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갑질 본색>이라는 영화의 조연을 맡고 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갑질 본색 주연의 상대역이다. 갑질, 이것은 재벌 2세들만의 단어가 아니다. 내가 경비원으로 있는 이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는 4천여 세대가 입주한 대단지다. 준공 후 10년 가까이 되었고 20평과 30평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고급 아파트와 서민 아파트의 중간쯤 가겠다. 하지만 여기 사는 입주자들의 대부분은 나름대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고 주변의 오래된 서민 아파트를 아래로 보는 경향도 다분하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50쪽
수도권 아파트에서 3년째 경비원으로 일하는 최훈(66·필명)씨는 1980년대 건설회사에 다녔고 외국계 회사를 거쳐 무역회사를 차렸지만 폐업해야 했다. 취업은 어려워지기만 했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했다. 경비원으로서 보고 겪고 느낀 것을 틈틈이 이면지에 기록한 것이 이 책의 초고다.
책에는 주민들이 경비원에게 가하는 갑질 사례도 많이 나온다. 이사 가는 가구에 가서 대형 폐기물 수거료 4만 5000원을 내야 한다고 했더니, 마흔쯤 됐을 남자가 욕설을 퍼부으며 삿대질한다. “바빠 죽겠는데 아침부터 경비가 돈 내놓으라고 X랄하고!” 저자는 “이럴 땐 ‘나는 투명인간’이라 여기며 자리를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아파트 경비원으로의 취업부터 만만치 않았다. 만 63세부터는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3개월마다 계약 연장이라는 2차 관문에 통과해야 한다. 아파트 경비원은 3개월짜리 단기 계약직 신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 자기 성찰을 한다. “‘절대 을’의 자리에서 보니 내가 몰라서 저지른 갑질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저 같은 사람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당신들과 똑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사는 보통 사람이란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아파트 경비 노동자가 되기 위한 사람들의 참조서 구실도 할 수 있다. 체험적 르포르타주의 수작이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봐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처지의 사람이 용기를 내어 자기 목소리로 우리에게 건네는 자기 이야기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최훈
2021-09-27
최훈 지음/정미소/2021/13,500원
나는 지금 <갑질 본색>이라는 영화의 조연을 맡고 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갑질 본색 주연의 상대역이다. 갑질, 이것은 재벌 2세들만의 단어가 아니다. 내가 경비원으로 있는 이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는 4천여 세대가 입주한 대단지다. 준공 후 10년 가까이 되었고 20평과 30평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고급 아파트와 서민 아파트의 중간쯤 가겠다. 하지만 여기 사는 입주자들의 대부분은 나름대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고 주변의 오래된 서민 아파트를 아래로 보는 경향도 다분하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50쪽
수도권 아파트에서 3년째 경비원으로 일하는 최훈(66·필명)씨는 1980년대 건설회사에 다녔고 외국계 회사를 거쳐 무역회사를 차렸지만 폐업해야 했다. 취업은 어려워지기만 했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했다. 경비원으로서 보고 겪고 느낀 것을 틈틈이 이면지에 기록한 것이 이 책의 초고다.
책에는 주민들이 경비원에게 가하는 갑질 사례도 많이 나온다. 이사 가는 가구에 가서 대형 폐기물 수거료 4만 5000원을 내야 한다고 했더니, 마흔쯤 됐을 남자가 욕설을 퍼부으며 삿대질한다. “바빠 죽겠는데 아침부터 경비가 돈 내놓으라고 X랄하고!” 저자는 “이럴 땐 ‘나는 투명인간’이라 여기며 자리를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아파트 경비원으로의 취업부터 만만치 않았다. 만 63세부터는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3개월마다 계약 연장이라는 2차 관문에 통과해야 한다. 아파트 경비원은 3개월짜리 단기 계약직 신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 자기 성찰을 한다. “‘절대 을’의 자리에서 보니 내가 몰라서 저지른 갑질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저 같은 사람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당신들과 똑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사는 보통 사람이란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아파트 경비 노동자가 되기 위한 사람들의 참조서 구실도 할 수 있다. 체험적 르포르타주의 수작이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봐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처지의 사람이 용기를 내어 자기 목소리로 우리에게 건네는 자기 이야기다.
▶ 추천사: 표정훈(평론가)
■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나눔위원회 2021 <9월의 추천도서>
■ URL https://www.readin.or.kr/home/bbs/20049/bbsPostList.do#none
작가이자 아파트 경비원
1955년, 서울에서 출생해 학창시절을 보냈다. 건설회사에 입사해 평탄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다가 무역회사를 창립했다가 경영악화로 폐업했다. 2018년에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현재까지 근무 중이다. (이미지 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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