 대화를 해야 삶이 더 재미있어 지는 거죠.

Q. 시사만화를 통해 당대를 비추셨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로써의 그림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 “세상과 대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아요. 그림은 세상에 대해 ‘반응하고 행동하자’는 의식까지 포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시시각각 변해요. 어떤 그림을 보고 난 후의 사람은 보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거예요. 심지어 그림을 그리는 사람조차도 변하죠.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림이 단지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사만화의 경우는 담고 있는 것이 명료해요. 그림 안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 녹아있어요. 그림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즉 세상과 대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Q. 문화예술에서도 인문학적 사고가 중요할 것 같아요.
만화가에게 있어 인문학적 시각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A.“꼭 전달해야겠다는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만화에 힘이 있는 것이고 오래 갈 수 있습니다 ”

인문학적 시각은 새로운 문화를 이끄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해요. 만화에 확실한 철학이 없고 그저 요구하는 대로 따라 그려주면 결국은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어떤 아름다움이나 감정, 견해, 지식 등 꼭 전달해야겠다는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만화에 힘이 있는 것이고 오래 갈 수 있습니다. 그런 뚜렷한 시각을 가지고 그리면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사로잡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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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문학이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인문학은 우리 사회나 경제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예측하여 행동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주고, 사람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돈과 권력만을 추구하면 위험한 사회가 될 수 있어요.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인간 존엄성의 가치가 발현될 수 없어요. 인문학은 우리 사회나 경제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예측하여 행동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주고, 사람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을 통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공부할 수 있고, 그것이 함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없고 권력을 독점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토대가 되는 거예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죠.

Q. 과거의 마을과 현재의 마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앞으로의 마을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A.“앞으로의 마을은 전 지구적인 마을이 될 거예요.”

저도 시골에서 태어나 농가에서 자랐는데, 그때의 마을은 다 직업이 같았어요. 다 농민이었고, 그 농민들이 모인 것이 마을이었죠. 그때는 모두가 늘 ‘같이’ 살았어요. 낯선 사람이 오는 것도, 이사를 가는 것도 극히 드물었고, 남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서로 가족 같은 사이였죠. 좋은 점도 있는데 서로 간섭도 하다 보니 개인의 자유는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우울할 자유도 없고요. 만약 낯빛이 어두우면 온 동네가 다 걱정하니까요. 그리고 만약 한번 낙인이 찍히면 벗어나기 힘들죠. 마을 사람 모두가 알고, 마을을 벗어나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도시는 다릅니다. 안정되어 있진 않지만 익명의 자유가 있고 재생할 기회가 있어요. 보수적이고 개인의 비밀이 없는 옛날의 마을과는 달라요. 이제는 마을의 개념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도시는 자는 곳, 일하는 곳, 노는 곳이 분화되어 있어서 집이 있는 곳이 ‘마을’이라고 하기는 힘들어요. 오히려 메신저나 SNS와 같이 땅을 벗어난 마을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동네, 이웃 사람보다 메신저 마을 속 사람들과 더 많은 유대를 맺으며 살고 있어요.
앞으로의 마을은 전 지구적인 마을이 될 거예요. 이미 SNS를 통해 실현되고 있고, 이제 그것을 실질적인 마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물이 칸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복합적인 문화공간으로 있으면 좋겠어요. 옛날에는 시간 날 때 괜히 동네 정자에 모이곤 했는데, 지금은 어디 앉으려 해도 돈을 내야 해요. 공간을 구분 짓지 않고, 회의할 때 아이를 데리고 들어올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울면 기다려주기도 하면서 아이를 둔 여성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말이죠. 마을에는 반드시 공터, 광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쓸데없이 돌아다닐 곳, 목적이 분명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해요. 각박하지 않은 열린 마을이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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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좋은 시대란 어떤 것일까요?
A. “비로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고 그것을 우리의 눈으로 목격을 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좋은 시대가 아닐까요.”

이렇게 좋은 시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해요. 저는 지금이 바로 좋은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더 바라고 꿈꾸고 바꿔야겠지요. 생각해보면 지금의 좋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노력이 바쳐졌겠어요. 유신 정권 시절만 해도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없었고, 그 이후에도 데모하다가 끌려가거나, 죽고 다치기 일쑤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항쟁을 거치면서 이어져 내려온 운동 역량이 이번에 발현된 것 같아요. 시대를 거쳐 국민들의 기본적인 소양과 의식이 성장하고 행동력을 갖추어 문화혁명을 이룬 거죠. 그 수많은 데모와 운동을 통해 발전시킨 운동 역량으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었기에 많은 국민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제야 비로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고 그것을 우리의 눈으로 목격을 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좋은 시대가 아닐까요. 앞으로 꿈꾸어야 할 좋은 시대는 아직 남아있는 한계를 벗어난 시대겠죠. 회의에도 눈치 보지 않고 아이를 데려올 수 있고, 국민 개개인이 주인의식과 자긍심으로 가득하고, 전 사회적으로도 자랑스러운 시대. 그런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 인문학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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