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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는 사랑이야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장진영

2025-12-29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격언은 복수에 대한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만, 반대 의견도 소수나마 분명히 존재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는 말한다. 만약 복수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복수는 최고의 치료법이 될 수 있다. 충분히 복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기는 게 화병이므로. 그가 제시하는 완벽한 복수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방에게 타격을 줘야 한다. 둘째, 자신은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 셋째, 틀림없이 이겨야 한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자신이 생각한 복수에 온전히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우진(유지태 분)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그리고 기원전 5세기, 가능한 한 끝까지 복수를 수행한 여인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메데이아.

 

외젠 들라쿠루아, 작품(제목 미상), 19세기 (출처 :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외젠 들라쿠루아, 작품(제목 미상), 19세기 (출처 :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메데이아는 남편에게 배신당한 아내의 처절하고 파괴적인 복수를 다룬 그리스 비극이다. 그리스판 <부부의 세계>라고나 할까. 메데이아는 콜키스의 공주이자 마법사로,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얻을 수 있도록 가족과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그를 돕는다. 결혼한 두 사람이 코린토스에 정착해 두 아들을 낳고 살던 어느 날, 이아손은 코린토스 왕 크레온의 딸인 글라우케와 새로 결혼하여 자신의 출세와 안전을 도모하고자 메데이아를 버리고 만다. 그의 장인이 될 크레온 왕마저 메데이아의 마술적 힘과 분노가 두려워 그녀와 아이들을 추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태연히 새 결혼을 용인하며, 독이 묻은 예복과 왕관을 두 아들의 손에 들려 글라우케 공주에게 보낸다. 공주는 맹렬한 독에 의해 끔찍하게 죽고, 크레온 왕도 목숨을 잃는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기 위하여 자신의 두 아들을 살해한다.

 

게다가 우리 여자들은 타고나기를,

좋은 일에 대해서는 전혀 재주가 없지만,

모든 나쁜 짓에 대해서는 아주 솜씨 좋은 기술자라오.

 

이 희곡을 처음 읽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단지 세 음절, 미친X……였다. 다소 과격한 감상일지 모르겠지만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닌 게, 메데이아의 줄거리를 모르는 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항상 똑같은 반응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미친X, 아무리 그래도 애를 죽여?” , 메데이아는 했어. 아무리 그래도 애를 죽였어. 오로지 이아손에게 고통을 안기기 위해, 목숨과도 같은 아이를 잃는 고통을 감수했지. 이건 칼날을 손에 쥔 채 칼자루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것과 같다. 남편 이아손이 맞은 부위를 문지르는 동안 자신 메데이아의 손바닥에는 피가 철철 흐른다. 이 대목에서 메데이아의 비천한 복수심은 숭고의 경지로 나아간다. “분명히 알라, 그대가 웃지 못하는 한, 고통조차 내겐 이득이라는 것을.”

●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강대진 옮김, 민음사, 2022, 37.

●  위의 책, 94.

 

메데이아 관련 책 1 (출처 : 교보문고)메데이아 관련 책 2 (출처 : 교보문고)메데이아 관련 책 3 (출처 : 교보문고)

메데이아 관련 책(출처 교보문고)

 

메데이아(메디아) 공연 장면(출처 : 2003년 희랍극 페스티벌 : 메디아(극단 매트))

메데이아(메디아) 공연 장면(출처 : 2003년 희랍극 페스티벌 : 메디아(극단 매트))

 

사랑에 미친 이 여주인공은 어떤 인간이 상대하기 어렵다. 너무 세다. 그녀는 싸워서 이기지 않는다. 오직 이길 수 있을 때 싸운다. “누구도 나를 하찮게 여기지 못하도록 하겠어. 그리고 유순한 여자로도! 오히려 그 반대의 기질을 가졌다고, 적들에게는 가혹하고 친구에게는 친절한 여자임을 알게 하라! 이러한 사람들의 삶이 가장 이름 높은 법이니.”수많은 사랑의 비극이 그러하듯, 메데이아는 가질 수 없으니 차라리 부순다는 쪽을 택한다. 그녀의 광기어린 눈빛은 복수심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우리는 그녀의 저 눈빛에 속수무책으로 압도되고 매혹당한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이 복수를 사랑의 완성으로 볼 수 있을까? 사랑과 복수에 관한 이 오래된 난제에 대하여 메데이아는 이렇게 대답한다. , 그대여, 복수의 칼날을 쥐어라! 피는 흘리되 결코 눈물은 흘리지 말라! 

  위의 책, 61.

 

해당 글 감상 콘텐츠: https://www.daarts.or.kr/handle/11080/72091

 

  • 메데이아
  • 에우리피데스
  • 그리스비극
  • 사랑
장진영 작가
장진영

주요이력

2019자음과모음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마음만 먹으면』 『우아한 유령, 장편소설 취미는 사생활』 『치치새가 사는 숲, 단편소설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 『김용호등이 있다.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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