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거대한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증가하던 불확실성에 기반을 두고 활성화되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든 것을 모듈로 쪼개어 …
ㅣ플랫폼 경제의 시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가장 활발해진 시장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플랫폼 경제가 아닐까 싶다. 이전에는 짜장면이나 피자 배달 정도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같은 음식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온갖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커피와 같은 디저트도 배달을 시키는 세상이 됐다. 또한 넷플릭스, 디즈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일상의 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상품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줄면서, 혹은 다양한 경험을 소비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매월 일정한 금액을 내고 주기적으로 상품을 공급받음으로써 원하는 상품을 소유하지 않고 소비할 수 있는 구독경제가 활성화되기도 했다. OTT가 그런 경우이기도 하고, 매월 전통주를 제공하는 술담화를 비롯해 과자, 옷, 음악, 책, 가전제품 등의 상품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늘어 우리는 생활의 여러 방편을 외주화하여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왼쪽부터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배달의 민족 (출처: 배달의 민족 홈페이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바로 플랫폼이다. ‘플랫폼’의 사전적 의미는 역에서 승객이 열차를 타고 내리기 쉽도록 철로 옆으로 지면보다 높여서 설치해 놓은 평평한 장소로 이동을 위해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고 떠남에 대한 기대감과 되돌아올 때의 편안함을 얻는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플랫폼’은 다른 의미로 확대, 변화하였다. 단순히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장소인 플랫폼은 일종의 거래를 형성할 수 있는 정보 시스템 환경으로 전환되었다. 수많은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산업 인프라가 된 것이다. 이제 ‘플랫폼’이라고 하면 앞에서 언급한 배달의민족, 넷플릭스, 술담화를 비롯해 구글, 애플, 아마존, 에어비앤비 또는 네이버, 카카오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모바일 앱에 기반을 둔 기업이 생산자와 소비가 서로 원하는 가치를 거래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장을 산업화한 어떤 상태를 떠올리게 된다. 즉 플랫폼은 참여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서 가치를 교환하는 공간인 셈이다.
플랫폼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거대한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증가하던 불확실성에 기반을 두고 활성화되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든 것을 모듈로 쪼개어 그것들의 조합을 통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실험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개인화된 맞춤식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수요자와 공급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안 경제인 셈이다.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해본 사람들은 안다, 자신이 선호하는 주제의 영상이 지속적으로 추천되며 제공된다는 것을. 이는 공급자의 입장에서도 무의미한 광고 비용을 절약하게 해주고 최적화된 소비자를 향한 적절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일종의 균형의 역학 구조가 만들어지며 잉여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ㅣ문학 플랫폼은 지금, 빈곤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문학 플랫폼이 그저 문학과 독자가 만나는 체제로서의 문예지만을 의미한다면 굳이 ‘플랫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형출판사 중심의 문예지 시스템이나 이를 문단 권력으로 비판하며 독립 출판의 의지를 드러내는 다른 형태의 문예지 역시 문학을 독자와 만나게 하는 방법은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출처:교보문고)
에드워드 렐프는 자신의 저서 『장소와 장소상실』에서 장소란 자연물과 인공물, 활동과 기능, 그리고 의도적으로 부여된 의미가 종합된 총체적인 실체라고 하였다. 이때의 장소는 지리학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실체이면서 실존적인 내부성을 통해 경험되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다. 풀어 이야기하자면, 장소의 내부성을 경험한다는 것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창조되고 다시 만들어지는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이며 그로부터 문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는 것이다. 문학의 경우에 이를 적용해 본다면, 작품을 발표하는 문예지는 작가에게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게 하는 특별한 내부성을 지닌 구체적 경험의 장소가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는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 인정받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작가로서의 실존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뉴턴의 ‘절대공간’처럼 실험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유익한 환상’으로서 문예지라는 장소를 내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체제의 기왕의 문학 플랫폼은 대형출판사의 출판 자본과 결합하여 시장 논리를 수용한 문예지의 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문학 창작과 발표, 출판 조건 및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 경제가 보여주는 극적인 변화를 이끌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물론 일정한 구독료를 받고 요일별 업로드되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문학 플랫폼이 있긴 했지만,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해 확장성을 가지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메일링 서비스와 같은 구독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에세이에 국한되어 있어 다른 장르로의 파급력은 미약한 수준이다. 또한 이는 개인 창작자가 독자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플랫폼을 활용한 것이라 볼 수도 없다.
플랫폼은 참여자 간의 이해관계가 플랫폼 전체의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하며 그곳에서 생산된 가치가 참여자의 기여 정도에 따라 배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적용한다면 기존의 문예지도 플랫폼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플랫폼이 수요자와 공급자가 폐쇄된 형태로 관계를 맺게 되면 상호작용을 통한 가치의 생성이라는 측면에 위배되어 지속적인 성장을 저해할 위험이 크다. 그런 점에서 종이책의 형태에서 벗어나 참여자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웹 환경으로 플랫폼을 개척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웹상의 문학 플랫폼의 형태는 종이의 온라인화에 머물 뿐이라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플랫폼 경제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웹툰과 웹소설 플랫폼이 거대한 시장을 이루는 것과 달리 (순)문학 플랫폼은 빈곤한 처지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ㅣ소비할 경험을 제공하는 문학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
플랫폼의 전환 (출처: 픽사베이)
주지하다시피, 기존의 문학 플랫폼과는 달리 웹 플랫폼에서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콘텐츠의 다양성뿐 아니라 그것을 소비하는 플랫폼 자체의 차별화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취향을 확대 재생산하는 기왕의 온라인 매체들과는 다른 문학 플랫폼만의 전략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을 매개로 한 작가와 독자의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문학 플랫폼은 작가와 독자가 연결되는 경험이 가능한, 기존의 문학 플랫폼과는 달리 소통과 참여가 확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문학 플랫폼을 비장소로 여길 필요가 있다. 마르크 오제가 『비장소』에서 언급한 것처럼, 플랫폼은 그것이 지닌 본래의 특성인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잠깐 익명의 존재로 들르는 공간이자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고정된 의미가 아닌 그곳과 맺는 관계에 의해 언제든 변화 가능한 열린 공간이자 텍스트에 따라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며 공동의 정체성이 발휘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클래스 플랫폼 ‘탈잉’이나 독일의 쌍방향 출판 플랫폼 ‘인키트’처럼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여 다양한 경험을 시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러한 문학 플랫폼의 변화는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은 공급자와 사용자 간에 얻을 수 있도록 일정 수 이상의 참여자 수를 확보하여 이익의 임계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킬러콘텐츠의 부재 및 정보 교환이나 추천 알고리즘이 확보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웹툰이나 웹소설 시장처럼 소비자의 데이터를 확보해 판매에 유리한 사업 모델을 만드는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자본의 개입 역시 전무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돈이 되지 않으니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학적인 측면이 있겠으나 그것은 어쩌면 웹툰, 웹소설 시장과는 달리 문학 플랫폼이 문학 작품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데 멈춰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독자의 취향에 맞춰 작품을 쓸 수는 없겠으나 독자의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큐레이션하여 제공함으로써 수요를 불러일으키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자를 수동적 존재가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재조합하여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어 새로운 이야기로 소비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바라보며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밀리의 서재’와 같은 독서 플랫폼이 유의미한 모델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는 있지만, 문학 장르로 한정해서 보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플랫폼이 독자와 작가 사이에 긍정적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켜 활성화된다면 문학 플랫폼 시장으로의 확장에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밀리의 서재 (출처: 밀리의 서재 홈페이지)
지하철에서 종이책을 펼쳐 읽는 독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사회이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왜소해지는 문학 시장을 활성화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플랫폼의 전환을 통해 문학, 특히 순문학에 접근하는 방식에 따른 물리적, 심리적 저항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웹에의 접근이 쉬운 요즘의 독자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강화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이다.
문학에 접근하는 방식 - 문학, 플랫폼 -
- 오늘, 키워드 인문학 -
이병국
2022-08-26
플랫폼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거대한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증가하던 불확실성에 기반을 두고 활성화되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든 것을 모듈로 쪼개어 …
ㅣ플랫폼 경제의 시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가장 활발해진 시장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플랫폼 경제가 아닐까 싶다. 이전에는 짜장면이나 피자 배달 정도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같은 음식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온갖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커피와 같은 디저트도 배달을 시키는 세상이 됐다. 또한 넷플릭스, 디즈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일상의 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상품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줄면서, 혹은 다양한 경험을 소비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매월 일정한 금액을 내고 주기적으로 상품을 공급받음으로써 원하는 상품을 소유하지 않고 소비할 수 있는 구독경제가 활성화되기도 했다. OTT가 그런 경우이기도 하고, 매월 전통주를 제공하는 술담화를 비롯해 과자, 옷, 음악, 책, 가전제품 등의 상품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늘어 우리는 생활의 여러 방편을 외주화하여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왼쪽부터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배달의 민족 (출처: 배달의 민족 홈페이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바로 플랫폼이다. ‘플랫폼’의 사전적 의미는 역에서 승객이 열차를 타고 내리기 쉽도록 철로 옆으로 지면보다 높여서 설치해 놓은 평평한 장소로 이동을 위해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고 떠남에 대한 기대감과 되돌아올 때의 편안함을 얻는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플랫폼’은 다른 의미로 확대, 변화하였다. 단순히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장소인 플랫폼은 일종의 거래를 형성할 수 있는 정보 시스템 환경으로 전환되었다. 수많은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산업 인프라가 된 것이다. 이제 ‘플랫폼’이라고 하면 앞에서 언급한 배달의민족, 넷플릭스, 술담화를 비롯해 구글, 애플, 아마존, 에어비앤비 또는 네이버, 카카오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모바일 앱에 기반을 둔 기업이 생산자와 소비가 서로 원하는 가치를 거래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장을 산업화한 어떤 상태를 떠올리게 된다. 즉 플랫폼은 참여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서 가치를 교환하는 공간인 셈이다.
플랫폼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거대한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증가하던 불확실성에 기반을 두고 활성화되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든 것을 모듈로 쪼개어 그것들의 조합을 통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실험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개인화된 맞춤식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수요자와 공급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안 경제인 셈이다.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해본 사람들은 안다, 자신이 선호하는 주제의 영상이 지속적으로 추천되며 제공된다는 것을. 이는 공급자의 입장에서도 무의미한 광고 비용을 절약하게 해주고 최적화된 소비자를 향한 적절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일종의 균형의 역학 구조가 만들어지며 잉여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ㅣ문학 플랫폼은 지금, 빈곤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문학 플랫폼이 그저 문학과 독자가 만나는 체제로서의 문예지만을 의미한다면 굳이 ‘플랫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형출판사 중심의 문예지 시스템이나 이를 문단 권력으로 비판하며 독립 출판의 의지를 드러내는 다른 형태의 문예지 역시 문학을 독자와 만나게 하는 방법은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출처:교보문고)
에드워드 렐프는 자신의 저서 『장소와 장소상실』에서 장소란 자연물과 인공물, 활동과 기능, 그리고 의도적으로 부여된 의미가 종합된 총체적인 실체라고 하였다. 이때의 장소는 지리학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실체이면서 실존적인 내부성을 통해 경험되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다. 풀어 이야기하자면, 장소의 내부성을 경험한다는 것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창조되고 다시 만들어지는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이며 그로부터 문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는 것이다. 문학의 경우에 이를 적용해 본다면, 작품을 발표하는 문예지는 작가에게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게 하는 특별한 내부성을 지닌 구체적 경험의 장소가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는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 인정받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작가로서의 실존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뉴턴의 ‘절대공간’처럼 실험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유익한 환상’으로서 문예지라는 장소를 내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체제의 기왕의 문학 플랫폼은 대형출판사의 출판 자본과 결합하여 시장 논리를 수용한 문예지의 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문학 창작과 발표, 출판 조건 및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 경제가 보여주는 극적인 변화를 이끌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물론 일정한 구독료를 받고 요일별 업로드되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문학 플랫폼이 있긴 했지만,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해 확장성을 가지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메일링 서비스와 같은 구독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에세이에 국한되어 있어 다른 장르로의 파급력은 미약한 수준이다. 또한 이는 개인 창작자가 독자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플랫폼을 활용한 것이라 볼 수도 없다.
플랫폼은 참여자 간의 이해관계가 플랫폼 전체의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하며 그곳에서 생산된 가치가 참여자의 기여 정도에 따라 배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적용한다면 기존의 문예지도 플랫폼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플랫폼이 수요자와 공급자가 폐쇄된 형태로 관계를 맺게 되면 상호작용을 통한 가치의 생성이라는 측면에 위배되어 지속적인 성장을 저해할 위험이 크다. 그런 점에서 종이책의 형태에서 벗어나 참여자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웹 환경으로 플랫폼을 개척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웹상의 문학 플랫폼의 형태는 종이의 온라인화에 머물 뿐이라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플랫폼 경제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웹툰과 웹소설 플랫폼이 거대한 시장을 이루는 것과 달리 (순)문학 플랫폼은 빈곤한 처지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ㅣ소비할 경험을 제공하는 문학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
플랫폼의 전환 (출처: 픽사베이)
주지하다시피, 기존의 문학 플랫폼과는 달리 웹 플랫폼에서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콘텐츠의 다양성뿐 아니라 그것을 소비하는 플랫폼 자체의 차별화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취향을 확대 재생산하는 기왕의 온라인 매체들과는 다른 문학 플랫폼만의 전략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을 매개로 한 작가와 독자의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문학 플랫폼은 작가와 독자가 연결되는 경험이 가능한, 기존의 문학 플랫폼과는 달리 소통과 참여가 확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문학 플랫폼을 비장소로 여길 필요가 있다. 마르크 오제가 『비장소』에서 언급한 것처럼, 플랫폼은 그것이 지닌 본래의 특성인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잠깐 익명의 존재로 들르는 공간이자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고정된 의미가 아닌 그곳과 맺는 관계에 의해 언제든 변화 가능한 열린 공간이자 텍스트에 따라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며 공동의 정체성이 발휘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클래스 플랫폼 ‘탈잉’이나 독일의 쌍방향 출판 플랫폼 ‘인키트’처럼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여 다양한 경험을 시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러한 문학 플랫폼의 변화는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은 공급자와 사용자 간에 얻을 수 있도록 일정 수 이상의 참여자 수를 확보하여 이익의 임계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킬러콘텐츠의 부재 및 정보 교환이나 추천 알고리즘이 확보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웹툰이나 웹소설 시장처럼 소비자의 데이터를 확보해 판매에 유리한 사업 모델을 만드는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자본의 개입 역시 전무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돈이 되지 않으니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학적인 측면이 있겠으나 그것은 어쩌면 웹툰, 웹소설 시장과는 달리 문학 플랫폼이 문학 작품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데 멈춰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독자의 취향에 맞춰 작품을 쓸 수는 없겠으나 독자의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큐레이션하여 제공함으로써 수요를 불러일으키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자를 수동적 존재가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재조합하여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어 새로운 이야기로 소비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바라보며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밀리의 서재’와 같은 독서 플랫폼이 유의미한 모델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는 있지만, 문학 장르로 한정해서 보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플랫폼이 독자와 작가 사이에 긍정적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켜 활성화된다면 문학 플랫폼 시장으로의 확장에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밀리의 서재 (출처: 밀리의 서재 홈페이지)
지하철에서 종이책을 펼쳐 읽는 독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사회이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왜소해지는 문학 시장을 활성화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플랫폼의 전환을 통해 문학, 특히 순문학에 접근하는 방식에 따른 물리적, 심리적 저항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웹에의 접근이 쉬운 요즘의 독자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강화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이다.
[오늘, 키워드 인문학] 문학에 접근하는 방식 - 문학, 플랫폼 -
- 지난 글: [오늘 키워드 인문학] 민주주의와 정치적 갈등
시인, 문학평론가
2013년 <동아일보>로 시,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평론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이곳의 안녕』, 『내일은 어디쯤인가요』 등이 있으며 제4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문학에 접근하는 방식 - 문학, 플랫폼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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