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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자연과 공생하는 음악

산과 바다, 하늘과 바람을 노래하다

임진모

2018-01-18

 

자연으로부터 받는 치유와 안정
음악의 주제는 사랑과 이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지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 동물, 식물, 우리의 환경에 대한 사랑을 포괄한다. 어쩌면 대중예술은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 아닌 생태계의 일부로 간주하고 자연 아래 배치하려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사람이 만드는 음악도 거대한 자연의 일부에 속한다. 그래서 인공의 음악 소리는 결국 자연의 소리를 담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포크 음악의 대부’로 통하는 이정선의 음악은 사람 노래 못지않게 환경친화적 소재의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룹 ‘해바라기’ 시절의 ‘구름 들꽃 돌 연인’을 비롯해서 ‘섬 소년’ ‘산(山)사람’ ‘뭉게구름’ ‘꽃신 속의 바다’ 등 유독 자연 노래가 당대 음악 인구의 사랑을 받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산기슭 외딴 그늘에/ 이름도 없이 피어 있는 꽃/ 내 작은 기쁨이어라/ 솔 나무 언덕길을 따라/ 오솔길 찾아 걸으면/ 발끝에 채이는 작은 돌들은/ 내 작은 사랑이어라’ (‘구름 들꽃 돌 연인’) 그는 자연 찬미 노래를 만들게 된 이유를 유신 군사독재 시대의 억압적 분위기에 대한 대응 그리고 어릴 적부터 포착해온 자연풍광에의 생래적 예찬에서 찾는다. “1970년대 중후반은 심의라는 이름의 검열이 아주 강했던 시절이었죠. 비판적인 노랫말로 투쟁적인 음악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러니까 은유적인 표현법을 터득해야 했고 현실 사회보다는 자연의 세계를 그리는 쪽으로 중심을 정했습니다. 가슴에는 동네 마을, 산과 바다, 꽃과 나무가 늘 새겨져 있었고요. 미술을 한 것도 도움이 됐지요.”

 
  • 해바라기의 노래 ‘구름 들꽃 돌 연인’과 한영애의 노래 ‘조율’ 수록 앨범해바라기의 노래 ‘구름 들꽃 돌 연인’과 한영애의 노래 ‘조율’ 수록 앨범

하기야 자연과 벗하지 않은 예술가가 어디 있으랴. 사람 얘기가 마땅하지 않은 폭력적 반인권 시대는 이정선을 더욱 다듬어지지 않은 무가공의 자연으로 끌어갔을 것이다. 이정선과 함께 밴드 ‘해바라기’로 활동했고 음악적으로 ‘블루스’라는 공유점을 지닌 한영애도 유사한 시선을 드러낸다. ‘여울목’ ‘누구 없소’로 유명한 그의 음악은 생태계와의 교감이라는 의식과, 자연을 닮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양희은, 송창식, 조동진과 같은 우리 통기타 가수들이 제게 음악적 영향을 주었어요. 노래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죠. 그리고 꼭 음악 말고도 바람, 물소리, 하늘과 같은 ‘자연’이 내게 음악적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어쩌면 이게 제 음악적 삶에 더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겠어요.” 한영애의 걸작 ‘조율’을 들으면 자연이 경제적 개발영역, 음악적 묘사대상에 머물지 않고 우주를 관장하는 생태계의 주인임을 일깨운다. 생물과 환경은 유기체라는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당연히 조율은 우리가 아니라 하늘과 대자연이 행하는 것이다.
‘알고 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철새들은/ 가을 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잠자는 하늘 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 예민의 노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수록 앨범예민의 노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수록 앨범

흐름을 뛰어넘은 순수한 가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 댄스 ‘난 알아요’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을 때, 추세를 거스르는 정반대의 영롱한 서정성으로 빛났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라는 노래를 기억하는지. 어지러운 댄스음악 판에 동의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지지로 라디오에 줄기차게 흘러나왔고 수십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가수 본인도 놀랐던 곡이다. 노래를 쓰고 부른 예민 역시 어렸을 때부터 일찍이 자연과 화해, 숭배하고 일체감을 형성한 인물이다.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 언제쯤 그 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거렸죠/ 흐르는 냇물 위에/ 노을이 분홍빛 물들이고/ 어느새 구름 사이로 저녁달이 빛나고 있네/ 노을빛 냇물 위엔/ 예쁜 꽃 모자 떠가는데/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슬픈 사랑 얘기’  
“아버지가 수원 못미처 고천이라는 곳에 텃밭이 딸린 시골집을 사셨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인데 고등학교 때까지 주말과 여름 겨울방학을 거기서 보냈죠. 서울 태생이지만 전 도시에 대한 기억은 학교하고 교회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 있을 때는 다 재밌었어요. 씨 뿌리고, 거기에서 10년 동안 농작물을 한 100가지 이상 심어봤던 거 같아요.”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는 상상으로 잉태한 것이지만 수채화 같은 장면과 순수 언어들은 바로 그 고천 시골집이 배경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예민은 “곡에 나오는 징검다리며, 냇가, 고무신 등의 영상들은 그 마을에서 다 봤던 것들입니다. 그 덕에 그 그림들을 그려나갈 수 있었죠”라고 설명했다.

 
  • 이글스의 노래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 수록 앨범이글스의 노래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 수록 앨범

생태계 파괴에 맞서는 음악의 메시지
1977년에 나왔지만 지금도 꾸준히 전파를 타는 팝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는 같은 제목의 앨범 자체가 전설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보석 같은 노래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가 수록되어 있다. 음반의 큰 주제를 축약하는 두 곡은 흔히 아메리칸 드림의 상실을 그린 노래로 풀이되지만 ‘마지막 휴양지’의 경우, 작곡하고 노래한 돈 헨리에 따르면 생태계의 파괴를 규탄하는 메시지의 곡이다.
‘어떤 부자들이 오더니 대지를 농간해 버렸지/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었어/ 못생긴 상자들을 놓았고 사람들이 그것들을 사버렸지/ 누가 이 위대한 디자인을 제공할 것인가/ 네 것은 무엇이고 내 것은 무엇인가/ 더 이상 뉴 프론티어는 없고 우리는 여기서 성공해야만 해/ 우리는 끝없는 욕구를 만족시키고 우리의 피 같은 행동을 정당화하지/ 운명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그들은 거기를 천국이라고 하지/ 하지만 난 그 이유를 모르겠어.’    
여전히 탐욕적인 자본은 자연과 땅, 바다를 수익창출을 위한 개발영역으로 동일시한다. 무차별적인 파괴로 삼림과 열대우림은 줄어들고 강과 바다는 오염에 신음한다. 생태계 유린과 그에 따른 자연의 보복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 아닌가. 돈 헨리는 이 곡을 두고 약물, 사랑, 어떤 형태의 과잉에 관한 것보다는 환경에 대한 관심의 발로라고 말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파괴해버린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이다. 우리의 수익과 탐욕에 우리의 미래가 저당 잡혀버렸다.”
명작 ‘월든’을 쓴 시인이자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의 월든이라는 작은 숲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자연과의 공생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 월든 숲 역시 산업화의 개발 책동으로부터 비켜날 수 없게 되었다. 돈 헨리는 참다못해 1990년, 월든 숲 보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나중에는 소로의 숭고한 환경보호 의식을 전파하기 위한 연구소를 출범시킨다. 2005년에는 개발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자 엘튼 존을 비롯한 동료 가수들과 함께 기금조성 콘서트를 개최해 월든 숲 일부를 사들이기도 했다. 그는 정치와 음악의 어울림을 추구하는 것처럼 생물과 환경의 조화를 바란다. 그에게 지구생태계는 ‘마지막 휴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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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임진모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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