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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개인의 사유를 통해 만들어나가는 ‘진짜’ 유토피아

김민섭

2018-12-28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몸과 말의 통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자신의 몸을 학교나 회사나 그 어느 공간에 가져다두어야 하고,

그동안에는 화장실에 가거나 밥을 먹는 등의 모든 행위를 제약받는다.

또한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나 목소리 톤으로 발화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가진 ‘사유’다.

 

 

 

평범한 모두가 ‘유토피아(utopia)’를 꿈꾸며 살아간다. 애초에 ‘없는’, ‘공간’이라는 두 단어가 결합된,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공간을 가리키는 용어이지만, 사람은 유토피아의 도래를 믿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현재보다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없다면 그 누구도 내일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삶은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손에 유토피아를 맡기는 운드로이드의 삶

유토피아는 모든 국가의 권력자들이 그 국민들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4년이나 5년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그 공보집을 읽다 보면, 그들의 당선과 함께 곧 유토피아가 찾아올 것만 같다. 경제, 안보, 복지, 교육 등 여러 분야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반복되는 공약들이 우리의 삶을 더 나아가게 하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경기가 나쁘다거나, 국가의 위기라거나, 소득 격차가 커졌다거나 하는 소식들이 매년 갱신된다. 그러다 보면 ‘대체 작년에는 어떻게 살았지’하는 심정이 되고 만다.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가 꾸준히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혹은 유토피아를 건설할 영웅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그것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는 오늘도 유지된다. 그러나 누군가 갑자기 모두를 유토피아로 초대하는 일은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도달한 유토피아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서 모두를 맞이하게 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아닌,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손에 유토피아를 맡기는 운드로이드의 삶

 

 

대학원생 시절의 나는 지도교수가 나를 유토피아로 데려다줄 거라 막연히 믿었다. 그것이 얼마나 못난 상상이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잘 알겠으나,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보며 일상을 버티어내는 이들은 생각보다 여기저기에 많다. 특히 대학처럼 한 개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공간에서라면 더욱더 그렇다. 회사, 방송국, 종교기관, 군대 등 여러 기관에 타인에게서 유토피아를 기대하는 ‘없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토머스 모어는 그리스어 ou(없는), toppos(장소)라는 두 단어를 결합해 ‘utopia’를 만들었는데, 역시 ou(없는), andro(인간)을 결합해 ‘undro’(운드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조금 의미가 다른 용어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 나는 타인이 나의 삶을 유토피아로 데려다주기를 원하는 운드로였다. 어쩌면 타인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undroid’(운드로이드)였다고 하는 게 조금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시간강사로 일하던 어느 날, 건강보험을 보장받기 위해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씩 물류 상하차를 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가?” 실제로 나의 노동을 사회적으로 증명해주고 적어도 위법이나 편법을 저지르지 않는 쪽은 대학이 아닌 맥도날드였다. 강의실과 연구실은 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 더욱 크게 마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원생과 시간강사 시절을 버텨내는 힘은 언젠가 유토피아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서도 왔다. 교수가 되고 나면 모든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연구실에서 밤새 발제 준비를 하고 논문을 쓰던 시간도, 학자금 대출 이자를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항상 저렴한 한 끼를 찾아다니던 시간도, 내가 수행한 연구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나를 혐오하던 시간도, 모두 흘러간 추억이 될 것이었다. 언젠가 교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며 나는 시간강사로서 버텨내기도 쉽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그러한 삶을 갑자기 돌이키기는 어려웠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안다고 해도 다만 그 물결에 몸을 맡기고 유동하는 편이 삶을 유지하게 해준다. 스스로를 부정하기보다는 그 끝에 유토피아가 있다고 믿으며 계속 흘러가는 것이다.

 

 

통제를 벗어난 스스로의 사유, 나만의 유토피아

교수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대학에서 존재하는 동안,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기억이 별로 없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온전히 나의 의지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많은 결정이 타인에 의해서, 혹은 타인의 눈치를 보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어느 공간에서든 주체가 될 수 없는 한 존재는 세 가지의 통제를 경험하게 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몸의 통제와 말의 통제와 나아가 사유의 통제다. 나는 이것을 바탕으로 <대리사회>라는 저작을 완성했지만, 근대성에 천착한 많은 학자가 제시한 이론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의 개인은 규율과 통제 속에서 그 시대의 욕망과 함께 유동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자신을 유토피아로 데려다줄 것으로 믿는 타인에게 통제받으면서도 스스로의 몸으로서 행위 하고 스스로의 말로서 발화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결국 필연적으로 자신을 위한 그 무엇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그러니까 물음표를 갖지 못하고 사유마저 통제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통제를 벗어난 스스로의 사유, 나만의 유토피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몸과 말의 통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자신의 몸을 학교나 회사나 그 어느 공간에 가져다두어야 하고, 그동안에는 화장실에 가거나 밥을 먹는 등의 모든 행위를 제약받는다. 또한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나 목소리 톤으로 발화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가진 ‘사유’다.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근대의 징후로서 모든 견고한 것이 액체처럼 녹아 유동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가운데 자신의 사유만은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디에서든 자신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나는 8년 동안 청춘을 모두 바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다. 누군가는 그것이 잘한 결정이라고 믿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나는 이제 비로소 김민섭이라는 개인을 발견하고 행복하게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내가 몸을 두는 모든 곳이 나의 몸과 언어와 사유가 머물 공간이 되어 준다. 스스로를 향한 물음표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달리 한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유토피아에 이미 와 있는 것이다. 결국 유토피아를 결정하는 것은 어느 특정한 공간이 아니고, 특별한 인물도 아니고, 그 공간에 머무는 개인의 사유일 뿐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없는 인간, 운드로이드로 살아갈 것인가, 있는 인간, 자신의 이름을 가진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데서 저마다의 유토피아는 건설된다. 

 

 

통제를 벗어난 스스로의 사유, 나만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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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민섭
김민섭

작가.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했고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2015)를 쓰고 대학에서 나왔다. 지금은 글을 쓰고 이런저런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으로 규정하며 <대리사회>(2016)를 썼고, 그 이후의 연작으로 <훈의 시대>(2018)를 썼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며 김동식의 소설집 <회색인간>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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