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이처럼 편리한 교환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철학자들은 그 본질이 이상하게 바뀌어 버렸다고 개탄했다. 돈은 실제로 쓰는 재화에 비해 작고 단단하며 따라서 많이 쌓아둘 수 있다. 그러면 때마다 교환에 써버리기보다 되도록 많은 돈을 벌어서 집에 쌓아주는 게 유리하다. 시장이란.....
가을 축제, 그에 담긴 의미
10월 달력
10월, 우리나라 기준으로 공휴일이 꽤 많다. 많은 경우 추석 명절이 이때 들며, 개천절(10월 3일)과 한글날(10월 9일)도 있다. 외국도 비슷한 편이다. 추수감사절이 미국은 11월에 오지만 캐나다는 10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다. 독일도 10월 초에 추수감사제(에언테당크페스트)가 있고, 뮌헨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10월 축제(옥토버페스트)’를 열어 흥겨운 나날을 보낸다.
이런 축제들은 대체로 단지 즐겁게 놀자는 의미만 있지는 않다. ‘추수를 감사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는’ 의미, 즉 한 해 동안의 수확을 거둬들이고, 얼마나 얻었는지 셈하고, 다가올 겨울을 위해 저장해 두는 과정이 그 배경인 것이다. 농사 위주의 전근대에는 그 수확이란 곡식이었지만, 현대인에게는 화폐다. 그래서 이번에는 화폐와 금융의 역사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교환을 보다 편리하게 하라!
교환
태초에 교환이 있었다.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체력, 재능, 주변 환경 등등)으로는 얻을 수 있는 재화의 한계가 너무 심하기에, 남는 것과 부족한 것을 교환하자는 생각이 우리 원시인 조상들의 머리에 떠올랐고, 그래서 사람들은 ‘경제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물물교환이 오래 이루어지다, 좀 더 편리하게, 공정하게 교환하자는 생각도 떠올랐다. 내 장작 한 꾸러미와 저쪽의 생선 열 마리를 교환하면 수지가 맞나? 다른 사람은 열두 마리 준다는데? 손해 보지 말자는 생각에 이리저리 다니며 흥정해서 가장 많이 내겠다는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생선 크기가 좀 작은 것 같다. 이걸 따지니까 그쪽은 내 장작 개수를 따지고 앉아 있다! 거래가 이뤄질 때까지 물건을 지고 다녀야 하는 일도 힘들고, 그 사이에 물건이 상하거나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팔고 싶은 물건을 일정한 가치를 갖는다고 모두가 정한 물건으로 교환한 뒤, 그 물건으로 사고 싶은 물건을 사면 된다. 그런 물건은 집에 쌓아두고 있으면 내게 팔 만한 물건이 없을 때도 물건을 살 수 있으니 더욱 편리하다. 그래서 화폐가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3천 년쯤에 이 지역의 고대에 두루 통용된 ‘셰켈’이 처음 나왔다고 하며, 다른 문화권에서는 조개껍데기를 주로 화폐로 썼다.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물건이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자면 더 단단할 필요가 있었다. 그 필요를 충족해 주는 금속 화폐는 기원전 7세기쯤 소아시아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교환의 수단에서 축적의 대상으로
편리한 교환 수단인 돈
돈은 이처럼 편리한 교환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철학자들은 그 본질이 이상하게 바뀌어 버렸다고 개탄했다. 돈은 실제로 쓰는 재화에 비해 작고 단단하며 따라서 많이 쌓아둘 수 있다. 그러면 때마다 교환에 써버리기보다 되도록 많은 돈을 벌어서 집에 쌓아주는 게 유리하다. 시장이란 물건이 귀해지면 값이 오르는 법이라,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모아두는 일이 일반화되면 돈 가치는 점점 올라간다. 즉 특별히 재화를 얻으려고 나무를 베거나 농사를 짓거나 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벌어주게 되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돈이 이처럼 교환이 아닌 축적의 대상이 되는 일을 부자연스럽다 보았다. 더더욱 부자연스러운 일은 돈 놓고 돈 먹기, 즉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이다. 이런 ‘금융’은 아무런 실물을 생산하지 않은 사람이 가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일종의 도둑질이며 따라서 사악하다 여겨졌다. 그래서 중세 내내 기독교회는 대금업을 금지했으며, 유대인이나 집시처럼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만 대금업을 할 수 있었다. 그에 따른 의심과 비난도 그들이 전담해야 했지만.
하지만 이익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물물교환에서 금융업까지 이어져 온 인간의 ‘경제사상’은 멈추지 않았다. 대금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 은행은 이미 고대에 세계 여러 문명에 존재했고, 14세기 이탈리아, 15세기 독일 등에서는 메디치나 푸거처럼 은행을 운영하여 거대한 부를 쌓은 가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무려 교황이나 황제까지 고객으로 삼고, 당시 유럽의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17세기로 넘어오면서는 일찍이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 이런 일이’ 차원으로 소개했던 원나라의 종이돈이 ‘은행권’, 즉 해당 은행이 지급보증을 하는 화폐를 만들기에 보다 편리하다는 생각에 채택되고 금화, 은화와 함께 쓰이게 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신용화폐의 등장
20세기, 전 세계가 자본주의의 틀에 하나로 묶인 시대에 화폐와 금융은 또 다른 전환을 맞이한다. ‘실제 가치와 무관한, 단지 표시된 신용만으로 통용되는 화폐’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지폐는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도 없다. 하지만 일정한 금화나 은화와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보증되고, 그 금화나 은화는 설령 보증하는 은행이나 정부가 파산한다고 해도 녹여서 활용할 수 있기에 안심하고 쓸 수 있다. 그런데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금융위기, 신용위기가 빈번히 일어나며, 급기야 세계 대공황까지 벌어지게 되자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글로벌한 경제-금융 스탠더드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서 ‘브래튼우즈 체제’가 나왔다. 1944년, 미국의 브래튼우즈에 모인 44개국이 협정을 맺고 ‘금 1온스=35달러로 화폐가치를 고정한다. 다른 통화는 달러에 고정한다’는 금환본위제도를 수립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었는데,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미국에 막대한 금이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달러화를 금으로 교환해줄 수 있다는 조건에서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여기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달러의 수요에 비해 금의 보유고가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1971년, 미국은 ‘닉슨 조치’로 더 이상 금을 달러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세계경제는 대공황 이상의 위기를 맞이하는가 했으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튼튼하다, 따라서 굳이 당장 금으로 교환하기 어렵다고 해서 달러의 가치가 소멸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서 그런 위기는 모면했다. 이제 달러와 세계 각국의 화폐는 단지 신용만으로 통용되게 된 것이다. 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 그 뒤로 미국은 실물과 아무 상관 없이 아무 때나 달러를 찍어냄으로써 자국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부터의 금융위기란 곧 달러화 보유가 부족해진 국가의 위기가 되었다. 19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처럼.
돈, 이대로 좋은가? 돈, 어디로 갈 것인가?
이제 세상은 금융을 축으로 돌아간다.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에서 금리를 영점 몇 퍼센트 올린다, 내린다는 뉴스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번다. ‘어릴 때부터 금융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먹힐 만큼 이 지구상에 금융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추세에 대한 의문과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화폐가 교환이 아닌 축적의 대상이 되면서 자신의 인생을 돈 버는 데 갈아 넣는 ‘화폐물신성’을 비판했다. 레닌은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발전 형태가 금융자본주의이며, 이것이 극에 이르고 나면 멸망이 올 것이라고 보았다. 아마르티아 센은 금융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비판하고, 경제란 본래 더불어 잘살자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에 실질적인 기여가 별로 없는 금융가들이 사회의 빛과 소금들보다 훨씬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현실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한다.
가상화폐
그럼에도 21세기에는 또 다른 돈의 얼굴이 불거져 나왔다. 20세기 말부터 게임 등에서 통용되던 가상화폐가 실제 화폐의 영역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은행 이자나 주식의 수익은 하찮다며,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 벼락거지가 되는 사람이 흔해졌다. 이 가상화폐란 어떤 국가나 은행의 지급보증을 받지 않는다. 즉 실물가치는 물론 신용도 없는 화폐인 것이다. 따라서 ‘화폐’라고 부를 수도 없는 투기의 수단일 뿐이라고도 한다. 반면 미래의 화폐는 모두 이런 형태가 되리라고 보기도 한다.
인간의 ‘경제하려는 의지’는 앞으로도 새로운 형태의 화폐와 금융을 고안해낼 것이다. 하지만 옛날, 재산이라고 하면 땀 흘려 키워내고 손을 직접 만지며 거두던 것일 때, 노동의 보람과 자연의 고마움, 이웃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축제로 풀어내던 때, 경제는 보다 ‘인간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인간적인 성격 또한 담아내는 금융경제, 우리는 그것을 고민하고, 제도화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10월 : 화폐와 금융'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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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 화폐와 금융
-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 -
함규진
2022-10-31
돈은 이처럼 편리한 교환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철학자들은 그 본질이 이상하게 바뀌어 버렸다고 개탄했다. 돈은 실제로 쓰는 재화에 비해 작고 단단하며 따라서 많이 쌓아둘 수 있다. 그러면 때마다 교환에 써버리기보다 되도록 많은 돈을 벌어서 집에 쌓아주는 게 유리하다. 시장이란.....
가을 축제, 그에 담긴 의미
10월 달력
10월, 우리나라 기준으로 공휴일이 꽤 많다. 많은 경우 추석 명절이 이때 들며, 개천절(10월 3일)과 한글날(10월 9일)도 있다. 외국도 비슷한 편이다. 추수감사절이 미국은 11월에 오지만 캐나다는 10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다. 독일도 10월 초에 추수감사제(에언테당크페스트)가 있고, 뮌헨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10월 축제(옥토버페스트)’를 열어 흥겨운 나날을 보낸다.
이런 축제들은 대체로 단지 즐겁게 놀자는 의미만 있지는 않다. ‘추수를 감사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는’ 의미, 즉 한 해 동안의 수확을 거둬들이고, 얼마나 얻었는지 셈하고, 다가올 겨울을 위해 저장해 두는 과정이 그 배경인 것이다. 농사 위주의 전근대에는 그 수확이란 곡식이었지만, 현대인에게는 화폐다. 그래서 이번에는 화폐와 금융의 역사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교환을 보다 편리하게 하라!
교환
태초에 교환이 있었다.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체력, 재능, 주변 환경 등등)으로는 얻을 수 있는 재화의 한계가 너무 심하기에, 남는 것과 부족한 것을 교환하자는 생각이 우리 원시인 조상들의 머리에 떠올랐고, 그래서 사람들은 ‘경제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물물교환이 오래 이루어지다, 좀 더 편리하게, 공정하게 교환하자는 생각도 떠올랐다. 내 장작 한 꾸러미와 저쪽의 생선 열 마리를 교환하면 수지가 맞나? 다른 사람은 열두 마리 준다는데? 손해 보지 말자는 생각에 이리저리 다니며 흥정해서 가장 많이 내겠다는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생선 크기가 좀 작은 것 같다. 이걸 따지니까 그쪽은 내 장작 개수를 따지고 앉아 있다! 거래가 이뤄질 때까지 물건을 지고 다녀야 하는 일도 힘들고, 그 사이에 물건이 상하거나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팔고 싶은 물건을 일정한 가치를 갖는다고 모두가 정한 물건으로 교환한 뒤, 그 물건으로 사고 싶은 물건을 사면 된다. 그런 물건은 집에 쌓아두고 있으면 내게 팔 만한 물건이 없을 때도 물건을 살 수 있으니 더욱 편리하다. 그래서 화폐가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3천 년쯤에 이 지역의 고대에 두루 통용된 ‘셰켈’이 처음 나왔다고 하며, 다른 문화권에서는 조개껍데기를 주로 화폐로 썼다.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물건이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자면 더 단단할 필요가 있었다. 그 필요를 충족해 주는 금속 화폐는 기원전 7세기쯤 소아시아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교환의 수단에서 축적의 대상으로
편리한 교환 수단인 돈
돈은 이처럼 편리한 교환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철학자들은 그 본질이 이상하게 바뀌어 버렸다고 개탄했다. 돈은 실제로 쓰는 재화에 비해 작고 단단하며 따라서 많이 쌓아둘 수 있다. 그러면 때마다 교환에 써버리기보다 되도록 많은 돈을 벌어서 집에 쌓아주는 게 유리하다. 시장이란 물건이 귀해지면 값이 오르는 법이라,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모아두는 일이 일반화되면 돈 가치는 점점 올라간다. 즉 특별히 재화를 얻으려고 나무를 베거나 농사를 짓거나 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벌어주게 되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돈이 이처럼 교환이 아닌 축적의 대상이 되는 일을 부자연스럽다 보았다. 더더욱 부자연스러운 일은 돈 놓고 돈 먹기, 즉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이다. 이런 ‘금융’은 아무런 실물을 생산하지 않은 사람이 가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일종의 도둑질이며 따라서 사악하다 여겨졌다. 그래서 중세 내내 기독교회는 대금업을 금지했으며, 유대인이나 집시처럼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만 대금업을 할 수 있었다. 그에 따른 의심과 비난도 그들이 전담해야 했지만.
하지만 이익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물물교환에서 금융업까지 이어져 온 인간의 ‘경제사상’은 멈추지 않았다. 대금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 은행은 이미 고대에 세계 여러 문명에 존재했고, 14세기 이탈리아, 15세기 독일 등에서는 메디치나 푸거처럼 은행을 운영하여 거대한 부를 쌓은 가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무려 교황이나 황제까지 고객으로 삼고, 당시 유럽의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17세기로 넘어오면서는 일찍이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 이런 일이’ 차원으로 소개했던 원나라의 종이돈이 ‘은행권’, 즉 해당 은행이 지급보증을 하는 화폐를 만들기에 보다 편리하다는 생각에 채택되고 금화, 은화와 함께 쓰이게 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신용화폐의 등장
20세기, 전 세계가 자본주의의 틀에 하나로 묶인 시대에 화폐와 금융은 또 다른 전환을 맞이한다. ‘실제 가치와 무관한, 단지 표시된 신용만으로 통용되는 화폐’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지폐는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도 없다. 하지만 일정한 금화나 은화와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보증되고, 그 금화나 은화는 설령 보증하는 은행이나 정부가 파산한다고 해도 녹여서 활용할 수 있기에 안심하고 쓸 수 있다. 그런데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금융위기, 신용위기가 빈번히 일어나며, 급기야 세계 대공황까지 벌어지게 되자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글로벌한 경제-금융 스탠더드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서 ‘브래튼우즈 체제’가 나왔다. 1944년, 미국의 브래튼우즈에 모인 44개국이 협정을 맺고 ‘금 1온스=35달러로 화폐가치를 고정한다. 다른 통화는 달러에 고정한다’는 금환본위제도를 수립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었는데,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미국에 막대한 금이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달러화를 금으로 교환해줄 수 있다는 조건에서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여기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달러의 수요에 비해 금의 보유고가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1971년, 미국은 ‘닉슨 조치’로 더 이상 금을 달러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세계경제는 대공황 이상의 위기를 맞이하는가 했으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튼튼하다, 따라서 굳이 당장 금으로 교환하기 어렵다고 해서 달러의 가치가 소멸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서 그런 위기는 모면했다. 이제 달러와 세계 각국의 화폐는 단지 신용만으로 통용되게 된 것이다. 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 그 뒤로 미국은 실물과 아무 상관 없이 아무 때나 달러를 찍어냄으로써 자국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부터의 금융위기란 곧 달러화 보유가 부족해진 국가의 위기가 되었다. 19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처럼.
돈, 이대로 좋은가? 돈, 어디로 갈 것인가?
이제 세상은 금융을 축으로 돌아간다.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에서 금리를 영점 몇 퍼센트 올린다, 내린다는 뉴스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번다. ‘어릴 때부터 금융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먹힐 만큼 이 지구상에 금융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추세에 대한 의문과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화폐가 교환이 아닌 축적의 대상이 되면서 자신의 인생을 돈 버는 데 갈아 넣는 ‘화폐물신성’을 비판했다. 레닌은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발전 형태가 금융자본주의이며, 이것이 극에 이르고 나면 멸망이 올 것이라고 보았다. 아마르티아 센은 금융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비판하고, 경제란 본래 더불어 잘살자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에 실질적인 기여가 별로 없는 금융가들이 사회의 빛과 소금들보다 훨씬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현실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한다.
가상화폐
그럼에도 21세기에는 또 다른 돈의 얼굴이 불거져 나왔다. 20세기 말부터 게임 등에서 통용되던 가상화폐가 실제 화폐의 영역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은행 이자나 주식의 수익은 하찮다며,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 벼락거지가 되는 사람이 흔해졌다. 이 가상화폐란 어떤 국가나 은행의 지급보증을 받지 않는다. 즉 실물가치는 물론 신용도 없는 화폐인 것이다. 따라서 ‘화폐’라고 부를 수도 없는 투기의 수단일 뿐이라고도 한다. 반면 미래의 화폐는 모두 이런 형태가 되리라고 보기도 한다.
인간의 ‘경제하려는 의지’는 앞으로도 새로운 형태의 화폐와 금융을 고안해낼 것이다. 하지만 옛날, 재산이라고 하면 땀 흘려 키워내고 손을 직접 만지며 거두던 것일 때, 노동의 보람과 자연의 고마움, 이웃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축제로 풀어내던 때, 경제는 보다 ‘인간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인간적인 성격 또한 담아내는 금융경제, 우리는 그것을 고민하고, 제도화해야 하지 않을까.
10. 10월 : 화폐와 금융
- 지난 글: 9. 9월, 책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10월 : 화폐와 금융'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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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새의 시선>
박은미
록키 호러 픽쳐 쇼, 너무나 인간적인, 너무나 윤리적인
김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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