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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적 갈등

- 오늘, 키워드 인문학 -

함현호

2022-07-27

리드문

 

 

정치적 ∙ 이념적인 양극화의 심화는 정치적 불신 ∙ 분노 ∙ 갈등을 증가시켜 효과적인 정부 운영을 막는 핵심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주주의적 기본 가치를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민주주의와 정치적 갈등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의 말마따나 갈등은 민주주의 정치과정을 특징짓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정치는 상이한 이해관계나 관점을 가진 개인, 집단, 국가의 '복수성(plurality)'이라는 조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권력(power)'이 행사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잃을 것은 사슬뿐"이라는 구호와 갈등의 종말을 꿈꾸었던 이상주의적 지향이 정치의 종말과 독재체제로 귀결되었던 역사의 아이러니는,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것을 인정했던 현실주의적 고민이 민주주의 원리의 토대를 마련했던 것과 대비된다. 민주주의 정치는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소수자의 정치적 권리와 기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원리와 가치에 기반하여, 정당한 절차를 거쳐 그 갈등을 조율과 타협을 통해 조정하고 관리하고자 한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일련의 여론조사 및 전문가 보고서는 심화하는 정치적 양극화와 갈등 문제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가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자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갈등수준이 ‘심각하다’고 평가하는 의견은 성인 중 80%에 달했으며, 갈등 유형 중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 갈등으로,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응답은 무려 87%에 이르렀다. 2021년 국회의장 직속 자문기구인 국회국민통합위원회 경제분과위원회가 지난 3월 국회도서관 DB 등록 전문가 1,8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설문에 응답한 전문가 중 89%가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심각하다고 보았고, 그 분열과 갈등의 주원인으로 정치적 원인(63.1%)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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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다른 나라의 상황과 비교할 때 더욱 극명해지는 듯하다. 2018년 BBC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에 의뢰해 전 세계 2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자면,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갈등요인이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 간의 갈등'이라고 생각하는 의견은 응답자 중 61%로, 주요 선진국들, 예컨대 미국(53%), 캐나다(29%), 영국(40%), 독일(33%), 프랑스(23%), 이탈리아(26%), 스웨덴(26%), 호주(29%) 등과 주목할 만한 차이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 정도는 27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35%). 2021년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여론조사에 따르자면,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심각' 또는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시민의 비율은 무려 90%로, 조사 대상 17개국 가운데 미국과 함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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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간의 갈등이 (매우) 강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을 표현한 막대그래프. (출처: 퓨리서치센터)


 

 

정서적 양극화란?

 

 

최근 정치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개념 중에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라는 것이 있다. 정서적 양극화란 자신이 지지하거나 소속된 집단에 대해서는 보다 강한 호감이나 신뢰를 가지나, 그렇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는 보다 강한 반감이나 불신을 가지는 경향을 의미한다. 1990년대부터 미국 정치를 배경으로 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점차 확대되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이념적 격차에 주목하고,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주목되었던 것은 유권자들의 이념적 온건함이었다. 즉, 의회 내에서 중도성향의 의원이 줄어들고 각 정당의 이념적 성향이 강화되었던 것과는 달리, 유권자 수준에서는 이념적 중도층 혹은 무당파가 여전히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대중의 이념적 ‘무정향성(nonattitudes)’은 필립 컨버스(Philip Converse)의 연구 이후 정치행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확인된 바 있는 사실이나, 정치엘리트와 정당들의 이념적 양극화와 대조되어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한편, 유권자의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선호가 특별히 변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정치적 반대편에 대해 보이는 반감, 더 나아가 증오와 혐오가 증가하는 현상은 정서적 양극화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엘리트와 유권자의 이념과 정치적 태도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우리의 상황이 미국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꽤 일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치적 ∙ 이념적인 양극화의 심화는 정치적 불신 ∙ 분노 ∙ 갈등을 증가시켜 효과적인 정부 운영을 막는 핵심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주주의적 기본 가치를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최근의 다양한 연구들이 시사한다. 최근 정치학자 매튜 그래햄(Matthew Graham)과 밀란 스볼릭(Milan Svolik)이 미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수행한 실험연구에 따르자면, 자신과 이념적 선호가 유사하고 평소에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자가 민주적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지지를 철회하려는 유권자는 오직 3.5% 정도뿐이었다. 즉, 정당, 이념, 혹은 정책적 차이로 인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될 때,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는 간과되기 쉽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핵심적인 가치의 약화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점진적이고 질적인 후퇴를 동반하는 ‘민주주의의 침식(democratic backsliding)’을 가져올 수 있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자면,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특히 최근 눈에 띄는 감소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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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그래프로 표현한 자료(출처: 세계가치관조사)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정서적 양극화에 영향을 끼치는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제시되어 왔다. 먼저, 많은 연구들은 소위 사회정체성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근거하여, 정서적 양극화 현상은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 즉 특정 정당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항구성을 지니는 심리적 혹은 정서적 애착 혹은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즉, 정당일체감이 강한 유권자일수록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 보다 강한 소속감 및 애착심을 보이는 동시에 기타 정당에 대해서는 더 강한 반감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이념 혹은 정체성의 정렬(alignment)이다. 즉, 각 정당의 지지자들이 보다 동질적인 정치적 태도와 정책적 선호를 가지게 됨에 따라, 혹은 동질적인 사회정체성을 가짐에 따라 다른 정당의 지지자들과의 차별성에 대한 인식은 강화되고, 그 결과 정서적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원인과 관련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른다. 1970년대 초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즈펠(Henri Tajfel)과 그의 동료들의 (최소집단 패러다임이라고 불리우는) 연구에 따르자면, 개인을 그룹으로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실질적인 이해 상충이 존재하지 않고, 심지어 그 그룹이 임의적이고 무의미한 구분에 의한 것이더라도) 개인들은 같은 집단에 소속된 이에게 편향적 선호(favoritism)를 보인다. 이른바 ‘내로남불’은 필연적으로 한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일지 모른다. 


 한편,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이념과 정체성의 정렬을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먼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언론 및 정보 환경의 변화가 가져올 효과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하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개념인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나 ‘에코체임버(echo chamber)’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와 ‘믿고 싶은 것을 더 믿게 되는’ 목표지향적인 동기적 추론(directionally motivated reasoning)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또한, 최근 한국의 주요 정당과 정치엘리트는 과거에 비해 더욱 강한 이념 성향을 지니고 보다 동질적인 집단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듯하다. 어느새 관성적인 지향점이 된 정당민주화와 대중정당화는 그 목표가 이루고자 하는 이상을 구현하기보다는, 맨서 올슨(Mancur Olson)이 지적한 ‘집단행동의 논리’가 시사하듯, 동질적이고 극렬한 이념적 성향을 가진 소수의 조직화된 정책요구자들(policy demanders)의 목소리를 과대대표하고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서구 정당사에서 보통선거권이 확립된 후, 영국의 노동당이나 독일의 사민당이, 계급과 사회 집단에 기반한 ‘대중정당’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을 때,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가 과두제(oligarchy)적 경향성을 지적했던 것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그리고 의원내각제에 비해 여당과 야당 간의 협력 및 연합의 유인체계가 부족한 대통령제하에서 동질적이고 이념적인 정당들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기 쉽다.


 마지막으로, 사회구조적 변화도 이념과 정체성의 정치적 정렬을 추동하고 있다. 혼인율 하락이나 출산율 저하는 보통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나 고령인구의 비중의 증가가 초래할 노동생산성의 하락에 대한 우려와 같은 경제적 측면에 대한 논의에 국한되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격화되고 있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남녀갈등의 정치화가 남편/오빠/남동생/아들 없는 여성, 그리고 아내/누나/여동생/딸 없는 남성의 증가 현상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족은 일반적으로 퍼트남(Putnam)이 말하는 결속형 사회자본으로 분류되나, 남녀를 연계하는 일차적인 사회집단이다. 2021년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여론조사에 따르자면,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 유독 가족의 가치가 경시되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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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에 대한 국가별 답변 5순위를 정리한 표 (출처: 퓨리서치센터)

 

 

이와 같은 정치적 정렬의 심화가 사회의 갈등을 증폭하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토대를 침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정치학자들의 오랜 우려였다는 점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중용과 관용을 강조했던 오래전 정치사상가들의 조언을 차치하더라도,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점을 가진 집단을 연결하고 가로지르는 개인들의 상호작용,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매개하는 조직과 제도의 중요성은, 미국에서 등장한 근대 민주주의 체제를 통찰력있게 분석했던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을 비롯해, 달(Robert Dahl), 립셋(Seymour Martin Lipset), 그리고 퍼트남(Robert Putnam)에 이르기까지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조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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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현호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조교수 사진
함현호

한양대학교 정책학과(겸임학과: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정치학과에서 유권자와 정당의 당파적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제도적 구성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독일 만하임대학교(University of Mannheim)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다. 정치행위자들의 당파적 행태와 제도적 정당성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제도의 디자인과 정책결정과정의 조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들은 International Organization, European Journal of Political Research, Journal of European Public Policy, West European Politics 등의 국제학술지에 출판되었다. 2014년 이후에는 행복과 학문적 영감의 원천이 되는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파퓰리즘과 정서적 양극화에 대한 교차국가적 비교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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