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에서 유머를 담당하고 있(다고 혼자 믿어 의심치 않)는 김경욱입니다. 이런 뜻있는 지면에서 인사드리게 되어 더 반갑습니다. 오늘의 깜짝 퀴즈 출제 범위는 작년 여름 출간한 저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와 관계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어. 다만 조종할 뿐이지.”
이것은 누가 한 말일까요? 아직 퀴즈는 아닙니다.
인용문은 『나라가 당신 것이니』에 등장하는 ‘그분’이 남긴 어록 중 하나입니다. 그분의 정체를 벌써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그분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했던 전직 정보요원입니다. 냉전시대 대북 첩보전을 막후에서 쥐락펴락하던 정보기관의 살아 있는 레전드. 더 이상 나를 찾지 마라. 때가 되면 이 몸이 너희를 부르겠노라 한마디만 남기고 연기처럼 자취를 감춘 그분이 마침내 왕년의 수하들을 호출하면서 주인공(암호명 ‘라이카’)의 첩보 인생 마지막 임무가 시작됩니다. 두둥.
칠순 노인이 된 전직 특수요원에게 부고처럼 날아든 암호문!
그분이 ‘나’를 부르고 있다.
응답하라 라이카! 응답하라 피셔맨! 응답하라 재단사!
이 무서운 끝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부고로 가장한 암호문이 날아든 순간부터? 코드 네임을 갖게 되면서부터? 멈출 수도 돌아설 수도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짙은 어둠을 향해 나아갈 뿐. 지옥이라는 미궁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길은 언제나 미궁의 심장부로 나 있기에.
이들이 어떤 지옥을 헤매는지 소설의 한 대목을 살펴볼까요.
그나저나 그분을 어떻게 찾아간다? 적과 나를 속속들이 알아도 그분이 안 계시면 백 번의 싸움이 모두 위태로울 텐데. 부끄럽게도 나는 그분 행방은커녕 생사마저 몰랐다.
청송교도소 앞에서 그분을 마지막으로 뵌 지 어언 스무 해. 빨갱이들을 잡아들였다는, 훈장을 받아도 모자랄 업적이 억울한 옥살이의 구실이 되었다. 내란 모의의 수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결과였다.
출소일은 영혼마저 녹아내릴 듯한 삼복염천의 한복판이었다. 교도소 철문을 걸어나오던 그분은 수감 당시 겨울 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그분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땀범벅이 된 얼굴로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우리는 그분 주위를 빙 둘러 인의 장막을 치고 우리가 준비한 모시 적삼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렸다.
두부 한 모를 천천히 씹어 마지막 한입까지 다 삼킨 뒤 마침내 그분이 입을 뗐다.
모두들 출옥 일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숨소리를 죽였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매미들이 예포라도 쏘아올리듯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는 바람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문맥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라다크라는 인도의 어느 지방에 전해져오는 경구임은 나중에 알았지만 수수께끼 같은 말의 속뜻은 그 자리에서 간파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 치의 굽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내면을 호랑이로 가득 채워야 한다. 줄무늬를 안에 감춘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송곳니와 발톱이 떼인 우리가 견지해야 할 투쟁 노선이기도 했다. 나는 진짜 호랑이를 대면한 것처럼 전율했다. 이르고 늦은 개인차는 있었으되, 그늘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땡볕 속에서 호랑이 줄무늬를 마음 깊숙이 새겼다는 점에는 예외가 없었으리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호랑이 기운으로 충만해 가까운 계곡으로 차를 달렸다. 이끼 낀 자갈밭에 모닥불을 피웠다. 너울거리는 불꽃 위에 무쇠솥을 걸고 계곡물을 펄펄 끓였다. 삼나무에 누렁이를 산 채로 매달고 돌아가며 빨랫방망이를 휘둘러 천천히 숨통을 끊었다. 모닥불에서 빼낸 장작으로 몸뚱이를 그슬리고 된장을 발랐다. 다음부터는 그분이 모시 적삼 소매를 걷어붙였다.
“……우리의 영혼을 칼날에서 건져주시고, 목숨을 개의 아가리로부터 구하소서.”
시편 22장 20절. 그분이 손수 끓인 보신탕을 입에 대려면 주기도문과 함께 들어야 하는 구절이었다.
변함이 없는 건 그뿐이 아니었다. 감옥살이도 그분의 손맛을 교정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맛이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1. 객관식 퀴즈
암호명 라이카, 피셔맨, 그리고 재단사. 북미 수교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암살을 모의하는 남한 전직 특수요원들의 스펙터클 어드벤처 블랙 코미디 서스펜스 미스터리 대하 초현실 하이퍼리얼리즘 심리 스릴러 스파이 액션물은 사실 9년 전 쓴 한 단편이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단편은 장편의 DNA를 품고 있어서 기어이 장편의 싹을 틔우기도 합니다.
장편 『나라가 당신 것이니』의 씨앗이 된 단편 제목은 무엇일까요?
① 소의 맛
② 개의 맛
③ 닭의 맛
④ 돼지의 맛
⑤ 게의 맛
* 별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힌트: 저의 일곱 번째 단편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에 두 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2. 주관식 퀴즈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 외판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그분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직접 발굴하고 손수 훈련시킨 특수요원 라이카, 피셔맨, 재단사. 그들은 특별한 그분에게 선택받은 만큼 스스로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그분에게 조련되던 푸르른 시절, 자꾸만 입안을 맴돌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나였죠? 나를 왜 뽑은 거죠?”
희귀한 능력을 타고난 아이들이 모두 그분의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을 읽게 되지는 않았다.
노려보는 시선만으로 쇠를 구부리는 아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주판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아이. 동물들과 대화하는 아이. 비범한 재능을 뽐내는 족족 뽑혔다면 자조 섞인 농담대로 우리는 서커스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궁금했지만 답을 듣는 행운은 누릴 수 없었다. 용기 내어 묻지 못했으니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궁금증에 값하는 대단한 이유를 듣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도 아니다. 애당초 용기를 내는 것과는 상관없는 종류의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질문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선택의 기준, 가장 중요한 재능이 아니었을까. 왜?라는 바로 그 질문 말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던져준 건 늘 다른 물음표였다.
어떻게?
피셔맨을 이십 년만에 마주한 바로 그 순간에도 그분이 묻고 있었다.
제군들, 나를 어떻게 찾을 건가?
세상이 믿거나 말거나 라이카는 사물의 혼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물이든 눈을 질끈 감고 만지면 그 주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떠오른다(고 믿)는 것입니다. 피셔맨도 만만치 않습니다. 피셔맨은 침 하나로 자백을 척척 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의식의 수면 아래 낚싯바늘을 드리우듯 정수리에서 귀 뒤쪽까지 이어지는 열몇 개의 혈자리에 침을 찔러 넣으면 제아무리 입이 납처럼 무거운 상대라도 마음속 깊이 꽁꽁 감춘 비밀을 낚아 올릴 수 있다고, 간밤에 꾼 꿈 이야기처럼 술술 털어놓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재단사는 자신이 쓰는 글이 현실이 되는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공작 대본을 쓰든 그것이 실현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진짜 특별한 능력 한 가지가 주어진다면 무엇이기를 바랍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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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및 해설
1. 객관식퀴즈
정답: ② 개의 맛
2. 주관식퀴즈
◆ 당첨인: 서경훈, 남궁윤, 나환혜
퀴즈에 응모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김지영님의 손끝에서 어떤 것들이 빚어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네요. 어쩌면 이미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민지우님, 소설가로서 저도 갖고 싶은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인과를 파악해보려고 계속 소설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송이님, 고요히 있을 수도 있다는 대목에 마음이 오래 머무네요. 제가 30년 가까이 소설을 써온 것도 처음 글을 쓸 때 찾아왔던 고요함 때문이랍니다.
현영은님, 땀을 쏟으신 만큼만 대가가 돌아왔다니 고맙고 다행한 일입니다. 뜻하는 바를 위해 땀을 쏟을 수 있다는 것만도 운이 있는 것이고, 땀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더 큰 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성실함이 언젠가는 현영은님께 플러스 알파의 운을 가져오리라 믿습니다.
서경훈님,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런 마음이 서경훈님의 오늘과 내일을 더 따뜻하고 환하게 만드리라 믿습니다.
남궁윤님, 타인의 말과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최고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환혜님, 동감합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선택한 주관식 답의 주인공은 서경훈님, 남궁윤님, 나환혜님입니다.
모든 답이 재미있고 인상적이었지만『나라가 당신 것이니』를 쓰는 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아닐까)을 떠올리게 해주는 답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소설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장편소설『 황금 사과』『 천년의 왕국』『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나라가 당신 것이니』,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등이 있음.
댓글(7)
서**
2022-04-19
1. 개의 맛 2. 시간을 이동해서 부모님께 좋은 아들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김**
2022-04-27
1. 2번 개의 맛, 2. 생각하는 것을 손으로 빚어 내는 능력
남**
2022-04-27
1. 2번 개의맛 2. 나이가 들어도 사람의 말과 마음을 잘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싶습니다.
나**
2022-04-27
1. ② 개의 맛 2. 조르바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을 갖고 싶어요.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18)
박**
2022-05-09
1.개의 맛 2.재단사처럼 제가 의도해서 계획 작성한 글이 실제로 이뤄지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해서 삶이 재밌어질 것 같아요. 외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으며 원한다면 고요히 있을 수도 있는 최고의 능력 같네요!
현**
2022-05-13
1. 개의 맛 2. ㅎㅎ 질문을 읽고 상상하는 순간부터, 갑자기 막 설레는데요.! 과연 나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골라야할까.기분좋은상상? 저는 모든 종류의 뽑기와 각종 이벤트 당첨 등 온갖 세상의 요행에서 '어김없이' 선정되는 그런 신묘한 능력을 갖고싶습니다!!! 지금까진 늘 내 몸과 땀을 쓴 만큼만 댓가가 돌아오지 운으로 뽑히는 경험은 별로 없으므로(86)
민**
2022-04-28
1. ② 개의 맛 2. 모든 것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 (74)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인문, 깜짝 퀴즈] 소설가 김경욱'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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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깜짝 퀴즈] 소설가 김경욱
- 김경욱 장편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중에서 -
김경욱
2022-05-16
당신이 꼭 갖고 싶은 특별한 능력 한가지는?
- 김경욱 장편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중에서 -
ㅇ 출 제 자 : 소설가 김경욱
ㅇ 응모기간 : 2022년 4월 15일(금)~2022년 5월 16일(월)
ㅇ 응모방법 : 본문 댓글 및 인문360 SNS 댓글 참여
ㅇ 당첨자 선물: 김경욱 장편소설『나라가 당신 것이니』및 소정의 사례품
ㅇ 당첨자 발표 : 2022년 5월 19일(목) 예정
김경욱 장편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 책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안녕하세요.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인문 360° 독자 여러분.
한국 문학에서 유머를 담당하고 있(다고 혼자 믿어 의심치 않)는 김경욱입니다. 이런 뜻있는 지면에서 인사드리게 되어 더 반갑습니다. 오늘의 깜짝 퀴즈 출제 범위는 작년 여름 출간한 저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와 관계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어. 다만 조종할 뿐이지.”
이것은 누가 한 말일까요? 아직 퀴즈는 아닙니다.
인용문은 『나라가 당신 것이니』에 등장하는 ‘그분’이 남긴 어록 중 하나입니다. 그분의 정체를 벌써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그분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했던 전직 정보요원입니다. 냉전시대 대북 첩보전을 막후에서 쥐락펴락하던 정보기관의 살아 있는 레전드. 더 이상 나를 찾지 마라. 때가 되면 이 몸이 너희를 부르겠노라 한마디만 남기고 연기처럼 자취를 감춘 그분이 마침내 왕년의 수하들을 호출하면서 주인공(암호명 ‘라이카’)의 첩보 인생 마지막 임무가 시작됩니다. 두둥.
칠순 노인이 된 전직 특수요원에게 부고처럼 날아든 암호문!
그분이 ‘나’를 부르고 있다.
응답하라 라이카!
응답하라 피셔맨!
응답하라 재단사!
이 무서운 끝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부고로 가장한 암호문이 날아든 순간부터? 코드 네임을 갖게 되면서부터? 멈출 수도 돌아설 수도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짙은 어둠을 향해 나아갈 뿐. 지옥이라는 미궁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길은 언제나 미궁의 심장부로 나 있기에.
이들이 어떤 지옥을 헤매는지 소설의 한 대목을 살펴볼까요.
그나저나 그분을 어떻게 찾아간다? 적과 나를 속속들이 알아도 그분이 안 계시면 백 번의 싸움이 모두 위태로울 텐데. 부끄럽게도 나는 그분 행방은커녕 생사마저 몰랐다.
청송교도소 앞에서 그분을 마지막으로 뵌 지 어언 스무 해. 빨갱이들을 잡아들였다는, 훈장을 받아도 모자랄 업적이 억울한 옥살이의 구실이 되었다. 내란 모의의 수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결과였다.
출소일은 영혼마저 녹아내릴 듯한 삼복염천의 한복판이었다. 교도소 철문을 걸어나오던 그분은 수감 당시 겨울 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그분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땀범벅이 된 얼굴로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우리는 그분 주위를 빙 둘러 인의 장막을 치고 우리가 준비한 모시 적삼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렸다.
두부 한 모를 천천히 씹어 마지막 한입까지 다 삼킨 뒤 마침내 그분이 입을 뗐다.
모두들 출옥 일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숨소리를 죽였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매미들이 예포라도 쏘아올리듯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는 바람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문맥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라다크라는 인도의 어느 지방에 전해져오는 경구임은 나중에 알았지만 수수께끼 같은 말의 속뜻은 그 자리에서 간파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 치의 굽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내면을 호랑이로 가득 채워야 한다. 줄무늬를 안에 감춘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송곳니와 발톱이 떼인 우리가 견지해야 할 투쟁 노선이기도 했다. 나는 진짜 호랑이를 대면한 것처럼 전율했다. 이르고 늦은 개인차는 있었으되, 그늘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땡볕 속에서 호랑이 줄무늬를 마음 깊숙이 새겼다는 점에는 예외가 없었으리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호랑이 기운으로 충만해 가까운 계곡으로 차를 달렸다. 이끼 낀 자갈밭에 모닥불을 피웠다. 너울거리는 불꽃 위에 무쇠솥을 걸고 계곡물을 펄펄 끓였다. 삼나무에 누렁이를 산 채로 매달고 돌아가며 빨랫방망이를 휘둘러 천천히 숨통을 끊었다. 모닥불에서 빼낸 장작으로 몸뚱이를 그슬리고 된장을 발랐다. 다음부터는 그분이 모시 적삼 소매를 걷어붙였다.
“……우리의 영혼을 칼날에서 건져주시고, 목숨을 개의 아가리로부터 구하소서.”
시편 22장 20절. 그분이 손수 끓인 보신탕을 입에 대려면 주기도문과 함께 들어야 하는 구절이었다.
변함이 없는 건 그뿐이 아니었다. 감옥살이도 그분의 손맛을 교정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맛이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1. 객관식 퀴즈
암호명 라이카, 피셔맨, 그리고 재단사. 북미 수교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암살을 모의하는 남한 전직 특수요원들의 스펙터클 어드벤처 블랙 코미디 서스펜스 미스터리 대하 초현실 하이퍼리얼리즘 심리 스릴러 스파이 액션물은 사실 9년 전 쓴 한 단편이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단편은 장편의 DNA를 품고 있어서 기어이 장편의 싹을 틔우기도 합니다.
장편 『나라가 당신 것이니』의 씨앗이 된 단편 제목은 무엇일까요?
① 소의 맛
② 개의 맛
③ 닭의 맛
④ 돼지의 맛
⑤ 게의 맛
* 별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힌트: 저의 일곱 번째 단편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에 두 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2. 주관식 퀴즈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 외판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그분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직접 발굴하고 손수 훈련시킨 특수요원 라이카, 피셔맨, 재단사. 그들은 특별한 그분에게 선택받은 만큼 스스로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그분에게 조련되던 푸르른 시절, 자꾸만 입안을 맴돌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나였죠? 나를 왜 뽑은 거죠?”
희귀한 능력을 타고난 아이들이 모두 그분의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을 읽게 되지는 않았다.
노려보는 시선만으로 쇠를 구부리는 아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주판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아이. 동물들과 대화하는 아이. 비범한 재능을 뽐내는 족족 뽑혔다면 자조 섞인 농담대로 우리는 서커스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궁금했지만 답을 듣는 행운은 누릴 수 없었다. 용기 내어 묻지 못했으니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궁금증에 값하는 대단한 이유를 듣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도 아니다. 애당초 용기를 내는 것과는 상관없는 종류의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질문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선택의 기준, 가장 중요한 재능이 아니었을까. 왜?라는 바로 그 질문 말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던져준 건 늘 다른 물음표였다.
어떻게?
피셔맨을 이십 년만에 마주한 바로 그 순간에도 그분이 묻고 있었다.
제군들, 나를 어떻게 찾을 건가?
세상이 믿거나 말거나 라이카는 사물의 혼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물이든 눈을 질끈 감고 만지면 그 주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떠오른다(고 믿)는 것입니다. 피셔맨도 만만치 않습니다. 피셔맨은 침 하나로 자백을 척척 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의식의 수면 아래 낚싯바늘을 드리우듯 정수리에서 귀 뒤쪽까지 이어지는 열몇 개의 혈자리에 침을 찔러 넣으면 제아무리 입이 납처럼 무거운 상대라도 마음속 깊이 꽁꽁 감춘 비밀을 낚아 올릴 수 있다고, 간밤에 꾼 꿈 이야기처럼 술술 털어놓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재단사는 자신이 쓰는 글이 현실이 되는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공작 대본을 쓰든 그것이 실현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진짜 특별한 능력 한 가지가 주어진다면 무엇이기를 바랍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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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및 해설
1. 객관식퀴즈
정답: ② 개의 맛
2. 주관식퀴즈
◆ 당첨인: 서경훈, 남궁윤, 나환혜
퀴즈에 응모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김지영님의 손끝에서 어떤 것들이 빚어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네요. 어쩌면 이미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민지우님, 소설가로서 저도 갖고 싶은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인과를 파악해보려고 계속 소설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송이님, 고요히 있을 수도 있다는 대목에 마음이 오래 머무네요. 제가 30년 가까이 소설을 써온 것도 처음 글을 쓸 때 찾아왔던 고요함 때문이랍니다.
현영은님, 땀을 쏟으신 만큼만 대가가 돌아왔다니 고맙고 다행한 일입니다. 뜻하는 바를 위해 땀을 쏟을 수 있다는 것만도 운이 있는 것이고, 땀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더 큰 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성실함이 언젠가는 현영은님께 플러스 알파의 운을 가져오리라 믿습니다.
서경훈님,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런 마음이 서경훈님의 오늘과 내일을 더 따뜻하고 환하게 만드리라 믿습니다. 남궁윤님, 타인의 말과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최고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환혜님, 동감합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선택한 주관식 답의 주인공은 서경훈님, 남궁윤님, 나환혜님입니다.
모든 답이 재미있고 인상적이었지만『나라가 당신 것이니』를 쓰는 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아닐까)을 떠올리게 해주는 답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김경욱 드림
[인문, 깜짝 퀴즈] 소설가 김경욱
- 지난 글: [인문, 깜짝 퀴즈] 소설가 김보영 ⑱
소설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장편소설『 황금 사과』『 천년의 왕국』『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나라가 당신 것이니』, 중편소설『 거울 보는 남자』등이 있음.
댓글(7)
서**
2022-04-191. 개의 맛 2. 시간을 이동해서 부모님께 좋은 아들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김**
2022-04-271. 2번 개의 맛, 2. 생각하는 것을 손으로 빚어 내는 능력
남**
2022-04-271. 2번 개의맛 2. 나이가 들어도 사람의 말과 마음을 잘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싶습니다.
나**
2022-04-271. ② 개의 맛 2. 조르바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을 갖고 싶어요.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18)
박**
2022-05-091.개의 맛 2.재단사처럼 제가 의도해서 계획 작성한 글이 실제로 이뤄지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해서 삶이 재밌어질 것 같아요. 외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으며 원한다면 고요히 있을 수도 있는 최고의 능력 같네요!
현**
2022-05-131. 개의 맛 2. ㅎㅎ 질문을 읽고 상상하는 순간부터, 갑자기 막 설레는데요.! 과연 나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골라야할까.기분좋은상상? 저는 모든 종류의 뽑기와 각종 이벤트 당첨 등 온갖 세상의 요행에서 '어김없이' 선정되는 그런 신묘한 능력을 갖고싶습니다!!! 지금까진 늘 내 몸과 땀을 쓴 만큼만 댓가가 돌아오지 운으로 뽑히는 경험은 별로 없으므로(86)
민**
2022-04-281. ② 개의 맛 2. 모든 것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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