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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널 : 판교는 왜 창문을 싫어할까

정다영

2016-12-15

단독주택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마당 넓은 집, 이웃과 정을 나누며 자연과 함께하는 목가적인 삶과는 다른 종류의 주거 풍경이다.

2020년을 바라보는 오늘날, 대부분 아파트 키드일 건축주들은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물리적인 공유공간이 부족하고 이웃과 직접 대면하는 기회가 적더라도 SNS 등을 통해서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또한 그들은 단독주택에 대한 새로운 시대적 감수성을 요청한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은은한 살구빛 대리석으로 마감된 이 모던한 건물은 판교신도시에서 촬영된 것이다. 기계비평가 이영준이 촬영한 <판교는 왜 창문을 싫어할까>(2015)는 다양한 단독주택이 자리한 서판교의 대표적인 건축 유형 중 하나를 포착하고 있다. 사진의 제목처럼 이 주택에는 창문이 없고, 입구가 어디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따스한 햇볕에 주택의 입면은 반짝이지만, 그 속은 꽁꽁 감추어져 어떤 종류의 빛이 파고들어가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주택은 주변과 단절되어 사뭇 작은 요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택보다는 갤러리와 같은 문화 시설에 가까워 보인다.

 

 

창문이 없고 입구가 어디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아 주택보다는 갤러리와 같은 문화 시설에 가까워 보인다

창문이 없고 입구가 어디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아 주택보다는 갤러리와 같은 문화 시설에 가까워 보인다. ©이영준

 

 

판교는 2000년대 중후반 조성된 수도권 신도시 택지지구다. 특히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서쪽에 자리한 운중동 등 서판교 일대는 2,000여 세대의 대규모 단독주택필지가 조성되어 화제를 모았다. 최근 몇 년간 일어났던 아파트의 대안적 주거 유형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서판교 일대는 자연 환경이 우수하면서 서울과 접근성이 높아 강남을 떠난 대기업 총수나 전문직 종사자들을 위한 새로운 고급 주거지로서 인기가 있다. 한동안 서판교는 단독주택을 짓는 사람들이 반드시 보고 가야 하는 주택 전시장과 같은 곳이었다. 판교의 주택 설계는 유명한 중견 건축가보다 주로 참신한 아이디어로 접근하는 젊은 건축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서판교는 세계금융위기가 일어나고 건설시장이 축소된 2010년 이후 우리나라 젊은 건축가들의 데뷔 무대였다. 판교에서는 중견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파주출판단지나 헤이리 아트밸리에서는 볼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이른바 조직화한 중소 규모 건설사들이 설계한 집과 아틀리에 건축가들이 설계한 집들이 모여 묘한 공존을 이룬다.

 

21세기 첫 신도시인 만큼 판교는 일산과 분당 등 1기 신도시와 비교해 ‘지구단위계획’에 적극적인 역할과 위상이 부여되었다. 이른바 도시를 적합하게 규제하여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도시 환경을 질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제도다. 지구단위계획은 ‘토지이용을 합리화하고 그 기능을 증진시키며 경관·미관을 개선’하기 위해 ‘건축물 그 밖의 시설의 용도, 종류 및 규모 등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거나 건폐율 또는 용적률을 완화하여 수립하는 계획’으로 반드시 지키고 실행해야만 하는 필연의 세계다. 서판교의 여러 건축물이 일순간 비슷해 보였다면, 이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어쩔 수 없이 지켜야만 하는 필연의 과정에 따른 것이다.

 

서판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지구단위계획 지침은 외부공간을 이웃과 공유한다는 취지에 따라 공유외부공지에 담을 쌓을 수 없도록 한 조항이다. 이는 이웃과 자연스레 교류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만들도록 하겠다는 강제적인 지침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필연의 세계는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보통의 다른 주거단지와 마찬가지로 공유외부공지는 주차장으로 사용되기 일쑤였고, 담을 만들 수 없기에 집들은 대부분 커튼이나 블라인드로 가리거나 되도록 창을 크게 뚫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규제를 만족하면서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 개념 자체를 전복시키는 발상들이 실험되고 있다. 이 실험에서 창은 건물의 벽면이 아니라 집 한가운데 하늘로 뚫린 장소가 된다. 마당은 밖과 연결되는 열린 공간이 아니라 내부에 숨어든 닫힌 공간이다. 이웃과 교류하는 장소라기보다 홀로 사색하기 위한 장소에 가깝다. 중정형 주택, 혹은 ㅁ자 배치형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집의 모양새는 필연적으로 지켜야 하는 어떤 규제로 촉발된 뜻밖의 결과인 셈이다. 개별 주택들이 대응해나간 우연의 결과는 예상하지 못한 도시의 이색 풍경을 만든다. <판교는 왜 창문을 싫어할까>에서 보이는 것처럼 판교의 단독주택들은 우리가 예전부터 그려온 집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다.

 

 

비슷한 여러 건축물

서판교의 여러 건축물이 일순간 비슷해 보였다면, 이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어쩔 수 없이 지켜야만 하는 필연의 과정에 따른 것이다. ©이영준

 

 

그것은 단독주택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마당 넓은 집, 이웃과 정을 나누며 자연과 함께하는 목가적인 삶과는 다른 종류의 주거 풍경이다. 2020년을 바라보는 오늘날, 대부분 아파트 키드일 건축주들은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물리적인 공유공간이 부족하고 이웃과 직접 대면하는 기회가 적더라도 SNS 등을 통해서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또한 그들은 단독주택에 대한 새로운 시대적 감수성을 요청한다.

 

매스컴에서는 -서-판교에서 아파트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거주자들은 아파트에서 경험했던 무심하면서도 편리한 생활방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즉 형식은 단독주택이되 내용은 아파트에서 경험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싶은 건축주의 열망이 판교의 집합 풍경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대다수가 도시에 거주하는 오늘날 단독주택은 이제 마당 넓은 전원주택으로 대표되지 않는다. 판교단독주택지는 아파트와 과거 전원주택으로 표상되는 단독주택의 틈새를 파고든다.

 

최고급 단독주택 혹은 타운하우스가 미분양됐다는 경제면의 잦은 소식들은 기획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의 욕망이 좀 더 신중하고 세심하게 고려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조건 접지형에 마당 넓은 집이 전부가 아닌 지금 세대의 열망을 반영하는 집, 즉 집을 계획하고 만드는 이들에게 치밀한 기획을 요구하는 오늘날, 집이란 단순한 건축이 아니다. 집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필연과 우연이 교차하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 이뤄져야 하는 복합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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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다영
정다영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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