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제작이 확정된 <지금 우리 학교는>(2022)은 효산고등학교에서 시 전체로 확산되는 좀비 바이러스와 감염된 좀비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학생과 교사, 부모 등이 사투를 벌이는 드라마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넷플릭스에서 전세계에 송출되자마자 <오징어 게임>(2021), <지옥>(2021)에 이어 세 번째로 글로벌 1위를 차지한 국내 넷플릭스 드라마가 되었다.
또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킹덤Ⅰ>(2019), <킹덤Ⅱ>(2020)와 <킹덤>의 프리퀄인 <아신전>(2021)을 뒤따라 이른바 K-좀비의 진화를 잇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구하러 오지 않는 어른과 기성세대의 무책임, 생존지상주의와 학교폭력, 친구들의 우정과 배신 등이 주요한 스토리를 이루는 이 드라마에서 정작 흥미를 끄는 대목은 따로 있다. 주인공 이청산(윤찬영 분)은 학교에 좀비가 퍼지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부산행이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영화 <부산행> 포스터 (출처: 네이버영화)
‘부산행이다’. 허구의 드라마에서 K-좀비의 시작을 알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을 언급한 것이다. 허구물에서 다른 허구물을 언급하는 경우는 종종 있고, 그런 경우는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실재감을 높이거나 허구물의 허구성을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다른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좀비가 왜 학교에 나와. 영화에 나와야지.” 드라마 속의 이 짤막한 대사들은 현재 한국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자기 반영성과 장르적 확장성의 어떤 단계를 환기한다. 장르도 생명체만큼이나 진화의 한 정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한다. 하나의 장르가 자신의 장르적 정체성을 인지한다는 것은 장르의 지속성과 생산적인 자기분화를 예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K-좀비'라는 명명은 'K-컬처'만큼이나 단순히 외국에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널리 알려지고, 수용되며, 재생산되는 양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K-좀비는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지속과 확장 가능성을 숙고하는 명명으로 간주해야 한다. 진화의 산물이 대부분이 그렇듯이, 장르적 지속성과 확장성을 위한 고려가 없거나 불충분하다면 K-좀비 또한 진화의 운명인 멸종을 거스르기 힘들 것이다. 제아무리 ‘TV everwhere’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송출되더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학교는>의 주인공이 언급한 좀비 아포칼립스물이 하필이면 <부산행>이라는 사실도 재미있게 된다.
K-좀비물은 이제 전지구적으로 수출되고, 향유되며, 재생산을 기다리는 문화산업이 될 정도로 한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인에도 친숙해졌다. <킹덤> 시리즈에 등장하는 조선의 사대부 등이 쓰는 온갖 종류의 갓은 ‘오마이 갓’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인기를 불러일으켰으며, 좀비가 된 왕이 거주하는 궁궐과 배경을 이루는 사계(四季)의 수려한 이미지도 ‘갓’ 못지 않게 이목을 끌었다. 게다가 2020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팬데믹의 재난과 공포는 K-좀비물의 전지구적인 전염을 거들었다. 그런데 좀비는 원래 한국인에게는 낯선 괴물이 아닌가.
드라마 <킹덤>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천만 명 넘는 관객을 이끈 <부산행>의 포스터에는 정작 ‘좀비’라는 단어가 없다.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적 명칭이 붙어 있을 뿐이다. 만일 <부산행>의 포스터에 ‘좀비’가 들어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부산행>은 좀비가 일으키는 스펙터클한 재난과 그에 대한 극복의 장치로 유서 깊은 가족서사의 변이를 성공적으로 창출해냈다. 그리하여 19세기 카리브해 연안에서 부두교의 흑마술에 걸려 밤낮없이 일하는 노예를 가리키는 줌비(zumbi)는 1960년대 미국의 하위문화에서 사람을 뜯어먹고 쇼핑센터를 어슬렁거리는 탐욕스러운 소비자인 좀비(zombie)라는 떼괴물(mob-monster)로 변이했다가 이제는 빠르게 뛰고, 변하며, 어딘지 모르게 화가 잔뜩 나 있는 표정을 가진 감염된 생명체로 한국에도 상륙해 진화를 거듭하는 것이다.
ㅣ외래의 플롯, 지역적인 형식과 소재
장르는 외래적 플롯과 지역적인 형식 그리고 지역적인 소재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종은 낯선 환경 속에서 개체를 분화하고 서식지에 적응하는 등 차츰 진화를 거듭해나간다. 좀비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좀비는 서양의 흡혈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늑대인간처럼 외래종 괴물이지만 그들과 다르게 성문화된 원본이 없는 전승과 번역의 괴물이기도 하다. 좀비는 카리브해의 줌비가 그렇듯이 소문의 괴물이고, 소문만큼이나 확산이 빠른 잠재력을 내포하는 괴물이다.
카리브해에서 태어난 줌비가 미대륙을 점령한 좀비로 변해 <월드워 Z>(2013)처럼 세계로 확산되는 떼괴물로 번역되는데 한 세기 걸렸다.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등이 수 세기가 지나도록 자신이 태어난 문화적 고향의 언저리를 홀로 고수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각기병 걸린 헐벗은 몸의 이미지와는 달리 좀비는 매우 유연한 괴물이다. 좀비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괴물과도, 예컨대 최루성 눈물의 가족서사나 사극과도, 한국의 토착적인 원귀(冤鬼)의 복수와 원한이라는 소재와도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다.
영화 <월드워Z>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예를 들면 <부산행>에 등장하는 좀비는, 21세기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인 <28일 후>(2002)처럼,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듯한 화난 표정과 빠른 변이 및 기동성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그리 한국적이지는 않다. 좀비는 처음부터 입에서 입으로 그 존재가 옮겨가는 미디어적 확장성을 지닌 괴물이었다. 매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드라큘라의 움직임을 시시각각으로 파악해 적어내는 타자기와 전보(傳報)라는, 수기(手記)를 대신하는 이행기 미디어에 의해 그 귀족 괴물이 제압되는 동시에 확산되는 과정으로 소설 『드라큘라』(1897)를 독해했다. 드라큘라는 뉴미디어에 의해 처단되지만, 바로 그 미디어에 보존되고 계속 부활한다. 이러한 견해를 참조하면 <부산행>에서 좀비의 확산을 어떻게 재현하는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빠르게 움직이는 KTX 안에 출현하여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와, TV 및 저마다 쳐다보는 핸드폰의 뉴스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정보 속 좀비의 확산을 병행해 보여준다. 확실히 이러한 괴물의 출현과 증식의 플롯은 외래적인 것이다.
좀비
그렇지만 서구적인 괴물서사의 플롯과 재현 방식의 창조적인 모방만으로 K-좀비가 우세종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부산행>의 국내적 성공은 최루성 눈물을 집단적으로 자극하고 전염시키는 한국형 서사가 한몫 거든 결과이다. <킹덤> 시즌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낯설면서도 어쩌면 참신해 보일 사극의 플롯, 사극의 소재로 등장하는 여러 세목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K-좀비의 세계적 확산에 기여했다. <킹덤>은 <부산행>과는 달리 한국인과 외국인 시청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부담을 지니고 제작되었다.
<킹덤>의 좀비는 <28일 후>를 비롯한 서양 좀비의 빠르게 변하고, 뛰며, 머리를 잘라야 죽는 속성을 답습한 결과이다. 그렇지만 <킹덤>의 좀비는 온도에 따라 움직이고 굶주린 백성의 이미지를 환기하는 지역적 특색을 내포하면서 호소력 있게 변주되었다. 또한 <킹덤>은 사극이라는 전통적 서사 형식과 유교적 치세의 내용을 서사의 밑절미로 삼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또한 머리=왕, 가슴=관료, 지체(肢體)=백성이라는, 플라톤이나 홉스의 서구적 통치모델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전경화되면서 외국인 시청자에게도 수용될 만한 내용과 형식이 된다. 외래적 플롯과 지역적인 형식의 참신한 결합에 이어 K-좀비 서사의 향방을 가늠할 만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지역적인 소재로, 앞서 언급한 갓이나 궁궐, 사계 같은 미장센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서구의 좀비 해석학에는 ‘억압된 것의 귀환’이 자리하고 있다. 좀비가 왜 무덤을 파헤치고 되살아났는가. 단단히 잘못된 사회를 이루는 단단히 잘못된 핵심(식민주의, 계급 불평등, 가부장제, 난민 문제 등)을 파헤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K-좀비는 서구 좀비 해석학을 따르면서도 그와는 다른 억압된 것의 귀환과 관련이 있다. 억울하게 죽어 원한을 품고 되살아난 여귀. 한국어 귀신은 그런 점에서 장점을 지닌 어휘이다. 귀신(鬼神)과 귀신(歸身). 원한 어린 영혼과 되살아난 시체. 말하자면 <여곡성(女哭聲)>(1986) 등 한국여귀영화의 귀신이 K-좀비의 귀신으로 얼마간 변이할 가능성을 보는 건 무리일까.
연상호의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좀비로 변해 자신을 착취한 포주를 물어뜯는 주인공 소녀의 일그러진 얼굴은 그에게 복수하는 분한(憤恨)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아신전>에서 주인공 아신(전지현 분)은 부족의 말살로 홀로 살아남아 치욕을 견디며 복수를 수행하는데 좀비 떼를 이용한다. 아신은 한국여귀의 원한 어린 표정 대신에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조선 땅과 여진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걸 죽여버리면 나도 당신들 곁으로 갈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아신의 대사 속에도 원한과 복수라는 한국 공포물의 소재가 어떻게 내리물림되는지가 엿보인다. 지금까지 K-좀비에 대해 다소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한 것 같다. 물론 K-좀비는 자화자찬의 대상만은 아니다.
ㅣ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렇다면 외래적 플롯과 지역적 형식 및 소재의 창조적인 결합이 느슨해지면 어떻게 될까. <반도>(2020)처럼 최루성 가족서사와 스펙터클 액션의 재활용이 엇박자를 이루거나, <엑시트>(2019)의 좀비적 변주인 <#살아있다>(2020)처럼 좀비는 다만 재난의 한 소재로 취급되고 말 것이다. 서사적 느슨함이 발목을 잡는 <지금 우리 학교는>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이 왜 썩고 더러우며 흉한 좀비떼가 출몰하는 드라마를 심지어 안방에서도 즐기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영화 <반도> 포스터, 영화 <#살아있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킹덤>은 시즌 1에서 2로 나아가면서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을 절로 자아낼 만한 핍진한 전개가 ‘이게 나라다’라는 소망충족을 달성하는 결말로 큰 무리 없이 안착했다. <아신전>은 국가에서 국경으로 서사의 공간을 넓히면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난민과 그녀의 원한이라는 동시대적이면서도 오래된 모티프를 다룬다. <킹덤Ⅲ>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이들의 선한 통치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자의 이유 있는 복수와 부딪히는 난맥의 장이 될 것임은 예상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어떤 K-좀비물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 2021년 12월 성균관대에서 열렸던 국제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에는 일본의 좀비 연구자 오카모토 타케시(岡本健) 교수가 참석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만들어질 수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물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오카모토 교수는 잠시 숙고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코로나19 이후에 등장할 만한 좀비 아포칼립스물은 비록 스토리가 완결되어 사태는 일단락 되더라도 해결불가능한 뭔가가 계속되고 있다는 이물감으로 가득찬 서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원폭의 재앙으로부터 탄생한 피폭괴수 고질라 장르물과 코로나 사태의 이질적인 조합을 덧붙였다. 소설의 사례로, 한국 좀비 아포칼립스의 장르적인 확장을 도모하는 작가 정명섭의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2020)와 『재생』(2022)처럼, 테라포밍과 타임루프를 활용하는 SF와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결합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평론가
복도훈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문학동네》(2005년 봄호)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대문학상(2007)을 수상했다. 저서로는《눈먼 자의 초상》,《묵시록의 네 기사》,《자폭하는 속물》,《SF는 공상하지 않는다》,《한국 창작 SF의 거의 모든 것》(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성관계는 없다》(공역)가 있다. 한국문학과 인류세,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 SF에 대한 연구와 비평,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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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K-좀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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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훈
2022-10-20
장르는 외래적 플롯과 지역적인 형식 그리고 지역적인 소재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종은 낯선 환경 속에서 개체를 분화하고 서식지에 적응하는 등 차츰 진화를 거듭해나간다.
좀비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좀비는 서양의 흡혈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늑대인간처럼 외래종 괴물이지만
그들과 다르게 성문화된 원본이 없는 전승과 번역의 괴물이기도 하다.
좀비는 카리브해의 줌비가 그렇듯이 소문의 괴물이고, 소문만큼이나 확산이 빠른 잠재력을 내포하는 괴물이다.
ㅣ장르의 이식과 진화 그리고 미래
시즌2 제작이 확정된 <지금 우리 학교는>(2022)은 효산고등학교에서 시 전체로 확산되는 좀비 바이러스와 감염된 좀비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학생과 교사, 부모 등이 사투를 벌이는 드라마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넷플릭스에서 전세계에 송출되자마자 <오징어 게임>(2021), <지옥>(2021)에 이어 세 번째로 글로벌 1위를 차지한 국내 넷플릭스 드라마가 되었다.
또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킹덤Ⅰ>(2019), <킹덤Ⅱ>(2020)와 <킹덤>의 프리퀄인 <아신전>(2021)을 뒤따라 이른바 K-좀비의 진화를 잇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구하러 오지 않는 어른과 기성세대의 무책임, 생존지상주의와 학교폭력, 친구들의 우정과 배신 등이 주요한 스토리를 이루는 이 드라마에서 정작 흥미를 끄는 대목은 따로 있다. 주인공 이청산(윤찬영 분)은 학교에 좀비가 퍼지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부산행이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영화 <부산행> 포스터 (출처: 네이버영화)
‘부산행이다’. 허구의 드라마에서 K-좀비의 시작을 알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을 언급한 것이다. 허구물에서 다른 허구물을 언급하는 경우는 종종 있고, 그런 경우는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실재감을 높이거나 허구물의 허구성을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다른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좀비가 왜 학교에 나와. 영화에 나와야지.” 드라마 속의 이 짤막한 대사들은 현재 한국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자기 반영성과 장르적 확장성의 어떤 단계를 환기한다. 장르도 생명체만큼이나 진화의 한 정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한다. 하나의 장르가 자신의 장르적 정체성을 인지한다는 것은 장르의 지속성과 생산적인 자기분화를 예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K-좀비'라는 명명은 'K-컬처'만큼이나 단순히 외국에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널리 알려지고, 수용되며, 재생산되는 양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K-좀비는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지속과 확장 가능성을 숙고하는 명명으로 간주해야 한다. 진화의 산물이 대부분이 그렇듯이, 장르적 지속성과 확장성을 위한 고려가 없거나 불충분하다면 K-좀비 또한 진화의 운명인 멸종을 거스르기 힘들 것이다. 제아무리 ‘TV everwhere’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송출되더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학교는>의 주인공이 언급한 좀비 아포칼립스물이 하필이면 <부산행>이라는 사실도 재미있게 된다.
K-좀비물은 이제 전지구적으로 수출되고, 향유되며, 재생산을 기다리는 문화산업이 될 정도로 한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인에도 친숙해졌다. <킹덤> 시리즈에 등장하는 조선의 사대부 등이 쓰는 온갖 종류의 갓은 ‘오마이 갓’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인기를 불러일으켰으며, 좀비가 된 왕이 거주하는 궁궐과 배경을 이루는 사계(四季)의 수려한 이미지도 ‘갓’ 못지 않게 이목을 끌었다. 게다가 2020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팬데믹의 재난과 공포는 K-좀비물의 전지구적인 전염을 거들었다. 그런데 좀비는 원래 한국인에게는 낯선 괴물이 아닌가.
드라마 <킹덤>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천만 명 넘는 관객을 이끈 <부산행>의 포스터에는 정작 ‘좀비’라는 단어가 없다.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적 명칭이 붙어 있을 뿐이다. 만일 <부산행>의 포스터에 ‘좀비’가 들어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부산행>은 좀비가 일으키는 스펙터클한 재난과 그에 대한 극복의 장치로 유서 깊은 가족서사의 변이를 성공적으로 창출해냈다. 그리하여 19세기 카리브해 연안에서 부두교의 흑마술에 걸려 밤낮없이 일하는 노예를 가리키는 줌비(zumbi)는 1960년대 미국의 하위문화에서 사람을 뜯어먹고 쇼핑센터를 어슬렁거리는 탐욕스러운 소비자인 좀비(zombie)라는 떼괴물(mob-monster)로 변이했다가 이제는 빠르게 뛰고, 변하며, 어딘지 모르게 화가 잔뜩 나 있는 표정을 가진 감염된 생명체로 한국에도 상륙해 진화를 거듭하는 것이다.
ㅣ외래의 플롯, 지역적인 형식과 소재
장르는 외래적 플롯과 지역적인 형식 그리고 지역적인 소재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종은 낯선 환경 속에서 개체를 분화하고 서식지에 적응하는 등 차츰 진화를 거듭해나간다. 좀비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좀비는 서양의 흡혈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늑대인간처럼 외래종 괴물이지만 그들과 다르게 성문화된 원본이 없는 전승과 번역의 괴물이기도 하다. 좀비는 카리브해의 줌비가 그렇듯이 소문의 괴물이고, 소문만큼이나 확산이 빠른 잠재력을 내포하는 괴물이다.
카리브해에서 태어난 줌비가 미대륙을 점령한 좀비로 변해 <월드워 Z>(2013)처럼 세계로 확산되는 떼괴물로 번역되는데 한 세기 걸렸다.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등이 수 세기가 지나도록 자신이 태어난 문화적 고향의 언저리를 홀로 고수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각기병 걸린 헐벗은 몸의 이미지와는 달리 좀비는 매우 유연한 괴물이다. 좀비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괴물과도, 예컨대 최루성 눈물의 가족서사나 사극과도, 한국의 토착적인 원귀(冤鬼)의 복수와 원한이라는 소재와도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다.
영화 <월드워Z>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예를 들면 <부산행>에 등장하는 좀비는, 21세기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인 <28일 후>(2002)처럼,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듯한 화난 표정과 빠른 변이 및 기동성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그리 한국적이지는 않다. 좀비는 처음부터 입에서 입으로 그 존재가 옮겨가는 미디어적 확장성을 지닌 괴물이었다. 매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드라큘라의 움직임을 시시각각으로 파악해 적어내는 타자기와 전보(傳報)라는, 수기(手記)를 대신하는 이행기 미디어에 의해 그 귀족 괴물이 제압되는 동시에 확산되는 과정으로 소설 『드라큘라』(1897)를 독해했다. 드라큘라는 뉴미디어에 의해 처단되지만, 바로 그 미디어에 보존되고 계속 부활한다. 이러한 견해를 참조하면 <부산행>에서 좀비의 확산을 어떻게 재현하는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빠르게 움직이는 KTX 안에 출현하여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와, TV 및 저마다 쳐다보는 핸드폰의 뉴스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정보 속 좀비의 확산을 병행해 보여준다. 확실히 이러한 괴물의 출현과 증식의 플롯은 외래적인 것이다.
좀비
그렇지만 서구적인 괴물서사의 플롯과 재현 방식의 창조적인 모방만으로 K-좀비가 우세종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부산행>의 국내적 성공은 최루성 눈물을 집단적으로 자극하고 전염시키는 한국형 서사가 한몫 거든 결과이다. <킹덤> 시즌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낯설면서도 어쩌면 참신해 보일 사극의 플롯, 사극의 소재로 등장하는 여러 세목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K-좀비의 세계적 확산에 기여했다. <킹덤>은 <부산행>과는 달리 한국인과 외국인 시청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부담을 지니고 제작되었다.
<킹덤>의 좀비는 <28일 후>를 비롯한 서양 좀비의 빠르게 변하고, 뛰며, 머리를 잘라야 죽는 속성을 답습한 결과이다. 그렇지만 <킹덤>의 좀비는 온도에 따라 움직이고 굶주린 백성의 이미지를 환기하는 지역적 특색을 내포하면서 호소력 있게 변주되었다. 또한 <킹덤>은 사극이라는 전통적 서사 형식과 유교적 치세의 내용을 서사의 밑절미로 삼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또한 머리=왕, 가슴=관료, 지체(肢體)=백성이라는, 플라톤이나 홉스의 서구적 통치모델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전경화되면서 외국인 시청자에게도 수용될 만한 내용과 형식이 된다. 외래적 플롯과 지역적인 형식의 참신한 결합에 이어 K-좀비 서사의 향방을 가늠할 만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지역적인 소재로, 앞서 언급한 갓이나 궁궐, 사계 같은 미장센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서구의 좀비 해석학에는 ‘억압된 것의 귀환’이 자리하고 있다. 좀비가 왜 무덤을 파헤치고 되살아났는가. 단단히 잘못된 사회를 이루는 단단히 잘못된 핵심(식민주의, 계급 불평등, 가부장제, 난민 문제 등)을 파헤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K-좀비는 서구 좀비 해석학을 따르면서도 그와는 다른 억압된 것의 귀환과 관련이 있다. 억울하게 죽어 원한을 품고 되살아난 여귀. 한국어 귀신은 그런 점에서 장점을 지닌 어휘이다. 귀신(鬼神)과 귀신(歸身). 원한 어린 영혼과 되살아난 시체. 말하자면 <여곡성(女哭聲)>(1986) 등 한국여귀영화의 귀신이 K-좀비의 귀신으로 얼마간 변이할 가능성을 보는 건 무리일까.
연상호의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좀비로 변해 자신을 착취한 포주를 물어뜯는 주인공 소녀의 일그러진 얼굴은 그에게 복수하는 분한(憤恨)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아신전>에서 주인공 아신(전지현 분)은 부족의 말살로 홀로 살아남아 치욕을 견디며 복수를 수행하는데 좀비 떼를 이용한다. 아신은 한국여귀의 원한 어린 표정 대신에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조선 땅과 여진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걸 죽여버리면 나도 당신들 곁으로 갈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아신의 대사 속에도 원한과 복수라는 한국 공포물의 소재가 어떻게 내리물림되는지가 엿보인다. 지금까지 K-좀비에 대해 다소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한 것 같다. 물론 K-좀비는 자화자찬의 대상만은 아니다.
ㅣ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렇다면 외래적 플롯과 지역적 형식 및 소재의 창조적인 결합이 느슨해지면 어떻게 될까. <반도>(2020)처럼 최루성 가족서사와 스펙터클 액션의 재활용이 엇박자를 이루거나, <엑시트>(2019)의 좀비적 변주인 <#살아있다>(2020)처럼 좀비는 다만 재난의 한 소재로 취급되고 말 것이다. 서사적 느슨함이 발목을 잡는 <지금 우리 학교는>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이 왜 썩고 더러우며 흉한 좀비떼가 출몰하는 드라마를 심지어 안방에서도 즐기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영화 <반도> 포스터, 영화 <#살아있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킹덤>은 시즌 1에서 2로 나아가면서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을 절로 자아낼 만한 핍진한 전개가 ‘이게 나라다’라는 소망충족을 달성하는 결말로 큰 무리 없이 안착했다. <아신전>은 국가에서 국경으로 서사의 공간을 넓히면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난민과 그녀의 원한이라는 동시대적이면서도 오래된 모티프를 다룬다. <킹덤Ⅲ>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이들의 선한 통치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자의 이유 있는 복수와 부딪히는 난맥의 장이 될 것임은 예상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어떤 K-좀비물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 2021년 12월 성균관대에서 열렸던 국제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에는 일본의 좀비 연구자 오카모토 타케시(岡本健) 교수가 참석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만들어질 수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물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오카모토 교수는 잠시 숙고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코로나19 이후에 등장할 만한 좀비 아포칼립스물은 비록 스토리가 완결되어 사태는 일단락 되더라도 해결불가능한 뭔가가 계속되고 있다는 이물감으로 가득찬 서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원폭의 재앙으로부터 탄생한 피폭괴수 고질라 장르물과 코로나 사태의 이질적인 조합을 덧붙였다. 소설의 사례로, 한국 좀비 아포칼립스의 장르적인 확장을 도모하는 작가 정명섭의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2020)와 『재생』(2022)처럼, 테라포밍과 타임루프를 활용하는 SF와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결합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 지금 K-좀비는.
[K컬처로 인문하기] 지금 K-좀비는
- 지난 글: [K컬처로 인문하기] 글로벌 무대에서의 한국문학 번역출판, 그 역할과 가치
평론가
복도훈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문학동네》(2005년 봄호)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대문학상(2007)을 수상했다. 저서로는《눈먼 자의 초상》,《묵시록의 네 기사》,《자폭하는 속물》,《SF는 공상하지 않는다》,《한국 창작 SF의 거의 모든 것》(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성관계는 없다》(공역)가 있다. 한국문학과 인류세,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 SF에 대한 연구와 비평,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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