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인문학과 문화 리터러시

인문학으로 키우는 문화적 문해력

김세훈

2025-07-17

1. 문맹과 독립

 

문맹이 사회적 문제인 시기가 있었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나라 없는 국민으로 살아가던 시기,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이 읽고 쓸 줄 앎으로써 상호 간에 계몽하고 의식을 개화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192215일 자 동아일보 사설은 당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보라 조선인 17백만 중에 자기의 성명을 능히 하는 자가 얼마나 잇스며 하고 하고 할 줄을 하는 자가 얼마나 되며 … 

17백만의 반수가 부녀라고 하면 850만이 곧 그것이라. 그 중에서 서신 한 장은 고사하고 諺文一字能通하는 자가 幾何인고 … 

백인에 1인이라 하면 혹 과장이 안일가 하며 기타 반 수인 남자 중에서라도 대부분을 점령하는 농민의 지식을 하야 논지할 것 갓흐면 신문 한 장은 고사하고 일상 의사소통에 필요한 서신 한 장을 能修하는 자가 역시 백인에 1인이면 다행이라 하겠도다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조선국세조사(國勢調査)보고(1930)에 따르면, 1930년 우리 국민의 평균 문맹률은 77.73%였으며, 여성 문맹률은 이보다 훨씬 높은 92.4%였다.

● 노영택, 日帝時期文盲率 推移, 국사편찬위원회 국사관논총 제51, 1994, 130p. 

 

이러한 현실은 국민들의 주체 의식을 계몽하고 자주권을 설파하여 빼앗긴 조국을 일본으로부터 되찾는 데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애국계몽운동은 이러한 자각에서 비롯된 독립운동의 한 방법이었다. 높은 문맹률은 광복 전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1945년 미군정이 조사한 국민 문맹률은 78%였다

 

이 시기 이후 각 시군에 국문강습소를 설치하고 문맹퇴치 운동을 벌여 1948년 미군 철수 시에는 41.3%, 1953년 대한민국 정부가 문맹국민완전퇴치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한 1958년에는 4.1%를 기록했다.

 

 

2. 문맹과 문해

 

우리나라에서 문맹률에 대한 공식 통계는 1966년이 마지막인 것으로 나타난다

 

1960년에 의무교육 취학률이 96%에 달하면서 문맹률 조사의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2025년 현재, 우리나라 문맹률은 1%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현황과는 사뭇 다른 국제 통계가 발표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조사한 ‘2023 국제성인역량평가’(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에 따르면, 16~65세 사이 한국 성인의 문해력(literacy)은 조사 대상 31개국 가운데 22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결과를 연계해 분석하면, 우리 국민 대다수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지만,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4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초··고 교원 5848명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학생들의 문해력이 과거보다 떨어졌다는 응답이 91.8%를 차지했다

 

글의 맥락과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10명 중 2명 이상이라고 응답한 교원도 46.4%가 되었으며,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 시험을 치기조차 곤란한 학생이나 도움 없이는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10명 중 2명 이상이라고 응답한 교원도 각각 21.4%, 30.4%나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풍력’, ‘성명’, 국가의 수도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거나, 사건의 시발점을 욕으로, ‘족보를 족발보쌈의 줄임말로,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이해하는 사례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문맹(文盲)이 문해(文解)와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문맹이 글을 읽고 쓰는 능력과 관계된다면, 문해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 나아가 이러한 이해에 기반하여 상대방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유네스코는 문해(literacy)자신이 속해 사는 사회 속에서 문화를 이해하고 정치, 경제, 사회 또는 직업 생활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의사소통 능력으로 정의한다.

 

 

 

3. 문화적 문해와 의사소통

 

문화적 문해는 E.D.Hirsh, Jr.1987년 그의 책 Cultural Literacy: What Every American Needs to Know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미국의 교육개혁 방향을 제시하면서 미국 교육의 문제가, 대학의 많은 학생들이 미국 역사나 사회에 대해 기본적인(공통적인) 배경 지식이 부족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진단에 기반하여 효과적인 소통과, 민주사회 구성원인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문화적 배경지식을 아는 것, 곧 문화적 문해(literacy)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시하였다.

 

Hirsch의 문화적 문해 개념은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 사회 구성원 간 효과적인 의사소통이라는 맥락을 강조한다

 

글을 읽고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공통의 문화적 배경지식이 없으면 효과적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적 문해의 궁극적 목적은 원활한 의사소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원활한 의사소통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현상이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2215~60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0년 가장 선호하는 소통 방법은 직접 만남이었던 데 비해, 2021년에는 거의 모든 세대에서 직접 만남을 선호하는 비율이 10%P 이상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2024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만 6세 이상의 인터넷 이용자 중 최근 1년 이내 인스턴트 메시지를 이용한 사람이 97.7%, 이중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이용이 97.5%라고 발표하였다

 

외국 조사보고서(The Lausanne Movement, 2025)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왓츠앱(WhatsApp)을 통해서만 278천만 명의 이용자가 매일 1,400억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비대면 소통 경향의 확대는 인간 상호 간의 만남보다 기계를 매개로 한 소통이 더욱 선호됨을 보여준다. 이는 전화보다 문자 메시지를 통한 소통을 더욱 선호한다는 데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2024알바천국Z세대 7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8%가 콜포비아(전화(call)와 공포(phobia)가 합쳐진 말로 전화 통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을 의미하는 용어)를 겪는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202230%보다 10% 이상 증가한 것이다. 대면은 차치하고라도 전화를 통한 의사소통조차 어려움을 겪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의 모습이다.

 

오늘날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과 공통적/기본적 문화 배경지식을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 제공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의 원활함은 기대한 만큼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역사적 배경지식을 앞에 두고도 확증편향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경향이 더욱 빈번히 목격되는 현실에서, 의사소통에서 오는 간극은 좀처럼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4. 문화적 문해력과 인문학

 

의사소통의 궁극적 목적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에 기반하되, 서로 생각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차이를 소통으로 조율하며, 공감대 속에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함에 있다

 

따라서 의사소통을 지향하는 문화적 문해의 목적은,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사회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의 문맥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를 기반으로 의사소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사소통은, 공통의 문화적 배경지식을 가르치는 교육보다 자기 자신이 터 해 있는 생각의 기반과 타인의 생각이 터 해 있는 기반을 면밀히 살핀 후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를 성찰하고, 이러한 차이를 소통을 통하여 조율해 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 수반되는 다양한 실천 방법들에 보다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 하다 - "터하다"에서 ""는 명사로 쓰여 "장소, 자리, 터전" 등을 의미하며, "하다"는 동사로 "행하다, 하다" 등의 뜻을 가집니다. 이 경우, 의미는 "장소를 만들다", "자리를 잡다", 또는 "터전을 잡다" 등을 의미합니다. 

 

땅을 경작하든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든, 문화는 본래 결과나 산물보다는 키우고 양육하는 행위실천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적 문해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깊은 이해에 기반한 의사소통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의 성격을 갖는다

 

인문학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인문학은 인문학적 사고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사고에 기반한 인문학적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

 

, 오늘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의사소통을 보다 넓은 인문의 세계에서 되돌아보게 하고, 상호 간의 지평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하여, 논의와 공감을 이루어내는 상호의사소통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문화적 문해력을 키워나가는 일은 이러한 인문학적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문학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 인문학
  • 문화적 이해력
  • 의사소통(사회교육)
김세훈 교수
김세훈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문화관광외식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회학과 문화정책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와 영국 버밍엄대학(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사회학, 문화정책으로 각각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국회 등에서 평가 및 심의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장을 맡고 있다. 

공공성, ‘문화공간의 사회학, ‘문화예술교 현장과 정책, ‘대중문화와 문화산업 등 다수의 저서 및 보고서를 단독/공동 집필하였다. 

공공누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인문학과 문화 리터러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댓글(0)

0 / 500 Byte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