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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건축가의 증언

최고의 건축을 이루는 자존감

양용기

2017-12-14

 

[12월의 테마]
자존감

건축가위에 건축주
미국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 1959)가 젊은 시절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한 적이 있다. 판사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 직업이 뭡니까?" 라이트는 답했다. "나는 최고의 건축가입니다." 그 후 친구들이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라이트가 말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최고의 건축가가 되겠다고 맹세했어. 그래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 라이트는 후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위대한 건축가가 되었다. 이 일화를 통해 최고의 건축가란 무엇을 말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전문분야로서 건축가라는 직무가 명확하게 구분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건축가라는 이름이 명확하게 등장하는 초기 건축가로 성경 구약(출 35:11)에 성소 건축가 브살렐,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가 임호텝이 있다. 그 시대 건축가 직무가 지금과 차이가 있다면 건축주의 요구에 맞추어 만드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추세는 근세 말 신고전주의까지 지속된다. 고대에는 권력의 입김이 강했고, 중세에 들어와서는 종교 지도자들의 취향에 맞추어야 했으며, 인본주의 초기에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건축가들의 개인적인 미적 감각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고전적인 이미지가 다시 중시된 신고전주의 시대에는 건축주들의 취향을 충족하는 것이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방향이었다. 이 시대에 산업혁명의 조짐을 보이던 미국도 역사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신고전주의 형태를 추구했고, 유럽은 기득권들이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정통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고자 고전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건축에 적용해 보려 했지만, 건축에 악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팽배해 건축가 스스로 새로운 것에 등을 돌리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괴테나 베토벤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시대적 건축가가 등장하지 않는다. 즉 건축가가 자신의 창작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시대이자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시대였다.

 
  • 중세 건축가의 모습. 과거의 건축가는 자신의 창작 역량을 펼치기보다는 권력자, 종교 지도자, 건축주의 취향을 충족하는 것을 우선해야 했으며, 사회적인 인정도 받지 못했다.중세 건축가의 모습. 과거의 건축가는 자신의 창작 역량을 펼치기보다는 권력자, 종교 지도자, 건축주의 취향을 충족하는 것을 우선해야 했으며, 사회적인 인정도 받지 못했다.

산업화에 따른 건축가의 입지 변화
시대가 바뀌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대량생산에 따른 현상이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새롭게 등장하고 이 흐름에 걸맞게 공장, 창고, 사무실, 백화점 등 새로운 건축물의 수요가 나타난다. 이 건축물들은 건축주의 의견에 의존하기보다는 실질적인 기능에 더 초점을 맞췄다. 특히 만국박람회는 생산과 소비에 직접 연결되는 자본주의 산물이었다. 만국박람회는 건축가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좋은 기회로써 시대를 대표하는 대형 건축물이 등장하고 건축가의 입지가 중요해지는 계기가 된다. 이 시기에 새로운 건축재료도 등장하면서, 이를 해결하는 건축가와 기술자라는 직무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이 둘의 업무 구분을 혼동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구조가 다양한 건축물이 나타남에 따라 건축가 양성에 필요성을 느끼면서 19세기 중반 공업학교와 공과대학이 등장한다. 그동안 사회는 건축가 양성의 필요성을 요구해왔지만, 여전히 양식이라는 개념이 분명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과거의 디자인을 답습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 양식은 건축가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했다기보다는 건축주의 요구에 의한 형태들이었고, 자본주의에서 시작한 형태들은 과거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보자르 건축학교에서 가르치는 건축형태는 대부분 신고딕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는데, 박람회장 같은 대형 건축물에는 아치 외에는 이를 적용하기 힘들었다.

 
  • 파리 만국박람회장 내부 모습
  • 스웨덴 건축가 피터 셀싱의 사무실 모습
    파리 만국박람회장 내부 모습(1889)과 스웨덴 건축가 피터 셀싱의 사무실 모습(1967). 산업화와 대량화에 따라 대형건축물과 사무실 등이 들어서는 등 건축가의 입지가 중요해졌다.

1890년대에 진보주의자들은 근대건축의 독자적인 양식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게 된다. 이는 근대 양식에 대한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 내면에는 건축가들의 독자적인 사회적 지위 상승을 시도하기 위함도 있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루소의 자연주의가 퍼지고 기득권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지만 그로 인하여 건축가들의 입지도 좁아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루소는 속박과 규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면서 과거 권력의 상징이었던 건축도 이에 포함하여 “건축은 일종의 강력한 강박관념이다”라고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건축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명확한 입지가 필요함을 깨닫고 1923년 6월 23일 이탈리아에서 관련 법이 통과됨에 따라 유럽에서 건축가도 법적으로 보호받는 전문집단으로서 최초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건축의 활동 범위가 정해진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건축의 범위는 점차 넓어져 본격적으로 대학에서 전문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최고의 건축, 최고의 건축가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자연이 인간에게 편안함을 제공했다면 사람들이 건축물을 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표현했으며, 미국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는 “건축의 목적은 인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일본의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는 “건축은 현대 철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회가 발달하면서 건축의 범위와 의무가 한층 넓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건축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행위이다. 건축은 계속 발전하여 인간의 심리적 영역을 바라보는 단계까지 왔다. IT의 발달과 함께 인간성이 소외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자존감은 중요한 요소이다. 건축가의 자존감은 자존감 있는 인간에서 시작된다. 서두에서 라이트가 최고의 건축가를 꿈꾸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최고’라는 것은 건축가로서 성공하여 스스로 존귀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을 통해 자연이 제공하지 못한 편안함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인간이 자존감을 느끼게 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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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양용기
양용기

독일 건축가이자 건축학 교수.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박사, 독일 호프만 설계사무소, (주)쌍용건설 등을 거쳐 현재는 안산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 『음악 미술 그리고 건축』 『건축 인문의 집을 짓다』 『철학이 있는 건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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