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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낯선 세계와 만난다는 것

"경계는 장벽인 동시에 또한 ‘통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

이영민

2020-01-27


경계의 의미를 묻다



횡단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대륙이나 대양 따위를 동서로 가로질러 건넘’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기에 그만큼 어렵고도 힘든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또한 경계를 사이에 놓고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이쪽과 저쪽을 가로지른다는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이 경계를 넘어 만나게 되고, 교섭과 상호변화로 이어진다는 특성에 방점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횡단이라는 개념은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사이를 이동한다는 표층적인 의미와 함께, 경계 너머 서로 다른 것들이 조우하고 교통한다는 심층적인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과거의 모험가이건 오늘날의 여행자이건 대륙이나 대양을 가로질러 먼 거리를 여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걸어서, 아니면 기껏해야 말을 타고, 혹은 풍력선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였던 과거 모험가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시간거리를 대폭 단축시킨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오늘날의 여행가들에게도 ‘횡단’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묘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중세시대 거칠고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놓인 실크로드를 따라 횡단했던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가 그러했고, 돛을 단 배를 타고 대서양 망망대해를 횡단했던 콜럼버스가 그러했을 것이다. 중국 명나라 때 남쪽으로 수라바야(인도네시아)와 서쪽으로 말린디(케냐)를 아우르는 태평양과 인도양의 거대한 지역을 횡단했던 정화(鄭和)의 선단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 먼 거리를 기꺼이 횡단했던 이유는 그 곳에 진귀한 물건이 있었고, 색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선각자의 가슴속에는 두려움과 아울러 그 이상의 기대감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에 바탕한 창의적 아이디어와 호기심 가득한 도전 정신이 모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마르코 폴로의 여정

▲ 마르코 폴로의 여정

(이미지 출처: <역사상 가장 위대한 70가지 여행>, 77p)


이븐 바투타의 여정

▲ 이븐 바투타의 여정

(이미지 출처: <역사상 가장 위대한 70가지 여행>, 80p) 


정화의 여정

▲ 정화(鄭和)의 여정

(이미지 출처: <역사상 가장 위대한 70가지 여행>, 83p)


오늘날 여행자의 가슴속에도 두려움과 기대감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교차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특히 국경을 넘어 멀리 낯선 곳을 찾는 이에게 여행은 특별한 것이다. 교통수단의 획기적인 발달이 시간거리를 단축시킨 것은 맞지만, 그걸 이용하려면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가까운 국내여행이 아닌 이상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처럼 낯익은 내 집과 내 나라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은 위험을 겪게 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므로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체력적인 부담, 건강상의 문제 등도 감당해야 할 만만치 않은 위험 요소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대한민국 일반인이 세계일주 횡단 여행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식민제국주의의 족쇄가 풀려 제3세계의 독립이 곳곳에서 이루어지면서 냉전의 그늘이 더욱 짙어지던 시기였고, 대한민국은 그러한 해방과 냉전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열악한 시기에 발간되어 우리의 꿈과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던 <김찬삼의 세계여행>은 참으로 대단한 업적이었다. 그가 그 모든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지구촌을 횡단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낯선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는 묘한 매력 때문이었다. 


김찬삼의 여정

▲ 김찬삼의 여정

(이미지 출처: <김찬삼의 세계여행>, 속표지)


교통수단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지금 이 세계화 시대에는 일반인도 훨씬 빠르고 편리하게 지구촌 곳곳을 누빌 수 있게 되었다. 인천에서 뉴욕까지 4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초고속비행기의 상용화 이야기도 나온다. 아침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뉴욕에서 브런치를 먹고 일을 본 후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시간거리를 대폭 축소하는 시공압축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마침 오늘자 인터넷 포탈에는 한국의 ‘여권 파워’가 세계 3위라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2020년 1월 7일자). 한국 여권을 가지고 사전에 허가 절차 없이 무비자와 도착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국가의 수가 189개국에 이른다고 하니, 얼핏 보기에 한국인의 국경 넘기와 세계 횡단이 제도적으로도 무척 용이해졌고, 그에 따라 세계를 경험하고 품을 수 있는 가능성도 한층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횡단을 가능하게 하는 교통 기술의 혁신적 발전과 사증 제도 체계화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즉 선진국에서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구가하며 살고 있는 중상류층 사람들에게는, 그 장벽을 횡단하는 일이 무척 용이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외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 간 경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삶터를 떠나 선진국으로의 횡단을 꿈꾸는 제3세계 국가 시민에게 국경을 넘는 일은, 때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선진국의 저소득층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세계화의 혜택을 입어 국경 너머에서 수입된 값싼 옷을 입고, 수입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외국 TV프로를 시청하는 일상을 자국 내에서 영위하고 있지만, 먼 거리를 횡단하는 여행만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자유로운 횡단을 선별적으로 통제하는 국가 권력의 힘은 과거에 비해 훨씬 막강해졌다. 


오늘날처럼 선분으로 그어진 국경을 통해 전 세계의 공간이 크고 작은 국민국가 단위로 구획되기 시작한 것은 1789년 프랑스혁명 때부터였다. '국민국가'란 그 속에 거주하는 인간집단이 스스로를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하나의 공동체라고 인식하는, 즉 상상적 공동체의 성격을 지닌 국가다. 그러한 정체성이 이제 정치적 영역이라는 국가의 제도와 결합되어 그 범위가 일치하게 된 것이다. 이후 유럽의 근현대사는 배타적 권력이 적용되는 영토를 전 세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계를 구체적인 선분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국경이 표시된 세계지도와 인공위성에서 본 지구의 모습

▲ 국경이 그어진 세계지도와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


우리가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보아온 세계지도를 살펴보자. 뚜렷하게 그어진 국경선과 이 선으로 둘러싸인 2백여 개의 국민국가가 각각의 색깔로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이 지도를 통해 우리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식민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영역국가의 수는 크게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획정된 국경선이 가장 근본적인 경계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은연중 머릿속에 담게 되었다. 또한 하나의 색깔로 칠해져 있는 하나의 국가에는 같은 정체성을 지닌 동일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는 국가관을, 그래서 국가와 국경은 숙명처럼 필연적인 것이라는 세계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도 살펴보자. 대륙의 윤곽이야 거의 같지만 세계지도와는 분명히 다른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산지와 평지, 하천과 바다 등 자연의 색깔 그대로를 드러내며 확인될 뿐, 국경선이나 구획된 국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설령 자연적 장애물이 횡단을 방해할지언정 인위적인 선분 국경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그저 한덩어리로, 각 지역은 자연스럽게 연속되어 있을 뿐이다. 


선분으로 긋는 오늘날의 경계를 우리는 ‘구분’과 ‘격리’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경계가 지닌 본질적인 특성은 영역과 차이를 분리하는 역할과 동시에 다른 것들이 서로 접촉하고 연결된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계는 '장벽'인 동시에 또한 ‘통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실상 경계는 그 차이를 연결하고 중재하려는 방편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계들 위를 횡단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인류는 나(우리)와 다른 너(그들)와 조우하게 되었고, 그것은 때로는 갈등과 배척으로, 때로는 상생과 혼종화로 이어지곤 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원리주의가 큰 권력으로 작동하여 제국주의적 흐름과 민족주의적 저항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역사를 우리는 지구촌 곳곳에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권력의 위력 아래 인간 삶의 저변을 구성하고 있는 일상생활, 그리고 문화에 있어서는 혼종화를 통한 끊임없는 변화 과정을 거쳐 왔다. 횡단의 과정은 단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것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섞어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고풍스러운 기와집 모양의 강화읍 성공회 성당을 보라. 서구의 종교와 한국의 건축문화가 결합하여 탄생한 세계 유일의 문화경관이다. 중국 선양의 이슬람사원(靑眞寺)의 모습은 어떠한가? 얼핏 보기에 불교 사원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은 중국식 사합형(四合型) 건축양식과 이슬람교 양식이 절묘하게 섞인 문화혼종화의 산물이다. 현대의 혼종화 양상은 더욱 활발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맥도널드 매장에서 만난 고추장 치킨과 떡볶이 치킨은 미국식과 인도네시아식에 더하여 한국식까지 결합된 다자간 혼종화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중국의 이슬람 모스크, 청진사

▲ 중국 선양의 이슬람식 모스크, 청진사

(이미지 출처: www.visitchina.or.kr)


강화 성공회 성당

▲ 강화읍 성공회 성당 ⓒJjw(wikipedia.org)


자카르타 맥도널드에서 출시한 고추장 치킨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고추장 치킨 ⓒMcDonald


바야흐로 여행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서 경계의 횡단을 꿈꾸며 실천하고 있다. 경계의 횡단은, 다르기 때문에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국경이 명확히 그려진 세계지도를 근간으로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경계를 사이에 둔 나(우리)와 너(그들)의 차이를 위계적, 우열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경계 너머의 다른 것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다양한 문화의 단순한 배열을 넘어 상호문화적 교류와 혼종화를 적극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인위적인 경계를 걷어내고 세계지도 밖에서 세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차이 이전에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같음’을 새삼 깨닫는 작업, 더 나아가 천부적 인권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따로 또 같이’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작업은 탈경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계와 탈경계의 인문지리에 대한 올바른 사유는 나(우리)와 너(그들)가 상생하고 함께 발전해나가는 밑거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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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이영민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교육과/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교수, 『지리학자의 인문 여행』의 저자.
장소와 사람, 그리고 문화의 관계를 밝히는 인문지리학자로서 국가와 국경, 국제이주와 다문화 현상, 여행의 인문학 등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지 제공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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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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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이미지

이**

2021-03-31

코로나시대에 1년동안 강제집콕을 하다보니 경계를 넘어 낯선 세계와 만난다는 것, 여행한다는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인간이 지도상에 구분지은 경계를 넘어 나라와 나라 사람과 사람의 탈경계에 대해 읽고 생각할거리를 던져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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