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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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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

2022-11-23

한국문학의 힘

 

한국문학이 세계의 문학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한국문학번역원은 크게 3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한류의 확산으로 인해 해외에서 한국문학의 수요가 확대된 것과 홍보마케팅의 강화, 마지막으로 번역의 수준 향상을 들고 있다. 모두 타당한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문화국가의 꿈



시대를 앞서간 예언같은 문장들이 있다.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통치로 인해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엄혹한 시기에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찬란한 빛이 되리라”는 타고르의 아름다운 시도 그중 하나이다. 타인의 압제하에서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최빈국에서 첨단의 기술을 선도하는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한 지금 한국의 모습을 생각하면 놀라운 선견이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타고르의 예견이 단순한 부국강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타고르의 시는 다시 이런 문장들로 이어진다.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요컨대 타고르가 예찬한 한국의 미래는 세계의 부가 집중되는 곳이 아니라 말씀과 지성, 생각과 행동이 넘쳐나는 문화의 성지라는 것이 그러하다. 그의 예언은 당시에는 아무도 믿지 못할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렸을 테지만 이제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제는 성공사례로 인용하는 것마저 진부해진 이른바 K팝 신드롬에서부터 <오징어 게임>, <킹덤> 등으로 전 세계 OTT 문화의 선봉에 선 한국의 드라마들과 대중의 열광을 넘어 평단의 인정까지 함께 받은 <미나리>, <헤어질 결심>과 같은 영화들까지, 한국의 문화콘텐츠는 이제 더 이상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문화산업의 중심에서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왼쪽부터 <채식주의자>, <살인자의 기억법>, <설계자들>, <차가운 사탕들> (출처: 알라딘)

왼쪽부터 <채식주의자>, <살인자의 기억법>, <설계자들>, <차가운 사탕들> (출처: 알라딘)



문화의 다른 장르에 비해 비교적 언급이 부족하긴 하지만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국문학도 마찬가지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독일추리문학상 국제부문 상을 수상한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등이 그 예시들이다. 나아가 영국에서 ‘올해 봐야 할 미스터리’로 김언수의 『설계자들』을 선정한 것이나 최근 루시앤스트릭 번역상을 수상한 이영주의 시집 『차가운 사탕들』까지 한국문학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시와 소설의 모든 영역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 한국문학은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문학장의 주변부에 자리하면서 그마저도 일본문학과 중국문학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기한 바와 같이 현재 한국문학의 위상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처럼 한국문학이 세계의 문학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한국문학번역원은 크게 3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한류의 확산으로 인해 해외에서 한국문학의 수요가 확대된 것과 홍보마케팅의 강화, 마지막으로 번역의 수준 향상을 들고 있다. 모두 타당한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문학 바깥의 사정에 기댄 이유일 뿐 한국문학이 세계인의 정서와 감응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이를 더 깊은 지점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학에 내재되어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한국문학의 힘



왼쪽부터 <82년생 김지영> (출처: 알라딘), <아몬드> (출처: 알라딘), <오징어 게임> (출처: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왼쪽부터 <82년생 김지영> (출처: 알라딘), <아몬드> (출처: 알라딘), <오징어 게임> (출처: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최근의 한국문학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례는 세계 27개국에 25개의 언어로 번역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일 것이다. 1982년에 태어난 출생자들에서 가장 많은 이름이었던 ‘김지영’을 동시대 한국 여성의 통칭으로서 서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은 한 여성이 생애주기를 거치는 동안 직․간접적으로 겪을 수 있는 성차별의 요소들을 들려준다. 보통의 선량한(?)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히 벌어지고 있는 폭력적인 것의 구체적인 양상들을 통해 소설은 김지영에게 닥친 고통이 남성 위주의 사유체계를 통해 사회구조의 깊숙한 곳에 착근되어 있는 보편적인 문제라는 것을 읽는이에게 인지시킨다. 82년생 한국 여성 김지영의 문제에 세계인이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교나 관습적인 이유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현존하고 있는 여타의 국가들을 비롯하여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내면 깊숙한 곳에 차별의 요소가 잠재되어 있는 선진국가들까지, 여성과 남성 사이의 관계에서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평등의 구호 아래 은폐되어 있는 실질적 불평등의 요소들을 거침없이 외부에 현시함으로써 김지영이 겪는 문제가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는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환기하게 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일본 서점 대상 번역소설 부문 수상작인 손원평의 『아몬드』가 국내외 평단의 주목을 받은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부당한 폭력에 가족을 잃었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소년이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목할 지점은 이 소설이 다루는 폭력적인 것과 감정의 교류가 인간에게 고통을 부여하고 슬픔의 정동을 일으키는 단순한 서사적 장치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의 존엄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사유의 장치로 기능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이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공과 연계해 읽으면 이해가 용이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특수한 규칙을 가진 게임에 참여하는 이른바 ‘데스게임’ 장르로 분류된다. 장르의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징어 게임>은 완전히 새로운 특별한 상상력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징어 게임>이 해당 장르에 속해 있는 여타의 작품보다 세계인들에게 소구할 수 있었던 점은 드라마를 추동하는 폭력적인 것의 근원이 바로 인간의 관계성과 사회구조에 내포되어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한국문학이 전 세계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배경은 단순히 서사적 흥미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품 속 인물이 겪는 고통이나 특별한 문제행동에 대한 응답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우리 삶을 둘러싼, 어디에나 현존하는, 동시에 구조에 착종한 사회문제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다. 작품 속 인물이 겪게 되는 고통에 감응하며, 나아가 그러한 고통과 관계를 맺으면서, 결국에는 주어진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안하면서. 한국문학은 보편성을 획득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국문학의 지속을 위하여



문학은 특정한 언어 공동체를 대표하는 문화양식이다. 서사의 공유라는 문학의 구성력을 통해 공동체를 구성한 구성원들은 다시 문학을 통해 공동체의 에토스를 학습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유지하고 보수한다. 문화예술의 다양한 장르에도 불구하고 한 국가의 지적․ 문화적 역량을 대표하는 인물이 괴테와 셰익스피어처럼 그 나라의 문호라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그리고 그들이 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의 작품이 대상의 외견과 현상의 피상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상의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을 찾아 현상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틈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문학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한국문학은 우리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과 존재의 내면에 은폐된 병리적 현상들을 적시하고 그 극복의 논리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들을 모색해 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작가들은 자본과 산업의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고유의 언어를 고수해 왔다. 체제로부터의 소외를 통해 체제의 모순을 들여다보는 것이 작가들의 일이었다. 한국문학에 세계인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들의 헌신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급한 작가들의 개인적인 성공과 달리 지금 대다수 한국문학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기술의 발달로 인한 뉴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효율과 경쟁에 기초한 사회풍조의 변화는 숙독과 사유의 깊이를 추구하는 문학의 자리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인의 예술활동 소득이 연평균 5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471만 원이라는 사실(2021 예술인실태조사)은 더 이상 한국에서 문학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될 경우 문학은 자신 고유의 일을 버리고 산업의 영역으로 포섭될 것이다. 물론 이 말이 한국문학이 자생력을 포기하고 온전히 공적 지원에 기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인간이 가진 모든 상상력의 원천이자 기초예술로서의 한국문학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기 위해서는 꾸준한 공적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문학이 열어내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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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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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남은 동네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살펴보는 걸 좋아한다. 저서로는 청소년 소설집 『프렌즈』,『전생부터 가족』과 장편소설『내 친구는 슈퍼스타』등이 있고 청소년 시집 『넌 아직 몰라도 돼』,『해피 버스데이 우리 동네』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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