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마음껏 원 없이 해본 것들에는 그렇게 애달파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카이브K, 블루 아카이브, 아카이브 카페, 아카이브 아트홀, 리틀 아카이브, 메종 아카이브...
음악 프로그램, 모바일 게임, 패션 브랜드, 매거진, 커피숍 등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머무르는 문화, 상품, 공간들을 아카이브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단어의 본래 의미와 상관없이 앞다퉈 불리우는 이름, 아카이브! 그 바람이 뜨겁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이미지(이미지 출처: SBS 프로그램)
아카이브(archives)는 ‘기록보관소’ 혹은 ‘기록물’을 뜻한다. 국가기록원이나 서울기록원처럼 역사적 가치 혹은 장기 보존의 가치를 가진 기록이나 문서들을 보관하는 장소, 시설, 기관이 아카이브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백업용 또는 장기 보존을 위해 한 곳에 파일들을 모아둔 것을 아카이브라 부른다. 그리스어 아르케이온(archeion)에서 파생된 것으로 시초, 시작 혹은 정부기관을 의미하는 아르케(arche)로부터 유래되었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 파리에 국립아카이브(National archives)를 설립하면서 아카이브라 명명하였다. 기록법을 제정하여 아카이브에 국가가 과거의 기록을 보존할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고 국민은 생산 보존된 기록을 아카이브에서 조사·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천명하였다. 어떤 것의 시작을 의미하는 아치(arch)가 영구히 보존하는 국가의 기록보존소의 의미로 나아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기록보존소라는 원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골목의 작은 디저트 가게조차도 아카이브라고 부를 만큼 몹시도 이 이름을 좋아한다. 유행은 ‘특정한 행동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지는 또는 그런 사회적 동조 현상이나 경향’을 말하는데 보통사람들이 유행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것이 등장해 유행의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영역과 경계의 구분 없이 그 유행하는 것의 생산에 모두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카이브 열풍이 어디에서 불어오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아카이브 열풍의 근원
예술계가 가장 먼저 아카이브와 사랑에 빠졌다. 전 세계에 복고 트렌드와 맞물려 기업에서 자신의 브랜드 모음을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전시하기 전부터 국립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갤러리에서 아카이브를 주제로 전시를 개최하였다. 과거의 아카이브는 보존의 목적으로 사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최근에는 예술 창작의 주요 데이터로, 과거를 현재와 매개하는 미디어로 활용한다.
호리 아트스페이스에서는 〈윤병락 아카이브〉를 전시 중이다. 작가의 작품을 모아 전시를 하는 것을 ‘컬렉션’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아카이브’라 명명한다. 아카이브라는 그룹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많다. 청계천박물관에서 2022년 상반기 기획 전시로 서울 아카이브 사진가 그룹의 〈청계천 경景유遊장場: 청계천에서 보고, 놀고, 산다〉를 선보인다. 작가들이 여러 해에 걸쳐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것을 전시하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전시 중인 〈기록하는 기억〉전은 2005년 5월 여의도 버스 환승센터 당시 우연히 발견된 정체불명의 벙커[SeMA 벙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ium of Art)에서 운영·관리를 하고 있어 약어로 SeMA 벙커라 부름]에 대한 정황 증거들을 모아 〈기록하는 기억〉전을 개최한다. 아트로 아카이브 공간을 구축한 것이다. 현대미술 작가와 작품 그리고 전시에 관한 정보데이터베이스는 아예 이름이 아카이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키비스트(archivist, 기록물보존전문가)이다.
(왼쪽부터)윤병락 아카이브, 청계천 경유장, 기록하는 기억의 포스터(이미지 출처: ARTLECTURE, 서울문화포털)
곳곳에 파고든 아카이브
도서관과 마을도 아카이브와 목하 열애 중이다. 도서관에서의 아카이브 열풍은 마을 기록가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불고 있다. 파주시 중앙도서관, 서울시 성북구립도서관, 인천시 영종도서관, 화성시 남양도서관 등 우리나라의 모든 도서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각 지역의 도서관에서 마을 기록가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마을 기록가들이 지역의 기억과 공동체의 삶이 담긴 기록을 수집하거나 구술하여, 기록집을 생산하는 기록화 활동을 활발하고 하고 있다.
성북구립도서관(이미지 출처: 성북문화재단)
지자체는 아카이브를 건립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경기도, 제주도, 충청남도, 파주시, 대구시, 인천시 등 전국 18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이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하여 기록원(영구기록물 보존소)를 설립하고자 준비 중인데 이는 지역의 아카이브 열풍에 따른 결과라 볼 수 있다. 마포 문화비축기지처럼 폐산업시설을 아카이브로 전환하거나, 돈의문박물관마을처럼 도시재개발 지역에 아카이브 공간을 따로 구축하거나, 경북의 안동역처럼 장소 이전이나 장소 소멸이 예정된 곳에서 과거 그곳에 관련된 기록들을 전시한다. 지방자치가 강화되고 활성화됨에 따라 지역의 역사·문화콘텐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지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의 다원화된 기억을 대상으로 기록화를 꾀함으로써 지역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의 영역을 발견, 창조하여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독특함과 선명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것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아카이브로 미래 세상을 예언한다. 김초엽은 『관내분실』 중 「우리가 빛의 속도록 갈 수 없다면」에서 종이문서 등의 기록이 아닌 사람의 마인드(기억)을 보존하여 열람하도록 하는 아카이브에서 인덱스가 없는 마인드를 찾는 주인공의 서사를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의 마인드가 하나의 데이터로서 관리, 보존, 열람되는 미래가 펼쳐진다. 영화 아카이브(2020)에서는 죽은 사람의 의식을 일정 기간 특수한 시스템 속에서 유지 관리하면서 영상통화를 하는 방식으로 유족·친지와 소통시켜주는 하이테크 서비스를 만날 수 있다.
영화 〈ARCHIVE〉 포스터(좌)와 김초엽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지(우)(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교보문고)
아카이브가 유행하는 까닭
이렇게 도처에서 아카이브가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저장할 수 있으며 누구나 손쉽게 검색하여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필요조건일뿐 아카이브 열풍의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기술이 발달해 존재했던 모든 것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인간의 기억만큼은 예외다. 보존하려고 종종걸음으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메모를 하며 영상을 촬영하는 이유도 결국 그것을 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장소와 공간에 영원히 시간을 붙들어놓고 싶은 욕망, 이것만큼은 끝끝내 실현되지 않을 줄 예감하는 것일까?
아카이브에 대한 열망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영원히 기억하고 싶으면서도 맹렬히 잊고자 하는 우리들의 과거 편집 욕구가 아카이브를 부추기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시간과 사라져가는 기억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만큼이나 간절히 잊고 싶은, 없었던 일처럼,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욕망도 만만치 않다.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하면 다른 것들을 잊을 수 있다. 저 기억으로 이 기억을 대체할 수 있다. 과거를 적절하게 재구성하여 어떤 것은 과감하게 잊고 어떤 것들은 강조하여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모여 특정의 것들만을 보존하는 것이다. 잊지 않으려는 것을 아카이브에 수집 보존함으로써 잊으려는 것을 배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아카이브에 무엇을 보존하든 우리네 삶은 과거와 동일한 모습으로 복원할 수는 없다. 아카이브를 바라보는 인간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왜 지금 아카이브가 이렇게 뜨거운가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기 어렵지만 인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마음껏 원 없이 해본 것들에는 그렇게 애달파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뜨거운 열기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돌아보면 그 시절 우리가 왜 그토록 아카이브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록 연구사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 후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에서 기록학 박사과정 중이다. 『기억공간을 찾아서』,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책 읽고 싶어지는 도서관 디스플레이』를 저술하였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화성시, 인천여성가족재단, 증평기록관 등에서 마을기록가 양성 프로그램 기획·운영 및 기록 수집 등의 연구용역을 수행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열풍, 아카이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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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 아카이브
- 오늘, 키워드 인문학 -
안정희
2022-05-30
아카이브에 무엇을 보존하든 우리네 삶은 과거와 동일한 모습으로 복원할 수는 없다.
아카이브를 바라보는 인간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왜 지금 아카이브가 이렇게 뜨거운가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기 어렵지만
인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마음껏 원 없이 해본 것들에는 그렇게 애달파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카이브K, 블루 아카이브, 아카이브 카페, 아카이브 아트홀, 리틀 아카이브, 메종 아카이브...
음악 프로그램, 모바일 게임, 패션 브랜드, 매거진, 커피숍 등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머무르는 문화, 상품, 공간들을 아카이브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단어의 본래 의미와 상관없이 앞다퉈 불리우는 이름, 아카이브! 그 바람이 뜨겁다.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이미지(이미지 출처: SBS 프로그램)
아카이브(archives)는 ‘기록보관소’ 혹은 ‘기록물’을 뜻한다. 국가기록원이나 서울기록원처럼 역사적 가치 혹은 장기 보존의 가치를 가진 기록이나 문서들을 보관하는 장소, 시설, 기관이 아카이브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백업용 또는 장기 보존을 위해 한 곳에 파일들을 모아둔 것을 아카이브라 부른다. 그리스어 아르케이온(archeion)에서 파생된 것으로 시초, 시작 혹은 정부기관을 의미하는 아르케(arche)로부터 유래되었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 파리에 국립아카이브(National archives)를 설립하면서 아카이브라 명명하였다. 기록법을 제정하여 아카이브에 국가가 과거의 기록을 보존할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고 국민은 생산 보존된 기록을 아카이브에서 조사·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천명하였다. 어떤 것의 시작을 의미하는 아치(arch)가 영구히 보존하는 국가의 기록보존소의 의미로 나아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기록보존소라는 원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골목의 작은 디저트 가게조차도 아카이브라고 부를 만큼 몹시도 이 이름을 좋아한다. 유행은 ‘특정한 행동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지는 또는 그런 사회적 동조 현상이나 경향’을 말하는데 보통사람들이 유행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것이 등장해 유행의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영역과 경계의 구분 없이 그 유행하는 것의 생산에 모두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카이브 열풍이 어디에서 불어오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아카이브 열풍의 근원
예술계가 가장 먼저 아카이브와 사랑에 빠졌다. 전 세계에 복고 트렌드와 맞물려 기업에서 자신의 브랜드 모음을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전시하기 전부터 국립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갤러리에서 아카이브를 주제로 전시를 개최하였다. 과거의 아카이브는 보존의 목적으로 사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최근에는 예술 창작의 주요 데이터로, 과거를 현재와 매개하는 미디어로 활용한다.
호리 아트스페이스에서는 〈윤병락 아카이브〉를 전시 중이다. 작가의 작품을 모아 전시를 하는 것을 ‘컬렉션’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아카이브’라 명명한다. 아카이브라는 그룹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많다. 청계천박물관에서 2022년 상반기 기획 전시로 서울 아카이브 사진가 그룹의 〈청계천 경景유遊장場: 청계천에서 보고, 놀고, 산다〉를 선보인다. 작가들이 여러 해에 걸쳐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것을 전시하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전시 중인 〈기록하는 기억〉전은 2005년 5월 여의도 버스 환승센터 당시 우연히 발견된 정체불명의 벙커[SeMA 벙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ium of Art)에서 운영·관리를 하고 있어 약어로 SeMA 벙커라 부름]에 대한 정황 증거들을 모아 〈기록하는 기억〉전을 개최한다. 아트로 아카이브 공간을 구축한 것이다. 현대미술 작가와 작품 그리고 전시에 관한 정보데이터베이스는 아예 이름이 아카이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키비스트(archivist, 기록물보존전문가)이다.
(왼쪽부터)윤병락 아카이브, 청계천 경유장, 기록하는 기억의 포스터(이미지 출처: ARTLECTURE, 서울문화포털)
곳곳에 파고든 아카이브
도서관과 마을도 아카이브와 목하 열애 중이다. 도서관에서의 아카이브 열풍은 마을 기록가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불고 있다. 파주시 중앙도서관, 서울시 성북구립도서관, 인천시 영종도서관, 화성시 남양도서관 등 우리나라의 모든 도서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각 지역의 도서관에서 마을 기록가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마을 기록가들이 지역의 기억과 공동체의 삶이 담긴 기록을 수집하거나 구술하여, 기록집을 생산하는 기록화 활동을 활발하고 하고 있다.
성북구립도서관(이미지 출처: 성북문화재단)
지자체는 아카이브를 건립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경기도, 제주도, 충청남도, 파주시, 대구시, 인천시 등 전국 18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이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하여 기록원(영구기록물 보존소)를 설립하고자 준비 중인데 이는 지역의 아카이브 열풍에 따른 결과라 볼 수 있다. 마포 문화비축기지처럼 폐산업시설을 아카이브로 전환하거나, 돈의문박물관마을처럼 도시재개발 지역에 아카이브 공간을 따로 구축하거나, 경북의 안동역처럼 장소 이전이나 장소 소멸이 예정된 곳에서 과거 그곳에 관련된 기록들을 전시한다. 지방자치가 강화되고 활성화됨에 따라 지역의 역사·문화콘텐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지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의 다원화된 기억을 대상으로 기록화를 꾀함으로써 지역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의 영역을 발견, 창조하여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독특함과 선명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것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아카이브로 미래 세상을 예언한다. 김초엽은 『관내분실』 중 「우리가 빛의 속도록 갈 수 없다면」에서 종이문서 등의 기록이 아닌 사람의 마인드(기억)을 보존하여 열람하도록 하는 아카이브에서 인덱스가 없는 마인드를 찾는 주인공의 서사를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의 마인드가 하나의 데이터로서 관리, 보존, 열람되는 미래가 펼쳐진다. 영화 아카이브(2020)에서는 죽은 사람의 의식을 일정 기간 특수한 시스템 속에서 유지 관리하면서 영상통화를 하는 방식으로 유족·친지와 소통시켜주는 하이테크 서비스를 만날 수 있다.
영화 〈ARCHIVE〉 포스터(좌)와 김초엽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지(우)(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교보문고)
아카이브가 유행하는 까닭
이렇게 도처에서 아카이브가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저장할 수 있으며 누구나 손쉽게 검색하여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필요조건일뿐 아카이브 열풍의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기술이 발달해 존재했던 모든 것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인간의 기억만큼은 예외다. 보존하려고 종종걸음으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메모를 하며 영상을 촬영하는 이유도 결국 그것을 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장소와 공간에 영원히 시간을 붙들어놓고 싶은 욕망, 이것만큼은 끝끝내 실현되지 않을 줄 예감하는 것일까?
아카이브에 대한 열망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영원히 기억하고 싶으면서도 맹렬히 잊고자 하는 우리들의 과거 편집 욕구가 아카이브를 부추기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시간과 사라져가는 기억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만큼이나 간절히 잊고 싶은, 없었던 일처럼,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욕망도 만만치 않다.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하면 다른 것들을 잊을 수 있다. 저 기억으로 이 기억을 대체할 수 있다. 과거를 적절하게 재구성하여 어떤 것은 과감하게 잊고 어떤 것들은 강조하여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모여 특정의 것들만을 보존하는 것이다. 잊지 않으려는 것을 아카이브에 수집 보존함으로써 잊으려는 것을 배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아카이브에 무엇을 보존하든 우리네 삶은 과거와 동일한 모습으로 복원할 수는 없다. 아카이브를 바라보는 인간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왜 지금 아카이브가 이렇게 뜨거운가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기 어렵지만 인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마음껏 원 없이 해본 것들에는 그렇게 애달파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뜨거운 열기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돌아보면 그 시절 우리가 왜 그토록 아카이브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키워드 인문학] 열풍, 아카이브
- 지난 글: [오늘, 키워드 인문학] 위선과 염치
기록 연구사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 후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에서 기록학 박사과정 중이다. 『기억공간을 찾아서』,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책 읽고 싶어지는 도서관 디스플레이』를 저술하였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화성시, 인천여성가족재단, 증평기록관 등에서 마을기록가 양성 프로그램 기획·운영 및 기록 수집 등의 연구용역을 수행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열풍, 아카이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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