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드라마가 기우제를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사극이라 하면서 시청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온갖 도사, 무녀들이 등장하고, 관상이며 점술이, 그리고 문관보다는 무관이 지천인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현실인데 기우제라면....
확실히 한국은 세계 속에 유명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K’란 이름을 달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만큼 걱정스러운 구석도 많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는 K문화
문화는 국력과 같이 간다. 해방 이후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먹고사는 걸 해결하는 것만도 벅찼는데 언제 무슨 힘으로 문화적 역량을 갖출 수 있었을까? 워낙 탁월한 사람들만 이 땅에 태어나서 그런 것일까? 그럴 리가! 대한민국의 역사는 짧지만 한반도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우리 공동체의 역사는 엄청나게 길다.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올라온 국력의 입장에서 본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주 짧지만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문화를 일구고 살아온 우리 공동체의 역사는 무려 반만 년이다.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문화적 원형은 아주 긴 역사와 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축적된 문화적 역량에 문서 자료로 남은 문화적 데이터베이스의 양도 엄청나다. 이 탄탄한 토대가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받쳐주고 있어서 이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놀랄만한 질 높은 콘텐츠들을 쏟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이에 대한 인식은 조금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드라마 <조선구마사> 이미지 (출처:SBS)
작년에 역사드라마에 대한 소란이 있었다.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이다. 왜곡이 너무 심해 드라마 사상 아주 이례적으로 사과뿐만 아니라 방영 중단에 이어 세계적으로도 서비스하지 않기로 한 사건이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개인적으로 드라마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우리 드리마가 여기까지 온 것인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바로 “본격 괴력난신(怪力亂神) 드라마”라는 말 때문이었다. 한문을 공부하면 저 말이 무엇인지 안다. 『논어』에서는 공자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자는 초자연적인 것, 완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
불가사의한 존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子不語怪力亂神]”
- 공자의 <논어> 중 -
우리의 생각보다 공자는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조선은 그런 공자의 모습을 깊이 존경하며 유학을 나라의 정신적 틀로 삼아 건국된 나라였다. 그래서 조선은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자세를 높이 쳤다. 선비라 불리던 인물은 어쩌면 현대인보다 더 합리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점술에 의존하지 않았고, 묫자리에 운명을 걸지 않았으며, 부적이 무언가 해줄 수 있다고 절대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믿는 민속 신앙과 싸우고 분투하며 합리성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본격 괴력난신’은 조선의 개국 정신을 적나라하게 한 마디로 무시한 것이었다. 조선의 개국을 다룰 드라마가 조선의 정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무장했다고? 조선을 어디까지 무시하려는 것인가? 조선에 대한 무지가 불러온 참사였다. 그걸 알고 일부러 제작사와 작가가 작업했다면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인 것이고.
옛날이 현대보다 훨씬 더 힘과 미신의 지배를 받으며 비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지금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편견이다. 예를 들어 기우제에 대해 살펴보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예전(禮典)」 제1조 제사(祭祀) 편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가뭄을 만나면 수령은 경건한 마음으로 목욕재계하고 묵묵히 신의 은혜를
빌어야 하고 일체의 속된 풍속을 아울러 행하는 것을 엄금해야 한다.”
- 정약용의 <목민심서 – 예전 제1조 – 제사편> 중 -
이 글의 제목은 「기우제(祈雨祭)는 하늘에 비는 것인데, 지금의 기우제는 희롱하는 짓거리로 하늘을 모독하니 크게 예가 아니다. [祈雨之祭(기우지제), 祈于天也(기우천야), 今之祈雨(금지기우), 戲慢褻瀆(희만설독), 大非禮也(대비례야).]이다. 일단 조선시대 기우제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은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제때 비가 내리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그래서 기우제는 나라의 중요한 일에 속했다. 조선에서는 기우제를 어떻게 지냈을까? 그저 한 번 지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주로 하지(夏至 양력 6월 21일 경)를 기준점으로 삼았는데, 비가 안 오면 하지 이후에 예조가 임금에게 여쭈어 2일 간격으로 거행한다. 총 몇 차례가 할까? 12차례 한다. 인디안 기우제를 방불케 하는 열심이다. 삼각산과 목멱산, 한강, 종묘, 사직단, 풍운뇌우산천단, 북교 등에 하는데, 그중 특이한 행사로는 6차 때의 침호두와 9, 10, 11차 때의 석척동자기우, 12차 때의 오방토룡제를 들 수 있다. 한강의 침호두란 한강에 내시를 보내 호랑이 머리 모양을 만들어 제물과 함께 강물에 던지는 의식이고, 석척동자기우란 무관 종2품과 도마뱀에게 주문을 욀 동자를 보내 거행하는 의식이다. 도마뱀이 비를 주관한다는 용을 닮았기 때문에 도마뱀을 기우제에 활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방토룡제란 3품 당하관을 보내 흙으로 만든 용을 다섯 방위에 두고 채찍으로 내리치면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그런데 이 기우제의 특징은 불교의 승려라든지 도교의 도사라든지 하는 사람들은 전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국가 행정 중의 하나이지 신묘한 도술을 부리는 그런 행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식 조정의 관리가 파견된다. 그리고 비가 내리지 않을수록 나중에는 심지어 의정대신이 기우제에 나아간다. 그리고 행정 전반을 통렬히 반성하기 시작한다. 『목민심서』에서 정약용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먼저 비를 빌기 위해 하는 기이한 행동에 대해 비판한다.
“예로부터 머리가 하늘을 향해 있는 앞곱사등이를 종일 뙤약볕에 세워두는 행위, 무당을 종일 뙤약볕에 세워두는 행위, 소 피를 진흙에 섞어 돌소에 바르고 제사를 지내는 행위, 흙으로 용(龍)을 만들어 비를 비는 행위, 도룡뇽 도마뱀을 잡아 항아리에 넣고 때리며 비를 비는 행위, 점술가가 오성(五星)을 불러 비를 비는 행위, 각 방위에 각 연령의 사람을 세워 춤추게 하며 비를 비는 행위가 있으니, 이렇듯 장난 같은 행위로 비를 비는 행위가 만연해왔다.
지금의 수령들은 가뭄을 만나면 풀로 용을 만들어 붉은 흙을 바르고 여러 아이들에게 끌고 다니며 매질을 하여 욕을 보이게 하기도 하고 혹은 도랑을 파헤쳐 악취를 풍기게 하기도 하고, 또 뼈를 묻어 놓고 주문을 외게 하는 등의 기괴한 짓거리를 하여 다시 차례와 조례가 없으니 참으로 한탄스럽다.”
-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 -
그러면서 저 위의 말을 하고 기우에 성공했던 여러 예를 나열한다. 먼저 제나라 경공이 심한 가뭄이 들자 뭐라도 해보려 하며 재상인 안영(晏嬰)에게 산과 강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겠다고 한 일을 말한다. 안영은 소용없을 거라 말하며 차라리 “궁전에서 나와 뙤약볕에 몸을 드러내 놓고 산신령ㆍ하백과 함께 가뭄을 걱정하신다면 아마도 비가 내릴 것입니다.”라고 했고, 정말로 제 경공이 궁전에서 나와 들판에서 3일 동안 뙤약볕에 몸을 드러내 놓으니, 과연 큰비가 내렸다고 한다. 정약용은 이 사건을 신비로운 사건이 아니라 그가 백성의 고통을 함께 한 사건인 데에 의의를 둔다. 그 뙤약볕을 경험하면서 제 경공은 백성들의 고통을 알게 되어 그들의 세금을 감면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정약용은 비를 빌고 싶다면 쓸데없는 세금을 감면해 주고 억울한 옥사(獄事)를 판결해 주라고 말하고 이어 억울한 옥사를 해결해주자 비가 내렸던 사례들을 나열한다.
가뭄 이후 기우제를 지낸 조선
조선에서는 가뭄을 백성의 억울함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에 생긴 기상이변으로 보았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부터 해결하기 시작한다. 억울함은 화기를 치솟게 하기 때문이다. 억울한 백성이 없게 하는 것이 나라가 조화롭게 운영되는 첫걸음이라 본 것이다. 그리고 왕은 사치를 멈춘다. 원래도 조선의 임금은 절대로 사치를 하면 안 되는 위치였다. 설사 양반대족은 사치를 하더라도 왕은 하면 안 됐다. 만백성의 어버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뭄이 들면 반찬 수를 줄이고 여흥을 즐기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국정 운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기탄없이 말하기 바란다며 구언(求言)이란 것을 했다. 비판해달라는 것이다. 겸허한 자세로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어쩐지 이런 행동이 비과학적이라고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학의 시대라고 하면서 비 오지 않는 것과 오늘 나의 삶이 무슨 상관이랴 생각해버리는 우리의 무책임함과 무관심함을 돌아보게 된다. 조선시대에 이 모든 행동을 취했던 것은 마음이 간절해져야 뭐라도 하면서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위기를 합심해서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뭄에 대비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을 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당대의 기우제였다.
우리의 드라마가 기우제를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사극이라 하면서 시청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온갖 도사, 무녀들이 등장하고, 관상이며 점술이, 그리고 문관보다는 무관이 지천인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현실인데 기우제라면 신비감을 더하기 위해 별 기이한 모습이 현란하게 연출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역사드라마에서 기물이나 제사 방법, 또는 어떤 장면 하나 정도 틀리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을 틀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유흥을 위해 우리의 정신을 왜곡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왜곡이 그대로 세계인에게 전달되어 대한민국의 과거가 오해 속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돈이 되는 K-컬쳐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가, 우리의 정신과 의식이 세계로 수출되는 발판이 되는 K-컬쳐이기도 하다. 돈보다는 유명세보다는 좀 더 집중해야 할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고전번역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전문위원 및 번역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도 활동 중이다. 《일성록》 번역, 《조선왕조실록》 현대화사업인 수정번역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음챙김의 인문학》,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군자를 버린 논어》, 《오늘을 읽은 맹자》, 《시민을 위한 조선사》, 《명(銘), 사물에 새긴 선비의 마음》, 《맹랑 언니의 명랑고전탐닉》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K-콘텐츠 안에 무엇을 담을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K-콘텐츠 안에 무엇을 담을까?
- K컬처로 인문하기 -
임자헌
2022-08-18
우리의 드라마가 기우제를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사극이라 하면서 시청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온갖 도사, 무녀들이 등장하고, 관상이며 점술이, 그리고 문관보다는 무관이 지천인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현실인데 기우제라면....
확실히 한국은 세계 속에 유명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K’란 이름을 달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만큼 걱정스러운 구석도 많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는 K문화
문화는 국력과 같이 간다. 해방 이후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먹고사는 걸 해결하는 것만도 벅찼는데 언제 무슨 힘으로 문화적 역량을 갖출 수 있었을까? 워낙 탁월한 사람들만 이 땅에 태어나서 그런 것일까? 그럴 리가! 대한민국의 역사는 짧지만 한반도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우리 공동체의 역사는 엄청나게 길다. 최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올라온 국력의 입장에서 본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주 짧지만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문화를 일구고 살아온 우리 공동체의 역사는 무려 반만 년이다.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문화적 원형은 아주 긴 역사와 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축적된 문화적 역량에 문서 자료로 남은 문화적 데이터베이스의 양도 엄청나다. 이 탄탄한 토대가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받쳐주고 있어서 이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놀랄만한 질 높은 콘텐츠들을 쏟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이에 대한 인식은 조금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드라마 <조선구마사> 이미지 (출처:SBS)
작년에 역사드라마에 대한 소란이 있었다.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이다. 왜곡이 너무 심해 드라마 사상 아주 이례적으로 사과뿐만 아니라 방영 중단에 이어 세계적으로도 서비스하지 않기로 한 사건이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개인적으로 드라마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우리 드리마가 여기까지 온 것인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바로 “본격 괴력난신(怪力亂神) 드라마”라는 말 때문이었다. 한문을 공부하면 저 말이 무엇인지 안다. 『논어』에서는 공자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자는 초자연적인 것, 완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 불가사의한 존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子不語怪力亂神]”
- 공자의 <논어> 중 -
우리의 생각보다 공자는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조선은 그런 공자의 모습을 깊이 존경하며 유학을 나라의 정신적 틀로 삼아 건국된 나라였다. 그래서 조선은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자세를 높이 쳤다. 선비라 불리던 인물은 어쩌면 현대인보다 더 합리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점술에 의존하지 않았고, 묫자리에 운명을 걸지 않았으며, 부적이 무언가 해줄 수 있다고 절대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믿는 민속 신앙과 싸우고 분투하며 합리성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본격 괴력난신’은 조선의 개국 정신을 적나라하게 한 마디로 무시한 것이었다. 조선의 개국을 다룰 드라마가 조선의 정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무장했다고? 조선을 어디까지 무시하려는 것인가? 조선에 대한 무지가 불러온 참사였다. 그걸 알고 일부러 제작사와 작가가 작업했다면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인 것이고.
옛날이 현대보다 훨씬 더 힘과 미신의 지배를 받으며 비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지금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편견이다. 예를 들어 기우제에 대해 살펴보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예전(禮典)」 제1조 제사(祭祀) 편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가뭄을 만나면 수령은 경건한 마음으로 목욕재계하고 묵묵히 신의 은혜를
빌어야 하고 일체의 속된 풍속을 아울러 행하는 것을 엄금해야 한다.”
- 정약용의 <목민심서 – 예전 제1조 – 제사편> 중 -
이 글의 제목은 「기우제(祈雨祭)는 하늘에 비는 것인데, 지금의 기우제는 희롱하는 짓거리로 하늘을 모독하니 크게 예가 아니다. [祈雨之祭(기우지제), 祈于天也(기우천야), 今之祈雨(금지기우), 戲慢褻瀆(희만설독), 大非禮也(대비례야).]이다. 일단 조선시대 기우제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은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제때 비가 내리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그래서 기우제는 나라의 중요한 일에 속했다. 조선에서는 기우제를 어떻게 지냈을까? 그저 한 번 지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주로 하지(夏至 양력 6월 21일 경)를 기준점으로 삼았는데, 비가 안 오면 하지 이후에 예조가 임금에게 여쭈어 2일 간격으로 거행한다. 총 몇 차례가 할까? 12차례 한다. 인디안 기우제를 방불케 하는 열심이다. 삼각산과 목멱산, 한강, 종묘, 사직단, 풍운뇌우산천단, 북교 등에 하는데, 그중 특이한 행사로는 6차 때의 침호두와 9, 10, 11차 때의 석척동자기우, 12차 때의 오방토룡제를 들 수 있다. 한강의 침호두란 한강에 내시를 보내 호랑이 머리 모양을 만들어 제물과 함께 강물에 던지는 의식이고, 석척동자기우란 무관 종2품과 도마뱀에게 주문을 욀 동자를 보내 거행하는 의식이다. 도마뱀이 비를 주관한다는 용을 닮았기 때문에 도마뱀을 기우제에 활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방토룡제란 3품 당하관을 보내 흙으로 만든 용을 다섯 방위에 두고 채찍으로 내리치면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그런데 이 기우제의 특징은 불교의 승려라든지 도교의 도사라든지 하는 사람들은 전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국가 행정 중의 하나이지 신묘한 도술을 부리는 그런 행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식 조정의 관리가 파견된다. 그리고 비가 내리지 않을수록 나중에는 심지어 의정대신이 기우제에 나아간다. 그리고 행정 전반을 통렬히 반성하기 시작한다. 『목민심서』에서 정약용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먼저 비를 빌기 위해 하는 기이한 행동에 대해 비판한다.
“예로부터 머리가 하늘을 향해 있는 앞곱사등이를 종일 뙤약볕에 세워두는 행위, 무당을 종일 뙤약볕에 세워두는 행위, 소 피를 진흙에 섞어 돌소에 바르고 제사를 지내는 행위, 흙으로 용(龍)을 만들어 비를 비는 행위, 도룡뇽 도마뱀을 잡아 항아리에 넣고 때리며 비를 비는 행위, 점술가가 오성(五星)을 불러 비를 비는 행위, 각 방위에 각 연령의 사람을 세워 춤추게 하며 비를 비는 행위가 있으니, 이렇듯 장난 같은 행위로 비를 비는 행위가 만연해왔다.
지금의 수령들은 가뭄을 만나면 풀로 용을 만들어 붉은 흙을 바르고 여러 아이들에게 끌고 다니며 매질을 하여 욕을 보이게 하기도 하고 혹은 도랑을 파헤쳐 악취를 풍기게 하기도 하고, 또 뼈를 묻어 놓고 주문을 외게 하는 등의 기괴한 짓거리를 하여 다시 차례와 조례가 없으니 참으로 한탄스럽다.”
-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 -
그러면서 저 위의 말을 하고 기우에 성공했던 여러 예를 나열한다. 먼저 제나라 경공이 심한 가뭄이 들자 뭐라도 해보려 하며 재상인 안영(晏嬰)에게 산과 강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겠다고 한 일을 말한다. 안영은 소용없을 거라 말하며 차라리 “궁전에서 나와 뙤약볕에 몸을 드러내 놓고 산신령ㆍ하백과 함께 가뭄을 걱정하신다면 아마도 비가 내릴 것입니다.”라고 했고, 정말로 제 경공이 궁전에서 나와 들판에서 3일 동안 뙤약볕에 몸을 드러내 놓으니, 과연 큰비가 내렸다고 한다. 정약용은 이 사건을 신비로운 사건이 아니라 그가 백성의 고통을 함께 한 사건인 데에 의의를 둔다. 그 뙤약볕을 경험하면서 제 경공은 백성들의 고통을 알게 되어 그들의 세금을 감면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정약용은 비를 빌고 싶다면 쓸데없는 세금을 감면해 주고 억울한 옥사(獄事)를 판결해 주라고 말하고 이어 억울한 옥사를 해결해주자 비가 내렸던 사례들을 나열한다.
가뭄 이후 기우제를 지낸 조선
조선에서는 가뭄을 백성의 억울함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에 생긴 기상이변으로 보았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부터 해결하기 시작한다. 억울함은 화기를 치솟게 하기 때문이다. 억울한 백성이 없게 하는 것이 나라가 조화롭게 운영되는 첫걸음이라 본 것이다. 그리고 왕은 사치를 멈춘다. 원래도 조선의 임금은 절대로 사치를 하면 안 되는 위치였다. 설사 양반대족은 사치를 하더라도 왕은 하면 안 됐다. 만백성의 어버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뭄이 들면 반찬 수를 줄이고 여흥을 즐기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국정 운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기탄없이 말하기 바란다며 구언(求言)이란 것을 했다. 비판해달라는 것이다. 겸허한 자세로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어쩐지 이런 행동이 비과학적이라고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학의 시대라고 하면서 비 오지 않는 것과 오늘 나의 삶이 무슨 상관이랴 생각해버리는 우리의 무책임함과 무관심함을 돌아보게 된다. 조선시대에 이 모든 행동을 취했던 것은 마음이 간절해져야 뭐라도 하면서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위기를 합심해서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뭄에 대비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을 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당대의 기우제였다.
우리의 드라마가 기우제를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사극이라 하면서 시청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온갖 도사, 무녀들이 등장하고, 관상이며 점술이, 그리고 문관보다는 무관이 지천인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현실인데 기우제라면 신비감을 더하기 위해 별 기이한 모습이 현란하게 연출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역사드라마에서 기물이나 제사 방법, 또는 어떤 장면 하나 정도 틀리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을 틀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유흥을 위해 우리의 정신을 왜곡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왜곡이 그대로 세계인에게 전달되어 대한민국의 과거가 오해 속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돈이 되는 K-컬쳐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가, 우리의 정신과 의식이 세계로 수출되는 발판이 되는 K-컬쳐이기도 하다. 돈보다는 유명세보다는 좀 더 집중해야 할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K컬처로 인문하기] K-콘텐츠 안에 무엇을 담을까?
- 지난 글: [K컬처로 인문하기] K컬처는 결국 당신의 이야기에서부터
고전번역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전문위원 및 번역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도 활동 중이다. 《일성록》 번역, 《조선왕조실록》 현대화사업인 수정번역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음챙김의 인문학》,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군자를 버린 논어》, 《오늘을 읽은 맹자》, 《시민을 위한 조선사》, 《명(銘), 사물에 새긴 선비의 마음》, 《맹랑 언니의 명랑고전탐닉》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K-콘텐츠 안에 무엇을 담을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댓글(0)
7월 : 입법자
함규진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 영화 ‘다가오는 것들’이 건네는 ...
김혜숙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