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수업이었다.”는 익명의 강의평가를 보고 필자는 펑펑 울었다.
이 학생이 말한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도 역사공부의 본질이다.
역사공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재되었던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칼럼들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칼럼 연재를 마친다. 1회 〈재밌는 역사 이야기, 난해한 역사학 공부〉에서 제시했듯이, 필자는 “역사기록의 구성 과정과 해석 방식 등 역사학의 기초를 독자들에게 소개하여, 역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데 일조”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본 칼럼을 집필해 왔다. 그에 따라 서양의 역사이론과 논쟁을 절반 정도 다루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사의 주요 논쟁들(5회 〈역사교육,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가르치고 배워도 될까〉, 6회 〈‘민족주의’와 ‘국뽕’〉 및 11회~15회)을 다루었다.
우리나라 사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했다고?
우리나라에 근대역사학이 도입된 이후 오늘날까지의 한국사 연구는 일제 식민사학의 역사왜곡과 우리 연구자들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장삿속에 눈이 먼 유사역사가들은 우리 연구자들의 그러한 노력을 무시하고 우리나라의 한국사 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인 이 글의 독자 대다수는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에 현혹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다만 적지 않은 수의 대중이 그런 주장들에 현혹된 데에는 학계의 책임도 없지 않다. 각자의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느라 역사를 사랑하는 대중과 청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잘못이 있다. 근자에 들어 학계에서도 이 점을 통감하고 공동 세미나와 분야별 강연을 통해 몇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유사역사가들의 주요 찬거리는 한국고대사인데, 소개하는 책들은 한국고대사학계의 원로 및 중견 연구자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비교적 쉽게 풀어 썼으므로 독서를 권한다.
『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1, 『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2, 책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그동안의 칼럼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이,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역사학의 기본 정신은 직필(直筆,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사실대로 적음)과 술이부작(述而不作, 있는 그대로 기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역사서술과 역사교육은 정권의 정당성 부여나 자국의 정통성 주장 목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늘날 한・중・일의 역사인식 차이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도 그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주권(主權)이 황제나 국왕에게 있었던 전(前)근대 왕조사회에서 정권의 정당성 부여나 자국의 정통성 주장 목적의 역사서술과 역사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주권이 국민 모두에게 있는 오늘날의 민주사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조금 의아한 면이 있다. 왜 그럴까? 그러한 역사서술과 역사교육 방향에 수긍하고 동조하는 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사역사가들은 이런 풍토를 기민하게 포착한다. 우리 역사의 슬프거나 부끄러운 면도 드러내어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연구에 대해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뽑아 설명해도 모자랄 판에 굳이 불리한 걸 들춰내는 걸로 보아 식민사학의 후예임이 틀림없다.”고 몰아세우며 장삿속을 채운다.
역사공부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일
역사공부를 올바르게 하려면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해야 한다. 우리의 선조가 잘한 것은 자랑스러워하고 잘못한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하는 역사공부’라는 말은 필자의 수업을 수강한 학생의 강의평가에서 배운 말이다. “역사를 통해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수업이었다.”는 익명의 강의평가를 보고 필자는 펑펑 울었다. 그저 직업상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교육과정에서 필수로 다루어야 할 주제들과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들로 기계적으로 강의했을 뿐인데, 이런 강의평가가 나오다니! 한편으로는 감격스럽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울었다.
공부
이 학생이 말한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도 역사공부의 본질이다. 역사공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은 반드시 행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흔히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무슨 교훈을 얻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어린 시절에는 착한 일을 하면 엄마가 사탕을 주고 잘못을 하면 꾸중을 하거나 회초리를 꺼냈는데, 역사 속의 인물들은 그와 반대로 선한 일을 하고 불이익을 당하거나 악한 짓을 하고도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칼럼에서 두어 차례 언급했던 사마천의 사례는 물론이고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경우가 숱하게 많다.
양심과 염치가 행복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그러나 역사를 사랑하는 교양인이 역사와 담을 쌓은 이나 유사역사에 빠진 이와 다른 면모는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이 반드시 행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았던 선각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신도 그렇게 살고자 다짐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았던 두 선각자, 사마천과 백범 김구가 남긴 말로 연재를 마칠까 한다. 추후 다른 지면으로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의 새로운 주제를 계속하여 집필할 것을 약속드린다.
사마천과 백범 김구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사람이란 본디 한 번 죽을 뿐이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어떤 죽음은 터럭만큼이나 가볍기도 하니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입니다.”
(사마천 「임안에게 답하는 편지(보임안서報任安書)」)
“세상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과 수단이 어찌 한두 가지에 그칠 것인가. 땀을 흘리고 먼지를 무릅쓰며 노동을 하는 것보다 은행 창고를 뚫고 들어가 금품을 도취하여서 안일한 생활을 하는 것도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고, 청빈한 선비의 정실이 되어 곤궁과 싸우기보다 차라리 모리배나 수전노의 애첩이 되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도 가장 현실적인 길일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외국의 간섭이 없고 분열 없는 자주 독립을 쟁취하는 것은 민족의 지상명령이니, 이 지상명령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망명생활을 30여 년이나 한 것도 가장 비현실적인 길인 줄 알면서도 민족의 지상명령이므로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역사학자.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5~7세기 신라정치사를 연구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학 입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한국사 사료읽기>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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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하는 역사공부
-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
윤진석
2021-12-13
역사공부를 올바르게 하려면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해야 한다.
“역사를 통해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수업이었다.”는 익명의 강의평가를 보고 필자는 펑펑 울었다.
이 학생이 말한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도 역사공부의 본질이다.
역사공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재되었던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칼럼들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칼럼 연재를 마친다. 1회 〈재밌는 역사 이야기, 난해한 역사학 공부〉에서 제시했듯이, 필자는 “역사기록의 구성 과정과 해석 방식 등 역사학의 기초를 독자들에게 소개하여, 역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데 일조”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본 칼럼을 집필해 왔다. 그에 따라 서양의 역사이론과 논쟁을 절반 정도 다루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사의 주요 논쟁들(5회 〈역사교육,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가르치고 배워도 될까〉, 6회 〈‘민족주의’와 ‘국뽕’〉 및 11회~15회)을 다루었다.
우리나라 사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했다고?
우리나라에 근대역사학이 도입된 이후 오늘날까지의 한국사 연구는 일제 식민사학의 역사왜곡과 우리 연구자들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장삿속에 눈이 먼 유사역사가들은 우리 연구자들의 그러한 노력을 무시하고 우리나라의 한국사 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인 이 글의 독자 대다수는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에 현혹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다만 적지 않은 수의 대중이 그런 주장들에 현혹된 데에는 학계의 책임도 없지 않다. 각자의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느라 역사를 사랑하는 대중과 청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잘못이 있다. 근자에 들어 학계에서도 이 점을 통감하고 공동 세미나와 분야별 강연을 통해 몇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유사역사가들의 주요 찬거리는 한국고대사인데, 소개하는 책들은 한국고대사학계의 원로 및 중견 연구자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비교적 쉽게 풀어 썼으므로 독서를 권한다.
『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1, 『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2, 책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그동안의 칼럼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이,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역사학의 기본 정신은 직필(直筆,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사실대로 적음)과 술이부작(述而不作, 있는 그대로 기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역사서술과 역사교육은 정권의 정당성 부여나 자국의 정통성 주장 목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늘날 한・중・일의 역사인식 차이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도 그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주권(主權)이 황제나 국왕에게 있었던 전(前)근대 왕조사회에서 정권의 정당성 부여나 자국의 정통성 주장 목적의 역사서술과 역사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주권이 국민 모두에게 있는 오늘날의 민주사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조금 의아한 면이 있다. 왜 그럴까? 그러한 역사서술과 역사교육 방향에 수긍하고 동조하는 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사역사가들은 이런 풍토를 기민하게 포착한다. 우리 역사의 슬프거나 부끄러운 면도 드러내어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연구에 대해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뽑아 설명해도 모자랄 판에 굳이 불리한 걸 들춰내는 걸로 보아 식민사학의 후예임이 틀림없다.”고 몰아세우며 장삿속을 채운다.
역사공부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일
역사공부를 올바르게 하려면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해야 한다. 우리의 선조가 잘한 것은 자랑스러워하고 잘못한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하는 역사공부’라는 말은 필자의 수업을 수강한 학생의 강의평가에서 배운 말이다. “역사를 통해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수업이었다.”는 익명의 강의평가를 보고 필자는 펑펑 울었다. 그저 직업상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교육과정에서 필수로 다루어야 할 주제들과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들로 기계적으로 강의했을 뿐인데, 이런 강의평가가 나오다니! 한편으로는 감격스럽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울었다.
공부
이 학생이 말한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도 역사공부의 본질이다. 역사공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은 반드시 행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흔히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무슨 교훈을 얻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어린 시절에는 착한 일을 하면 엄마가 사탕을 주고 잘못을 하면 꾸중을 하거나 회초리를 꺼냈는데, 역사 속의 인물들은 그와 반대로 선한 일을 하고 불이익을 당하거나 악한 짓을 하고도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칼럼에서 두어 차례 언급했던 사마천의 사례는 물론이고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경우가 숱하게 많다.
양심과 염치가 행복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그러나 역사를 사랑하는 교양인이 역사와 담을 쌓은 이나 유사역사에 빠진 이와 다른 면모는 ‘양심과 염치가 있는 삶’이 반드시 행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았던 선각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신도 그렇게 살고자 다짐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았던 두 선각자, 사마천과 백범 김구가 남긴 말로 연재를 마칠까 한다. 추후 다른 지면으로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의 새로운 주제를 계속하여 집필할 것을 약속드린다.
사마천과 백범 김구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사람이란 본디 한 번 죽을 뿐이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어떤 죽음은 터럭만큼이나 가볍기도 하니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입니다.”
(사마천 「임안에게 답하는 편지(보임안서報任安書)」)
“세상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과 수단이 어찌 한두 가지에 그칠 것인가. 땀을 흘리고 먼지를 무릅쓰며 노동을 하는 것보다 은행 창고를 뚫고 들어가 금품을 도취하여서 안일한 생활을 하는 것도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고, 청빈한 선비의 정실이 되어 곤궁과 싸우기보다 차라리 모리배나 수전노의 애첩이 되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도 가장 현실적인 길일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외국의 간섭이 없고 분열 없는 자주 독립을 쟁취하는 것은 민족의 지상명령이니, 이 지상명령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망명생활을 30여 년이나 한 것도 가장 비현실적인 길인 줄 알면서도 민족의 지상명령이므로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김구, 〈1948년 3월 21일, 신민일보 사장과의 회견기〉)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하는 역사공부
- 지난 글: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김부식과 『삼국사기』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역사학자.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5~7세기 신라정치사를 연구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학 입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한국사 사료읽기>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모두를 마주하는 역사공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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