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되었다. 1991년부터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생가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사적화하기 위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생가인 초가 외에 사당·삼문·관리사·화장실 등을 건립하고 안내판을 설치하였으며, 주변 정비사업을 추진하였다.
한용운은 1879년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청주(淸州),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이다. 14세가 되던 해에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2년이 되던 16세에 돌연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이후 하산하여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를 떠돌다가 27세 되던 1905년 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서 연곡(連谷)의 가르침을 받고 정식으로 득도하였다. 계명은 봉완(奉琓), 법호는 용운(龍雲)이다.
1919년 3·1운동 때 백용성(白龍城) 등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3년형을 선고받고,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 일제 치하의 민족혼을 일깨웠으며, 52세 때 잡지 《불교》를 인수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개혁에 앞장섰다. 1944년 5월 9일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되었다. 그의 독립 정신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홍성문화원에서 만해제(萬海祭)를 개최하고 있다.
한용운 생가지
2019-01-02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한용운은 1879년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청주(淸州),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이다. 14세가 되던 해에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2년이 되던 16세에 돌연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이후 하산하여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를 떠돌다가 27세 되던 1905년 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서 연곡(連谷)의 가르침을 받고 정식으로 득도하였다. 계명은 봉완(奉琓), 법호는 용운(龍雲)이다.
1919년 3·1운동 때 백용성(白龍城) 등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3년형을 선고받고,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 일제 치하의 민족혼을 일깨웠으며, 52세 때 잡지 《불교》를 인수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개혁에 앞장섰다. 1944년 5월 9일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되었다. 그의 독립 정신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홍성문화원에서 만해제(萬海祭)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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