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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의료개혁

키프 데이비슨, 페드로 코스 감독의 <벤딩 디 아크 : 세상을 바꾸는 힘>

이화정

2018-03-19

영화의 제목 ‘벤딩 디 아크(Bending The Arc)’의 의미는 곱씹어볼 만하다.

19세기 성직자이자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시어도어 파커의 명언으로

“나는 도덕적 세계를 이해하는 척하지 않는다. 그 세계의 궤적(Arc)은 길다. 그러나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고 믿는다”라는 말이다.

오래전 뜻을 같이한 세 명의 청년은 그 궤적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정의를 향해 더욱 빨리 올 수 있도록 가속한 인물들이다.

세상의 불합리한 구조가 이렇게 단 몇 사람의 선한 마음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희망의 크기는 상당하다.

 

 

 

빈곤한 의료시스템 속에 핀 희망
세계 빈곤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신생아들에 비해 무려 50배나 높다는 기사를 접했다. 해마다 약 260만 명의 신생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사망하며, 이 중 100만 명은 태어난 지 불과 하루 만에 목숨을 잃는다. 가난과 내전, 의료진의 부족으로 임산부가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예방이 가능한 죽음’이기도 하다. 대단한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별스럽지 않게 얻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이나 소독약, 영양공급 등만 확보되면 이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턱 막혔다.


빈곤으로 인한 의료시스템의 적신호에 대해서라면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엘리시움>을 보면서 섬뜩했던 기억이 난다. 2159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소수의 부자가 의료혜택이 보장된 유토피아 ‘엘리시움’에서 살 권리를 부여받는 대신, 다수의 빈곤층은 병에 걸리면 걸리는 대로 족족 죽어나가는 처참한 현실에 노출된다. 영화를 연출한 닐 블롬캠프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지만 본디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 문제의식은 한층 더 의미심장하다. 갑갑한 현재뿐만 아니라 그가 그리는 SF 장르의 미래에도 희망은 없어 보였다.

 

 

  • 영화 벤딩 디 아크: 세상을 바꾸는 힘
  • 영화 <벤딩 디 아크: 세상을 바꾸는 힘>



이와 같은 현실 인식의 바탕 아래 마침 맷 데이먼이 제작에 참여한 <벤딩 디 아크 : 세상을 바꾸는 힘>을 접했다. 이 영화는 가난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빈곤국의 의료 현실에서 출발한다. 비영리 의료 단체 ‘파트너스 인 헬스’(PIH)를 창립한 폴 파머 박사, 사회운동가 오필리아 달(특이한 이름이 눈에 띌 텐데. 짐작이 맞다. 그녀는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딸이다), 세계은행(WB) 총재 김용 박사가 추구해온 30년간의 의료개혁의 과정을 무수한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해낸다. 


시작은 하버드의 열정 넘치는 의대생 폴 파머로부터였다. 봉사 활동을 위해 방문한 아이티의 작은 마을 캉주에서 그는 결핵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참혹한 의료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학업을 중단하고 당장 의료 봉사에 뛰어들어 매진하려던 그는 봉사단에서 일하는 신부님의 권유로 하버드에서의 공부를 마친다. 이는 이후 전개할 더 큰 투쟁의 힘을 얻는 계기가 된다. 자신을 돌보는 대신 오로지 환자를 위한 삶에 헌신하는 폴 파머의 모습도 놀랍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 곁에 마치 자석처럼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여든다는 점이 더 경이롭다. 그렇게 폴 파머는 자신과 뜻이 같은 의대생 김용과 사회운동가 오필리아 달을 만나게 된다. 무모하고 열정적인 청년기를 거쳐 셋은 중년이 된 현재까지도 차가운 세상의 온도를 1도쯤은 분명 올려줄 개혁의 정신을 펼쳐나간다. 영화는 세 명의 젊은이들이 그 시스템을 분석, 해체해 이뤄낸 기적 같은 실화다.

 

 

폴 파머, 김용, 오필리아 달

  • 현지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
  • (왼쪽부터) 폴 파머, 김용, 오필리아 달 / 현지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세 명의 청년은 단순히 예방에만 초점을 두던 국제 세계 의료계의 패러다임에 반기를 들고 빈곤 지역의 환자들에게도 똑같이 치료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평등한 치료 시스템을 구축해 세상을 변화시킨 젊은 혁명가들이었다. 백신만 있으면 결핵 환자들을 살릴 수 있음에도 예방을 우선으로 하는 세계구호기구의 방침 하에서는 치료할 수 없었다. 논리는 하나였다. ‘비용이 많이 든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라고 섣불리 판단하고 비관적인 생각으로 일관했다. 기존의 예방 시스템으로 보유할 수 있는 자금이 워낙 천문학적이다 보니 빈곤국의 예방 시스템이 곧 전 세계 자금 유통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 축적을 위해서라면 돈 없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 거리낌 없는 메커니즘은 의료 시스템에도 똑같이, 냉혹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환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이들의 개혁은 자본이 생명과 인권보다 우위에 있는 모순된 현실을 향한 경종으로 작용한다. 활동 초창기에는 이상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강한 반발에도 부딪히기도 했지만 마침내 빈곤층도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바로 보통의 사람들이 의료보건 활동가가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었다. 활동가들이 환자들을 돌보아준다면, 의료진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현지 치료의 취약점도 극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캉주에서 처음 시작한 비영리 의료단체 ‘파트너스 인 헬스’의 모델은 성공을 거뒀다. 활동가는 2017년 17,000여 명에 달하며, 그중 무려 98%가 현지 출신이다. 영화에는 김용 총재가 인터뷰 도중 그간 결핵으로 고통받다가 완치된 환자를 만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들에게서 어떤 드라마도 쉽게 그릴 수 없는 감동이 전달된다.


 

  • 의사와 환자가 웃는모습



선한 마음이 모여 만드는 희망
영화의 각본을 맡은 코리 쉐퍼스 스턴은 에이즈 치료 약을 모아 아프리카 의사들에게 전달해 환자에게 쓰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는데, 전염병에 대처할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던 중 폴 파머 박사의 기고문을 접하게 된다. 파머 박사의 존재를 알게 된 스턴은 여러 차례 영화화를 시도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과시하려 하지 않으려는 뜻에서 누차 영화화를 고사했다고 한다. 이들의 혁명적인 의료개혁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뿐만 아니라 앞선 2005년 작가 트레이시 키더의 책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Mountains Beyond Mountains)』으로도 출간되었다.


영화의 제목 ‘벤딩 디 아크(Bending The Arc)’의 의미는 곱씹어볼 만하다. 19세기 성직자이자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시어도어 파커의 명언으로 “나는 도덕적 세계를 이해하는 척하지 않는다. 그 세계의 궤적(Arc)은 길다. 그러나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고 믿는다”라는 말이다. 오래전 뜻을 같이한 세 명의 청년은 그 궤적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정의를 향해 더욱 빨리 올 수 있도록 가속한 인물들이다. 세상의 불합리한 구조가 이렇게 단 몇 사람의 선한 마음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희망의 크기는 상당하다. 흔히 이런 영화라면 감동에 기반을 둔 휴먼스토리를 예상하겠지만, 의외로 영화는 시종일관 장르 영화를 연상케 하는 빠른 편집 리듬과 혁명적 인물들이 시스템에 맞서는 통쾌한 기승전결을 보여줌으로써 재밌는 다큐멘터리의 역할까지 해낸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웅 캐릭터가 승리까지 쟁취하는 서사라니, 이 믿기지 않는 실화가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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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화정
이화정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영화 속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 즐겨 한다. 저서로 여행 에세이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과 인터뷰집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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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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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사진 이미지

홍**

2018-03-19

좋은 정보 잘 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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