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베이징에서는 제1회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게임이 열렸다. 16개국에서 보낸 500여 대의 휴머노이드가 참가해 청소, 빨래 개기, 축구, 킥복싱 등을 선보이며 현 단계 휴머노이드의 발전을 과시했다. 물론 한계도 적잖이 드러났다. 그러나 휴머노이드의 시대가 멀지 않았음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10년 전 당시 세계 최고수였던 이세돌 9단이 바둑 AI 알파고에 1:4로 패배할 때만 해도 AI가 지금처럼 성장, 발전할지를 미처 예측하지 못했음을 떠올리면 말이다.
인간의 더없는 동반자 AI
당시 사람들은 바둑이라는 특정 영역에 특화됐기에 AI가 사람을 이길 수 있었다고 치부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AI는 결코 늦지 않은 속도로 발달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AI는 사람을 능가할 수 없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뒤집히는 데는 불과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AI가 삶의 기본값이 되었고, 초지능인공지능(ASI)이나 범용인공지능(AGI)의 예에서 보이듯이 인간을 넘어서는 AI의 실현과 보급이 멀지 않았다. AI는 사용자의 명령을 피동적으로 수행하는 단계를 넘어 사용자를 대신해 목표를 설정하고 과업을 완성하는 자율적 소프트웨어 시스템인 ‘AI 에이전트’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을 꼭 닮고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을 구현하는 휴머노이드에 AI를 장착해서 사용자의 조정 없이도 자율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AI 피지컬’도 속속 실현되고 있다. 인간화를 향한 AI의 도전이 매우 거세다는 것이다. 이미 AI는 지성과 같은 인간 고유 역량을 구현하는 수준을 뛰어넘고 있으며, 외형적으로도 휴머노이드의 발달과 결합하여 내적으로도 또 외적으로도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 아니,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SF영화에서 종종 보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AI 휴머노이드와 섞여 일상을 영위하는 미래가 그리 멀지 않은 셈이다. 지난 10년처럼 “에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일어나더라도 먼 미래의 일이야!” 하다가 막상 그러한 시대가 시나브로 실현되면 인간과 AI 휴머노이드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될까? 아니 설정될 수는 있을까? AI는 지금 단계에서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다시 묻게 하는 인간의 더없는 동반자인 것이다.
‘인문 복지’라는 정책 목표
인간과 AI의 동반은 인간의 사이보그화를 한층 가속한다. 꼭 인간의 신체 내에 기계를 넣거나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야만 사이보그인 것은 아니다. 디지털 기계와의 접속 없이는 일상생활을 불편해한다거나 어려워한다면 이 또한 사이보그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미 21세기형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AI 기반시대’라는 말이 운위될 정도로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이 AI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일상적 AI 의존성이 갈수록 심화,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인간은 어느 시점까지만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말지만 AI는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점이다. AI가 진보할수록 인간은 더욱 편리해지기에 인간의 AI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인간은 AI에 길들어지고 만다. 사용자가 주인으로서 AI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알려주는 범위 내에서만 알아가고 사유하며 생활하게 된다. AI를 주인으로서 활용하고 제어할 수 있는 역량의 구비가 AI 기반시대에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핵심으로 부각되는 저간의 사정이다.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AI는 구현하지 못하는 인간다움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AI의 학습법으로는 따라 할 수 없는 사유 능력을 갖춰야 하고, AI가 계산하지 못하는 감성과 상상, 직관의 역량을 높여 가야 한다. 제도권 교육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자신이 인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평생학습을 해가야 하는 이유다. 그랬을 때 비로소 AI에 의존한 채 그에 길들어진 노예 사용자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해 그것을 부리는 주인 사용자로 우뚝 설 수 있다. 바로 여기서 국가 차원의 인문정책이 기본이자 필수로서 소환된다. 인간이 지성적 존재임은 부인키 어려운 사실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 점 또한 부인키 어렵다. 아니,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기꺼이 AI의 노예 사용자가 되고도 남는 존재가 인간이다. 국가 정책은 이렇게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개인이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그 필요를 채우지 못할 때를 위하여 존재한다.
저 옛날 맹자가 군주에게 백성의 항산(恒産), 그러니까 일정한 수입을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고 단언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해마다 작황에 관계없이 일정한 수입을 확보하는 것은 개인만의 노력으로는 실현 난망한 일이기에 그렇다. 나날이 진보하는 AI의 주인 사용자로 서기 위한 학습도 개인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등 제도권 교육을 마친 후에는 생존과 생계가 인간다운 삶의 구현보다 우선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지털 격차’란 말이 증명해주듯이 AI는 생활 수준과 학습 수준에 따른 기존 격차를 한층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정책적, 제도적 노력이 받쳐져야 비로소 일상 차원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한 평생학습이 지속 가능해진다. 이것이 우리 삶터의 엄연한 현실인데 우리나라는 인문정책 마련에 여전히 미지근하다. 그러니 생애 주기별 맞춤형 학습을 통한 인문 역량의 증진을 복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가 정책화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고 있다. AI에만 주목할 뿐 그것이 소환하고 있는 인문 복지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 ChatGPT 생성 이미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단 복제, 배포 및 공유 금지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국가의 부흥은 인문의 진흥과 과학의 발달이 쌍끌이●해왔다.
지금 AI의 발달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다시금 명료하게 웅변해준다. 인문 역량의 증진이라는 인문 복지를 핵으로 하는 인문 정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결국 사람들은 AI의 지속적 진보를 쫓아가지 못한 채 노예 사용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게 AI 기반 사회가 아니라 ‘AI 지배 사회’가 된다. 인간으로서의 자율성과 능동성을 결여한 사람들이 AI의 지배를 받는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 쌍끌이: 한 틀의 그물로 두 척의 배가 바닷물고기를 대상으로 저층을 끌어서 어획하는 방법. '인문의 진흥'과 '과학의 발전' 이라는 두 축이 함께 움직여야 국가의 부흥을 이끈다는 점을 비유한 표현
주요 이력 2003. 08 - 현재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2025. 08 -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원장 2023. 11 - 현재 서울대학교 평의원회 평의원 2018. 07 - 2020. 07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무부학장 2013. 03 - 2016. 08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부주간
주요 연구 분야 중국문학사, 중국문학사상 중국고대지성사, 중국고전 인문정책, 교육정책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인공지능(AI), ‘인문 복지’를 소환하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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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인문 복지’를 소환하다
김월회
2025-12-01
지난 8월 베이징에서는 제1회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게임이 열렸다. 16개국에서 보낸 500여 대의 휴머노이드가 참가해 청소, 빨래 개기, 축구, 킥복싱 등을 선보이며 현 단계 휴머노이드의 발전을 과시했다. 물론 한계도 적잖이 드러났다. 그러나 휴머노이드의 시대가 멀지 않았음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10년 전 당시 세계 최고수였던 이세돌 9단이 바둑 AI 알파고에 1:4로 패배할 때만 해도 AI가 지금처럼 성장, 발전할지를 미처 예측하지 못했음을 떠올리면 말이다.
인간의 더없는 동반자 AI
당시 사람들은 바둑이라는 특정 영역에 특화됐기에 AI가 사람을 이길 수 있었다고 치부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AI는 결코 늦지 않은 속도로 발달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AI는 사람을 능가할 수 없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뒤집히는 데는 불과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AI가 삶의 기본값이 되었고, 초지능인공지능(ASI)이나 범용인공지능(AGI)의 예에서 보이듯이 인간을 넘어서는 AI의 실현과 보급이 멀지 않았다. AI는 사용자의 명령을 피동적으로 수행하는 단계를 넘어 사용자를 대신해 목표를 설정하고 과업을 완성하는 자율적 소프트웨어 시스템인 ‘AI 에이전트’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을 꼭 닮고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을 구현하는 휴머노이드에 AI를 장착해서 사용자의 조정 없이도 자율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AI 피지컬’도 속속 실현되고 있다. 인간화를 향한 AI의 도전이 매우 거세다는 것이다. 이미 AI는 지성과 같은 인간 고유 역량을 구현하는 수준을 뛰어넘고 있으며, 외형적으로도 휴머노이드의 발달과 결합하여 내적으로도 또 외적으로도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 아니,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SF영화에서 종종 보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AI 휴머노이드와 섞여 일상을 영위하는 미래가 그리 멀지 않은 셈이다. 지난 10년처럼 “에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일어나더라도 먼 미래의 일이야!” 하다가 막상 그러한 시대가 시나브로 실현되면 인간과 AI 휴머노이드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될까? 아니 설정될 수는 있을까? AI는 지금 단계에서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다시 묻게 하는 인간의 더없는 동반자인 것이다.
‘인문 복지’라는 정책 목표
인간과 AI의 동반은 인간의 사이보그화를 한층 가속한다. 꼭 인간의 신체 내에 기계를 넣거나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야만 사이보그인 것은 아니다. 디지털 기계와의 접속 없이는 일상생활을 불편해한다거나 어려워한다면 이 또한 사이보그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미 21세기형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AI 기반시대’라는 말이 운위될 정도로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이 AI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일상적 AI 의존성이 갈수록 심화,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인간은 어느 시점까지만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말지만 AI는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점이다. AI가 진보할수록 인간은 더욱 편리해지기에 인간의 AI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인간은 AI에 길들어지고 만다. 사용자가 주인으로서 AI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알려주는 범위 내에서만 알아가고 사유하며 생활하게 된다. AI를 주인으로서 활용하고 제어할 수 있는 역량의 구비가 AI 기반시대에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핵심으로 부각되는 저간의 사정이다.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AI는 구현하지 못하는 인간다움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AI의 학습법으로는 따라 할 수 없는 사유 능력을 갖춰야 하고, AI가 계산하지 못하는 감성과 상상, 직관의 역량을 높여 가야 한다. 제도권 교육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자신이 인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평생학습을 해가야 하는 이유다. 그랬을 때 비로소 AI에 의존한 채 그에 길들어진 노예 사용자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해 그것을 부리는 주인 사용자로 우뚝 설 수 있다. 바로 여기서 국가 차원의 인문정책이 기본이자 필수로서 소환된다. 인간이 지성적 존재임은 부인키 어려운 사실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 점 또한 부인키 어렵다. 아니,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기꺼이 AI의 노예 사용자가 되고도 남는 존재가 인간이다. 국가 정책은 이렇게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개인이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그 필요를 채우지 못할 때를 위하여 존재한다.
저 옛날 맹자가 군주에게 백성의 항산(恒産), 그러니까 일정한 수입을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고 단언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해마다 작황에 관계없이 일정한 수입을 확보하는 것은 개인만의 노력으로는 실현 난망한 일이기에 그렇다. 나날이 진보하는 AI의 주인 사용자로 서기 위한 학습도 개인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등 제도권 교육을 마친 후에는 생존과 생계가 인간다운 삶의 구현보다 우선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지털 격차’란 말이 증명해주듯이 AI는 생활 수준과 학습 수준에 따른 기존 격차를 한층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정책적, 제도적 노력이 받쳐져야 비로소 일상 차원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한 평생학습이 지속 가능해진다. 이것이 우리 삶터의 엄연한 현실인데 우리나라는 인문정책 마련에 여전히 미지근하다. 그러니 생애 주기별 맞춤형 학습을 통한 인문 역량의 증진을 복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가 정책화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고 있다. AI에만 주목할 뿐 그것이 소환하고 있는 인문 복지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 ChatGPT 생성 이미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단 복제, 배포 및 공유 금지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국가의 부흥은 인문의 진흥과 과학의 발달이 쌍끌이●해왔다.
지금 AI의 발달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다시금 명료하게 웅변해준다. 인문 역량의 증진이라는 인문 복지를 핵으로 하는 인문 정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결국 사람들은 AI의 지속적 진보를 쫓아가지 못한 채 노예 사용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게 AI 기반 사회가 아니라 ‘AI 지배 사회’가 된다. 인간으로서의 자율성과 능동성을 결여한 사람들이 AI의 지배를 받는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 쌍끌이: 한 틀의 그물로 두 척의 배가 바닷물고기를 대상으로 저층을 끌어서 어획하는 방법. '인문의 진흥'과 '과학의 발전' 이라는 두 축이 함께 움직여야 국가의 부흥을 이끈다는 점을 비유한 표현
AI 시대 인간의 길 - 김월회 교수
➀ 인공지능(AI), ‘인문 복지’를 소환하다 *
➁ 인간다움 외주화 시대의 인문 [다음글]
주요 이력
2003. 08 - 현재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2025. 08 -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원장
2023. 11 - 현재 서울대학교 평의원회 평의원
2018. 07 - 2020. 07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무부학장
2013. 03 - 2016. 08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부주간
주요 연구 분야
중국문학사, 중국문학사상
중국고대지성사, 중국고전
인문정책, 교육정책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인공지능(AI), ‘인문 복지’를 소환하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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