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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학은 왜 여성적인가

- 문학이 아닌 모든 것 -

이광호

2022-02-18

문학이 아닌 모든 것은? 문학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있지만, 또한 아무 곳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풍문과 지식들은 문학을 잘 향유하게 만들기보다는  어떤 틀 안에 가두고 문학을 납작하게 만든다.  문학의 적이 문학을 호명하는 제도와 교육이라는 것은 문학이 처한 불행이다.  이 연재는 문학제도 안에서 문학을 규정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이를테면 문학의 정의, 장르와 문학성을 둘러싼 익숙한 개념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문학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문학에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려 한다.  그 속에서 문학을 만나는 일이 나날의 삶을 발명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면.


남편은 어쩌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겠지만,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평범함은 잠재적인 폭력성을 의미할 수 있다. 육식은 남성 중심적인 체제에서 인간과 동물의 위계적인 관계를 의미하며, 가족과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들과 정상적인 것들의 억압적 질서를 상징하기도 하다. “지금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 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라는 가족의 저주는 그 폭력의 핵심이다. …….



성 정체성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상상력의 가능성



젠더 이분법

젠더 이분법



문학이 ‘여성적인 것’과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편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 편향성에는 현대문학의 상황에 대한 중요한 통찰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근대 문학의 출발에서 문학의 주체는 암묵적으로 ‘남성-이성애자’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문학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남성 중심의 형식과 시스템이 구축되었다는 사실이다. 여성 문인들은 ‘여류’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비주류’로 취급되었다.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처럼 여겨졌다. 여성이 한국문학의 주체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2016년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사태 이후 ‘젠더’가 한국 사회의 격렬한 주제어가 되었고, 여성 작가와 여성 독자들이 주도적인 집단으로 등장했다. 근대문학의 출발 이후 100여 년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한국문학에서 ‘여성적인 것’은 강력한 흐름으로 등장했고, 이런 상황은 문학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생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적인 것’을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이 특정한 문학적 성향만을 주장한다고는 할 수 없다. ‘여성성’을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가부장제 시스템 안에서 익숙한 지배적인 관념이다. 오히려 여성성이라는 억압적인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 여성적인 글쓰기의 잠재성을 열어가는 것이 여성적인 문학 운동 방식이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성으로서의 ‘젠더’가 억압적 성정체성을 고착화하는 것을 허무는 것이 페미니즘을 둘러싼 예술 행위의 급진적 방향이다. 이런 관점에서 여성적인 문학 운동은 ‘남성적인 것’의 대립항이 아니라 ‘남성성/여성성’의 이분법적 젠더 시스템 자체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적인 글쓰기는 생물학적인 여성 주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젠더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지 않은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에 가깝다. 그렇기에 생물학적인 남성이 여성적인 글쓰기와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올란도〉, 성별과 시간의 경계 넘나들며 억압 깨닫는 주인공



버지니아 울프(좌) 소설 『올랜도 Orlando : a biography』 버지니아 울프 장편소설 | 이미애 옮김 | 열린책들(우)

버지니아 울프(좌)와 소설 『올랜도』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교보문고)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 소설 『올란도』는 엘리자베스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에 이르는 올란도라는 인물의 생애를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기법으로 그린다. 주인공 올란도의 수백 년 간에 걸친 삶은 예기치 못한 모험과 좌절된 사랑, 놀라운 성전환의 경험과 문학을 향한 열망을 모두 담고 있다. 엘리자베스 1세의 활기 넘치는 궁정에서 올란도는 눈부시게 잘생긴 열여섯 살의 젊은 귀족이다. 그를 총애한 엘리자베스 1세는 그에게 영원히 나이 들지도 말고 죽지도 말라고 주문하고, 그는 수백 년에 걸쳐 사는 인간이 된다. 그는 템즈 강의 축제에서 러시아 대사의 딸과 사랑에 빠지지만, 가슴 아픈 실연으로 끝난다. 시인 닉 그린의 지도를 받으며 어린 시절 쓰다만 「참나무」라는 시를 계속 써 나가지만 시인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올란도는 끈질긴 구혼자를 피해 영국 대사로서 콘스탄티노플로 떠난다.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지만, 반란군들의 폭동으로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그는 자신이 여자로 변해 있음을 알게 된다. 완전한 여성이 된 올란도는 영국으로 돌아와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남성 우월주의의 억압을 경험하고 남성적 지배 질서를 깨닫는다. 탐험가 쉘머딘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는 경험도 하게 된다. 1928년 올랜도는 과거에 자신의 작품을 혹평했던 닉의 도움으로 책을 출간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감된다.



A film by SALLY POTTER 〈ORLANDO〉 based on the book by Virginia Woolf | TILDA SWINTON BILLY ZANE

영화 〈올란도〉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자전적인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만 환상적인 요소가 가득한 이 소설의 독창성은 소설 속의 작가에 대해 또 다른 숨은 작가가 논평하는 중첩적인 서술 방식을 보여 준다. 샐리 포터(Sally Potter, 1949~) 감독이 만든 영화 〈올란도〉는 틸다 스윈톤(Tilda Swinton,1960~)이라는 배우의 중성적인 매력을 한껏 끌어내며 원작 소설의 환상성과 실험성을 구현하고 있다. 특히 주연 배우가 ‘카메라-관객’을 향해 말을 건네는 장면들을 삽입하여 원작 소설의 중층적인 서술 방식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올란도의 이야기가 매혹적인 것은, 성별과 시간의 경계 속에 갇혀 있는 현세의 삶으로부터 다른 차원의 여러 겹의 삶을 상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남녀를 오가는 양성적인 존재이고 수많은 시간에 걸쳐 삶을 이어가는 올란도는 성별과 시간의 경계를 모두 넘어서는 존재이다. 이 특이한 존재는 젠더 시스템과 현세적 삶이라는 제한 속에 갇혀 있는 삶의 다른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상상하게 해 준다. 생물학적인 여성으로 바뀐 후 올란도는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위치를 박탈당할 위험에 처하고 사회체제가 여성에게 얼마나 억압적인가를 깨닫게 된다. 지성은 여성에게 맞지 않고 여성들은 아버지나 남편의 도움으로 본성을 발견한다고 남자 귀족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올란도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내가 여기 있다’는 환희에 찬 깨달음에 도달한다. 모든 경계를 넘어선 올란도라는 양성적 존재는 보수적인 사회 체제의 젠더 시스템를 넘어서는 매혹적인 상상적 존재이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0 『단지 조금 이상한』 강성은 시집 | 문학과지성사

강성은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 책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가 죽었다

몇 세기에 걸쳐 꿈을 꾸었다

수많은 계절들의 반복과 변주

수많은 사람들의 반복과 변주

어제와 내일의 경계가 사라지고

여성과 남성의 경계가 사라져도

이 꿈은 사라지지 않아

죽기 위해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

다음 생이 시작된다


-강성은 시 , 「올란도」 일부,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사, 2013


강성은 시인은 올란도의 서사를 시적인 것으로 다시 쓴다. 이 시에서 올란도의 생애는 “몇세기의 걸쳐 꿈을” 꾼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계절들의 반복과 변주”이며, “여성과 남성의 경계가 사라”지는 길고 긴 시간의 이야기이다. “죽기 위해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 다음 생이 시작”되고, “슬그머니 얼굴을 바꾸면/ 다음 날이 시작된다”. 그래서 그 길고 긴 삶의 반복과 변주 속에서 “나의 얼굴은 켜켜이 쌓여간다”. ‘나’는 여러 세월의 층위를 경험하면서 여러 얼굴들을 쌓아간다. 얼굴들은 규정될 수 없고 한계지을 수 없다는 맥락에서 ‘무한’을 향해 쌓인다. “오래된 꿈이 끝나고/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되”는 순간은, 이 모든 반복과 변주로부터 ‘내’가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그 마지막 순간의 도래가 아니라, 그 무수하고 무한한 탄생의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여성성/남성성’의 생물학적사회적 구분을 넘어서는 존재와 시간에 대한 강렬하고 매혹적인 상상의 경험이다.



「채식주의자」, 가부장적 억압 위계에 대한 식물적 저항!!

 


소설가 한강(좌)와 소설집 『채식주의자』 한강 장편소설 | 창비 (우)

소설가 한강(좌)와 소설집 『채식주의자』 책 표지 (이미지 출처: Han Kang, 교보문고)



맨부커 상의 수상으로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린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여성 작가의 독특한 환상적 요소를 담고 있다. 여주인공의 남편의 시점으로 구성된 「채식주의자」에서 남편은 갑자기 병적으로 채식을 고집하는 아내를 이해하지도 감당하지도 못한다. 여성 주인공의 내적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타인의 시선이 내재한 폭력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주인공 영혜의 투쟁은 거의 필사적이다. 남편은 어쩌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겠지만,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평범함은 잠재적인 폭력성을 의미할 수 있다. 육식은 남성 중심적인 체제에서 인간과 동물의 위계적인 관계를 의미하며, 가족과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들과 정상적인 것들의 억압적 질서를 상징하기도 하다. “지금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 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라는 가족의 저주는 그 폭력의 핵심이다. 먹고 먹히는 것을 원리로 하는 육식 문화는 가족과 사회라는 질서를 떠받치는 일상의 규율로 내면화되어 있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에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 창비, 2007


영혜가 발설하는 독백과 웅얼거림은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분열증적인 언어이며, 그 지배적 질서를 거부하려는 여성적 육체의 언어이다. 이 언어는 사회제도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들린’ 언어이고, 사회와 상징 질서의 억압에 대한 비명에 가깝다. 주인공의 채식은 다수성과 정상성의 폭력을 드러내게 만드는 장치이면서, 자발적으로 사회의 타자가 되려는 ‘식물적인’ 저항이다. 지배적 질서에 맞서 싸우는 동물적인 것이 아니라 그 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스스로 식물이 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저항은 식물적인 거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아닌 미지의 존재가 되려는 모험



모험

모험



「채식주의자」를 페미니즘 혹은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그 미학적 독특함을 제한하는 것이지만, 그 독특한 미학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는 있다. 이 소설에서 ‘여성성=채식주의’라는 이미지가 여성성에 대한 또 다른 억압적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질서에 대한 거부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영혜가 고집하는 채식주의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시선은 가부장적 질서의 내재된 폭력성이 폭로되는 지점이다. 채식이라는 투쟁은 가부장제 안에 여성이 다른 신체적 존재를 꿈꾸는 모험을 보여 준다는 측면에서 올란도의 모험의 연장선에 있다. 단지 여성이거나 남성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내’가 아닌 미지의 개별적 존재가 되려는 모험은 삶의 과정에서 가장 문학적인 열망이다.



[문학이 아닌 모든 것] 9. 문학은 왜 여성적인가

- 지난 글: [문학이 아닌 모든 것] 8. 문학은 문학의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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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이광호

문학평론가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학 평론가가 되었으며,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과 「문학과 사회」 편집 동인으로 일했다. 20년 동안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등의 문학 비평서와 『너는 우연한 고양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사랑의 미래』 등의 에세이를 썼다. 쓰는 사람이면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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