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시대, 지식의 영역에서 기술이 인간을 넘어선 지금, 그 어느 시대보다 인간 삶의 가치를 분별하고 성찰할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해졌습니다.
어떤 문화가 형성되어야 인류는 인간 고유의 지혜를 통해 전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까요?
인문은 이런 문화의 확산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서울시립대 철학과 이중원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중원 교수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철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인문대학 학장 및 교육대학 원장, 교육인증원장을 역임했고, 한국과학철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주로 과학철학과 기술철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 분야는 현대 물리학인 양자이론과 상대성 이론의 철학, 기술의 철학, 현대 첨단기술의 윤리적·법적·사회적 쟁점 관련 문제들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의 결과
Q. 먼저 우리는 현재 어느 지점에 와있나 살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지금의 기후 재앙이나 인공지능 관련 위기는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고의 결과라 하신 바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중심적 관점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근세 초기부터 사람들은 세상을 이해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느끼는 주체로 바라보고, 세상에 대해서는 인식할 대상으로 보았어요. 자신과 주변을 분리해서 바라본 거죠. 자연의 모든 정보는 인간이 설계한 관측 장치나 실험 도구로 수집되고, 인간이 만든 언어와 개념체계로 해석되었습니다.
이런 인간 중심주의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했어요. 먼저는,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존재론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인간과 다른 것들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그었죠. 비인간 존재들을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만 유의미한 존재로 여겼어요. 자연은 인간을 위한 자원의 보고로, 생명체는 식용, 관상용, 애완용으로, 기계는 인간 생활의 편익을 위한 소모품으로 보았습니다.
또, 기술 개발의 목적 자체가 인간 생활의 풍요로움과 윤택함, 그리고 인간 욕망의 끝없는 구현에 있었어요. 자연과 생명체를 도구화하고 소모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해왔죠.
결과적으로, 인간 외의 존재를 도구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배타적인 인간 사회가 구축되었어요. 인간만이 세계의 중심이고 유일한 주체적, 사회적 행위자라는 관점이 형성되면서, 다양한 위계가 설정되고, 차이에 따른 차별이 정당화됐습니다. 결국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인간 외의 존재는 차별하는 휴머니즘이 강화되면서, 인간마저 대상화하고 차별하게 되었죠.
인공지능과 인격성
Q. 인간이 인공지능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미래의 자율형 로봇을 전자 인격체로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인격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human)과 인격(person)을 구분했어요. 인간은 생물학적인 종(種) 개념으로, 인격은 ‘이성을 갖고 반성하며 시간과 장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여길 수 있는, 생각하는 지적 존재자’로 보았죠. 저는 인격성을 지(능)적 활동에 필요한 요건(인격 구성 요소)과 능력들(인지)로 보고, 인간성은 그 요건과 능력을 포함한 지능적 활동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지혜로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인간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이지만, 인격성은 동식물이나 비인간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인격성에 어느 정도 층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인격성에도 층위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인격성에 층위가 있다는 것은 인격성의 다양한 요소들이 등급이나 차이를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이성, 감성, 자율성, 도덕성, 자유의지 같은 인격 요소들이 각기 다른 수준이나 레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Q. 그렇다면 AI도 인격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간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필요와 삶의 영향력을 평가하며 존재자들에게 특정한 지위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는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려동물이라는 지위를 얻었죠. AI도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하고 인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AI에게 인격적 지위를 부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자기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에게 적절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세계와의 관계에서 주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죠.
Q. 만약 계속해서 비인간 존재자를 도구로 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비인간 존재자를 도구로 보거나 공격하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돌아올 겁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볼게요. 소니의 로봇 강아지 아이보의 사례입니다. 아이들이 로봇 강아지를 때려도 로봇이 핥거나 계속 뛰는 등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아이들의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또, 메타버스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예도 있죠. 2021년에 미국에서 한 여성이 메타버스에서 자신의 아바타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느껴 신고한 일이 있었어요. 가상공간에서 겪은 경험의 영향을 실제로 고스란히 받게 되는 거죠. 이렇듯, 어떤 존재자를 단순한 도구로 보게 되면 인간의 심성이나 관계 맺기에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공존 그리고 주체성 확립
Q. 그렇다면 AI와 공존하면서도 인간의 주체성을 확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가 필요하죠. 지식과 지혜는 분명히 다른 차원입니다. 지식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며, 누적·집중되고 폭발적으로 팽창합니다. 지식은 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반면, 지혜는 지식과 다르게,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는 겁니다. 지식 중에서 어떤 것들이 유용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은 쌓는 것이지만, 지혜는 쌓인 지식을 보고 반성과 성찰을 하는 것이죠.
한마디로, 지혜는 메타 인지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가치와 관련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지혜의 중요성
Q. 특별히 이 시대에 지혜가 더 중요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AI는 ‘지식의 총화’(모든 지식을 모아놓은 것)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이 지식의 차원에서는 AI와 경쟁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SCI급 논문3억 건을 빅데이터화한 후 학습시킨 학술 AI가 나왔습니다. SCI(Science Citation Index)에 등재된 학술지들은 각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저널로, 여기에 논문이 게재되면 높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데요. 예를 들어, 과학자가 블랙홀에 대해 논문을 쓰고 싶을 때, 이 AI는 지금까지의 블랙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요약해서 즉시 이런 양질의 논문의 반을 작성해주죠.
이처럼 지식의 영역에서 AI를 따라가는 것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설 자리는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는, 지식이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지 안내해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지혜로 무장된 선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간 중심이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중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AI와 동등한 관계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적합한 인재 양성
Q. 청소년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적합한 인재로 성장하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청소년들에게는 지식 중심의 교육보다는 감성 교육이 필요해요. 저는 이것을 ‘관계 지향적 감성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개인적인 감성뿐만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성을 중요시하는 교육이죠. 예를 들어, 도덕 감정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 등을 체험을 통해 진정으로 인지하고 배워야 해요. 또한, AI와 같은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에서도 감성 교육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반려 감성’이라고 부르는데요.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반려자로 여기는 감성이죠. 온디바이스 AI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AI가 우리의 반려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AI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거예요.
새로운 문화를 위한 인문의 역할
Q.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고와 배타적 휴머니즘이 현재의 전 지구적 위기를 초래했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환해야 할까요? 그리고 인문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탈 인간중심적 사고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자연과 생명체들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저는 뉴휴머니즘이라 부릅니다. 뉴휴머니즘 문화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포용과 상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먼저, 자연과 생명체들을 단순한 자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그들과 상호작용하고 공존하는 관계를 맺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 인문을 통해 인간과 자연, 인간과 AI, 인간과 인공물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도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지 않고, 함께 상호작용하며 발전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 거죠.
또한, 관계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도덕적 감정을 키워야 합니다. 체험 교육과 도덕적 인지 프로젝트를 통해 이것을 실현할 수 있어요. 그리고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의 통합적 연구를 통해 관계 지향적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지요. 동양 사상의 관계 중심적 접근은 현대 사회에서의 상호연결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인문적 연구와 철학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윤리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사회적, 법적 체계에 반영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뉴휴머니즘을 실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Q. 그렇다면 인문을 통해 건강한 AI 문화산업 서비스를 제공할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건강한 AI 문화산업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문은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텐데요. 첫째, 반려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반려자로 인식하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온디바이스 AI를 활용하여 AI가 사용자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둘째, 도덕적 AI 개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AI 알고리즘 개발자들과 협력하여 도덕적 AI 솔루션을 만들고, 이를 통해 AI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셋째, 감성 인지 프로젝트를 통해 AI와의 감성적 상호작용을 체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AI와의 관계 속에서 도덕적 감정과 반려 감정을 인지하고 체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요. 이를 통해 AI와의 관계를 단순한 도구적 사용에서 벗어나 상호 존중과 배려의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넷째, AI 문화산업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AI와의 상호작용을 주제로 한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을 통해 대중들이 AI와의 건강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콘텐츠는 AI를 긍정적이고 반려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방안들은 모두 인문의 깊은 연구와 철학적 성찰을 토대로 함으로써, AI와 인간이 상생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새로운 문화
시대가 묻고 인문이 답하다 ➂ 이중원 교수
이진경
2024-08-05
초연결시대, 지식의 영역에서 기술이 인간을 넘어선 지금, 그 어느 시대보다 인간 삶의 가치를 분별하고 성찰할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해졌습니다.
어떤 문화가 형성되어야 인류는 인간 고유의 지혜를 통해 전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까요?
인문은 이런 문화의 확산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서울시립대 철학과 이중원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중원 교수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철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인문대학 학장 및 교육대학 원장, 교육인증원장을 역임했고, 한국과학철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주로 과학철학과 기술철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 분야는 현대 물리학인 양자이론과 상대성 이론의 철학, 기술의 철학, 현대 첨단기술의 윤리적·법적·사회적 쟁점 관련 문제들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의 결과
Q. 먼저 우리는 현재 어느 지점에 와있나 살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지금의 기후 재앙이나 인공지능 관련 위기는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고의 결과라 하신 바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중심적 관점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근세 초기부터 사람들은 세상을 이해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느끼는 주체로 바라보고, 세상에 대해서는 인식할 대상으로 보았어요. 자신과 주변을 분리해서 바라본 거죠. 자연의 모든 정보는 인간이 설계한 관측 장치나 실험 도구로 수집되고, 인간이 만든 언어와 개념체계로 해석되었습니다.
이런 인간 중심주의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했어요. 먼저는,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존재론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인간과 다른 것들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그었죠. 비인간 존재들을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만 유의미한 존재로 여겼어요. 자연은 인간을 위한 자원의 보고로, 생명체는 식용, 관상용, 애완용으로, 기계는 인간 생활의 편익을 위한 소모품으로 보았습니다.
또, 기술 개발의 목적 자체가 인간 생활의 풍요로움과 윤택함, 그리고 인간 욕망의 끝없는 구현에 있었어요. 자연과 생명체를 도구화하고 소모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해왔죠.
결과적으로, 인간 외의 존재를 도구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배타적인 인간 사회가 구축되었어요. 인간만이 세계의 중심이고 유일한 주체적, 사회적 행위자라는 관점이 형성되면서, 다양한 위계가 설정되고, 차이에 따른 차별이 정당화됐습니다. 결국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인간 외의 존재는 차별하는 휴머니즘이 강화되면서, 인간마저 대상화하고 차별하게 되었죠.
인공지능과 인격성
Q. 인간이 인공지능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미래의 자율형 로봇을 전자 인격체로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인격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human)과 인격(person)을 구분했어요. 인간은 생물학적인 종(種) 개념으로, 인격은 ‘이성을 갖고 반성하며 시간과 장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여길 수 있는, 생각하는 지적 존재자’로 보았죠. 저는 인격성을 지(능)적 활동에 필요한 요건(인격 구성 요소)과 능력들(인지)로 보고, 인간성은 그 요건과 능력을 포함한 지능적 활동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지혜로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인간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이지만, 인격성은 동식물이나 비인간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인격성에 어느 정도 층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인격성에도 층위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인격성에 층위가 있다는 것은 인격성의 다양한 요소들이 등급이나 차이를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이성, 감성, 자율성, 도덕성, 자유의지 같은 인격 요소들이 각기 다른 수준이나 레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Q. 그렇다면 AI도 인격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간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필요와 삶의 영향력을 평가하며 존재자들에게 특정한 지위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는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려동물이라는 지위를 얻었죠. AI도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하고 인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AI에게 인격적 지위를 부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자기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에게 적절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세계와의 관계에서 주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죠.
Q. 만약 계속해서 비인간 존재자를 도구로 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비인간 존재자를 도구로 보거나 공격하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돌아올 겁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볼게요. 소니의 로봇 강아지 아이보의 사례입니다. 아이들이 로봇 강아지를 때려도 로봇이 핥거나 계속 뛰는 등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아이들의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또, 메타버스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예도 있죠. 2021년에 미국에서 한 여성이 메타버스에서 자신의 아바타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느껴 신고한 일이 있었어요. 가상공간에서 겪은 경험의 영향을 실제로 고스란히 받게 되는 거죠. 이렇듯, 어떤 존재자를 단순한 도구로 보게 되면 인간의 심성이나 관계 맺기에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공존 그리고 주체성 확립
Q. 그렇다면 AI와 공존하면서도 인간의 주체성을 확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가 필요하죠. 지식과 지혜는 분명히 다른 차원입니다. 지식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며, 누적·집중되고 폭발적으로 팽창합니다. 지식은 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반면, 지혜는 지식과 다르게,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는 겁니다. 지식 중에서 어떤 것들이 유용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은 쌓는 것이지만, 지혜는 쌓인 지식을 보고 반성과 성찰을 하는 것이죠.
한마디로, 지혜는 메타 인지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가치와 관련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지혜의 중요성
Q. 특별히 이 시대에 지혜가 더 중요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AI는 ‘지식의 총화’(모든 지식을 모아놓은 것)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이 지식의 차원에서는 AI와 경쟁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SCI급 논문 3억 건을 빅데이터화한 후 학습시킨 학술 AI가 나왔습니다. SCI(Science Citation Index)에 등재된 학술지들은 각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저널로, 여기에 논문이 게재되면 높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데요. 예를 들어, 과학자가 블랙홀에 대해 논문을 쓰고 싶을 때, 이 AI는 지금까지의 블랙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요약해서 즉시 이런 양질의 논문의 반을 작성해주죠.
이처럼 지식의 영역에서 AI를 따라가는 것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설 자리는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는, 지식이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지 안내해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지혜로 무장된 선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간 중심이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중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AI와 동등한 관계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적합한 인재 양성
Q. 청소년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적합한 인재로 성장하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청소년들에게는 지식 중심의 교육보다는 감성 교육이 필요해요. 저는 이것을 ‘관계 지향적 감성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개인적인 감성뿐만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성을 중요시하는 교육이죠. 예를 들어, 도덕 감정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 등을 체험을 통해 진정으로 인지하고 배워야 해요. 또한, AI와 같은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에서도 감성 교육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반려 감성’이라고 부르는데요.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반려자로 여기는 감성이죠. 온디바이스 AI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AI가 우리의 반려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AI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거예요.
새로운 문화를 위한 인문의 역할
Q.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고와 배타적 휴머니즘이 현재의 전 지구적 위기를 초래했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환해야 할까요? 그리고 인문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탈 인간중심적 사고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자연과 생명체들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저는 뉴휴머니즘이라 부릅니다. 뉴휴머니즘 문화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포용과 상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먼저, 자연과 생명체들을 단순한 자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그들과 상호작용하고 공존하는 관계를 맺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 인문을 통해 인간과 자연, 인간과 AI, 인간과 인공물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도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지 않고, 함께 상호작용하며 발전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 거죠.
또한, 관계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도덕적 감정을 키워야 합니다. 체험 교육과 도덕적 인지 프로젝트를 통해 이것을 실현할 수 있어요. 그리고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의 통합적 연구를 통해 관계 지향적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지요. 동양 사상의 관계 중심적 접근은 현대 사회에서의 상호연결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인문적 연구와 철학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윤리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사회적, 법적 체계에 반영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뉴휴머니즘을 실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Q. 그렇다면 인문을 통해 건강한 AI 문화산업 서비스를 제공할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건강한 AI 문화산업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문은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텐데요. 첫째, 반려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반려자로 인식하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온디바이스 AI를 활용하여 AI가 사용자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둘째, 도덕적 AI 개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AI 알고리즘 개발자들과 협력하여 도덕적 AI 솔루션을 만들고, 이를 통해 AI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셋째, 감성 인지 프로젝트를 통해 AI와의 감성적 상호작용을 체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AI와의 관계 속에서 도덕적 감정과 반려 감정을 인지하고 체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요. 이를 통해 AI와의 관계를 단순한 도구적 사용에서 벗어나 상호 존중과 배려의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넷째, AI 문화산업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AI와의 상호작용을 주제로 한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을 통해 대중들이 AI와의 건강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콘텐츠는 AI를 긍정적이고 반려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방안들은 모두 인문의 깊은 연구와 철학적 성찰을 토대로 함으로써, AI와 인간이 상생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묻고 인문이 답하다' 기획 인터뷰
➀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방법 - 최인철 교수
➁ 새로운 시대의 탄생 - 최동호 시인
➂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새로운 문화 - 이중원 교수 현재 글
➃ 인간과 인공지능의 건강한 관계 - 김재인 교수
➄ 인문학을 접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 - 한덕현 교수
인터뷰 · 정리
KBS, EBS, CBS 방송작가로 일했고, 작가 및 프리랜서 출판 기획 편집자로 일해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폐암 4기 김선욱의 180일 국토 종단기>(민음인), 다큐멘터리 방송을 책으로 옮긴 <EBS 다큐프라임 생사기획 대탐구 “죽음”>(책담), <EBS 다큐프라임 “감각의 제국”>(생각의길) 등이 있다.
댓글(0)
새로운 시대의 탄생
이진경
인간과 인공지능의 건강한 관계
이진경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