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결국 그는 ‘영웅의 여행’이라는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영웅의 형상을 갖추어갈 수밖에 없다.
세계 유수 언론들이 보도한 <오징어 게임> 흥행 요인
우리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넷플릭스의 서비스권인 94개국에서 모두 1위, 역대 최단 시간 최다 시청 기록을 경신했다. 누적 조회 수 또한 1위, 넷플릭스가 설립된 1997년 이후 가장 많은 구독자가 본 콘텐츠가 되었다. 앞다퉈 세계의 유수 언론들은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대흥행에 관해 여러 분석을 내놓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영국 BBC 방송은 ‘〈오징어 게임〉: 한국 드라마에 빠진 세계’라는 기사를 통해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그룹 방탄소년단(BTS)를 비롯한 K팝 아티스트의 인기,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기생충〉 등 한국 영화의 성공과 궤를 같이 한다.”면서 “최근 몇 년간 서구 전역에 쓰나미처럼 몰려온 ‘한류’의 가장 최근 물결”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서바이벌이 주는 긴장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의 전통 놀이 등 전 세계인을 매료시킬 다양한 미덕”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절박한 처지에 몰린 주인공의 이야기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중된 빈부의 격차를 실감한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기록적인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두 언론사가 〈오징어 게임〉의 흥행 요인에 대해 거시적인 해석을 내놓았다면, 독일 공영 방송 도이체벨레(DW)는 ‘〈오징어 게임〉이 다른 생존 스릴러와 다른 점’이라는 기사를 통해 〈오징어 게임〉이 지닌 장르적 차별성에 대해 진단했다. 도이체벨레는 “〈오징어 게임〉이 영국 소설 〈파리 대왕〉(1954), 일본 영화 〈배틀로얄〉(1999), 미국 소설 〈헝거게임〉(2008)의 계보를 따르는 동시에, 앞선 생존 스릴러와는 다른 문법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야생이 아닌 문명화된 인공화된 공간이라는 점, 참여자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게임을 그만둘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생존 스릴러 장르와는 결이 다르다.”고 〈오징어 게임〉의 독보적 특성을 짚어냈다.
이외에도 국내외 여러 매체에서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에 관한 수많은 기사와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그것을 집약하면 한류, 팬데믹, 밈(meme; 특정 콘텐츠를 온라인상에서 재생산하며 놀이로 즐기는 현상), 대한민국 특유의 사회 비판 의식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체험 중인 분쟁지역의 팔레스타인들 (이미지 출처: KBS 〈시사직격〉)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쇼핑몰에 등장한 오징어 게임 복장 (이미지 출처: 로이터)
다채로운 접근과 해석은 분명 〈오징어 게임〉의 신드롬적인 성공을 진단하고 그 의의를 규명함에 있어서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학과 문화학 혹은 인류학적인 접근만으로는 〈오징어 게임〉만이 가지는 이야기적인 특수성, 요컨대 〈오징어 게임〉의 서사가 담고 있는 심연 속 의의에 온전히 도달할 수 없다. 이야기의 구조 및 전개 방식에 대한 천착을 전제하지 않는 해석은 오히려 이야기의 본질적인 힘을 외면하거나 망각해버리는 위험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적인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이 물음의 해답에 대한 첫 번째 단초는 오롯이 이야기 구조 자체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웅의 여행 12단계’ 이론과 〈오징어 게임〉
마블의 아이언맨과 DC 코믹스의 배트맨 등 할리우드식 영웅에 관한 콘텐츠는 우리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으로도 매우 낯익은 풍경 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 익숙함을 무기로 할리우드의 대중문화는 세계인들의 사랑과 지지를 독차지해왔다. 그렇다면 반대로 낯선 우리의 〈오징어 게임〉은 어떻게 최단 시간에 세계인들의 낯익은 풍경 속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일까.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기획자와 창작자가 그랬듯 가장 보편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론에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것은 구조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일본의 문학평론가)의 말대로 가장 친숙하고 신속하게 사람들의 인상 속에 기억되는 이야기들은 투명한 구조로서 자리 잡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인 크리스토퍼 보글러(Christopher Vogler, 1949~)가 작성한 할리우드식 이야기 문법, ‘영웅의 여행’은 여기에 이상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겸 비교종교학자)의 단일 신화론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보글러의 창작 매뉴얼인 ‘영웅의 여행’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대중 서사에 깊은 영향력을 깊게 행사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 구조 또한 보글러의 ‘영웅의 여행 12단계’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그것을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영웅의 여행 12단계’와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 구조
영웅의 여행 12단계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 구조
일상 세계
성기훈은 이혼 후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도박 중독자인 그는 빚쟁이들에게 잡혀 신체 포기 각서를 쓰게 된다.
모험에의 초대
지하철역에서 오징어 게임의 영업 사원을 만난 기훈은 딱지치기 게임을 한 뒤, 오징어 게임 초대 명함을 받는다.
소명의 거부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후 처참하게 살육된 낙오자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기훈을 포함한 남은 참가들은 게임 진행의 반대표를 행사한다. 게임은 중단되고, 기훈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현자와의 만남
기훈은 우연히 동네에서 일남과 마주친다. “현실이 더욱 지옥”이라는 일남의 이야기에 공감한 기훈은 다시 오징어 게임에 참가할 것을 결심한다.
제1 관문 돌파
게임에 복귀한 기훈은 ‘달고나 뽑기’에서 뒷면에 침을 묻히면 선을 따라 더 빨리 녹는다는 것을 터득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가장 어려운 우산 모양의 달고나를 뽑아낸다.
동료·적·시험
기훈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줄다리기, 징검다리, 구슬치기를 통과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기훈의 협력자는 상우, 일남, 새벽, 알리라 할 수 있고, 적대자로는 덕수의 무리라 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장소로 접근
살아남은 기훈, 상우, 새벽은 주최자의 축하 만찬에 초대된다, 정적 속에 끝난 만찬 후, 셋은 식탁 위에 남겨진 나이프를 챙겨 숙소로 돌아온다. 기훈이 방심한 사이 새벽은 상우에게 살해된다.
최대의 시련
마지막 게임인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은 상우와 혈투를 벌인다. 죽음의 위기에서 반격에 성공한 기훈은 상우를 제압한다. “게임을 중도 포기하자”는 기훈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상우는 끝내 자살을 선택한다.
보상
최종 승자가 된 기훈은 456억이 입금된 통장의 잔액을 확인한다.
귀로
집에 돌아온 기훈은 어머니의 주검과 마주하고 오열한다. 이후 상금을 하나도 쓰지 않고, 은둔자로 살아간다.
재생
깐부의 초대장을 받은 기훈은 일남과 재회하고. 그가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임을 알게 된다. 이후 그와 벌인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며 부활한다.
영약을 가지고 귀환
기훈은 상금을 새벽의 남동생과 상우의 어머니에게 나눠준다. 딸을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 기훈은 딱지치기를 하고 있는 오징어 게임의 영업 사원을 발견한다. 기훈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려 하지만 이내 다시 발길을 돌린다.
새로운 실험, 기존 영웅 서사의 변형과 변주
일찍이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그의 저서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서 “영웅의 여행 개념 틀에 새로운 실험이 행해질 때마다 영웅의 여행은 더욱 확장되고 한층 발전한다.”고 적시했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을 매혹시킨 이유 또한 이야기 구조 내에서 시도된 새로운 실험, 즉 변형과 변주의 역할이 크다.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책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 표지 (이미지 출처: 알라딘)
예컨대 영웅의 여행 중 첫 단계인 ‘일상 세계’는 주인공의 ‘일상’만이 아니라 그 일상을 위협하게 될 ‘위험’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보통 이 ‘위험’은 영웅을 모험으로 떠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 성기훈의 일상을 위협하는 ‘빚 독촉’은 모험을 떠나도록 만드는 역할을 넘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사람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과 맞닿아 세계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발휘했다.
다음으로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으로 경계를 넘어서야 하는 ‘제1 관문 돌파’에서 기훈은 스스로의 힘으로 모험의 중심부로 향한다. 이때 그가 발휘한 해결책은 비범한 영웅적 능력이라기보다는 생을 향한 원초적인 욕망과 즉발적인 기지에 가깝다. 12단계 중 괄목할 만한 변주가 이뤄진 구간은 단연 ‘동료·적·시험’이다. 통상적으로 이 구간은 긴장감이 고조되는 구간이다. 줄다리기, 징검다리, 구슬치기가 주인공이 통과해야 하는 시험으로 배치되었고, 그 패턴이 온라인 게임과 닮아 있어 몰입도를 상승시켰다. 한편 여기에 사용된 게임들은 우리의 전통 놀이지만 누가 봐도 30초 안에 이해되는 ‘단순함’과 ‘소구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세계적 ‘밈’ 현상으로 이어졌고,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탁월한 전략적 무기를 탑재한 작품임을 방증했다.
‘또 다른 나’로 몸과 마음이 안정된 주인공이 세계의 안정을 되찾는 마지막 단계인 ‘영약을 가지고 귀환’에서 기훈은 새벽의 남동생과 상우의 어머니에게 상금을 나눠주는 영웅적 대의를 실천하고, 딸을 만나기 위해 미국행 탑승구에 오른다. 이때, 시청자의 예상과는 달리 돌연 돌아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기훈의 눈빛으로 〈오징어 게임〉은 막을 내린다. 〈오징어 게임〉의 단순한 ‘참가자’가 아닌 그 흑막을 좇는 ‘추적자’의 열망이 가득한 기훈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 마지막 장면은 〈오징어 게임〉 속 ‘영웅의 여행’의 마지막 변주이자 새로운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예고편이다.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의 저자 크리스토퍼 보글러 (이미지 출처: 단국대학교)
기존 이야기 구조, 하지만 새로운 영웅 탄생
일반적으로 ‘영웅의 여행 12단계’는 영웅이란 주체에 의해서 움직이고, 귀결된다. 물론 성기훈의 형상은 우리가 익히 일고 있는 신화 속 영웅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일상 근처에 있는 평범한 누군가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절대적인 낙오자일 수도 있다. 분명 성기훈은 할리우드식 영웅이 아닌 루저의 전형이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영웅의 여행’이라는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영웅의 형상을 갖추어갈 수밖에 없다. 그 역시 예외 없이 이야기 속 영웅적 주체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바로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에서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은 발생한다. 비영웅적인 태생의 성기훈이지만 ‘영웅의 여행 12단계’를 거치며 영웅적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화적 영웅의 모습을 반증한다. 즉 성기훈이 보여 준 영웅의 여행은 기존의 신화 속 영웅들이 가지지 못한 새로운 면모의 현대적 성향을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차별적이다. 그럼에도 그가 기존 영웅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그조차도 구조의 일부로써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교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년간 방송 작가로 활동했고, 현재 백석예술대학교 공연예술학부 극작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방송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며, 시간 여행 드라마의 놀이성을 연구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영웅 이야기 구조로 살펴본 〈오징어 게임〉 성공 원인'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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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야기 구조로 살펴본 〈오징어 게임〉 성공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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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2021-12-24
물론 성기훈의 형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화 속 영웅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일상 근처에 있는 평범한 누군가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절대적인 낙오자일 수도 있다.
분명 성기훈은 할리우드식 영웅이 아닌 루저의 전형이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영웅의 여행’이라는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영웅의 형상을 갖추어갈 수밖에 없다.
세계 유수 언론들이 보도한 <오징어 게임> 흥행 요인
우리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넷플릭스의 서비스권인 94개국에서 모두 1위, 역대 최단 시간 최다 시청 기록을 경신했다. 누적 조회 수 또한 1위, 넷플릭스가 설립된 1997년 이후 가장 많은 구독자가 본 콘텐츠가 되었다. 앞다퉈 세계의 유수 언론들은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대흥행에 관해 여러 분석을 내놓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영국 BBC 방송은 ‘〈오징어 게임〉: 한국 드라마에 빠진 세계’라는 기사를 통해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그룹 방탄소년단(BTS)를 비롯한 K팝 아티스트의 인기,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기생충〉 등 한국 영화의 성공과 궤를 같이 한다.”면서 “최근 몇 년간 서구 전역에 쓰나미처럼 몰려온 ‘한류’의 가장 최근 물결”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서바이벌이 주는 긴장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의 전통 놀이 등 전 세계인을 매료시킬 다양한 미덕”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절박한 처지에 몰린 주인공의 이야기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중된 빈부의 격차를 실감한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기록적인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두 언론사가 〈오징어 게임〉의 흥행 요인에 대해 거시적인 해석을 내놓았다면, 독일 공영 방송 도이체벨레(DW)는 ‘〈오징어 게임〉이 다른 생존 스릴러와 다른 점’이라는 기사를 통해 〈오징어 게임〉이 지닌 장르적 차별성에 대해 진단했다. 도이체벨레는 “〈오징어 게임〉이 영국 소설 〈파리 대왕〉(1954), 일본 영화 〈배틀로얄〉(1999), 미국 소설 〈헝거게임〉(2008)의 계보를 따르는 동시에, 앞선 생존 스릴러와는 다른 문법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야생이 아닌 문명화된 인공화된 공간이라는 점, 참여자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게임을 그만둘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생존 스릴러 장르와는 결이 다르다.”고 〈오징어 게임〉의 독보적 특성을 짚어냈다.
이외에도 국내외 여러 매체에서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에 관한 수많은 기사와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그것을 집약하면 한류, 팬데믹, 밈(meme; 특정 콘텐츠를 온라인상에서 재생산하며 놀이로 즐기는 현상), 대한민국 특유의 사회 비판 의식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체험 중인 분쟁지역의 팔레스타인들 (이미지 출처: KBS 〈시사직격〉)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쇼핑몰에 등장한 오징어 게임 복장 (이미지 출처: 로이터)
다채로운 접근과 해석은 분명 〈오징어 게임〉의 신드롬적인 성공을 진단하고 그 의의를 규명함에 있어서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학과 문화학 혹은 인류학적인 접근만으로는 〈오징어 게임〉만이 가지는 이야기적인 특수성, 요컨대 〈오징어 게임〉의 서사가 담고 있는 심연 속 의의에 온전히 도달할 수 없다. 이야기의 구조 및 전개 방식에 대한 천착을 전제하지 않는 해석은 오히려 이야기의 본질적인 힘을 외면하거나 망각해버리는 위험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적인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이 물음의 해답에 대한 첫 번째 단초는 오롯이 이야기 구조 자체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웅의 여행 12단계’ 이론과 〈오징어 게임〉
마블의 아이언맨과 DC 코믹스의 배트맨 등 할리우드식 영웅에 관한 콘텐츠는 우리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으로도 매우 낯익은 풍경 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 익숙함을 무기로 할리우드의 대중문화는 세계인들의 사랑과 지지를 독차지해왔다. 그렇다면 반대로 낯선 우리의 〈오징어 게임〉은 어떻게 최단 시간에 세계인들의 낯익은 풍경 속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일까.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기획자와 창작자가 그랬듯 가장 보편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론에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것은 구조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일본의 문학평론가)의 말대로 가장 친숙하고 신속하게 사람들의 인상 속에 기억되는 이야기들은 투명한 구조로서 자리 잡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인 크리스토퍼 보글러(Christopher Vogler, 1949~)가 작성한 할리우드식 이야기 문법, ‘영웅의 여행’은 여기에 이상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겸 비교종교학자)의 단일 신화론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보글러의 창작 매뉴얼인 ‘영웅의 여행’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대중 서사에 깊은 영향력을 깊게 행사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 구조 또한 보글러의 ‘영웅의 여행 12단계’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그것을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영웅의 여행 12단계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 구조
일상 세계
성기훈은 이혼 후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도박 중독자인 그는 빚쟁이들에게 잡혀 신체 포기 각서를 쓰게 된다.
모험에의 초대
지하철역에서 오징어 게임의 영업 사원을 만난 기훈은 딱지치기 게임을 한 뒤, 오징어 게임 초대 명함을 받는다.
소명의 거부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후 처참하게 살육된 낙오자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기훈을 포함한 남은 참가들은 게임 진행의 반대표를 행사한다. 게임은 중단되고, 기훈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현자와의 만남
기훈은 우연히 동네에서 일남과 마주친다. “현실이 더욱 지옥”이라는 일남의 이야기에 공감한 기훈은 다시 오징어 게임에 참가할 것을 결심한다.
제1 관문 돌파
게임에 복귀한 기훈은 ‘달고나 뽑기’에서 뒷면에 침을 묻히면 선을 따라 더 빨리 녹는다는 것을 터득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가장 어려운 우산 모양의 달고나를 뽑아낸다.
동료·적·시험
기훈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줄다리기, 징검다리, 구슬치기를 통과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기훈의 협력자는 상우, 일남, 새벽, 알리라 할 수 있고, 적대자로는 덕수의 무리라 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장소로 접근
살아남은 기훈, 상우, 새벽은 주최자의 축하 만찬에 초대된다, 정적 속에 끝난 만찬 후, 셋은 식탁 위에 남겨진 나이프를 챙겨 숙소로 돌아온다. 기훈이 방심한 사이 새벽은 상우에게 살해된다.
최대의 시련
마지막 게임인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은 상우와 혈투를 벌인다. 죽음의 위기에서 반격에 성공한 기훈은 상우를 제압한다. “게임을 중도 포기하자”는 기훈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상우는 끝내 자살을 선택한다.
보상
최종 승자가 된 기훈은 456억이 입금된 통장의 잔액을 확인한다.
귀로
집에 돌아온 기훈은 어머니의 주검과 마주하고 오열한다. 이후 상금을 하나도 쓰지 않고, 은둔자로 살아간다.
재생
깐부의 초대장을 받은 기훈은 일남과 재회하고. 그가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임을 알게 된다. 이후 그와 벌인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며 부활한다.
영약을 가지고 귀환
기훈은 상금을 새벽의 남동생과 상우의 어머니에게 나눠준다. 딸을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 기훈은 딱지치기를 하고 있는 오징어 게임의 영업 사원을 발견한다. 기훈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려 하지만 이내 다시 발길을 돌린다.
새로운 실험, 기존 영웅 서사의 변형과 변주
일찍이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그의 저서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서 “영웅의 여행 개념 틀에 새로운 실험이 행해질 때마다 영웅의 여행은 더욱 확장되고 한층 발전한다.”고 적시했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을 매혹시킨 이유 또한 이야기 구조 내에서 시도된 새로운 실험, 즉 변형과 변주의 역할이 크다.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책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 표지 (이미지 출처: 알라딘)
예컨대 영웅의 여행 중 첫 단계인 ‘일상 세계’는 주인공의 ‘일상’만이 아니라 그 일상을 위협하게 될 ‘위험’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보통 이 ‘위험’은 영웅을 모험으로 떠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 성기훈의 일상을 위협하는 ‘빚 독촉’은 모험을 떠나도록 만드는 역할을 넘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사람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과 맞닿아 세계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발휘했다.
다음으로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으로 경계를 넘어서야 하는 ‘제1 관문 돌파’에서 기훈은 스스로의 힘으로 모험의 중심부로 향한다. 이때 그가 발휘한 해결책은 비범한 영웅적 능력이라기보다는 생을 향한 원초적인 욕망과 즉발적인 기지에 가깝다. 12단계 중 괄목할 만한 변주가 이뤄진 구간은 단연 ‘동료·적·시험’이다. 통상적으로 이 구간은 긴장감이 고조되는 구간이다. 줄다리기, 징검다리, 구슬치기가 주인공이 통과해야 하는 시험으로 배치되었고, 그 패턴이 온라인 게임과 닮아 있어 몰입도를 상승시켰다. 한편 여기에 사용된 게임들은 우리의 전통 놀이지만 누가 봐도 30초 안에 이해되는 ‘단순함’과 ‘소구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세계적 ‘밈’ 현상으로 이어졌고,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탁월한 전략적 무기를 탑재한 작품임을 방증했다.
‘또 다른 나’로 몸과 마음이 안정된 주인공이 세계의 안정을 되찾는 마지막 단계인 ‘영약을 가지고 귀환’에서 기훈은 새벽의 남동생과 상우의 어머니에게 상금을 나눠주는 영웅적 대의를 실천하고, 딸을 만나기 위해 미국행 탑승구에 오른다. 이때, 시청자의 예상과는 달리 돌연 돌아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기훈의 눈빛으로 〈오징어 게임〉은 막을 내린다. 〈오징어 게임〉의 단순한 ‘참가자’가 아닌 그 흑막을 좇는 ‘추적자’의 열망이 가득한 기훈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 마지막 장면은 〈오징어 게임〉 속 ‘영웅의 여행’의 마지막 변주이자 새로운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예고편이다.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의 저자 크리스토퍼 보글러 (이미지 출처: 단국대학교)
기존 이야기 구조, 하지만 새로운 영웅 탄생
일반적으로 ‘영웅의 여행 12단계’는 영웅이란 주체에 의해서 움직이고, 귀결된다. 물론 성기훈의 형상은 우리가 익히 일고 있는 신화 속 영웅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일상 근처에 있는 평범한 누군가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절대적인 낙오자일 수도 있다. 분명 성기훈은 할리우드식 영웅이 아닌 루저의 전형이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영웅의 여행’이라는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영웅의 형상을 갖추어갈 수밖에 없다. 그 역시 예외 없이 이야기 속 영웅적 주체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바로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에서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은 발생한다. 비영웅적인 태생의 성기훈이지만 ‘영웅의 여행 12단계’를 거치며 영웅적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화적 영웅의 모습을 반증한다. 즉 성기훈이 보여 준 영웅의 여행은 기존의 신화 속 영웅들이 가지지 못한 새로운 면모의 현대적 성향을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차별적이다. 그럼에도 그가 기존 영웅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그조차도 구조의 일부로써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K컬처로 인문하기] 영웅 이야기 구조로 살펴본 〈오징어 게임〉 성공 원인
- 지난 글: [K컬처로 인문하기] 과연 K-무비는 존재하는가
교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년간 방송 작가로 활동했고, 현재 백석예술대학교 공연예술학부 극작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방송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며, 시간 여행 드라마의 놀이성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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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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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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