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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공지능의 건강한 관계

시대가 묻고 인문이 답하다 ➃ 김재인 교수

이진경

2024-08-12

인공지능(AI)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인간과 AI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바라보며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요.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대한민국은 AI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인문은 이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인간과 AI의 건강한 관계를 위한 제언을 김재인 교수에게서 들어봅니다.


김재인 사진 03 (1)
김재인 교수
철학자.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디지털소사이어티 기획위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과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프로그램 연구원,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 <웹진X> 편집위원장을 역임했고, 서울대, 경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는 [AI 빅뱅], [뉴노멀의 철학], [생각의 싸움],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들뢰즈, 연결의 철학], [베르그손주의], [안티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등이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 어떤 관계인가

Q.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은 매우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는 것은 무리예요. 예를 들어, 알파고와 ChatGPT는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알파고는 바둑에 특화되어 있고, ChatGPT는 문장 생성을 하는 언어 모델입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기술이죠. 또, 일상에서 사용하는 내비게이션도 인공지능의 한 형태인데, 이것 역시 알파고나 ChatGPT와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Q.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인공지능을 철저하게 도구라고 봅니다. 굉장히 쓸모 있는 도구죠.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은 개인의 역량을 증강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인공지능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이 증가할수록 인공지능 활용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죠. 결국 개인의 역량을 기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인공지능은 마치 스마트폰에 깔린 여러 앱들처럼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각 앱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고, 필요에 따라 우리는 이것들을 조합해서 사용합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기능을 가진 여러 프로그램들의 모임으로 이해해야 해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오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익히고, 이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면 됩니다.

Q. 초지능에 대한 우려는 어떻게 보십니까?

초지능(모든 인지적 활동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의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는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메타AI 수석과학자 얀 르쿤은 초지능의 실현 가능성을 부인합니다. 그는 초지능이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할 가능성이 없으며, 과학자들이 그런 기술을 제어할 방법을 미리 마련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죠. 초지능에 대한 공포는 영화적인 상상에 불과합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개인의 역량을 강화할 길

Q.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라는 도구를 잘 활용하기 위한 개인의 역량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생각의 힘'과 '생각의 근력'이 중요합니다. 결국 쓰기와 읽기가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인 것 같아요. 읽기는 읽을거리를 잘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쓰기는 다음 네 단계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첫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 둘째,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는 과정. 셋째, 종합하고 가공하는 과정. 넷째, 그것을 잘 표현하는 과정. 이 과정은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일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역량입니다. 이 훈련이 잘되어 있으면 다양한 업무나 창작 과정에 큰 도움이 되겠죠.

Q. AI 활용에 있어서도 활용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가 클 수 있겠는데요. 역량이 큰 사람은 100배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더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요.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결국 교육의 문제라고 봅니다. AI 활용법을 교육과정에서 최대한 공평하게 제공하여 모든 사람이 AI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종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고령자들을 포함하여 성인 교육도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 사용법을 모르는 노인들이 구매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죠. 이에 대한 별도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그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 활용 격차는 더 커지고, 기술에 의해 소외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융합적 역량과 확장된 문해력의 중요성

Q: 융합은 옛날부터 강조돼왔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융합적인 역량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융합 역량을 개인에게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융합적인 결과는 주로 협업에서 나옵니다. 융합은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협업하여 새로운 길을 여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면 처음에는 말이 잘 통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극이 되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할 거예요. 융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공통의 언어를 공유하고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수학이나 과학, 언어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 그 토양과 씨앗이 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공통 언어를 바탕으로 팀 작업을 통해 서로의 아이디어를 융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가 인문학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확장된 언어와 확장된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네, 맞습니다. 저는 언어를 확장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언어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말해요. 자연어(일반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있고, 수학을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있으며, 양자역학이나 유전학 같은 과학의 특정 주제로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언어를 통해 자료를 해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저는 확장된 문해력이라고 부릅니다. 이 문해력을 갖추면 추가 학습을 할 때 유용해요. 단순히 지식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 관점을 말하죠. 지식적인 측면보다는 학습 능력, 즉 주어진 자료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감식안

Q. 현재, 인공지능이 반드시 사실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는데요. 인공지능의 결과물에 대한 감식안을 가지는 건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진위 여부는 지식의 문제이고, 가치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과학적인 사실과 관련해서 진위 여부는 검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술의 가치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술의 가장 큰 가치 중 하나는 독창성입니다. 다른 사람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를 때 그 가치가 인정되는데요. 남들보다 먼저 그런 가치를 알아보는 감식안이 별도로 훈련되어야 하겠지요.

바로 예술가들이 그런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어 최전선에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도를 가장 먼저 합니다. 이들이 없으면 새로운 것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실험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인 거죠. 그래서 예술가들의 작업을 존경하는 것이고, 그 결과물이 항상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그 시도 자체가 중요합니다. 이들의 작업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감식안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인공지능 시대, 왜 인문이 더 중요해지는가?

Q: 인공지능 시대에 오히려 인문이 더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을 해부하거나 유전자를 들여다본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인간의 생각과 그 생각의 표출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의 표출은 언어나 매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언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예술 형태, 예를 들어 회화, 조각, 음악 등이 포함되는 거죠.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영역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나름의 답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인문과 창조활동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문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거죠.

Q. 인문교육은 어떻게 실행해나가야 할까요?

서양에는 두 가지 인문학의 전통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전통은 인간을 주제로 한 연구입니다. 문학, 역사, 철학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사고를 탐구하는 것이죠.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고 여기에 놀이와 재미를 연결하는 활동입니다. 두 번째 전통은 교육입니다. 중세에는 문법, 논리, 수사학을 가르치는 아르테스 리베랄레스(Artes Liberales)와 함께 산술, 기하, 음악, 천문학을 필수 과목으로 가르쳤습니다. 이 전통은 교육과 직업적인 보장을 통해 미래 세대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이 두 가지 전통을 병행하면 교육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만들고, 내용적으로도 풍부한 인문학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Q. 인문적 관점은 인공지능 연구에도 영향을 줄까요?

물론이죠. 인문학적 소양은 인공지능 연구에서도 큰 차이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컴퓨터 과학자 얀 르쿤은 다른 인공지능 연구자들과는 다른 깊이와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에서도 철학 교육을 받기 때문에, 르쿤은 컴퓨터 공학뿐만 아니라 철학적, 예술적 주제들에도 훈련된 인물입니다. 이러한 배경이 그의 인공지능 연구에도 반영되어 있죠. 따라서 인문교육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더 넓은 시각과 깊이를 가지게 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문화,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

Q: 인공지능도 작곡, 회화, 저작활동 등의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도 창조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창조성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진화도 일종의 창조적인 과정입니다. 생물들이 환경에 맞춰 변이하면서 생존에 성공하는 과정을 통해 창조성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창조성은 유전자 수준에서만 작동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유전자 바깥의, 즉 몸 바깥의 창조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문화라고 부르죠. 문화는 외장 기억으로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발명한 내용을 축적합니다. 이 축적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죠. 인간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발견하면 그것을 동료들과 공유하고, 후손들에게 전수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식과 기술이 계속 축적됩니다. 이것이 인간만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이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결과물을 만듭니다. 인공지능은 엄청난 양과 속도로 학습할 수 있지만,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받지 않으면 멈추죠. 반면, 인간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발명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인간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선도자)이고, 인공지능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빠른 추종자)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Q. 인공지능 시대에 인류가 더욱 연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간이 공동의 기억을 가진 존재라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서양의 특정한 전통에서는 사회를 개인의 합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인간은 본래 공동체적 존재로서 연대하고 협동해 왔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강조되는 상황은 이러한 본래의 모습을 왜곡한 것입니다. 천재가 자신의 능력 덕분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는 논리는 개인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천재는 앞선 시대에 이룬 것들에 의존해서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고, 다른 구성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천재가 발견한 지식과 기술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결국, 천재의 기여도 다른 구성원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거죠. 이런 면에서 인간의 본질적 특성인 연대, 협동, 공생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았다고들 하지만, 인간과 인공지능은 본질적으로 다르고 그 지위도 다릅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기계에 의탁하려 하기 쉬운데요.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동료 인간과 함께하려는 자세가 더욱 절실히 요구됩니다. 인공지능은 기후위기나 불평등 같은 문제를 심화하는 주범으로 지적되기도 하거든요. 결국,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 성찰하게 하고,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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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작가
이진경

인터뷰 · 정리

 

KBS, EBS, CBS 방송작가로 일했고, 작가 및 프리랜서 출판 기획 편집자로 일해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폐암 4기 김선욱의 180일 국토 종단기>(민음인), 다큐멘터리 방송을 책으로 옮긴 <EBS 다큐프라임 생사기획 대탐구 죽음”>(책담), <EBS 다큐프라임 감각의 제국”>(생각의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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