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일만 하며 살 순 없고 주말, 연말연시와 함께 연중 휴가까지 챙기고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 가운데는 특별한 권력과 권위를 손에 쥐고, 그가 무엇을 하며 뭘 말하는지 집중적 관심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권력자들, 최고지도자들은 어떤 '휴식의 역사'를 만들어 왔을까……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8월 달력
8월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어도 북반구)적으로 몹시 덥고, 습하고, 불쾌지수가 높은 달이다. 한 해의 중간점을 지난 때이기도 해서, 많은 나라 사람들이 이때 학교를 쉬고, 휴가를 쓰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과 힐링을 찾아 떠난다. 곧 다가올 가을에 힘차게 다시 출발하며 한 해를 보람 있게 마무리할 힘을 얻고자.
여름 대표 피서지 해변
7~8월에 한 달의 휴가(바캉스)를 즐길 꿈으로 일 년을 버틴다는 프랑스인들을 비롯해, 사람은 일만 하며 살 순 없고 주말, 연말연시와 함께 연중 휴가까지 챙기고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 가운데는 특별한 권력과 권위를 손에 쥐고, 그가 무엇을 하며 뭘 말하는지 집중적 관심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권력자들, 최고지도자들은 어떤 ‘휴식의 역사’를 만들어 왔을까.
군주들의 여름나기, 휴양용 궁전
옛 군주들은 휴양 목적을 위해 별궁을, 그 중에서도 ‘여름궁전’이라는 것을 많이 지었다.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의 쇤브룬 궁전, 러시아 표트르 1세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중국 서태후의 이화원, 태국 라마 4세의 방콕 방파인 여름궁전 등이 유명하다.
영국 브라이튼 파빌리온
이런 여름궁전에서 군주들은 한창 더울 때 휴가차 와서 한가롭게 지내다가 돌아가고는 했는데, 정치와 집무보다는 휴양과 오락이 목적인 곳이었으므로 전통과 격식을 뛰어넘어 군주 개인의 취향이나 이국 취미 등이 반영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은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했고, 압둘 메지드 2세의 돌마바흐체 궁전도 유럽 양식으로 지어졌다. 동서양의 양식을 융합하여 지어진 여름궁전으로는 영국의 로열 브라이튼 파빌리온, 중국의 원명원과 태국 방파인 궁전 등이 대표적이다. 몽골제국의 대칸들도 여름궁전을 짓고 휴양을 즐기고는 했는데 13세기에 동방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을 처음 접견했던 곳도 수도인 캠벌루가 아니라 샹두, 다른 발음으로는 제너두의 여름궁전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그곳을 온갖 편의시설이 갖춰진 환상적인 곳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영국의 시인 코울리지는 제너두에 대한 꿈을 꾸고 그에 대한 걸작 시편을 짓기도 했다.
제너두에 쿠빌라이 칸은
웅장한 환락의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했다네.
그곳은 성스러운 강 알프가
태양이 비치지 않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이었네...
- 코울리지 <쿠블라 칸> -
군주가 사치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런 휴양용 이궁들은 국력이 넘칠 때야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나라가 기우는 조짐이 보일 때는 정치적 문제로 떠오르곤 했다. 그 비용도 비용이지만, ‘군주가 이렇게 사치에 빠져 있으니 나라가 안 망하겠느냐!’는 자연스런 비난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스만투르크의 압둘 메지드 2세는 ‘투르크가 유럽 열강에 뒤지지 않는 국력과 문화적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를 내세워 돌마바흐체를 무리하면서 지었지만, 그것은 결국 그의 오스만 부흥 정책이 처절할 실패로 끝나는 디딤돌이 되었다. 서태후의 이화원 역시 그것을 짓느라 해군의 자금까지 헐어 썼으며 ‘그 결과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는 비난이 일어나면서 청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 고려의 의종도 여러 곳에 별궁을 짓느라 특별 세금까지 거두던 끝에 무신정변으로 왕위와 목숨을 잃었다. 조선시대에는 군주의 향락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성리학이 힘을 얻어가면서 왕은 이궁을 짓기는커녕 휴가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전기에는 ‘사냥은 최고의 군사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사냥을 다녔지만 그것도 금기시되자, 허구헌날 책상 앞에 앉아서 365일을 보내야만 했던 조선의 왕들. 그래서 결국 등창이 나고 종기가 생기자 그것을 빌미로 간신히 온천에서 휴양할 수 있었다.
현대 민주국가 지도자의 휴가, 소박하게 또는 화려하게
그러면 현대 민주국가들의 최고지도자들은 어떻게 휴가를 보낼까? 휴가지나 비용 등으로 따져 보면 ‘소박파’와 ‘화려파’가 있다. 미국의 지미 카터나 조지 H. 부시 대통령 등은 여름 휴가 때마다 자기 고향으로 가서 낚시나 산책 등을 하며 조용하게 보냈다. 특히 카터 대통령은 최소한의 경호원만 대동하고 일정을 안 밝힌 채 손수 차를 운전해 휴가 가고, 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탈한 서민 이미지를 과시하곤 했다. 반면 캐나다의 피에르 트뤼도 수상,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은 하와이라든가 폴란드라든가 먼 외국으로 나가 호화판으로 놀다 오곤 했다. 지스카르 데스탱은 동물학대 반대운동가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갈 때마다 곰이나 사슴 사냥을 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편 오바마의 호화 휴가를 두고 정적 입장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맹비난을 했는데, 정작 자신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자마자 17일이나 휴가를 떠난 데다 자신 소유의 골프장을 도는 모습만 보여, ‘개인 사업 홍보’에 열심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건강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휴가를 가서 기운차게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어 소문을 불식시키기도 했는데, 휴가지에 비가 내리지 않도록 인공강우 비행기를 동원하다가 다른 식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휴가
미국 대통령들은 전용 휴가 별장으로 캠프 데이비드가 있는데, 묘하게 백악관이 아니라 해군이 관리한다. 해리 트루먼이 처음 설립했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자신의 손자 데이비드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 대통령이 자신의 가족 이름을 공공시설에 붙이는 게 정치적으로 용납될까? 미국도 휴양용 별장이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한국이 미국보다 대통령의 사적인 행동에 더 민감한 듯도 하다. 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1959년 최초의 미-소 정상회담이 열리고, 1978년에는 미국의 중재 아래 오랜 숙적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국교를 정상화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는 등 역사의 한 페이지가 씌어지기도 했다.
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휴가 때마다 십여 권 씩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지자, ‘대통령의 도서목록’이 서점가의 화제가 되고 그 목록에 오른 책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다. 이를 따라한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이 휴가 때마다 읽었다며 권하는 책들도 시중의 관심을 모았다.
휴가를 떠났다가 권력을 잃은 경우도 있다. 1933년, 쿠바 대통령 헤라르도 마차도는 휴가를 떠난 사이 그의 정책에 분노한 시민들이 대통령궁에 난입, 점령해 버려서 오도가도 못하다가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 1964년에는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가 휴가를 간 사이에 모스크바에서 브레즈네프 등의 고위 공산당원들이 그를 탄핵하고, 돌아오자마자 서기장 직에서 끌어내려 버렸다. 1991년에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휴가 중에 쿠데타를 당해 연금되고, 이를 계기로 대중봉기가 일어나면서 끝내 소련이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누구나 가끔씩 쉬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는 쉬지 않는다.
한국 대통령의 공식 휴가일은 연간 5일이다. 휴가가 최소 10일이 넘으며, 한 달 이상 집무실을 비우는 일도 흔한 다른 민주국가 최고지도자들에 비하면 박한 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대통령이 휴가를 이유로 미국 하원의장을 접견하지 않았다고 해서 ‘중대한 외교 결례’라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대통령실에서 ‘대통령도 특사도 아닌 하원의장이 왔다고 대통령이 휴가 시간을 쪼개 접견해야 하느냐’고 반박하자, 야당 등에서는 과거 대통령들이 외국 귀빈을 휴가지에서 만나거나 휴가를 중단하고 만났던 예들을 들며 재반박했다.
왕도 대통령도 사람이다. 당연히 업무를 잠시 잊고 마음 편히 쉬는 시간을 때마다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국가에도 이롭다. 그러나 그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최고지도자라면, 휴가와 같은 일도 정치적으로 어떻게 비쳐질지를 유념하며 행동할 필요가 있으리라.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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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 휴식
-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 -
함규진
2022-08-30
사람은 일만 하며 살 순 없고 주말, 연말연시와 함께 연중 휴가까지 챙기고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 가운데는 특별한 권력과 권위를 손에 쥐고, 그가 무엇을 하며 뭘 말하는지 집중적 관심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권력자들, 최고지도자들은 어떤 '휴식의 역사'를 만들어 왔을까……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8월 달력
8월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어도 북반구)적으로 몹시 덥고, 습하고, 불쾌지수가 높은 달이다. 한 해의 중간점을 지난 때이기도 해서, 많은 나라 사람들이 이때 학교를 쉬고, 휴가를 쓰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과 힐링을 찾아 떠난다. 곧 다가올 가을에 힘차게 다시 출발하며 한 해를 보람 있게 마무리할 힘을 얻고자.
여름 대표 피서지 해변
7~8월에 한 달의 휴가(바캉스)를 즐길 꿈으로 일 년을 버틴다는 프랑스인들을 비롯해, 사람은 일만 하며 살 순 없고 주말, 연말연시와 함께 연중 휴가까지 챙기고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 가운데는 특별한 권력과 권위를 손에 쥐고, 그가 무엇을 하며 뭘 말하는지 집중적 관심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권력자들, 최고지도자들은 어떤 ‘휴식의 역사’를 만들어 왔을까.
군주들의 여름나기, 휴양용 궁전
옛 군주들은 휴양 목적을 위해 별궁을, 그 중에서도 ‘여름궁전’이라는 것을 많이 지었다.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의 쇤브룬 궁전, 러시아 표트르 1세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중국 서태후의 이화원, 태국 라마 4세의 방콕 방파인 여름궁전 등이 유명하다.
영국 브라이튼 파빌리온
이런 여름궁전에서 군주들은 한창 더울 때 휴가차 와서 한가롭게 지내다가 돌아가고는 했는데, 정치와 집무보다는 휴양과 오락이 목적인 곳이었으므로 전통과 격식을 뛰어넘어 군주 개인의 취향이나 이국 취미 등이 반영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은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했고, 압둘 메지드 2세의 돌마바흐체 궁전도 유럽 양식으로 지어졌다. 동서양의 양식을 융합하여 지어진 여름궁전으로는 영국의 로열 브라이튼 파빌리온, 중국의 원명원과 태국 방파인 궁전 등이 대표적이다. 몽골제국의 대칸들도 여름궁전을 짓고 휴양을 즐기고는 했는데 13세기에 동방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을 처음 접견했던 곳도 수도인 캠벌루가 아니라 샹두, 다른 발음으로는 제너두의 여름궁전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그곳을 온갖 편의시설이 갖춰진 환상적인 곳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영국의 시인 코울리지는 제너두에 대한 꿈을 꾸고 그에 대한 걸작 시편을 짓기도 했다.
제너두에 쿠빌라이 칸은
웅장한 환락의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했다네.
그곳은 성스러운 강 알프가
태양이 비치지 않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이었네...
- 코울리지 <쿠블라 칸> -
군주가 사치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런 휴양용 이궁들은 국력이 넘칠 때야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나라가 기우는 조짐이 보일 때는 정치적 문제로 떠오르곤 했다. 그 비용도 비용이지만, ‘군주가 이렇게 사치에 빠져 있으니 나라가 안 망하겠느냐!’는 자연스런 비난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스만투르크의 압둘 메지드 2세는 ‘투르크가 유럽 열강에 뒤지지 않는 국력과 문화적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를 내세워 돌마바흐체를 무리하면서 지었지만, 그것은 결국 그의 오스만 부흥 정책이 처절할 실패로 끝나는 디딤돌이 되었다. 서태후의 이화원 역시 그것을 짓느라 해군의 자금까지 헐어 썼으며 ‘그 결과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는 비난이 일어나면서 청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 고려의 의종도 여러 곳에 별궁을 짓느라 특별 세금까지 거두던 끝에 무신정변으로 왕위와 목숨을 잃었다. 조선시대에는 군주의 향락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성리학이 힘을 얻어가면서 왕은 이궁을 짓기는커녕 휴가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전기에는 ‘사냥은 최고의 군사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사냥을 다녔지만 그것도 금기시되자, 허구헌날 책상 앞에 앉아서 365일을 보내야만 했던 조선의 왕들. 그래서 결국 등창이 나고 종기가 생기자 그것을 빌미로 간신히 온천에서 휴양할 수 있었다.
현대 민주국가 지도자의 휴가, 소박하게 또는 화려하게
그러면 현대 민주국가들의 최고지도자들은 어떻게 휴가를 보낼까? 휴가지나 비용 등으로 따져 보면 ‘소박파’와 ‘화려파’가 있다. 미국의 지미 카터나 조지 H. 부시 대통령 등은 여름 휴가 때마다 자기 고향으로 가서 낚시나 산책 등을 하며 조용하게 보냈다. 특히 카터 대통령은 최소한의 경호원만 대동하고 일정을 안 밝힌 채 손수 차를 운전해 휴가 가고, 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탈한 서민 이미지를 과시하곤 했다. 반면 캐나다의 피에르 트뤼도 수상,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은 하와이라든가 폴란드라든가 먼 외국으로 나가 호화판으로 놀다 오곤 했다. 지스카르 데스탱은 동물학대 반대운동가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갈 때마다 곰이나 사슴 사냥을 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편 오바마의 호화 휴가를 두고 정적 입장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맹비난을 했는데, 정작 자신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자마자 17일이나 휴가를 떠난 데다 자신 소유의 골프장을 도는 모습만 보여, ‘개인 사업 홍보’에 열심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건강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휴가를 가서 기운차게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어 소문을 불식시키기도 했는데, 휴가지에 비가 내리지 않도록 인공강우 비행기를 동원하다가 다른 식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휴가
미국 대통령들은 전용 휴가 별장으로 캠프 데이비드가 있는데, 묘하게 백악관이 아니라 해군이 관리한다. 해리 트루먼이 처음 설립했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자신의 손자 데이비드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 대통령이 자신의 가족 이름을 공공시설에 붙이는 게 정치적으로 용납될까? 미국도 휴양용 별장이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한국이 미국보다 대통령의 사적인 행동에 더 민감한 듯도 하다. 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1959년 최초의 미-소 정상회담이 열리고, 1978년에는 미국의 중재 아래 오랜 숙적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국교를 정상화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는 등 역사의 한 페이지가 씌어지기도 했다.
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휴가 때마다 십여 권 씩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지자, ‘대통령의 도서목록’이 서점가의 화제가 되고 그 목록에 오른 책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다. 이를 따라한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이 휴가 때마다 읽었다며 권하는 책들도 시중의 관심을 모았다.
휴가를 떠났다가 권력을 잃은 경우도 있다. 1933년, 쿠바 대통령 헤라르도 마차도는 휴가를 떠난 사이 그의 정책에 분노한 시민들이 대통령궁에 난입, 점령해 버려서 오도가도 못하다가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 1964년에는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가 휴가를 간 사이에 모스크바에서 브레즈네프 등의 고위 공산당원들이 그를 탄핵하고, 돌아오자마자 서기장 직에서 끌어내려 버렸다. 1991년에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휴가 중에 쿠데타를 당해 연금되고, 이를 계기로 대중봉기가 일어나면서 끝내 소련이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누구나 가끔씩 쉬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는 쉬지 않는다.
한국 대통령의 공식 휴가일은 연간 5일이다. 휴가가 최소 10일이 넘으며, 한 달 이상 집무실을 비우는 일도 흔한 다른 민주국가 최고지도자들에 비하면 박한 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대통령이 휴가를 이유로 미국 하원의장을 접견하지 않았다고 해서 ‘중대한 외교 결례’라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대통령실에서 ‘대통령도 특사도 아닌 하원의장이 왔다고 대통령이 휴가 시간을 쪼개 접견해야 하느냐’고 반박하자, 야당 등에서는 과거 대통령들이 외국 귀빈을 휴가지에서 만나거나 휴가를 중단하고 만났던 예들을 들며 재반박했다.
왕도 대통령도 사람이다. 당연히 업무를 잠시 잊고 마음 편히 쉬는 시간을 때마다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국가에도 이롭다. 그러나 그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최고지도자라면, 휴가와 같은 일도 정치적으로 어떻게 비쳐질지를 유념하며 행동할 필요가 있으리라.
8. 8월, 휴식
- 지난 글: 7. 7월, 입법자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8월 : 휴식'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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