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된 세계 최초의 책’으로 가도 다툼이 치열하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대체로 최초의 인쇄본 책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중국은 이것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서 만들어진 뒤 석가탑(751년 완공)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가을,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두려워하며
9월 달력
9월. ‘참으로 위대했던 여름’을 뒤로 하고, 휴가와 방학의 즐거움을 추억으로 갈무리하며, 기존의 사업을 이어가거나 새로운 학기를 시작할 때다. 이제 남은 달은 3개월만이 남아 있다.
9월 초가을에 힘을 쏟아야 할 일은 많지만, 예부터 ‘책 읽기’를 우선해야 할 일로 꼽았다. 당나라의 한유는 『학문을 권하는 시』 에서 “이제 등불을 가까이할 만하니, 바야흐로 책 펼칠 때로다”라 읊어 ‘등불을 가까이할 만하다(燈火可親)’는 고사성어를 탄생시켰다. 송나라의 주희도 『우연히 쓴 시』 에서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한 순간의 때라도 가볍게 흘리지 마라 …… 계단 앞에 가랑잎이 떨어지며 가을 소리가 나기 전에”라고 권했다.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독서문화진흥법’을 시행하며, 9월을 ‘독서의 달’로 지정해 놓고도 있다.
‘가장 오래된 책’을 둘러싼 경쟁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고, 그것을 점토판이든, 양가죽이든, 파피루스든지에 적어 ‘글’을 만듦으로써 정보를 전달하고 지식을 축적해왔다. 그리고 여러 ‘글’을 하나로 엮어 ‘책’을 만들었다. 여러 민족, 나라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이라크는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기원전 3,000~2,000년 경에 이루어졌다는 『길가메시 서사시』 가 ‘알려져 있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점토판들의 더미’로만 존재할 따름이며, ‘하나로 엮인, 페이지(쪽)로 구분되는’ 책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에 가장 오래된 책은 기원전 500년 경에 만들어진 『에트루리아 황금책』 이라고도 한다. 다만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본거지로 삼았던 에트루리아인이되, 발견된 곳은 지금의 불가리아에 속해 있으므로 이탈리아와 불가리아가 서로 자기 나라 것이라 다투고 있기도 하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출처: 나무위키)
‘인쇄된 세계 최초의 책’으로 가도 다툼이 치열하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이 대체로 최초의 인쇄본 책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중국은 이것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서 만들어진 뒤 석가탑(751년 완공)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중국이 가장 오래된 인쇄본 책 제작의 주인공이라 주장한다. 한편 일본은 반대로 이것이 751년보다 나중에 만들어져 탑에 들어갔을 것이라면서, 770년 간행된 자국의 『백만탑다라니경』 이야말로 세계 최초의 인쇄본 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목판인쇄인데, 금속활자 인쇄본을 두고도 1377년 고려에서 제작된 『직지심체요절』 과, 1450년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성서』 사이에 논쟁이 있다. 『직지심체요절』 이 먼저 나온 게 확실하지만, 그 인쇄 기술에 흠이 많아 ‘몇 번이고, 똑같은 내용을 찍어내는’ 금속활자 인쇄의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했기에 구텐베르크의 작품을 진정한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책들의 수난사
이처럼 책을 만드는 데 당대의 기술력과 국력이 동원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책을 없애는 데 국력이 쓰이기도 했다. ‘아무 정보-지식이나 습득해서는 안 되며, 정통이라 인정되는 책만 읽혀야 한다!’는 신념이 불거졌을 때다. 기원전 1350년, 이집트의 파라오가 된 아멘호테프 4세는 아멘 신 중심의 신앙에서 아톤 신 중심의 신앙으로 전면 개혁한다고 선언했고,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톤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멘 신앙과 관련된 파피루스 책들을 일체 태워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가 16년 만에 사망하고, 어린 투탄카톤이 계승하자 숨죽이고 있던 아멘 신자들이 반혁명에 성공, 투탄카톤은 투탄카멘으로 개명했으며 아톤 신앙의 서적들이 일제히 불태워졌다.
814년, 샤를마뉴의 뒤를 이어 프랑크 제국의 황제가 된 루트비히는 워낙 신앙심이 깊어서 ‘경건왕’이라 불렸는데, 즉위하자마자 선제가 애써 모은 고전고대의 문헌들과 귀중한 프랑크 문헌들을 남김없이 불살라 버렸다. ‘참된 신앙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한창 꽃피우던 프랑크의 문화는 급작스레 된서리를 맞고 말았다.
분서갱유를 묘사한 그림 (출처: 나무위키)
이런 사례들은 역사적으로 진실성이 의심되는 기원전 3세기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 7세기 이슬람 제2대 칼리프 우마르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파괴 등과 더불어 역사라는 거대한 책의 여러 페이지에 거무튀튀한 자국을 남긴다. 근현대에도 그랬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1789년부터 1803년까지 1천만 권이 넘는 책들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신생 공화국의 미덕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였다. 나치 독일도 1933년에 각 도시의 광장에 산더미 같은 책을 쌓아두고 불살랐다. 사회주의 사상서나 프로이트를 비롯한 유대인 작가의 책들, 레마르크 등 반전, 평화 사상을 내세운 작가들의 책들이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1960년대 중국의 홍위병들도, 1970년대 캄보디아의 폴 포트도 ‘불온서적’들을 모아다 태웠다.
‘금서목록’. 들어 있지 않으면 삼류?
책을 직접 태우거나 찢거나 하지 않더라도, 특정 서적을 지정해서 팔고 읽는 일을 금지하는 일도 많았다. 1571년부터 1917년까지 존속했던 ‘바티칸 금서목록’은 유명하다. 루터, 칼뱅 등 프로테스탄트 서적들이 금서로 지정되었음은 물론, 디드로 등의 『백과전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루소의 『사회계약론』 등 근대 계몽사상서들,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 등 근대 철학 대가들의 작품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등의 과학 서적들 등등이 두루 포함되었다. 특히 뒤마, 위고, 스탕달, 플로베르, 졸라 등 프랑스 근대문학을 빛낸 문호들의 작품들이 망라되어, 이 금서목록에 작품이 없다면 보잘것없는 문필가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현대 이슬람권에서는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등 무함마드에 불경한 내용을 담았다 여겨지는 책들이 금지되고, 소련에서는 자유진영 작가들의 책이 수없이 금서가 되었는데 촘스키처럼 자유진영 체제에 비판적이던 작가의 책, H.G. 웰스의 공상과학 소설, 심지어 『로빈슨 크루소』 까지 그에 포함되었다.
대한민국의 금서 역사도 볼만하다. 사회주의 관련서는 일체 금지되었는데, 국가보안법이 아직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금지가 공식적으로 풀린 건 아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사회비판 소설이나 정비석의 『자유부인』,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같은 ‘불건전한 성문화를 조장하는 책’도 한때 금서가 되었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80년대 말에 경찰이 대학생들의 책가방을 뒤져서 금서를 적발하는 일은 일상이다시피 했는데, ‘중국 고전인 『모시(毛詩)』 를 모택동(마오쩌둥)의 시집이라 오해해 압수당했다’ ‘변명할 수 없는 사회주의 서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보고도 법학서적인 모양이라고 그냥 보내주었다’ 등등의 믿거나 말거나 식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2008년에도 ‘국방부 지정 불온서적’이 발표되었는데, 이 목록에 포함된 책들이 오히려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바람에 해당 책을 낸 출판사들이 ‘고마워요 국방부~!’를 외치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
국방부 불온서적 같은 일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현대의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금서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책을 못 보는 게 아니라, 안 보는 게 문제시된다. 갈수록 내려가는 국민 연간독서량 지표에는 ‘온라인 문화가 주된 원인’이라는 말이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검색만 하면 궁금한 내용이 주루룩 나오는데 누가 애써 책을 읽겠는가?’ ‘온라인상의 짤막한 텍스트, 문자보다 이미지 위주의 읽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길고 심도 있는 글은 읽기 꺼려한다’는 설명이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유독 쇠퇴일로인 대한민국의 독서량에 다른 원인은 없을까. 우리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입시전쟁의 전사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공부량을 소화하려다 보니, ‘시험에 안 나오는’ 정보와 지식은 무가치한 것처럼 여겨진다. ‘딱 떨어지는 정답이 드물고, 열심히 논의해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만 하는’ 철학, 정치, 사회 등 ‘문과적 지식’은 기피를 넘어 조롱의 대상까지 된다. 이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입시 과정에 독서를 억지로 집어넣어 보지만, 이것은 형식적인 독서와 강제가 없으면 독서를 하지 않는 행태를 낳고 있다.
인간은, 인류 문명은 다만 정보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지식, 그리고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발전을 선도했다. 책을 읽지 않고, 읽지 못하고, 읽을 필요를 모르는 사람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에는 이미 가을 낙엽 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9월: 책'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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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책
-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이야기 -
함규진
2022-09-28
‘인쇄된 세계 최초의 책’으로 가도 다툼이 치열하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대체로 최초의 인쇄본 책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중국은 이것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서 만들어진 뒤 석가탑(751년 완공)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가을,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두려워하며
9월 달력
9월. ‘참으로 위대했던 여름’을 뒤로 하고, 휴가와 방학의 즐거움을 추억으로 갈무리하며, 기존의 사업을 이어가거나 새로운 학기를 시작할 때다. 이제 남은 달은 3개월만이 남아 있다.
9월 초가을에 힘을 쏟아야 할 일은 많지만, 예부터 ‘책 읽기’를 우선해야 할 일로 꼽았다. 당나라의 한유는 『학문을 권하는 시』 에서 “이제 등불을 가까이할 만하니, 바야흐로 책 펼칠 때로다”라 읊어 ‘등불을 가까이할 만하다(燈火可親)’는 고사성어를 탄생시켰다. 송나라의 주희도 『우연히 쓴 시』 에서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한 순간의 때라도 가볍게 흘리지 마라 …… 계단 앞에 가랑잎이 떨어지며 가을 소리가 나기 전에”라고 권했다.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독서문화진흥법’을 시행하며, 9월을 ‘독서의 달’로 지정해 놓고도 있다.
‘가장 오래된 책’을 둘러싼 경쟁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고, 그것을 점토판이든, 양가죽이든, 파피루스든지에 적어 ‘글’을 만듦으로써 정보를 전달하고 지식을 축적해왔다. 그리고 여러 ‘글’을 하나로 엮어 ‘책’을 만들었다. 여러 민족, 나라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이라크는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기원전 3,000~2,000년 경에 이루어졌다는 『길가메시 서사시』 가 ‘알려져 있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점토판들의 더미’로만 존재할 따름이며, ‘하나로 엮인, 페이지(쪽)로 구분되는’ 책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에 가장 오래된 책은 기원전 500년 경에 만들어진 『에트루리아 황금책』 이라고도 한다. 다만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본거지로 삼았던 에트루리아인이되, 발견된 곳은 지금의 불가리아에 속해 있으므로 이탈리아와 불가리아가 서로 자기 나라 것이라 다투고 있기도 하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출처: 나무위키)
‘인쇄된 세계 최초의 책’으로 가도 다툼이 치열하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이 대체로 최초의 인쇄본 책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중국은 이것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서 만들어진 뒤 석가탑(751년 완공)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중국이 가장 오래된 인쇄본 책 제작의 주인공이라 주장한다. 한편 일본은 반대로 이것이 751년보다 나중에 만들어져 탑에 들어갔을 것이라면서, 770년 간행된 자국의 『백만탑다라니경』 이야말로 세계 최초의 인쇄본 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목판인쇄인데, 금속활자 인쇄본을 두고도 1377년 고려에서 제작된 『직지심체요절』 과, 1450년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성서』 사이에 논쟁이 있다. 『직지심체요절』 이 먼저 나온 게 확실하지만, 그 인쇄 기술에 흠이 많아 ‘몇 번이고, 똑같은 내용을 찍어내는’ 금속활자 인쇄의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했기에 구텐베르크의 작품을 진정한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책들의 수난사
이처럼 책을 만드는 데 당대의 기술력과 국력이 동원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책을 없애는 데 국력이 쓰이기도 했다. ‘아무 정보-지식이나 습득해서는 안 되며, 정통이라 인정되는 책만 읽혀야 한다!’는 신념이 불거졌을 때다. 기원전 1350년, 이집트의 파라오가 된 아멘호테프 4세는 아멘 신 중심의 신앙에서 아톤 신 중심의 신앙으로 전면 개혁한다고 선언했고,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톤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멘 신앙과 관련된 파피루스 책들을 일체 태워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가 16년 만에 사망하고, 어린 투탄카톤이 계승하자 숨죽이고 있던 아멘 신자들이 반혁명에 성공, 투탄카톤은 투탄카멘으로 개명했으며 아톤 신앙의 서적들이 일제히 불태워졌다.
814년, 샤를마뉴의 뒤를 이어 프랑크 제국의 황제가 된 루트비히는 워낙 신앙심이 깊어서 ‘경건왕’이라 불렸는데, 즉위하자마자 선제가 애써 모은 고전고대의 문헌들과 귀중한 프랑크 문헌들을 남김없이 불살라 버렸다. ‘참된 신앙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한창 꽃피우던 프랑크의 문화는 급작스레 된서리를 맞고 말았다.
분서갱유를 묘사한 그림 (출처: 나무위키)
이런 사례들은 역사적으로 진실성이 의심되는 기원전 3세기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 7세기 이슬람 제2대 칼리프 우마르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파괴 등과 더불어 역사라는 거대한 책의 여러 페이지에 거무튀튀한 자국을 남긴다. 근현대에도 그랬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1789년부터 1803년까지 1천만 권이 넘는 책들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신생 공화국의 미덕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였다. 나치 독일도 1933년에 각 도시의 광장에 산더미 같은 책을 쌓아두고 불살랐다. 사회주의 사상서나 프로이트를 비롯한 유대인 작가의 책들, 레마르크 등 반전, 평화 사상을 내세운 작가들의 책들이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1960년대 중국의 홍위병들도, 1970년대 캄보디아의 폴 포트도 ‘불온서적’들을 모아다 태웠다.
‘금서목록’. 들어 있지 않으면 삼류?
책을 직접 태우거나 찢거나 하지 않더라도, 특정 서적을 지정해서 팔고 읽는 일을 금지하는 일도 많았다. 1571년부터 1917년까지 존속했던 ‘바티칸 금서목록’은 유명하다. 루터, 칼뱅 등 프로테스탄트 서적들이 금서로 지정되었음은 물론, 디드로 등의 『백과전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루소의 『사회계약론』 등 근대 계몽사상서들,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 등 근대 철학 대가들의 작품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등의 과학 서적들 등등이 두루 포함되었다. 특히 뒤마, 위고, 스탕달, 플로베르, 졸라 등 프랑스 근대문학을 빛낸 문호들의 작품들이 망라되어, 이 금서목록에 작품이 없다면 보잘것없는 문필가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현대 이슬람권에서는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등 무함마드에 불경한 내용을 담았다 여겨지는 책들이 금지되고, 소련에서는 자유진영 작가들의 책이 수없이 금서가 되었는데 촘스키처럼 자유진영 체제에 비판적이던 작가의 책, H.G. 웰스의 공상과학 소설, 심지어 『로빈슨 크루소』 까지 그에 포함되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정비석 <자유부인> (출처: 알라딘) / 마광수 <즐거운 사라> (출처: 교보문고)
대한민국의 금서 역사도 볼만하다. 사회주의 관련서는 일체 금지되었는데, 국가보안법이 아직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금지가 공식적으로 풀린 건 아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사회비판 소설이나 정비석의 『자유부인』,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같은 ‘불건전한 성문화를 조장하는 책’도 한때 금서가 되었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80년대 말에 경찰이 대학생들의 책가방을 뒤져서 금서를 적발하는 일은 일상이다시피 했는데, ‘중국 고전인 『모시(毛詩)』 를 모택동(마오쩌둥)의 시집이라 오해해 압수당했다’ ‘변명할 수 없는 사회주의 서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보고도 법학서적인 모양이라고 그냥 보내주었다’ 등등의 믿거나 말거나 식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2008년에도 ‘국방부 지정 불온서적’이 발표되었는데, 이 목록에 포함된 책들이 오히려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바람에 해당 책을 낸 출판사들이 ‘고마워요 국방부~!’를 외치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
국방부 불온서적 같은 일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현대의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금서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책을 못 보는 게 아니라, 안 보는 게 문제시된다. 갈수록 내려가는 국민 연간독서량 지표에는 ‘온라인 문화가 주된 원인’이라는 말이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검색만 하면 궁금한 내용이 주루룩 나오는데 누가 애써 책을 읽겠는가?’ ‘온라인상의 짤막한 텍스트, 문자보다 이미지 위주의 읽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길고 심도 있는 글은 읽기 꺼려한다’는 설명이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유독 쇠퇴일로인 대한민국의 독서량에 다른 원인은 없을까. 우리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입시전쟁의 전사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공부량을 소화하려다 보니, ‘시험에 안 나오는’ 정보와 지식은 무가치한 것처럼 여겨진다. ‘딱 떨어지는 정답이 드물고, 열심히 논의해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만 하는’ 철학, 정치, 사회 등 ‘문과적 지식’은 기피를 넘어 조롱의 대상까지 된다. 이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입시 과정에 독서를 억지로 집어넣어 보지만, 이것은 형식적인 독서와 강제가 없으면 독서를 하지 않는 행태를 낳고 있다.
인간은, 인류 문명은 다만 정보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지식, 그리고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발전을 선도했다. 책을 읽지 않고, 읽지 못하고, 읽을 필요를 모르는 사람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에는 이미 가을 낙엽 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9. 9월, 책
- 지난 글: 8. 8월, 휴식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9월: 책'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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