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속으로 혹평을 내렸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루가 지난 그 순간부터 〈오징어 게임〉 열풍이 몰아쳤다. 미국 넷플릭스 전체 1위를 하더니 세계 1위를 했다.(중략) 나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물론 작품의 퀄리티와 흥행은 꼭 비례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 흥행에는 당연히 작품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시청자들이 만족한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말한 단점들이 이 드라마가 성공한 요인이었다는 것을…….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관련 기사가 너무도 쏟아져서 딱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21년 10월 19일 열린 넷플릭스 3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CEO와 부사장은 〈오징어 게임〉의 체육복을 입고 등장을 했다. 이는 〈오징어 게임〉의 흥행이 단순한 수준이 아님을 보여준다. 왜냐면 〈오징어 게임〉이든 아니든 1등 작품은 언제나 있는 것인데, 그런다고 CEO가 늘 코스튬 플레이를 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오징어 게임〉 참가복을 입은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유튜브 타고 날아오른 BTS, 넷플릭스 타고 성공한 〈오징어 게임〉
단순히 〈오징어 게임〉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한류는 눈부시게 날아올랐다. 특히 BTS의 성공은 인상적이다. 어떻게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머나먼 해외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과거 미국 산업은 주류 백인들이 독점했다. 문화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일을 진행했다. 당연히 스타는 늘 그들의 ‘직감’에서 탄생했다. 스타는 그들과 비슷한 주류 백인이거나, 그들의 레이더에 들어온 몇몇 소수자였다. 그들이 꼭 편파적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 자신의 자녀들이 좋아하는 취향을 반영해 새로운 스타를 발굴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오면서 ‘유튜브’같이 전 세계인들이 함께 사용하는 사이트들이 생겨났다. 유튜브에서 중요한 것은 조회 수다. 제1 세계 백인 남성이든, 동쪽 구석의 10대 아시안이든 조회 수는 동등하다. 힘을 가진 백인 남성이 본다고 10번 조회한 것으로 쳐주지 않는다. 전 세계인이 동시에 사용하는 채널이 생김으로써 모두가 1표라는 생각지도 않은 민주주의가 생겨난 것이다.
BTS를 흔히 영국 출신 밴드 ‘비틀즈’에 빗대곤 한다. 하지만 비틀즈는 백인이고 영어로 노래를 불렀다. BTS는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동양인이다.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BTS는 절대 비틀즈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미국 주류 사회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의 높은 조회 수는 그곳이 미국이든 필리핀이든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조회 수라는 것도 인프라가 잘 갖춰진 주류 세계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망을 비롯한 인프라는 점점 확대되고 있고, 주류 세계에서 무시당했던 이들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BTS가 미국에서 처음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팬은 주류 백인이 아닌 십대 아시안과 히스패닉, LGBT(성적 소수자,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글자를 따온 단어) 중심이었다. 이들 역시 미국의 구성원이지만 과거에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가져온 민주주의로 인해 이들은 이제 주류와 동일한 데이터로 존재한다. 시장은 그들의 소비력을 알게 됐고,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오징어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전 세계에 서비스된다. 국가별로 서비스되는 작품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요 작품들은 전 세계에 걸쳐 동시에 각국의 언어로 자막이 서비스된다. 과거 미국 영화와 드라마만이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건 미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탁월했던 이유도 있지만, 그 정도의 배급력과 홍보력을 가진 곳이 미국 배급사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등장 이후 이제 굳이 미국 작품이 아니어도 된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수년간 인기를 끌고 있는 〈종이의 집〉은 스페인어로 만들어진 스페인 드라마다. 과거에도 분명 훌륭한 스페인 드라마가 있었겠지만, 그 작품을 세계인이 만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때가 온 것이다.
소수자와 함께 주류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을 가진 BTS (이미지 출처: 필자제공)
그러니까 한류의 훌륭함만 강조하는 국내 기사들을 걷어내고 실제 일어나는 현상만 보자면, 현재 한류 열풍의 가장 큰 이유는 그럴 만한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류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문화에 기회가 열렸다. 나이지리아 음악이 전 세계에서 흥행하자, 팝스타들이 비행기를 타고 나이지리아로 날아가 나이지리아 가수들과 콜라보를 한다. 태국의 괴기스럽지만 코믹한 광고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자, 선진국들이 이런 방식을 벤치마킹한다. 그러니 21세기 들어 한국의 콘텐츠만 흥행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콘텐츠가 흥행할 가능성을 가진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하필 한국의 콘텐츠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이 서구권을 제외하고 가장 서구권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자체 성립하기 힘든 한국의 열악한 현실이 아티스트와 제작사로 하여금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게 만들었다. K문화가 인기를 끌기 전부터 한국 콘텐츠는 이미 세계 주류와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재는 여전히 한국적이다. 서구권 문화 형태에 새로운 문화를 한두 가지 섞으면 외국인들은 익숙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외국인들의 눈에 그것은 힙한 무언가가 된다. 〈킹덤〉의 ‘갓’에 열광한 외국인들을 보라. 한국에서 단 한 번이라도 갓이 유행한 적이 있던가. 〈킹덤〉 제작진 중에 갓의 인기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게 별로였던 것들이 세계적 흥행의 요인으로
이제 전체적인 그림은 그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오징어 게임〉의 특별한 성공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 봐야 한다. 나는 넷플릭스에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다음 날 아홉 개 에피소드를 모두 봤다. 내가 이 작품을 볼 때만 해도 이 드라마가 그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징어 게임〉이 별로였다. 내가 이 작품이 별로라고 느낀 이유는 대략 이렇다.
먼저, 초기 설정 이후에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반전이 없었다. 인물들이 모두 평면적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힘든 배경을 가진 캐릭터여도 처음에 소개가 된 뒤로는 어떤 발전도 변화도 없었다.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심리적으로도 그랬다. 마스터인 이병헌의 존재는 코미디 그 자체였다. 왜 그 정도의 대배우가 그런 식으로 소비됐는지 모르겠다. 이병헌이 가면을 벗는 장면은 드라마적으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데, 아무 희열도 주지 못했다. VIP들의 존재는 표피적인 캐릭터의 절정이었다. 그들은 그냥 있어야 할 존재였기에 그 곳에 있었을 뿐이다.
또한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설정도 그 자체가 신선하다고 하긴 어렵다. 드라마로는 많이 없었을지라도 〈배틀로얄〉, 〈도박묵시록 카이지〉, 〈헝거 게임〉 등을 통해 익숙할 만큼 익숙하다. 게임이 주는 심리 묘사로만 따진다면 〈오징어 게임〉보다 다른 작품들이 훨씬 탁월하다.
결정적으로 작품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오징어 게임'이 시시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줄다리기'가 '달고나'가 줬던 게임의 쾌감에 비해서 결승전인 '오징어 게임'은 그냥 두 사람이 벌인 개싸움에 불과했다. 그냥 둘이 싸우라고 하지, 뭐하러 게임을 붙였나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속으로 혹평을 내렸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루가 지난 그 순간부터 〈오징어 게임〉 열풍이 몰아쳤다. 미국 넷플릭스 전체 1위를 하더니 세계 1위를 했다. 1주일이 지나자 〈오징어 게임〉이 서비스되는 83개국에서 1위를 휩쓸었다. 한국 드라마 사상 최대 흥행이며, 넷플릭스에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흥행이었다.
나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물론 작품의 퀄리티와 흥행은 꼭 비례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 흥행에는 당연히 작품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시청자들이 만족한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말한 단점들이 이 드라마가 성공한 요인이었다는 것을.
‘취향’과 ‘단순함’, 시대의 트렌드를 저격한 오징어 게임
사람들이 주로 보는 매체가 지상파 방송에서 유튜브로 넘어간 뒤, 영상의 퀄리티는 확실히 낮아졌다. 유튜브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영상들이 넘쳐났지만, 완성도는 방송국에서 전문가들이 제작하는 영상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곧 유튜브를 훨씬 많이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질이 떨어진다고 평가한 나조차도 그랬다. 사람들이 영상에 바라는 것이 변한 것이다. 완성도보다는 나의 취향에 맞는 것, 사람들은 그런 것을 원했다.
영상을 보는 방식도 변했다. 사람들은 채팅을 하거나 일을 하면서 혹은 게임을 하면서, 드라마를 본다. 출퇴근 시간을 쪼개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본다. 10초 앞뒤로 건너뛰기는 일상이 됐다. 나조차도 스토리 이해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장면들에서는 10초씩 대충 건너뛰면서 영상을 본다. 배속을 바꿔서 빨리 보는 일도 흔해졌다. 배속을 올리면 영상이나 음향 등 모든 것이 틀어지므로 전통적으로 영화를 배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작품을 파괴하는 행위라고까지 느껴지지만, 소비자가 그런 방식을 선택한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니까 이런 시청 환경에서는 너무 촘촘히 짜여진 복잡한 스토리나 변화무쌍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는 도움이 안 된다. 〈오징어 게임〉은 심플하다. 설정은 충격적이지만 스토리나 캐릭터는 단선적이다. 나쁜 놈이 끝까지 나쁜 놈이다. 반전은 없다. 영화 속에서 하는 게임은 외국인의 눈에 신선하지만 동시에 단순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달고나’ 등 대부분 게임의 룰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한 게임은 패러디하거나 밈(meme, 원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사용한 단어로 사람들 사이에 전달되면서 새롭게 탄생하는 문화적 현상을 뜻하는데 요즘은 젋은이들이 특정 문화 콘텐츠를 따라 하며 노는 현상을 뜻함)을 만들기도 좋다. 벌써 각종 브랜드들이 달고나로 자신들의 로고를 만들며 홍보를 한다. 물론 결승전인 ‘오징어 게임’은 다소 복잡하지만, 어차피 결승까지 봤다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걸 지독하게 한다. 유튜브에서 히트한 〈머니게임〉이나 〈가짜 사나이〉 모두 이 공식을 따른다. 넘기면서 봐도 괜찮다. 중간 한 회 정도는 안 봐도 무방하다. 감정 신이 부담스럽다면 넘기면 된다. 보기 싫은 캐릭터가 나온다면 건너뛰거나 한눈을 팔면 된다. 그러면서도 영상은 지독하다. 설정이 강렬하기에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단편적인 스토리는 오히려 깊이를 추가한다. 단순한 스토리 덕에 시청자들은 그 속에서 한국 사회의 이면을 읽는다. BBC나 CNN은 〈오징어 게임〉을 보고 한국 사회의 뒷모습을 조명한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그런 접근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 작품의 단순성은 오히려 바쁜 현대인에게 통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한 플롯을 가진 동화가 오래도록 살아남는 이유와 비슷하다.
한국인이 아니어도 단번에 이해 가능한 게임, 달고나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능성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콘텐츠의 성공 방식이 변한 데서 기인한다. 제작자들이 이를 얼마나 염두에 두고 이 콘텐츠를 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징어 게임〉은 바뀐 드라마 시청 환경에 딱 들어맞았고 대박을 터트렸다. 이런 추세가 언제까지고 계속되진 않겠지만,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생각해 봤을 때 한동안은 이런 작품들이 세계적 흥행을 터트릴 가능성이 높다. BTS를 포함해서 다른 한류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모든 세계에 기회의 문이 열렸다. 그래서 궁금하다.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과 어떤 아티스트들이 튀어나올지. 한국 작품이면 좋겠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은 다른 곳에서 등장해도 좋을 것 같다. 드디어 세상이 흥미진진해졌다.
작가
예술과 과학, 문화에 관해 고민하고 글을 쓴다.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가장 공적인 연애사』 등 총 5권의 책을 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콘텐츠 성공 방식의 급변… 한류에도 차례가 왔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콘텐츠 성공 방식의 급변… 한류에도 차례가 왔다
- K컬처로 인문하기 -
오후
2022-01-07
이렇게 속으로 혹평을 내렸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루가 지난 그 순간부터 〈오징어 게임〉 열풍이 몰아쳤다. 미국 넷플릭스 전체 1위를 하더니 세계 1위를 했다.(중략) 나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물론 작품의 퀄리티와 흥행은 꼭 비례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 흥행에는 당연히 작품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시청자들이 만족한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말한 단점들이 이 드라마가 성공한 요인이었다는 것을…….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관련 기사가 너무도 쏟아져서 딱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21년 10월 19일 열린 넷플릭스 3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CEO와 부사장은 〈오징어 게임〉의 체육복을 입고 등장을 했다. 이는 〈오징어 게임〉의 흥행이 단순한 수준이 아님을 보여준다. 왜냐면 〈오징어 게임〉이든 아니든 1등 작품은 언제나 있는 것인데, 그런다고 CEO가 늘 코스튬 플레이를 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오징어 게임〉 참가복을 입은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유튜브 타고 날아오른 BTS, 넷플릭스 타고 성공한 〈오징어 게임〉
단순히 〈오징어 게임〉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한류는 눈부시게 날아올랐다. 특히 BTS의 성공은 인상적이다. 어떻게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머나먼 해외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과거 미국 산업은 주류 백인들이 독점했다. 문화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일을 진행했다. 당연히 스타는 늘 그들의 ‘직감’에서 탄생했다. 스타는 그들과 비슷한 주류 백인이거나, 그들의 레이더에 들어온 몇몇 소수자였다. 그들이 꼭 편파적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 자신의 자녀들이 좋아하는 취향을 반영해 새로운 스타를 발굴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오면서 ‘유튜브’같이 전 세계인들이 함께 사용하는 사이트들이 생겨났다. 유튜브에서 중요한 것은 조회 수다. 제1 세계 백인 남성이든, 동쪽 구석의 10대 아시안이든 조회 수는 동등하다. 힘을 가진 백인 남성이 본다고 10번 조회한 것으로 쳐주지 않는다. 전 세계인이 동시에 사용하는 채널이 생김으로써 모두가 1표라는 생각지도 않은 민주주의가 생겨난 것이다.
BTS를 흔히 영국 출신 밴드 ‘비틀즈’에 빗대곤 한다. 하지만 비틀즈는 백인이고 영어로 노래를 불렀다. BTS는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동양인이다.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BTS는 절대 비틀즈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미국 주류 사회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의 높은 조회 수는 그곳이 미국이든 필리핀이든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조회 수라는 것도 인프라가 잘 갖춰진 주류 세계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망을 비롯한 인프라는 점점 확대되고 있고, 주류 세계에서 무시당했던 이들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BTS가 미국에서 처음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팬은 주류 백인이 아닌 십대 아시안과 히스패닉, LGBT(성적 소수자,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글자를 따온 단어) 중심이었다. 이들 역시 미국의 구성원이지만 과거에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가져온 민주주의로 인해 이들은 이제 주류와 동일한 데이터로 존재한다. 시장은 그들의 소비력을 알게 됐고,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오징어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전 세계에 서비스된다. 국가별로 서비스되는 작품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요 작품들은 전 세계에 걸쳐 동시에 각국의 언어로 자막이 서비스된다. 과거 미국 영화와 드라마만이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건 미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탁월했던 이유도 있지만, 그 정도의 배급력과 홍보력을 가진 곳이 미국 배급사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등장 이후 이제 굳이 미국 작품이 아니어도 된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수년간 인기를 끌고 있는 〈종이의 집〉은 스페인어로 만들어진 스페인 드라마다. 과거에도 분명 훌륭한 스페인 드라마가 있었겠지만, 그 작품을 세계인이 만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때가 온 것이다.
소수자와 함께 주류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을 가진 BTS (이미지 출처: 필자제공)
그러니까 한류의 훌륭함만 강조하는 국내 기사들을 걷어내고 실제 일어나는 현상만 보자면, 현재 한류 열풍의 가장 큰 이유는 그럴 만한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류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문화에 기회가 열렸다. 나이지리아 음악이 전 세계에서 흥행하자, 팝스타들이 비행기를 타고 나이지리아로 날아가 나이지리아 가수들과 콜라보를 한다. 태국의 괴기스럽지만 코믹한 광고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자, 선진국들이 이런 방식을 벤치마킹한다. 그러니 21세기 들어 한국의 콘텐츠만 흥행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콘텐츠가 흥행할 가능성을 가진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하필 한국의 콘텐츠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이 서구권을 제외하고 가장 서구권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자체 성립하기 힘든 한국의 열악한 현실이 아티스트와 제작사로 하여금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게 만들었다. K문화가 인기를 끌기 전부터 한국 콘텐츠는 이미 세계 주류와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재는 여전히 한국적이다. 서구권 문화 형태에 새로운 문화를 한두 가지 섞으면 외국인들은 익숙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외국인들의 눈에 그것은 힙한 무언가가 된다. 〈킹덤〉의 ‘갓’에 열광한 외국인들을 보라. 한국에서 단 한 번이라도 갓이 유행한 적이 있던가. 〈킹덤〉 제작진 중에 갓의 인기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게 별로였던 것들이 세계적 흥행의 요인으로
이제 전체적인 그림은 그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오징어 게임〉의 특별한 성공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 봐야 한다. 나는 넷플릭스에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다음 날 아홉 개 에피소드를 모두 봤다. 내가 이 작품을 볼 때만 해도 이 드라마가 그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징어 게임〉이 별로였다. 내가 이 작품이 별로라고 느낀 이유는 대략 이렇다.
먼저, 초기 설정 이후에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반전이 없었다. 인물들이 모두 평면적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힘든 배경을 가진 캐릭터여도 처음에 소개가 된 뒤로는 어떤 발전도 변화도 없었다.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심리적으로도 그랬다. 마스터인 이병헌의 존재는 코미디 그 자체였다. 왜 그 정도의 대배우가 그런 식으로 소비됐는지 모르겠다. 이병헌이 가면을 벗는 장면은 드라마적으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데, 아무 희열도 주지 못했다. VIP들의 존재는 표피적인 캐릭터의 절정이었다. 그들은 그냥 있어야 할 존재였기에 그 곳에 있었을 뿐이다.
또한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설정도 그 자체가 신선하다고 하긴 어렵다. 드라마로는 많이 없었을지라도 〈배틀로얄〉, 〈도박묵시록 카이지〉, 〈헝거 게임〉 등을 통해 익숙할 만큼 익숙하다. 게임이 주는 심리 묘사로만 따진다면 〈오징어 게임〉보다 다른 작품들이 훨씬 탁월하다.
결정적으로 작품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오징어 게임'이 시시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줄다리기'가 '달고나'가 줬던 게임의 쾌감에 비해서 결승전인 '오징어 게임'은 그냥 두 사람이 벌인 개싸움에 불과했다. 그냥 둘이 싸우라고 하지, 뭐하러 게임을 붙였나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속으로 혹평을 내렸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루가 지난 그 순간부터 〈오징어 게임〉 열풍이 몰아쳤다. 미국 넷플릭스 전체 1위를 하더니 세계 1위를 했다. 1주일이 지나자 〈오징어 게임〉이 서비스되는 83개국에서 1위를 휩쓸었다. 한국 드라마 사상 최대 흥행이며, 넷플릭스에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흥행이었다.
나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물론 작품의 퀄리티와 흥행은 꼭 비례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 흥행에는 당연히 작품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시청자들이 만족한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말한 단점들이 이 드라마가 성공한 요인이었다는 것을.
‘취향’과 ‘단순함’, 시대의 트렌드를 저격한 오징어 게임
사람들이 주로 보는 매체가 지상파 방송에서 유튜브로 넘어간 뒤, 영상의 퀄리티는 확실히 낮아졌다. 유튜브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영상들이 넘쳐났지만, 완성도는 방송국에서 전문가들이 제작하는 영상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곧 유튜브를 훨씬 많이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질이 떨어진다고 평가한 나조차도 그랬다. 사람들이 영상에 바라는 것이 변한 것이다. 완성도보다는 나의 취향에 맞는 것, 사람들은 그런 것을 원했다.
영상을 보는 방식도 변했다. 사람들은 채팅을 하거나 일을 하면서 혹은 게임을 하면서, 드라마를 본다. 출퇴근 시간을 쪼개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본다. 10초 앞뒤로 건너뛰기는 일상이 됐다. 나조차도 스토리 이해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장면들에서는 10초씩 대충 건너뛰면서 영상을 본다. 배속을 바꿔서 빨리 보는 일도 흔해졌다. 배속을 올리면 영상이나 음향 등 모든 것이 틀어지므로 전통적으로 영화를 배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작품을 파괴하는 행위라고까지 느껴지지만, 소비자가 그런 방식을 선택한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니까 이런 시청 환경에서는 너무 촘촘히 짜여진 복잡한 스토리나 변화무쌍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는 도움이 안 된다. 〈오징어 게임〉은 심플하다. 설정은 충격적이지만 스토리나 캐릭터는 단선적이다. 나쁜 놈이 끝까지 나쁜 놈이다. 반전은 없다. 영화 속에서 하는 게임은 외국인의 눈에 신선하지만 동시에 단순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달고나’ 등 대부분 게임의 룰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한 게임은 패러디하거나 밈(meme, 원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사용한 단어로 사람들 사이에 전달되면서 새롭게 탄생하는 문화적 현상을 뜻하는데 요즘은 젋은이들이 특정 문화 콘텐츠를 따라 하며 노는 현상을 뜻함)을 만들기도 좋다. 벌써 각종 브랜드들이 달고나로 자신들의 로고를 만들며 홍보를 한다. 물론 결승전인 ‘오징어 게임’은 다소 복잡하지만, 어차피 결승까지 봤다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걸 지독하게 한다. 유튜브에서 히트한 〈머니게임〉이나 〈가짜 사나이〉 모두 이 공식을 따른다. 넘기면서 봐도 괜찮다. 중간 한 회 정도는 안 봐도 무방하다. 감정 신이 부담스럽다면 넘기면 된다. 보기 싫은 캐릭터가 나온다면 건너뛰거나 한눈을 팔면 된다. 그러면서도 영상은 지독하다. 설정이 강렬하기에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단편적인 스토리는 오히려 깊이를 추가한다. 단순한 스토리 덕에 시청자들은 그 속에서 한국 사회의 이면을 읽는다. BBC나 CNN은 〈오징어 게임〉을 보고 한국 사회의 뒷모습을 조명한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그런 접근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 작품의 단순성은 오히려 바쁜 현대인에게 통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한 플롯을 가진 동화가 오래도록 살아남는 이유와 비슷하다.
한국인이 아니어도 단번에 이해 가능한 게임, 달고나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능성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콘텐츠의 성공 방식이 변한 데서 기인한다. 제작자들이 이를 얼마나 염두에 두고 이 콘텐츠를 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징어 게임〉은 바뀐 드라마 시청 환경에 딱 들어맞았고 대박을 터트렸다. 이런 추세가 언제까지고 계속되진 않겠지만,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생각해 봤을 때 한동안은 이런 작품들이 세계적 흥행을 터트릴 가능성이 높다. BTS를 포함해서 다른 한류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모든 세계에 기회의 문이 열렸다. 그래서 궁금하다.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과 어떤 아티스트들이 튀어나올지. 한국 작품이면 좋겠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은 다른 곳에서 등장해도 좋을 것 같다. 드디어 세상이 흥미진진해졌다.
[K컬처로 인문하기] 콘텐츠 성공 방식의 급변… 한류에도 차례가 왔다
- 지난 글: [K컬처로 인문하기] 영웅 이야기 구조로 살펴본 〈오징어 게임〉 성공 원인
작가
예술과 과학, 문화에 관해 고민하고 글을 쓴다.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가장 공적인 연애사』 등 총 5권의 책을 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콘텐츠 성공 방식의 급변… 한류에도 차례가 왔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댓글(1)
홍**
2022-01-09잘 읽었습니다~^^
영웅 이야기 구조로 살펴본 〈오징어 게임〉 성공 원인
김은경
다른 자리에도 앉고 천천히 옆으로도 뒤로도 가보기!!
류동춘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