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해마다 11월의 하루는 전국이 초비상 상황이 되곤 했다. 모든 직장의 출근 시간이 조정되고, 전국의 대중교통이 통제되며, 심지어 항공기조차 이착륙 일정을 바꾼다. 시위나 집회도 이날만큼은 자제한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문이다. 그 이전의 학력고사 시절에도 절반(1981~1986)은 11월에 치러졌고, 또 그 이전의 예비고사(1968~1980)는 일체 11월에 치러졌으니, 적어도 한국인들에게 11월은 ‘교육’과 ‘시험’의 달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 나와 우리의 발전을 위하여!
교육을 ‘공교육-학교 교육’이라는 형태로, 청소년들을 학령에 맞추어 남녀, 계층, 종교, 인종 등을 초월하여 모두가 교실에 모아 놓고 일정한 교과과정에 따라 진행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상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근대까지(많은 저발전 국가에서는 지금도) 교육이란 대개 사교육이었다. 평민은 먹고사는 데 필요한 직업 교육을 보통 부모에게서 받았고, 드물게는 스승을 찾아가서 배웠다. 귀족과 부자도 뛰어난 선생을 모셔서 집에서 자녀를 교육시켰다.
공교육
다만 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고대 철학자들도 있었는데,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정치학』 마지막 권을 공교육에 할애하며, ‘직업과 배경을 초월하여 모든 시민의 자녀를 한자리에서 가르쳐야 한다. 핵심 과목은 음악과 체육이다’라고 주장했다. 하필 음악과 체육을? 스스로의 인성을 계발할 수 있는 동시에, 여러 사람과의 협동을 통한 성취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사회성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청소년에 대한 집단 교육은 병사를 양성하려 군사기술을 주로 가르치고 부수적으로 기초적인 읽기, 쓰기 등을 가르치는 ‘김나지움’의 형태로, 성인에 대한 고등 교육은 철학자나 종교기관이 세운 ‘아카데미아’의 형태로 세계 각지에서 이뤄졌다.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날의 초중고교와 대학교가 된다.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지 않다
동서양에서 인쇄술이 발달해 책이 많아지고,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일정한 능력과 품성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일이 국가의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보급되면서 교육은 점차 학교 교육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나 이는 ‘교육 차별’이라는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미국의 경우 1832년, 코네티컷주 캔터베리에서 한 흑인 학생을 기숙 여학교에 입학시켰다가 교장은 감옥에 갇히고(당시의 인종분리법을 어겼다 하여) 학교는 폐교는 면했지만 흑인 학생만을 위한 학교로 바뀌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이후 뜻있는 사람들이 흑백 통합 학교를 운영하려 했으나, 성난 군중이 몰려가서 학교를 불태우고 교사와 학생들을 폭행하는 일이 19세기 내내 일어났으며, 20세기도 한참이 지나서야 이런 분리주의가 헌법이 보장한 인권에 어긋난다는 논의가 이뤄졌다. 1954년, 마침내 연방대법원에서 학교에서의 인종분리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반발은 계속되었고, 1957년에는 아칸소 주지사가 주방위군을 동원해서 리틀록 고등학교에서 강제로 흑백인 학생을 분리시키기도 했다.
이후 상황은 점점 나아졌지만, 오늘날에도 실질적인 인종분리는 존재한다. 법원의 결정이 공립학교만을 구속했기 때문에 백인 학부모가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기 꺼려하고, 결과적으로 공립학교는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이 대부분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공립학교는 사립학교에 비해 교육 프로그램이나 교사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21세기에도 마틴 루서 킹의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멀었음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영국, 일본 등에 아직도 특정 가문 자녀들만 입학을 허용하는 학교가 존재하는 등, 계급에 따라, 인종에 따라, 성별에 따라, 종교에 따라 ‘모든 시민의 자녀를 한 자리에서 가르치는’ 공교육의 오래된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아직 장애물이 많다.
한편 ‘모든 시민의 자녀를 한자리에’ 모으다 보니 자연히 발생하는 교권 침해, 수업 붕괴, 학교 폭력 등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오랜 숙제다. 과거에는 만병통치약이 있었다. 바로 체벌이다. ‘교육은 으레 체벌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있어서 왕실의 자녀들도 매질을 면할 수 없었으며, 영국의 작가 로알드 달처럼 20세기 전반기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학창 시절’ 하면 ‘얻어맞는 것’이라 회상하곤 했다.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학교 체벌을 금지한 때가 1920년이며, 독일은 1983년, 영국은 1985년에 가서야 체벌을 금지했다. 서당 훈장님의 회초리에서 이어지는 오랜 체벌의 전통이 있는 나라인 한국의 경우에는 ‘체벌 없이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하느냐!’는 거센 반발로 진통을 거듭했다. 2012년 체벌 금지가 실현되었으나 아직도 ‘간접적 체벌’은 교육청별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별로 완전 금지, 부분 금지, 완전 허용으로 제각각이며 중국에서는 1949년부터 금지지만 실제로는 버젓이 행해지는데, 2015년에 미국과 중국에서 과도한 체벌로 학생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나란히 일어나 물의를 빚는 등 잡음이 계속되었다.
시험지옥을 위한 변명
그리고 시험이다! 시험은 교과과정 상의 학습 목표를 전제로 한다. 학습 목표를 달성했는지 피교육자의 상태를 점검해야 하며, 따라서 시험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학습 목표나 틀에 박힌 교과과정 자체를 불신한 존 듀이나 파울루 프레이리 같은 사람들의 교육에서는 시험도, 성적표도 없다. 사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학교들이 오랫동안 시험 대신 소논문 과제 등으로 교육과정을 마치게 하거나, 경쟁 시험이 아닌 등락 여부만 따지는 시험을 실시해왔다.
시험
역시 교육은 으레 ‘시험 공부’라고 여겨지고, 학기마다 또는 전국 단위마다 경쟁 시험을 치르는 체제는 동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동양식 교육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토론보다는 교사의 일방적인 전달 위주인 경우가 많아, 과연 제대로 듣고 익혔는지 점검할 필요가 컸다. 그리고 605년 중국 수나라에서 과거제가 시작되고, 한반도에서도 958년 이후 실시하다 보니 관리 임용 시험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최대의 계기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교육이란 그 시험에 붙을 실력을 기르는 과정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러한 ‘시험 능력주의’는 계급과 문벌에 따라 인생의 급이 나뉘던 체제에 비해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듯 보인다. 아무래도 경쟁이 붙고, 큰 것이 걸려야 자신을 채찍질하기 마련인 게 인간이라,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 시스템은 유능한 시민을 공정한 잣대로 길러낸다는 근대 민주국가의 필요성에도 부합했다. 그래서 지금은 정도의 차이가 있되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험이 학교 교육과정의 중심이 되어 있다. 듀이 이래 자유교육 체제를 고집하던 미국에서도 1957년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스푸트니크 쇼크’를 겪고 나서 경쟁적 주입식 교육체제로 전환했으며,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자원도 자본도 없던 한국이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올라선 밑거름이 주입식 교육’이라며 한국 교육을 찬양하기도 했다.
새로운 판을 고민해야 할 때
그러나 시험이 교육의 중심이 되면 ‘인성과 역량 계발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험 점수를 위해 공부한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쓰레기다’ 등의 관념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시험에 경쟁이 붙으면 참된 의미의 ‘학우’는 사라지며, 교육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자신과 모두가 함께 자라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이익과 쾌락을 위한 준비가 된다.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게 된다면 그 시험을 치르기까지의 발달과정은 오로지 시험 준비과정으로 전락하며,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시험 성적이 좋은 사람은 오만함에, 나쁜 사람은 열패감에 빠져서 인간으로서나 시민으로서나 바람직하지 못한 존재가 된다.
이런 문제점은 인식된 지 오래고, 꾸준히 대입제도 개선이 이뤄져왔다. 그러나 경쟁적 시험체제와 학벌-대입 시험 중심체제가 유지되는 한, 폭음, 폭식을 거듭하면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1950, 60년대와 달리 이제는 점수 따기에 능한 인재가 참된 인재라 하기도 어렵고, 매년 약 1천 명, 이태원 희생자의 몇 배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자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과도한 입시 부담임을 볼 때, 이제는 판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매년 11월이면 전국이 비상체제에 들어가는 하루가 있었어’는 말이 ‘못 믿겠어!’는 반응을 얻는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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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 교육과 시험
-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 -
함규진
2022-11-29
역시 교육은 으레 ‘시험 공부’라고 여겨지고,
학기마다 또는 전국 단위마다 경쟁 시험을 치러야 하는 체제는 동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동양식 교육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토론보다는 교사의 일방적인 전달 위주인 경우가 많아,
과연 제대로 듣고 익혔는지 점검할 필요가 컸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해마다 11월의 하루는 전국이 초비상 상황이 되곤 했다. 모든 직장의 출근 시간이 조정되고, 전국의 대중교통이 통제되며, 심지어 항공기조차 이착륙 일정을 바꾼다. 시위나 집회도 이날만큼은 자제한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문이다. 그 이전의 학력고사 시절에도 절반(1981~1986)은 11월에 치러졌고, 또 그 이전의 예비고사(1968~1980)는 일체 11월에 치러졌으니, 적어도 한국인들에게 11월은 ‘교육’과 ‘시험’의 달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 나와 우리의 발전을 위하여!
교육을 ‘공교육-학교 교육’이라는 형태로, 청소년들을 학령에 맞추어 남녀, 계층, 종교, 인종 등을 초월하여 모두가 교실에 모아 놓고 일정한 교과과정에 따라 진행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상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근대까지(많은 저발전 국가에서는 지금도) 교육이란 대개 사교육이었다. 평민은 먹고사는 데 필요한 직업 교육을 보통 부모에게서 받았고, 드물게는 스승을 찾아가서 배웠다. 귀족과 부자도 뛰어난 선생을 모셔서 집에서 자녀를 교육시켰다.
공교육
다만 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고대 철학자들도 있었는데,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정치학』 마지막 권을 공교육에 할애하며, ‘직업과 배경을 초월하여 모든 시민의 자녀를 한자리에서 가르쳐야 한다. 핵심 과목은 음악과 체육이다’라고 주장했다. 하필 음악과 체육을? 스스로의 인성을 계발할 수 있는 동시에, 여러 사람과의 협동을 통한 성취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사회성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청소년에 대한 집단 교육은 병사를 양성하려 군사기술을 주로 가르치고 부수적으로 기초적인 읽기, 쓰기 등을 가르치는 ‘김나지움’의 형태로, 성인에 대한 고등 교육은 철학자나 종교기관이 세운 ‘아카데미아’의 형태로 세계 각지에서 이뤄졌다.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날의 초중고교와 대학교가 된다.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지 않다
동서양에서 인쇄술이 발달해 책이 많아지고,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일정한 능력과 품성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일이 국가의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보급되면서 교육은 점차 학교 교육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나 이는 ‘교육 차별’이라는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미국의 경우 1832년, 코네티컷주 캔터베리에서 한 흑인 학생을 기숙 여학교에 입학시켰다가 교장은 감옥에 갇히고(당시의 인종분리법을 어겼다 하여) 학교는 폐교는 면했지만 흑인 학생만을 위한 학교로 바뀌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이후 뜻있는 사람들이 흑백 통합 학교를 운영하려 했으나, 성난 군중이 몰려가서 학교를 불태우고 교사와 학생들을 폭행하는 일이 19세기 내내 일어났으며, 20세기도 한참이 지나서야 이런 분리주의가 헌법이 보장한 인권에 어긋난다는 논의가 이뤄졌다. 1954년, 마침내 연방대법원에서 학교에서의 인종분리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반발은 계속되었고, 1957년에는 아칸소 주지사가 주방위군을 동원해서 리틀록 고등학교에서 강제로 흑백인 학생을 분리시키기도 했다.
이후 상황은 점점 나아졌지만, 오늘날에도 실질적인 인종분리는 존재한다. 법원의 결정이 공립학교만을 구속했기 때문에 백인 학부모가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기 꺼려하고, 결과적으로 공립학교는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이 대부분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공립학교는 사립학교에 비해 교육 프로그램이나 교사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21세기에도 마틴 루서 킹의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멀었음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영국, 일본 등에 아직도 특정 가문 자녀들만 입학을 허용하는 학교가 존재하는 등, 계급에 따라, 인종에 따라, 성별에 따라, 종교에 따라 ‘모든 시민의 자녀를 한 자리에서 가르치는’ 공교육의 오래된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아직 장애물이 많다.
한편 ‘모든 시민의 자녀를 한자리에’ 모으다 보니 자연히 발생하는 교권 침해, 수업 붕괴, 학교 폭력 등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오랜 숙제다. 과거에는 만병통치약이 있었다. 바로 체벌이다. ‘교육은 으레 체벌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있어서 왕실의 자녀들도 매질을 면할 수 없었으며, 영국의 작가 로알드 달처럼 20세기 전반기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학창 시절’ 하면 ‘얻어맞는 것’이라 회상하곤 했다.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학교 체벌을 금지한 때가 1920년이며, 독일은 1983년, 영국은 1985년에 가서야 체벌을 금지했다. 서당 훈장님의 회초리에서 이어지는 오랜 체벌의 전통이 있는 나라인 한국의 경우에는 ‘체벌 없이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하느냐!’는 거센 반발로 진통을 거듭했다. 2012년 체벌 금지가 실현되었으나 아직도 ‘간접적 체벌’은 교육청별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별로 완전 금지, 부분 금지, 완전 허용으로 제각각이며 중국에서는 1949년부터 금지지만 실제로는 버젓이 행해지는데, 2015년에 미국과 중국에서 과도한 체벌로 학생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나란히 일어나 물의를 빚는 등 잡음이 계속되었다.
시험지옥을 위한 변명
그리고 시험이다! 시험은 교과과정 상의 학습 목표를 전제로 한다. 학습 목표를 달성했는지 피교육자의 상태를 점검해야 하며, 따라서 시험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학습 목표나 틀에 박힌 교과과정 자체를 불신한 존 듀이나 파울루 프레이리 같은 사람들의 교육에서는 시험도, 성적표도 없다. 사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학교들이 오랫동안 시험 대신 소논문 과제 등으로 교육과정을 마치게 하거나, 경쟁 시험이 아닌 등락 여부만 따지는 시험을 실시해왔다.
시험
역시 교육은 으레 ‘시험 공부’라고 여겨지고, 학기마다 또는 전국 단위마다 경쟁 시험을 치르는 체제는 동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동양식 교육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토론보다는 교사의 일방적인 전달 위주인 경우가 많아, 과연 제대로 듣고 익혔는지 점검할 필요가 컸다. 그리고 605년 중국 수나라에서 과거제가 시작되고, 한반도에서도 958년 이후 실시하다 보니 관리 임용 시험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최대의 계기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교육이란 그 시험에 붙을 실력을 기르는 과정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러한 ‘시험 능력주의’는 계급과 문벌에 따라 인생의 급이 나뉘던 체제에 비해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듯 보인다. 아무래도 경쟁이 붙고, 큰 것이 걸려야 자신을 채찍질하기 마련인 게 인간이라,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 시스템은 유능한 시민을 공정한 잣대로 길러낸다는 근대 민주국가의 필요성에도 부합했다. 그래서 지금은 정도의 차이가 있되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험이 학교 교육과정의 중심이 되어 있다. 듀이 이래 자유교육 체제를 고집하던 미국에서도 1957년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스푸트니크 쇼크’를 겪고 나서 경쟁적 주입식 교육체제로 전환했으며,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자원도 자본도 없던 한국이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올라선 밑거름이 주입식 교육’이라며 한국 교육을 찬양하기도 했다.
새로운 판을 고민해야 할 때
그러나 시험이 교육의 중심이 되면 ‘인성과 역량 계발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험 점수를 위해 공부한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쓰레기다’ 등의 관념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시험에 경쟁이 붙으면 참된 의미의 ‘학우’는 사라지며, 교육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자신과 모두가 함께 자라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이익과 쾌락을 위한 준비가 된다.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게 된다면 그 시험을 치르기까지의 발달과정은 오로지 시험 준비과정으로 전락하며,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시험 성적이 좋은 사람은 오만함에, 나쁜 사람은 열패감에 빠져서 인간으로서나 시민으로서나 바람직하지 못한 존재가 된다.
이런 문제점은 인식된 지 오래고, 꾸준히 대입제도 개선이 이뤄져왔다. 그러나 경쟁적 시험체제와 학벌-대입 시험 중심체제가 유지되는 한, 폭음, 폭식을 거듭하면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1950, 60년대와 달리 이제는 점수 따기에 능한 인재가 참된 인재라 하기도 어렵고, 매년 약 1천 명, 이태원 희생자의 몇 배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자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과도한 입시 부담임을 볼 때, 이제는 판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매년 11월이면 전국이 비상체제에 들어가는 하루가 있었어’는 말이 ‘못 믿겠어!’는 반응을 얻는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11월 : 교육과 시험
- 지난 글: 10월 : 화폐와 금융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11월 : 교육과 시험'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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