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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믿어보기로 했다

- 숨과 쉼, 사유 그리고 인문열차

박상준

2025-02-06

 

 

마인드 풀니스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믿어보기로 했다

숨과 쉼사유 그리고 인문열차

 

 

<문화담론프로젝트> 인문열차

2024년 12월 15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인문열차는 초연결시대 속 현대인의 외로움과 단절을 숨과 쉼과 사유를 통해 치유하기 위한 문화담론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된 기획 인문학 프로그램이다. 기차역에서 출발해 병산서원, 봉정사, 도산서원 등을 탐방 후 사색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치유를 도모하며, 하루의 여정을 치암고택에서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인문열차포스터

▲ <문화담론프로젝트> 인문열차 포스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리의 무의미한 인생이 자기는 전혀 알 수 없는 어딘가 멀고 높은 곳에서,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기시 마사히코,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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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날 첫 방문지 도산서원. 조금 더 가까워진 인문열차 참가자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새콤달콤하고 서툰 말들은

무궁화 기차는 좌석 가운데 팔걸이가 없다. 낯선 이가 옆자리에 앉았을 때는 반대편으로 몸을 기울인다. 상대가 끔찍이 싫어서가 아니라 암묵적인 에티켓같아서, 타인들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기도 해서. 그러고 나면 어색한 틈이 생긴다.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물론 그걸 기적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가면 그게 기적이겠지. 그래서 우리는 그 틈새를 채우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일지도.

2024년 여름이 끝날 즈음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웅진지식하우스)을 읽었다.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서 자꾸만 되살아났다. 12월에는 기어이 그해 수위를 다투는 책이 되었다. 기억에 나는 문장은 의외로 단순하다.

마음속으로는 모두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이런 마음은 일반적으로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간절하다.’

대화가 서툰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람 대 사람의 연결성을 만들어내는 일만은 인공지능이 절대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대화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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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열차 첫 번째 프로그램 연결의 시간’ / 대화 카드로 서로를 알아가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12월의 인문열차. 우리는 팔걸이가 없는 좌석에서 옆 사람을 곁눈질하며 1시간 남짓을 함께 지나왔다. 그 사이 귤 하나를 나눠 먹을 만큼 친밀한 사이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말 대신 귤을 삼킨다. 새콤달콤한 그것들이 혀끝에서 꼼지락댄다.

단양역을 지날 즈음 가교가 놓인다. 인문열차의 첫 번째 프로그램 연결의 시간’. 패들렛(Padlet)과 대화 카드가 예의 바른 무관심을 넘어설 용기를 부여한다. 모두가 패들렛 단체 채팅방으로 초대되고 닉네임을 정하고 오늘의 감정과 얻고 싶은 경험을 적는다. 일종의 자기소개다. ‘나무해마다 나무의 나이테가 늘어나듯 성장하고 싶은 사람이다. ‘해꽃이라는 닉네임을 보고는 해꽃을 검색한다. 하얗게 타래지는 자루의 꽃 같은 사람이겠거니.
우리는 패들렛을 통해 서로에게 첫인사를 나눈다. 그런 후 이번에는 열차의 좌석을 돌려 서너 명씩 얼굴을 마주해 앉는다. 각자의 목소리, 육성으로 나누는 대화의 시간. 대화 카드를 한 장씩 번갈아 뽑으며 질문들이 오가고 경계를 허물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나를 표현하는 동사 세 가지가 있다면?
... 신난다! 재밌다! 웃는다! 하하하.”

내가 사랑하는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유재하의 음악. 사랑하는 엄마. 그리고 별이 된 강아지.”

나는 두 번째 답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처음 산 앨범이 유재하라서, 가장 사랑하는 이가 별이 된 엄마라서. 처음 만난 그는 조금 더 친밀한 타인이 된다. 아마도 다른 누군가는 나를 보며 친밀감을 느끼고 있겠지.

    

, 눈이다.”

대화의 첫 출발은 생각보다 평범한 사건일 때가 많다. ‘인문열차로 이름 붙인 무궁화 기차가 영주를 지날 즈음 눈이 왔다. 누군가의 혼잣말이겠지만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건네고픈 말이었을 것이다. ‘, 눈이 와요.’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이의 말에 몇몇이 창밖을 바라본다. 펑펑까지는 아니어도 기차 바깥에 나리는 눈은 꽤나 로맨틱하다. 스마트폰을 꺼낸다. 사진을 찍는다. 어쨌든 누군가가 건넨 음성은 누군가의 몸짓으로 이어진다. 아직 말이 서툴고 더딜 뿐 감정의 소통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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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산서원 입교당에서 바라본 만대루 / 도산서당 현판에서 눈길을 끄는 상형 글자 ’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원, 어울려 배움을 나눈 터

인문열차는 안동역에서 멈추고 우리는 기차에서 내린다. 그런데 왜 안동일까? 양반의 도시, 성리학의 요람은 힌트일 수 있지만 답은 아닐 테다. 이 고장에는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 조선 문학의 대가 농암 이현보, 가까이는 아동문학가 권정생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지역의 정체는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룩되지 않는다. 좋은 대화처럼 전해지고 이어지므로 쌓여 완성에 다가선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서원은 인문열차의 목적지로 삼을 만하다. 이곳은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세우고 여럿이 어울려 배움을 나눈 터이자 시대를 잇는 철학 사유의 장이다. ‘유네스코와 유산홈페이지는 한국 사회 문화 전통의 특출한 증거라고 말한다. 안동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이 있다. 그래서 인문열차는 병산서원에서 시작해 도산서원에서 끝나는 것일지도. 먼저 첫 번째 목적지 병산서원으로 향한다. 버스의 맨 뒷자리 먼저 앉은 누군가들 사이에 껴 앉는다. 그리고 옆자리 낯선 이에게 말을 건다. ‘연결의 시간이 안긴 경험치를 발휘하며.

안동에 와본 적 있어요?”

사소한 첫 마디. 오늘의 날씨를 묻듯. 다행히 왼편의 그이는 안동이 처음은 아니다. 나와 차이라면 내일로(철도교통 패스) 여행과 여행 출장의 차이 정도. ‘내일로라는 말이 다시 오른편에 있던 이를 부른다. 그 가운데 진달래의 추억이 부러움을 산다. 진달래는 몇 해 전 내일로를 이용해 안동에 왔다. 하회마을 주민을 우연히 만났고 그들의 차를 탔고 안동 곳곳을 여행했다. 낯섦을 무너뜨린 뜻밖의 환대였다. 그러니 그에게 인문열차는 20대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사이 그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막 회상의 고백이 시작되던 차에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을 기린다. 풍산 류 씨의 교육기관 풍악서당을 옮겨왔다. 특히 만대루(晩對樓)는 세계의 건축가들이 감탄하는 우리의 전통 건축이다. 입교당에서는 만대루 너머 낙동강과 절벽이 일곱 폭 병풍처럼 펼쳐진다. 뜰에는 서애의 사상을 적은 안내판이 놓여 있다. 물아일체이거나 격물치지, 학사위주, 추공교월 같은 낯선 단어의 의미를 좇아 읽는다.

병산서원의 복례문과 만대루 그리고 광영지가 있는 이곳은 서원의 사색을 위한 공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러한 속에서 우리들은 사물과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즐기면서, 바른 도리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

퇴계 이황은 서애 류성룡의 스승이다. 도산서원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 공간은 크게 퇴계가 거처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과 퇴계 사후에 건립한 서원으로 나뉜다. 서당은 퇴계가 직접 설계했다. 현판의 ()’ 자는 봉우리 세 개를 그린 재미난 상형문자다. 제자들이 스승의 명성에 주눅 들 것을 염려한 퇴계의 위트있는 배려다. 그도 그럴 것이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 끝 ()'는 살짝 치켜 올라갔다. 선조의 명으로 한석봉이 썼는데, 도산서원이라는 걸 안 순간 긴장한 탓이라 전한다. 당대의 명필도 우리처럼 실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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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의 사색의 시간 / 월영교의 밤 산책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더 자주 안고 안기기를

퇴계와 서애의 서원은 우리에게 어떤 사유를 안겼을까? 어떤 이치를 깨달아 알게 했을까? 각자의 사유만큼 각자의 사정이 다를 테지. ‘핑핑은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은 관계와 소통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혹은 관계 속에서 어딘가 동떨어졌다고 느낄 때 찾아오곤 한다.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감정 같아요. 누군가 대신할 수 없잖아요. 꼭 거쳐야 하는 외로움도 있고요. 그 순간을 잘 견디는 게 성장의 과정일지 몰라요.”

우리는 외로움 속에서 숨과 쉼의 시간을 거쳐 앞으로 나아간다. 그건 나의 빈자리를 들여다본다는 것,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산책은 외로움의 좋은 동무가 된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홀로 걸어 마음을 다스릴 기회, 안동에는 그런 산책의 시간을 갖기 좋은 장소가 많았다. 오래 된 사찰이나, 호젓한 강변의 덱 길이거나.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672)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여정의 숲길이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데, 그 끝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1363) 극락전이 반긴다. 나이 든 절집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숨길이 트이는 듯하다. 월영교는 1856, 한 여성이 남편의 무덤에 남긴 편지와 낡은 미투리 한 켤레로 인해 다시 태어났다.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순간을 마주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홀로 세상을 떠난다. 서애 류성룡은 임종을 앞두고 산은 말 없으나 내 마음에는 이미 충분하네라고 시를 지었다. 퇴계 이황은 매화에 물을 주라고 유언했다. 옛사람의 마지막 당부는 적잖은 위안이고 가르침이다. 안동(安東)은 왕건이 병산 전투에서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고 '동쪽()이 편안()하게 되었다해 붙인 지명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 편안함이 안동의 나이테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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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지관서가에서 있은 북칼럼니스트 박사의 낭독회 / 낯섦이 아쉬움으로 바뀌는 작별 인사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안동을 떠나기 전, 마지막 프로그램은 북칼럼니스트 박사의 인문 특강이었다. 안동 지관서가에서 낭독회 형식을 취했다. 지관서가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복합 인문·문화 공간이다. 각각의 지관서가는 인생 테마를 가지는데 안동은 몸과 마음이다. 박사 작가가 김관욱 교수의 책 (현암사),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음 기억한다(을유문화사), 등의 일부를 낭독했다. 작가의 목소리는 그의 몸을 빠져나와 지관서가를 울렸는데 울림은 서서히 커졌고 시나브로 그 자리에 있던 우리의 마음에 다다랐다. 그 가운데 몸은 기억한다프리 허그에 관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 어떤 상식적인 위로의 말보다 따뜻한 포옹이 진정 치유의 힘을 가질 수 있지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서일까 포옹의 힘을 알고부터 나는 나의 가족과 더 자주 안고 안기기를 반복하고 있다. 서로에게 온전한 충전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박사 작가는 인문열차에서 처음 만나 이틀을 함께한 서로를 한 번씩 안아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인문열차가 끝나고 손을 흔들며 작별했는데 몸과 몸을 맞대어 서로를 안지는 못했다. 스마트폰을 놓고 가벼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은 낯섦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대신 마음으로 서로를 꼭 껴안았다. 나는 그리했다. 그리고 옆자리의 누군가에게 용기를 내어 이런 말을 건넸다.

우리는 우리를 조금 더 믿어도 좋을 것 같아요.”

 

 

 

 

 

문화담론프로젝트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이하 문체부)는 지난 12월, 전 국민과 함께 문화로 외로움(loneliness)을 논하고 치유하는 ‘문화담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우리 공동체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코로나 시기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 더욱 심화되고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된 ‘외로움’을 주제로 담론의 장을 마련했다.


- 문체부 보도자료: 일상 속 외로움의 순간, 문화로 위로하고, 다시 연결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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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작가
박상준

박상준
여행작가이자 여행스토리텔러이며 영화와 여행 주간지 취재기자로 활동했었다. 지은 책으로는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100』, 『다른 제주에 가다』, 『엄마 우리 여행 가자』 등이 있다. 부암동 3평 카페 '유쾌한 황당'에서 공연, 연극, 전시 등을 기획했으며, 각종 매체에 도서관, 편지, 건축 등을 매개로 여행칼럼을 연재 중이다.
이미지 제공_ⓒ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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