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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우리는 북치입니다

북한의 건축물로 먼저 만나는 통일의 시대

안창모

2018-06-14

필자는 남북 사이에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성장했다. 남북 사이의 긴장을 최고로 이끌었던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1.21사태) 직후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고, 중고등학교 6년을 유신체제 하에 보낸 뒤 1981년에 대학에 입학했으니, 10월 유신을 지탱하는 한 축이었던 반공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란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80년대를 혼란스럽게 지내야 했다. 건축과에 진학 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서울과 평양에 관한 기사에서 평양은 ‘엄지 척’, 서울은 그 반대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여전히 평양의 도시와 건축의 모습을 사진으로 본 적은 없었다. 당시는 김일성 주석의 모습을 ‘혹 달린 캐리커처’로 보여주던 시절이었으니, 우리보다 앞선 도시의 실체를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까지 북이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이 일반에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평양

우리가 알아야 하는 평양


필자가 북의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한 지 20여 년이 흘렀고, 2014년에는 베니스에서 서울과 평양의 도시와 건축을 비교하는 전시를 기획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필자는 건축과 사회의 관계를 해석하는 건축역사 연구자의 입장에 있다. 따라서 북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이해가 북한 사회를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북은 소수의 전문가만이 아닌 모두의 관심 대상이 되었고,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북의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노출된 북한은 역사적 실체로서 인식되기보다는 여전히 반공의 프레임에 갇힌 이미지로서의 북한이다. 그래서 북의 도시와 건축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의 선험적인 편견으로 인해 왜곡되어 읽힌다.


최근 방송에 비친 평양의 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2001년 김정일위원장이 상전벽해라며 감탄했던 상해의 푸동 지구를 무색케 하는 평양 여명거리다. 초고층 건물로 가득한 여명거리와 대동강변의 미래과학자거리는 평양의 모습을 처음 접하는 이들의 눈을 의심케 하고,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필자가 2005년 북한문화예술 전문가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 순안공항에서 호텔에 이르는 길에 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평양의 도시 풍경은 우리가 알고 있던 평양이 아니었다. 일행 중 한 분은 ‘역시 평양은 전시행정의 극단을 보여주는 도시!’라고 했고, 다른 분은 ‘평양이 이렇게 근사한 도시였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필자의 전공이 건축이니,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설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답은 간단했다. 같은 모습을 보고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은 두 분 모두 남북대결 구조 속에서 반공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의견은 도시 중심이 큰 건물로 채워져 있지만, 정작 사람은 없는, 마치 텅 빈 무대 같은 평양 그대로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평양은 자본주의 도시가 아니어서 서울처럼 업무 중심지구가 없고, 직장과 집을 가깝게 배치하는 직주근접 원칙이 적용된 도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도시의 일상적 풍경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보인 반응이었다. 다른 의견은 쭉쭉 뻗은 도로와 질서정연한 건물들 그리고 도심 곳곳의 녹지로 채워진 잘 계획된 도시라는 이야기인데, 이는 우리가 배웠던 반공교육 속의 평양이 거짓이었다는 점을 직접 확인하고 보인 반응이었다. 주목할 것은 두 분 모두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북에 대한 지식이 매우 높고, 북을 이해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가진 분들이었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입지를 갖고 있는 분들이 현장을 본 반응이 이럴진대 사회주의에 대한 지식에 제한될 수밖에 없고, 평양을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일반인들은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쏟아지는 많은 이미지와 정보로 인해 오히려 평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게 될 것을 예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가 건축이다.


평양 여명거리

▲ 평양 여명거리


 소통, 잘못된 인식의 틀을 고치는 것부터


건축은 문화예술로 불리기에 손색 없는 분야지만, 건축이 여느 문화예술과 다른 점은 생산수단을 작가가 사유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건축가의 창작행위는 건축주 없이는 시작이 불가하다. 설계를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건물이 지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건축재료가 필요하고, 이를 시공할 수 있는 기술과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 즉, 하나의 건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건축가 외에 많은 사회적 주체들이 필요하기에, 도시와 건축을 읽어내는 것은 건축이 존재하는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된다. 바로 이 점에서 필자는 남북평화와 협력의 시대에서 건축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길 찾기에 어두운 사람’을 ‘길치’라고 하듯, 우리는 ‘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북치’라고 할 수 있다. ‘북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통일’을 이야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건축교류’를 논의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우리는 남과 북이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기에 만나면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랜 적대적 대치 속에 진행된 체제 유지를 위한 교육으로 인해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의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위해서는 통역이 필요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남북대결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는 빨갱이’라고 배웠다. 이제는 안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사회주의가 아닌 독재라는 사실을. 그러나 여전히 사회주의가 ‘이성에 신뢰하고 과학적 사고에 기초한 사회체제’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6.25전쟁 이후 우리에게 각인된 ‘사회주의/공산주의=빨갱이’라는 프레임은 붉은색이 주는 자극과 함께 북을 사람이 아닌 늑대나 뿔 달린 괴물이 사는 곳으로 인식하게 했다. 바로 이러한 잘못 각인된 인식의 틀을 고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어야 한다. 방송에 비친 평양의 중심과 여명거리의 모습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고, 어떤 의지의 표현인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그릇된 인식을 교정하고 북만 만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중심부에 놓인 거리를 이해하고

의미를 헤아리는 것에서 꿈은 시작된다


1972년 7.4공동성명 이후 굴곡은 많았지만 남과 북을 오고 가면서 각 분야에서 교류의 폭을 점차 넓혀왔다. 건축에서도 북과 교류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북과 교류를 위한 많은 제안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실현된 것이 없었다.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교류가 성사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잘못이었을까? 아니다. 우리는 ‘북치’라고 할 만큼 북을 몰랐고, 교류 기본인 상대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교류라는 이름으로 제안했었기 때문이다. 건축계가 헛발질하는 사이에 건축 분야 이외에서는 꽤 많은 성과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건축이 주도한 사업이 성사된 것은 없었지만, 성공한 교류사업의 상당 부분에는 건축이 개입되었다는 점이다. 금강산 관광은 물론, 어린이 병원, 사찰복원, 살림집 지어주기 등 성공적으로 진행된 많은 사업의 성공 배경에 건축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할까? 교류란 서로 간에 관심과 이해가 일치할 때 가능한데 건축계는 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는 노력이 부족했기에 건축계의 많은 교류제안은 독백이 되거나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북을 남의 블루오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매우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북을 우리의 현실을 타개할 대상 또는 더 나은 우리를 만들기 위한 존재로 본다면,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기 위해 우리를 강점했던 일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실 북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성격의 건축교류를 원할지 의문이다. 북이 원하는 것은 경제발전에 근간이 되는 건축이지 건축교류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이 남과 북을 보다 가깝게 하고 하나 되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건축이 사업의 주체가 아닌 도구로 사용된다고 문제가 될 것이 있을까? 도구화된 건축을 통해 건축인들이 서로 만나서 소통할 수 있다면, 그래서 건축이 남과 북이 하나 되는데 디딤돌 하나라도 놓을 수 있다면 비록 건축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할 일이 아니다.


김일성 광장 북한의 건축물

▲ 김일성광장

 

우리는 민족공동체 건설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동질성 회복을 위해 우리가 같은 뿌리를 가진 존재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업을 만들 수 있고,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를 함께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첫걸음은 우리가 ‘북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평양의 심장부인 김일성광장의 모습이 우리의 세종대로와 얼마나 다르고,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 최근의 여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 그리고 최근 들어 북한의 주요 도시에 건설되고 있는 고아원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읽어내고 함께 공유해야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정치적 변화가 꿈의 실현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남과 북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변했을 때 꿈을 이룰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분단된 세월 못지않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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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창모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로 한국 근대건축의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며, 근대건축과 역사문화환경보존 활동을 펼치는 한국도코모모 회장과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에 한국현대건축50년(1996), 덕수궁-시대의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2009), 서울건축사(1999, 공저), 북한문화, 둘이면서 하나인 문화(2008, 공저), 평양건축가이드북(2011 공저), 서울건축가이드북(2013 공저) 등이 있다. 2014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서울과 평양의 도시와 건축을 비교 전시한 ’한반도 오감도‘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의 공동큐레이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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