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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필요한 “너 자신을 알라”

나와 나의 성숙한 관계 맺음, 고독

김석

2018-09-20

‘고독’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는 ‘고독사’나 ‘은둔형 외톨이’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 단절되어 아무도 내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상태로 쓸쓸하게 지내는 상태는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여러 요인에 의해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고독은 오히려 외로움의 상태가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 맺기’이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성찰의 시간이다. 

 

 

 

소통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우리들

우리 사회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혼밥’, ‘혼술’, ‘혼행’. 이처럼 홀로 먹고, 마시고, 여행가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결혼 정보회사 듀오가 우리나라 20~30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혼밥’에 대한 설문 조사를 벌였더니 대략 71%가 혼밥을 즐겨 먹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경기 침체나 사회적 네트워크 파괴 등으로 인한 반강제적 1인 가구의 증가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1) 홀로서기를 긍정하는 사람들도 사실 통제하지 못하는 고독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낀다. 바쁜 일상과 부대낌에서 벗어나 고독을 즐기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지만, 잠시 피하는 것일 뿐 고독을 일상처럼 마주한다면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괴로운 고통이 고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 ‘혼밥’, ‘혼술’-- 나 홀로 열풍 속 불편한 진실”, <오마이뉴스> 18년 1월 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92049

 

교도소에서 재소자에게 가하는 형벌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 또한 독방에 갇히는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 38년 감옥살이를 한 북한 출신 장기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약간 어눌한 말투로, 고문처럼 물리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1.5평도 안 되는 어둑어둑한 독방에 혼자 갇혀 있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공간, 이야기를 나눌 상대 없는 독방이야말로 존재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인간이 말을 통해 의사소통은 물론, 정서를 교환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낀다. ⓒ Photo by Helena Lopes on Unsplash

 

 

‘고독’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는 ‘고독사’나 ‘은둔형 외톨이’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 단절되어 아무도 내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상태로 쓸쓸하게 지내는 상태는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여러 요인에 의해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고독은 오히려 외로움의 상태가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 맺기’이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성찰의 시간이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가면을 쓰고 내보였던 정형화된 나의 모습이 아닌, 나의 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고독의 본질이다. 이렇게 고독을 정의한다면 우리는 가끔, 아니 습관적인 고독을 필요로 하며 고독을 통해 내 영혼을 그윽하게, 그리고 또렷이 들여다봐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 춥거나 혹은 타버리거나

인간에게 고독이 필요한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첫째, 괴테가 말한 것처럼 인간이 인간에게 불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무 떨어지면 춥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다 타버릴 수 있는 게 인간관계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에서 사람이 겪는 세 가지 고통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했다. 첫 번째 고통은 육체에서 비롯되는 고통으로, 감각이 주는 긴장과 멈추지 않고 샘솟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육체적 고통은 반복되고 무한 충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절히 본능을 억제하고 우회적으로 발산하며 견딜 수 있다. 두 번째 고통은 외부 자연이나 힘센 대상이 주는 두려움으로, 생존과 연관된다. 인간은 과학기술과 지식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며 문제를 해결해왔다. 마지막 고통은 타인에게서 오는 고통으로, 가장 힘들고 극복 불가하다. 특히 가족, 이웃, 친구 같은 친밀한 관계는 우리를 지탱해줌과 동시에 힘들게 한다. 인간은 타인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종교와 도덕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이 고통 때문에 때때로 어디론가 떠나 혼자 지내고 싶어 한다. 이는 도피성 고독으로, 타인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심리가 근저에 깔려 있다.


 

친밀한 관계는 우리를 지탱해줌과 동시에 힘들게 한다.

친밀한 관계는 우리를 지탱해줌과 동시에 힘들게 한다.ⓒ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인간의 본성에 대해 동서양에서 수많은 논쟁이 있었고,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타인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자가 동의한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사랑의 역사〉에서 ‘이웃사랑’을 강조한다. 이웃이 사랑할 만하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명 속의 불만〉에서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나 <정신분석의 윤리>라는 세미나에서 라캉이 ‘이웃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도 비슷하다. 우리는 타인 때문에 고통이나 두려움을 겪지만, 동시에 서로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목적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의도적 고독은 지친 나를 치료하며, 영혼을 소생시키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도망치는 소극적 선택이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 맺기를 실현할 수 있는 목적의식적 고독의 실천이 필요하다. 고독 속에서 우린 우리 자신을 찾아야 하고, 그 후에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고독이 필요한 “너 자신을 알라”

고독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알키비아데스〉에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가 모든 윤리적, 철학적 사유와 실천의 출발점이라고 선언한다. 우리는 타인이나 외부 세계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진정한 자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 길을 잃기 쉽다. 인간 자체가 타인을 연상시키는 사회적 자극에 반응하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쿨리(Cooley)는 ‘거울 속의 자기’라는 개념을 통해 자아 개념이 타인의 평가를 반영하여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자아’가 불변의 실체가 아닌, 단순히 거울에 비친 신체 이미지를 나라고 착각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소외의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자아’는 생각만큼 일관되거나 안정적이지 못한데, 이는 심리학뿐 아니라 최근 뇌 과학에서도 많이 입증되고 있다. 자아는 기본적으로 평판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칫 나를 억압하고 소외시키면서 타인의 기대에 맞게 살도록 강요할 수 있다. 또 이런 취약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동원하기도 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신포도 콤플렉스’, 즉 내가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저평가하는 방법으로 수많은 착각과 오류, 편향성을 드러내며 우리를 잘못 인도하기도 한다. 자아는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성을 구조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데 이를 잘 보여주는 말이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다’는 ‘확증편향’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 많은 갈등과 오해가 생기고, 분쟁이 발생해도 해결이 어렵다.

 

 

고독은 나를 찾는 방법이다.

고독은 나를 찾는 방법이다. ⓒPhoto by Alina Miroshnichenko on Unsplash

 

 

자아의 어리석음을 벗어나기 위해 소외되지 않은,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의식적이고 자율적인 고독이다. 고독을 나와 나의 관계로 바르게 정립하면 그것은 내 삶의 지평에서 말라붙은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는 생산적 장이 될 수 있다. 고독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황폐시키는 것은 동반적 관계로서 주어진 게 아니라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그 속에 강제로 던져졌기 때문이다. 고독을 부드러운 친구이자 동반자로 삼기 위해서는 외로움에 빠지는 게 아니라 내가 고독을 불러야 한다. 그럴 때 가수 조르쥬 무스타키의 노래 ‘나의 고독(ma solitude)’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나의 고독과 함께 있기에 혼자가 아니다. 이 가을 고독과 친해지면서 나 자신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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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석
김석

정신분석 개념과 철학을 접목해 한국 사회의 집단 심리와 사회, 문화 현상을 분석하면서 공동체를 위한 인문학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철학자. 현재 건국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중 강연과 집필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것에도 열심이다.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프로이트 & 라캉, 무의식에로의 초대〉, 〈인문학 명강〉 (공저) 등을 썼으며, 옮긴 책으로 〈문자라는 증서: 라캉을 읽는 한 가지 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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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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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진 이미지

김**

2018-09-20

고독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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