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피에르라고 불리는 남자가 있다. 거지 같은 행색이지만 어딘가 근사하다는 느낌이 드는 그는 알고 보면 명품만 입고, 세련되게 웃으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섬세함과 동시에 장대한 기골을 지녔으며,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모두 그에게 매혹된다. 당연한가? 이 소설의 ‘나’는 그렇다고 쓴다. 삼십 대 중반인 내가 대학생 때 강사였던 장 피에르를 떠올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와 함께 담배를 피우는 사이. 점심시간에 이런저런 말들을 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별 의미 없지만 묘하게 평등한 분위기로 잡담을 나누었다.” 둘은 평등하지 않나? 내가 다니는 연구소 안의 위계로 보면 그렇다. 그는 박사학위가 있는 연구원이고 나는 계약직 행정사무 보조이므로. 스타일이 좋고, 과묵하지도 수다스럽지도 않고, 한번 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마와 눈썹을 가진 그에게 나는 정체 모를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제대로 전달된 적도 없는 나의 감정은 나도 모르게 모멸당하게 된다. 그와 나를 엮으려는 연구소 사람들의 농담에 그가 아주 부드러운 태도로 언짢음을 표했던 것. 그 후, 함께 담배를 피우던 그가 연구소 너머 대학 캠퍼스를 보면서 말한다. 스물한 살짜리를 유혹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라고. “스물 한 살요?”라고 나는 되묻는다. 그리고 스무 살 무렵의 내게 있었던 일들과 장 피에르를 만났던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그가 장 피에르를 닮았다고 생각하며. 그가 단지 ‘그’인 것인 당연한 일이다. 그는 또 다른 장 피에르이기에.
유희적인 연애를 추구하는 장 피에르이기에 비참하고 낭만적인 방식으로 죽는 편이 그에게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왔지만, SNS를 검색해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장 피에르는 지금도 건재하다. 자살하지도, 이혼당하지도 않았으며 승승장구해서 정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연애 중이다. 나는 ‘장 피에르’들에게 과거에도, 현재에도 모멸당했다. 과거의 나와 달리 현재의 나는 그 감정을 의미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다르지만.
한은형/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거짓말』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를 썼으며 테마 소설집 『도시와 나』, 『안녕, 평양』 등에도 작품을 실었다. 에세이로는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오늘도 초록』,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등의 책을 썼다.
ㅣ여성 서사들, 다른 조명등으로 다른 사랑을 비추다
한 이십 년 전쯤이다. 학생들에게 로맨스 각본을 한편씩 써보라고 제안했다. 특히 '첫'과 관련한 글을 부탁했다.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 만났을 때, 처음 손을 잡거나 키스할 때, 첫 섹스를 할 때, 처음 같이 술을 마실 때,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날 때, 처음으로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홀로 떠난 여행에서 돌아오는 그를 기다릴 때, 처음으로 다툼이 있을 때 등등.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 숙제를 받고 나서 학생들은 부지런히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찾아 나섰다. 그쪽으로 이미 지식이 있는 학생들은 힘들이지 않고 바로 ‘그 영화’, ‘그 드라마’, 혹은 ‘그 소설’로 직행하기도 했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어떤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참조해야 하는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너무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기존의 시나리오 말고, ‘당신의 사랑이니까 당신이 원하는 그때 그 장면’을 그려야 한다고, 상상력을 최대로 펼쳐 보라고 강조했지만, 학생들이 그나마 제시한 로맨스는 전형적인 패턴 언저리를 맴돌았다. 내가 부탁했던 ‘첫’의 장면들은 대략 모든 로맨스가 멈추곤 하는 주요 정거장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제시한 장면 묘사는 특이성이나 놀라움보다 상식이라는 안전을 택한 것처럼 서로 비슷했다.
사랑
옷을 만들 때 패턴이 필요하듯이, 로맨스 장에 들어설 때 우리에겐 각본이 필요하다. ‘나만의’ 욕망에 따르려 해도, 주어진 각본이 없으면 출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참조할 무엇이 없이는 변경도, 부수고 새로 짓기도, 혹은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가능하지 않다. 가장 내밀하다고 여겨지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느끼지 않고, 표현하고/표현하지 않는데도 이렇게 참조할 수 있는 각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사랑’이 관습과 무관하지 않은 사회적 활동이고,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 관습의 문법도 바뀌어왔음을 가리킨다. 내가 어렸을 때, ‘연애, 결혼’은 개성과 자유를 원하고 실천하는 능력의 징표였다. 그리고 내가 20대였던 70년대 후반만 해도 여자가 ‘섹시’하다는 건, 도덕적 관념도 자아실현을 향한 지적 추구도 없이 ‘남자의 성적 욕망에 자신을 전시하는’ 어리석음을 방증했다. 사랑이 사회적 관습과 깊숙이 연루되어 있음은 이처럼 누구나 다 경험적으로 느껴본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을 내면에 깃든 자아의 어떤 본질로 여기는 낭만적 사랑의 관점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상대방과의 평등한 대화와 이해, 그리고 자아 검증을 통해 ‘내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식과 그에 따른 치밀한 비교와 탐색, 검증의 과정이 촘촘하게 이어지지만, 그 옆에서 또한 가장 막강한 세력을 떨치는 사랑의 시장화와 셈법은 이 ‘내 사랑’의 확신과 선택을 무한 연기하게 만든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랑의 감정과 그것을 구현하는 각본은 사회적 구성물이다. 현대에 이르러 개인의 사랑하기는 사랑, 섹스, 결혼을 상품화하는 시장의 주도적 힘에 결정적으로 구속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낭만적 사랑의 열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이 모순된 지형이 지금 현대인이 사랑의 주체가 되려 할 때 직면하게 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기존의 몇몇 주도적 각본이 사회문화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경제 환경과 사회문화적 관습 등이 만드는 특정 맥락 안에서 꾸준히 정착하며 또 변화해왔지만, 로맨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개의 젠더에 고정될 때 변화의 감지는 더디고, 변화의 파급력도 균일하지 않다.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서구를 전범 삼아 빠르게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의 흐름과 한국 특유의 젠더 문화 속에서 한국 사회가 제시하거나 추동하거나 용인한 ‘사랑하기’가 어떤 양태의 ‘사회문화적 활동과 관습’으로 전개되었는지 보여준다. 처음에는 ‘아직도 이런 로맨스를 쓴단 말이야?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이 일어난 게 언젠데?’ 하며 의아해하던 독자도 이내, 이 글이 그동안의 관행을 거리 두고 되새김질하는 치밀한 인용구들의 모자이크라는 걸 알고 안도한다. 그러나 자신이 한때 참조했던 각본이 이토록 억지스럽고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에 부르르 몸을 떨기도 한다. 채 다 떨어지지 않는 수치스러움에 기분이 껄끄럽다. 특히 열정을 갖고 문화예술의 감수성을 키우며 자신을 성장시켰던 여성이라면 이 이중적 감정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심지어 혐오하는 사람에게 성적 폭력을 당하면서 쾌락을 느낄 때 갖게 되는 감정으로 부끄러움을 정의한 바 있는데, 전하영의 글을 읽을 때, 먼지처럼 슬쩍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수치스러움은 이런 모순된 욕망의 기제와 관련될 것이다. 그런데, 저 ‘프랑스풍’ 글로벌 예술 취향의 아우라로 이곳 한국 로컬에서 예술가 지식인의 지위와 명망을 누리는 ‘장 피에르들’과 그들의 후예들 역시 이런 수치스러움을 느낄까? 아니면, 이런 수치스러움은 욕망의 젠더 구도가 강제하는 바대로 장 피에르를 연민하고 존경/동경하며 기꺼이 그의 뮤즈가 되면서 문화예술 공동체에 소속되었(다고 믿었)던 여성들만의 몫인가? 서구식 근대화를 ‘그 근대화’로 믿고 추진한, 그리고 탈식민 논의가 매우 좁은 민족주의 노선에 갇혀있던 한국 사회에서 유럽, 특히 프랑스는 세련된 근대화의 멋과 취향을 전수해줄 모델로 오랫동안 권위를 누렸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그 권위의 후광 아래서 ‘독재 체제와 불화하는 섬세한 영혼의 지식인’이라는 아우라를 권력화한 남자들, 저 ‘장 피에르들’의 연기 기술을 거의 세밀화 수준으로 묘사한다.
여성과 남성
이 작품을 떠나 현실로 돌아와 살펴보면, 한국 가부장제 근대화의 부침 속에서 특별한 남성성의 아우라를 문화적으로 권력화한 남자 계보에는, 서구 자본주의의 신식민화에 ‘전통 민중문화’의 힘으로 맞서려 했던 문화예술인들이 있다. 모든 문화예술 영역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던 이 두 계보는 모두 자신을 자유로운 개인으로 성장시키고자 열심이었던 여성들의 열정을 자양분으로 삼으며, 착취하고 배신하며 권력을 누렸다. 젠더 간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교류 중 가장 밀도가 높고 자아 형성이나 이해에 핵심인 ‘사랑의 감정’은 사회활동일 뿐 아니라 강력한 문화예술 활동이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것과 무엇이 진정한 문화예술인지 알려주고 또 실천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분리되기 어렵다. 여자든 남자든 이 구조 안에서 문화예술인이 된다. 이 앎과 됨의 과정은 젠더화되어 있어서, 여자는 남자의 인정을 통해, 남자는 또 다른 남자의 인정을 통해 성원권을 얻는다. 그런데 이 인정은 또 특유의 방식으로 에로스 에너지의 활성화를 가져오는데, 전자는 이성애적 성애화로, 후자는 호모소셜(homosocial)한 관계로 진행된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은 여성이 ‘문화예술의 정신’이란 명목하에 얼마나 심각하게 남자 스승들, 선배들, 동료들에 의해 성적 굴욕과 불평등을 겪어야 했는가를 세세히 밝혔다.
그동안의 투쟁은 이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로 결실을 보았다. 성평등한 예술환경 조성과 예술인 권리구제 기구 등을 통해, 여성들이 성희롱과 성폭력에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평등한’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보장하려는 것이다. 물론 법 제정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는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낙관주의다. 그러나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는 젠더화된 문화예술 이해와 관행을 바꾸려는 것이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다짐을 거듭 확인하고, 현실을 반성적으로 계속 살피는 태도의 가시화인 것이다. 서사를 바꾸고, 문화예술에 관한 담론의 지형을 그야말로 성평등하고 탈식민화한 형태로 바꿔내기, 차이의 평등한 존중에서 다양성의 진실한 의미를 발견하고 발명하기를 멈출 수 없다. 이 새로운 서사들은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이며 정상’이라고 여전히 주장되고 있는 기존의 각본을, 허락되지 않은 자리에서 조명하고, 비판적으로 해체하면서 출현한다. 그만큼 놀라움과 각성을 내장하고 있다.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와 함께 『2021년 제2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글들은 바로 이 새로운 서사의 출현을 다양한 언어로 확인시킨다. 페미니즘이든, 퀴어 정치학이든, 이종(異種)간 관계 맺기든 각자가 속한 진영에서 서사를 바꾸려는 의지와 그 치열함이 중요하다. 이러한 치열함이 사랑(의 감정)과 친밀성의 언어, 그리고 문화예술하기의 언어를 새롭게 벼리는 서로 다른 위치들 사이의 힘 있는 연대를 조직할 것이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독일 RWTH Aachen 대학에서 ‘발터 벤야민의 카프카 읽기’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또 하나의 문화>와 <인권연구소 창>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예술 전반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실천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왔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노년과 질병, 아픈 몸과 돌봄 등을 여성주의 인권 관점에서 담론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이미지 페미니즘』, 『노년은 아름다워』, 『밀양을 살다』(공저),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공존을 위한 다문화』(공저), 『발터 벤야민: 모더니티와 도시』(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공역), 『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공역), 『섹슈얼리티와 공간』(공역),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 『행복의 공식,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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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소설×인문 -
김영옥
2022-12-29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책 표지 (출처: 알라딘)
장 피에르라고 불리는 남자가 있다. 거지 같은 행색이지만 어딘가 근사하다는 느낌이 드는 그는 알고 보면 명품만 입고, 세련되게 웃으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섬세함과 동시에 장대한 기골을 지녔으며,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모두 그에게 매혹된다. 당연한가? 이 소설의 ‘나’는 그렇다고 쓴다. 삼십 대 중반인 내가 대학생 때 강사였던 장 피에르를 떠올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와 함께 담배를 피우는 사이. 점심시간에 이런저런 말들을 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별 의미 없지만 묘하게 평등한 분위기로 잡담을 나누었다.” 둘은 평등하지 않나? 내가 다니는 연구소 안의 위계로 보면 그렇다. 그는 박사학위가 있는 연구원이고 나는 계약직 행정사무 보조이므로. 스타일이 좋고, 과묵하지도 수다스럽지도 않고, 한번 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마와 눈썹을 가진 그에게 나는 정체 모를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제대로 전달된 적도 없는 나의 감정은 나도 모르게 모멸당하게 된다. 그와 나를 엮으려는 연구소 사람들의 농담에 그가 아주 부드러운 태도로 언짢음을 표했던 것. 그 후, 함께 담배를 피우던 그가 연구소 너머 대학 캠퍼스를 보면서 말한다. 스물한 살짜리를 유혹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라고. “스물 한 살요?”라고 나는 되묻는다. 그리고 스무 살 무렵의 내게 있었던 일들과 장 피에르를 만났던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그가 장 피에르를 닮았다고 생각하며. 그가 단지 ‘그’인 것인 당연한 일이다. 그는 또 다른 장 피에르이기에.
유희적인 연애를 추구하는 장 피에르이기에 비참하고 낭만적인 방식으로 죽는 편이 그에게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왔지만, SNS를 검색해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장 피에르는 지금도 건재하다. 자살하지도, 이혼당하지도 않았으며 승승장구해서 정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연애 중이다. 나는 ‘장 피에르’들에게 과거에도, 현재에도 모멸당했다. 과거의 나와 달리 현재의 나는 그 감정을 의미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다르지만.
한은형/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거짓말』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를 썼으며 테마 소설집 『도시와 나』, 『안녕, 평양』 등에도 작품을 실었다. 에세이로는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오늘도 초록』,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등의 책을 썼다.
ㅣ여성 서사들, 다른 조명등으로 다른 사랑을 비추다
한 이십 년 전쯤이다. 학생들에게 로맨스 각본을 한편씩 써보라고 제안했다. 특히 '첫'과 관련한 글을 부탁했다.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 만났을 때, 처음 손을 잡거나 키스할 때, 첫 섹스를 할 때, 처음 같이 술을 마실 때,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날 때, 처음으로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홀로 떠난 여행에서 돌아오는 그를 기다릴 때, 처음으로 다툼이 있을 때 등등.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 숙제를 받고 나서 학생들은 부지런히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찾아 나섰다. 그쪽으로 이미 지식이 있는 학생들은 힘들이지 않고 바로 ‘그 영화’, ‘그 드라마’, 혹은 ‘그 소설’로 직행하기도 했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어떤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참조해야 하는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너무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기존의 시나리오 말고, ‘당신의 사랑이니까 당신이 원하는 그때 그 장면’을 그려야 한다고, 상상력을 최대로 펼쳐 보라고 강조했지만, 학생들이 그나마 제시한 로맨스는 전형적인 패턴 언저리를 맴돌았다. 내가 부탁했던 ‘첫’의 장면들은 대략 모든 로맨스가 멈추곤 하는 주요 정거장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제시한 장면 묘사는 특이성이나 놀라움보다 상식이라는 안전을 택한 것처럼 서로 비슷했다.
사랑
옷을 만들 때 패턴이 필요하듯이, 로맨스 장에 들어설 때 우리에겐 각본이 필요하다. ‘나만의’ 욕망에 따르려 해도, 주어진 각본이 없으면 출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참조할 무엇이 없이는 변경도, 부수고 새로 짓기도, 혹은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가능하지 않다. 가장 내밀하다고 여겨지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느끼지 않고, 표현하고/표현하지 않는데도 이렇게 참조할 수 있는 각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사랑’이 관습과 무관하지 않은 사회적 활동이고,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 관습의 문법도 바뀌어왔음을 가리킨다. 내가 어렸을 때, ‘연애, 결혼’은 개성과 자유를 원하고 실천하는 능력의 징표였다. 그리고 내가 20대였던 70년대 후반만 해도 여자가 ‘섹시’하다는 건, 도덕적 관념도 자아실현을 향한 지적 추구도 없이 ‘남자의 성적 욕망에 자신을 전시하는’ 어리석음을 방증했다. 사랑이 사회적 관습과 깊숙이 연루되어 있음은 이처럼 누구나 다 경험적으로 느껴본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을 내면에 깃든 자아의 어떤 본질로 여기는 낭만적 사랑의 관점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상대방과의 평등한 대화와 이해, 그리고 자아 검증을 통해 ‘내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식과 그에 따른 치밀한 비교와 탐색, 검증의 과정이 촘촘하게 이어지지만, 그 옆에서 또한 가장 막강한 세력을 떨치는 사랑의 시장화와 셈법은 이 ‘내 사랑’의 확신과 선택을 무한 연기하게 만든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랑의 감정과 그것을 구현하는 각본은 사회적 구성물이다. 현대에 이르러 개인의 사랑하기는 사랑, 섹스, 결혼을 상품화하는 시장의 주도적 힘에 결정적으로 구속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낭만적 사랑의 열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이 모순된 지형이 지금 현대인이 사랑의 주체가 되려 할 때 직면하게 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기존의 몇몇 주도적 각본이 사회문화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경제 환경과 사회문화적 관습 등이 만드는 특정 맥락 안에서 꾸준히 정착하며 또 변화해왔지만, 로맨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개의 젠더에 고정될 때 변화의 감지는 더디고, 변화의 파급력도 균일하지 않다.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서구를 전범 삼아 빠르게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의 흐름과 한국 특유의 젠더 문화 속에서 한국 사회가 제시하거나 추동하거나 용인한 ‘사랑하기’가 어떤 양태의 ‘사회문화적 활동과 관습’으로 전개되었는지 보여준다. 처음에는 ‘아직도 이런 로맨스를 쓴단 말이야?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이 일어난 게 언젠데?’ 하며 의아해하던 독자도 이내, 이 글이 그동안의 관행을 거리 두고 되새김질하는 치밀한 인용구들의 모자이크라는 걸 알고 안도한다. 그러나 자신이 한때 참조했던 각본이 이토록 억지스럽고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에 부르르 몸을 떨기도 한다. 채 다 떨어지지 않는 수치스러움에 기분이 껄끄럽다. 특히 열정을 갖고 문화예술의 감수성을 키우며 자신을 성장시켰던 여성이라면 이 이중적 감정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심지어 혐오하는 사람에게 성적 폭력을 당하면서 쾌락을 느낄 때 갖게 되는 감정으로 부끄러움을 정의한 바 있는데, 전하영의 글을 읽을 때, 먼지처럼 슬쩍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수치스러움은 이런 모순된 욕망의 기제와 관련될 것이다. 그런데, 저 ‘프랑스풍’ 글로벌 예술 취향의 아우라로 이곳 한국 로컬에서 예술가 지식인의 지위와 명망을 누리는 ‘장 피에르들’과 그들의 후예들 역시 이런 수치스러움을 느낄까? 아니면, 이런 수치스러움은 욕망의 젠더 구도가 강제하는 바대로 장 피에르를 연민하고 존경/동경하며 기꺼이 그의 뮤즈가 되면서 문화예술 공동체에 소속되었(다고 믿었)던 여성들만의 몫인가? 서구식 근대화를 ‘그 근대화’로 믿고 추진한, 그리고 탈식민 논의가 매우 좁은 민족주의 노선에 갇혀있던 한국 사회에서 유럽, 특히 프랑스는 세련된 근대화의 멋과 취향을 전수해줄 모델로 오랫동안 권위를 누렸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그 권위의 후광 아래서 ‘독재 체제와 불화하는 섬세한 영혼의 지식인’이라는 아우라를 권력화한 남자들, 저 ‘장 피에르들’의 연기 기술을 거의 세밀화 수준으로 묘사한다.
여성과 남성
이 작품을 떠나 현실로 돌아와 살펴보면, 한국 가부장제 근대화의 부침 속에서 특별한 남성성의 아우라를 문화적으로 권력화한 남자 계보에는, 서구 자본주의의 신식민화에 ‘전통 민중문화’의 힘으로 맞서려 했던 문화예술인들이 있다. 모든 문화예술 영역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던 이 두 계보는 모두 자신을 자유로운 개인으로 성장시키고자 열심이었던 여성들의 열정을 자양분으로 삼으며, 착취하고 배신하며 권력을 누렸다. 젠더 간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교류 중 가장 밀도가 높고 자아 형성이나 이해에 핵심인 ‘사랑의 감정’은 사회활동일 뿐 아니라 강력한 문화예술 활동이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것과 무엇이 진정한 문화예술인지 알려주고 또 실천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분리되기 어렵다. 여자든 남자든 이 구조 안에서 문화예술인이 된다. 이 앎과 됨의 과정은 젠더화되어 있어서, 여자는 남자의 인정을 통해, 남자는 또 다른 남자의 인정을 통해 성원권을 얻는다. 그런데 이 인정은 또 특유의 방식으로 에로스 에너지의 활성화를 가져오는데, 전자는 이성애적 성애화로, 후자는 호모소셜(homosocial)한 관계로 진행된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은 여성이 ‘문화예술의 정신’이란 명목하에 얼마나 심각하게 남자 스승들, 선배들, 동료들에 의해 성적 굴욕과 불평등을 겪어야 했는가를 세세히 밝혔다.
그동안의 투쟁은 이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로 결실을 보았다. 성평등한 예술환경 조성과 예술인 권리구제 기구 등을 통해, 여성들이 성희롱과 성폭력에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평등한’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보장하려는 것이다. 물론 법 제정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는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낙관주의다. 그러나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는 젠더화된 문화예술 이해와 관행을 바꾸려는 것이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다짐을 거듭 확인하고, 현실을 반성적으로 계속 살피는 태도의 가시화인 것이다. 서사를 바꾸고, 문화예술에 관한 담론의 지형을 그야말로 성평등하고 탈식민화한 형태로 바꿔내기, 차이의 평등한 존중에서 다양성의 진실한 의미를 발견하고 발명하기를 멈출 수 없다. 이 새로운 서사들은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이며 정상’이라고 여전히 주장되고 있는 기존의 각본을, 허락되지 않은 자리에서 조명하고, 비판적으로 해체하면서 출현한다. 그만큼 놀라움과 각성을 내장하고 있다.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와 함께 『2021년 제2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글들은 바로 이 새로운 서사의 출현을 다양한 언어로 확인시킨다. 페미니즘이든, 퀴어 정치학이든, 이종(異種)간 관계 맺기든 각자가 속한 진영에서 서사를 바꾸려는 의지와 그 치열함이 중요하다. 이러한 치열함이 사랑(의 감정)과 친밀성의 언어, 그리고 문화예술하기의 언어를 새롭게 벼리는 서로 다른 위치들 사이의 힘 있는 연대를 조직할 것이다.
[소설 x 인문]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지난 글: [소설 x 인문] 정찬 <새의 시선>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독일 RWTH Aachen 대학에서 ‘발터 벤야민의 카프카 읽기’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또 하나의 문화>와 <인권연구소 창>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예술 전반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실천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왔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노년과 질병, 아픈 몸과 돌봄 등을 여성주의 인권 관점에서 담론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이미지 페미니즘』, 『노년은 아름다워』, 『밀양을 살다』(공저),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공존을 위한 다문화』(공저), 『발터 벤야민: 모더니티와 도시』(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공역), 『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공역), 『섹슈얼리티와 공간』(공역),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 『행복의 공식,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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