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남제주군 대정읍에 만든 일본의 비행장 시설이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결7호작전`이라는 군사작전으로 제주도를 자신들의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고 관동군 등 일본군 정예병력 6만-7만여명을 제주도에 주둔시켰다. 당시 제주도 인구 25만여명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제주에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각종 해안기지와 비행장, 용이한 작전수행을 위한 도로 건설 등 각종 군사시설 건설에 나서는 한편 제주 섬사람들에게 식량지원 등도 요구했으며 남제주군 대정읍 서남쪽 해안가에 있는 송악산 주변도 그 해안절경의 아름다움에도 상관없이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본토 사수를 위한 `옥쇄`지역으로 삼았던 아픈 상처가 많이 남아있다. 일본군은 송악산 일대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송악산-사계리-화순항-월라봉에 이르는 해안간에 연합군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해안특공기지를 설치해 포대 및 토치카, 벙커 등을 설치했다.
알뜨르 비행장. 제주사람들은 대정읍 알뜨르 평야에 건설했던 일본 해군항공대 비행장을 이 지역 이름을 따 이렇게 부른다. 해안가에 맞닿은 알뜨르 비행장은 중일전쟁을 수행하면서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주민들이 지금 밭으로 사용하는 알뜨르 평야에는 당시 건설된 20여개의 격납고가 해안을 향해 자리잡고 있다. 50여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으나 무척 견고하게 만들어져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부근에는 대공포 진지와 정비고, 막사로 사용했던 건물들의 흔적도 있다. 또 비행장 동북쪽 탄약고터는 거의 원형대로 남아있으며, 그 안에는 2개의 탄약고와 2층으로 만들어진 복도가 있다.
알뜨르 비행장
2019-05-10
2차대전 당시 남제주군 대정읍에 만든 일본의 비행장 시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결7호작전`이라는 군사작전으로 제주도를 자신들의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고 관동군 등 일본군 정예병력 6만-7만여명을 제주도에 주둔시켰다. 당시 제주도 인구 25만여명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제주에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각종 해안기지와 비행장, 용이한 작전수행을 위한 도로 건설 등 각종 군사시설 건설에 나서는 한편 제주 섬사람들에게 식량지원 등도 요구했으며 남제주군 대정읍 서남쪽 해안가에 있는 송악산 주변도 그 해안절경의 아름다움에도 상관없이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본토 사수를 위한 `옥쇄`지역으로 삼았던 아픈 상처가 많이 남아있다. 일본군은 송악산 일대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송악산-사계리-화순항-월라봉에 이르는 해안간에 연합군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해안특공기지를 설치해 포대 및 토치카, 벙커 등을 설치했다.
알뜨르 비행장. 제주사람들은 대정읍 알뜨르 평야에 건설했던 일본 해군항공대 비행장을 이 지역 이름을 따 이렇게 부른다. 해안가에 맞닿은 알뜨르 비행장은 중일전쟁을 수행하면서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주민들이 지금 밭으로 사용하는 알뜨르 평야에는 당시 건설된 20여개의 격납고가 해안을 향해 자리잡고 있다. 50여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으나 무척 견고하게 만들어져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부근에는 대공포 진지와 정비고, 막사로 사용했던 건물들의 흔적도 있다. 또 비행장 동북쪽 탄약고터는 거의 원형대로 남아있으며, 그 안에는 2개의 탄약고와 2층으로 만들어진 복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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