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제가 도래한 21세기에는 콘텐츠 창작자가 소비자와 디지털상에서 직접 거래하는 '크리에이터 경제(creator economy)'가 떠오르고 있다.
금전적 자산이 부족한 20대에게, 경험은 중요한 무형 자산이 된다.
여행은 유튜브나 인스타 피드를 채우는 '자산'으로 기능하며, 타인의 반응과 조회수는 사회적 평판과 경제적 가치로 연결된다.
여행이 제한된 시대, 여행을 의미를 묻다
여행이 일상처럼 흔했던 시대에는 아무도 여행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에 여행 강사로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다녀보니 어디가 제일 좋아요?" 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행이 강제로 사라진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여행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되묻고 있다.
팬데믹 이후 여행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 이전 해외여행의 대중화는 인류에게 더 넓은 견문과 경험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여행지의 수용 범위를 넘어 관광객들이 몰리는 현상)과 과도한 항공 여행으로 인한 탄소 발생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과잉 여행이 코로나19 이후 일시에 완전히 중지되면서 처음에는 여행의 부재가 가져오는 상실감이 크게 다가왔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이 정화되고 로컬 문화 파괴가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뒤따랐다.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로 '지속 가능한 여행'은 필수 불가결한 지향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논의가 '친환경, 탄소 배출, 공정 여행'과 같은 기존의 틀에서만 머무른다면, 코로나19 이전 환경을 파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과잉 여행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여행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재화를 뜻하는 필수재가 아닌, 사치재에 속한다. 그런데 사치재는 인간관계에서 경제적 계급이나 과시성 신호를 발신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의 대중화는 타인의 과시성 여행 소비를 즉각적으로 동경하고 욕망하도록 만들었고, 이는 여행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지난 여행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지금,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무엇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과잉 여행의 뒷면, 남의 욕망을 열망하다
여행 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열망'이, 그리고 그 앞줄에는 열망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소셜미디어 환경이 있다. 고급 호텔과 항공 관련 팁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네이버 여행 카페 '스사사' 의 회원 수는 무려 96만 명이나 된다. 이러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항공 마일리지를 탑승 횟수가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쌓아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하는 루트가 널리 알려지면서, 항공사들은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몇 천만 원짜리 좌석, 실제로 타보니"와 같은 영상을 제작했고, 기내에 탑승하면 이코노미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이 먼저 보이도록 동선을 디자인했다.
퍼스트석이 이코노미석보다 탄소를 6배나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퍼스트석은 하늘 위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니 면적당 탄소 배출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이에 대해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2019년까지 해마다 한국인의 항공 이용률은 가파르게 성장만을 거듭해 왔으며 항공사는 일반 탑승객들이 더 선명하게 계급 경제를 반영하게 하고 상류 지향 소비를 부추기고 동경하게 만들어 더 상위 좌석을 갈망하게 했다. 사회적 불평등이 만들어내는 비즈니스를 벨벳 로프 이코노미(Velvet rope economy)라 칭하는데 아마도 비행기의 탄소 배출량에 대한 논란이 거센 지금 퍼스트석과 비즈니스석에 자연스레 양가감정이 드는 이유는, 이들 좌석이 사회적으로 상징하는 벨벳 로프(경계선)가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여행업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소셜미디어는 인스타그램이라 할 수 있다. 능동적인 검색을 통해 얻는 여행 정보와 달리, 인스타그램은 이용자들이 수동적으로 타인의 시각화된 메시지에 끊임없이 노출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검색 또한 구조화되어 있어서, 해시태그라는 정해진 키워드를 활용하면 자신의 콘텐츠를 불특정 다수에게 손쉽게 노출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인스타그램은 시각화에 뛰어난 인플루언서들이 광고주와 더 빠르게 매칭되고 돈을 벌 수 있는 인프라로 기능해왔다. 사실상 인스타그램은 최근 들어 인류가 여행지를 탐색하고 선택하는 의사 결정에 끊임없이 개입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 페이스북이 13개국 사용자 21,000명에게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인스타그램 콘텐츠 관심 분야 1위는 여행(45%)이었다.1) 2017년의 페이스북 조사에서도 여행에 관심이 높은 응답자의 67%가 새로운 여행의 영감을 인스타그램에서 찾는다고 답했으며, 61%는 여행 중에 '무엇을 할지' 찾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이용한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2) 즉 인스타그램은 여행자에게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볼 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주는 미디어로 작동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영감은 소비의 기준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저비용 항공사의 성장, 기술 발전으로 인한 여행 예약의 간소화 등이 더해져 과잉 여행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모두가 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계급화가 발생한다. 대중화 이전에는 여행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계급을 갈랐다면, 대중화 이후에는 어떤 항공 좌석을 타고 몇 성급 호텔에 묵고 어떤 여행과 음식 사진을 남기느냐가 남과 나를 구분하는 주요 지표가 된 것이다. 이런 지표를 따라가다 보면 여행 산업이 자본과 계급에 따라 설계되어 있고 그 시스템 내에서 소비를 부추기도록 세팅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한 여행의 중단 때문에 과시 지향적 소비 여행을 성찰할 시간이 어렵사리 주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과잉 여행,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유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찰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현시키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오버투어리즘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하와이는 경제 활동이 재개된 2021년 7월에 미국 본토로부터 매일 3만 5,000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마우이 섬의 경우 물 부족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도 같은 이유로 코로나19 이후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대형 유람선이 서서히 복귀하자 지난 6월 환경 단체와 주민들이 항구에서 시위를 벌이며 오버투어리즘의 귀환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오버투어리즘을 겪고 있는 스페인 (이미지 출처: theguardian)
특히나 MZ 세대의 여행 인증샷 행태는 이제 단순히 과시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여행 소비의 최종 목적이 '인생샷 수집'으로 옮겨 온 것은, 일종의 생존 본능에 가깝다. 플랫폼 경제가 도래한 21세기에는 콘텐츠 창작자가 소비자와 디지털상에서 직접 거래하는 '크리에이터 경제(creator economy)'가 떠오르고 있다. 금전적 자산이 부족한 20대에게, 경험은 중요한 무형 자산이 된다. 여행은 유튜브나 인스타 피드를 채우는 '자산'으로 기능하며, 타인의 반응과 조회수는 사회적 평판과 경제적 가치로 연결된다. 델타 변이가 창궐하던 지난 8월부터 한국의 유명 유튜버들이 빠르게 출국해 '코시국 해외여행'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여행이 중단된 시기에 여행을 하는 모험은 관심(돈)이 되며, 조금 지나 누구든 여행을 갈 수 있게 되면 그 모험의 희소성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렇게 소셜미디어에 노출한 ‘나’의 경험이 사회적 가치가 되는 세상에서, 여행은 여행지와의 정서적 연결성을 갖는 행위라기보다는 관심을 얻는 경쟁의 도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여행이 경험 자산이자 계급 상징으로 기능하는 MZ 세대에게 '환경을 파괴하니 항공 여행을 줄여라' 같은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 수용되기 어렵다. 따라서 과잉 여행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일어나려면, 단순 과시로 얻어지는 효용을 대체할 새로운 효용성을 좀더 선명하게 제시하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지속 가능한 여행'에 대한 담론에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향한 개인, 사회적 차원의 노력
첫째로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자체를 갑자기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 영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서 연대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의 저자 홀리 터펜은 인스타그램으로 인해 파괴되는 여행지를 열거하며, '어떤 장소가 여행 책자에 실리면 유명해지는 데 몇 년이 걸리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단 몇 초면 충분하다'며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따라서 여행자가 자신의 책임과 영향력을 직시하고 다른 후발 여행자에게 이 지역을 지속 가능하게 여행하는 방법을 제대로 소개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홀리 터펜의 책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둘째, 여행자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미국의 괴짜 항공사로 불리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의 차이를 처음부터 없앴다. 고객을 등급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호텔 체인 시티즌 엠 역시 스위트룸을 만들지 않았다. 이들 회사가 실패했다면 모르겠지만, 두 회사 모두 팬데믹을 극복하며 자신만의 성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의 소비를 교란시키거나 파괴하는 대규모 관광 시설이 부도덕하다고 느껴진다면, 우리가 그런 시설을 '소비하지 않는' 것도 큰 틀에서 여행 문화를 바꿀 수 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만큼 ‘나’의 관심사와 취향, 새로운 배움에 집중하는 여행을 만들 수 있다는 효용성이 있다.
셋째, 시민 차원에서도 정책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8월부터 대형 유람선의 기항을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코로나19 이후 자신의 일상을 관광객에게 침해받지 않는 쾌적함을 경험하고 환경이 정화되는 효과를 눈으로 확인한 현지 주민들의 적극적 노력에서 비롯됐다. 하와이 현지인들은 관광 산업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요구를 통해 비행기 운항 편수를 줄여가고 있다. 피렌체에서는 우피치 미술관의 유명 작품을 5년 내에 100여 곳의 소도시로 나누어 배치하겠다고 발표하며 미술관 여행 루트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앞둔 지금, 우리는 과잉 여행으로 되돌아가느냐, 아니면 지속 가능한 여행의 새로운 길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개인적으로 지난 20년간 여행을 하고 관련업에 종사해 오면서, ‘여행을 소비와 동일시하는 여행 문화를 어떻게 하면 생산적 여행으로 바꿀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책을 써왔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 많이 꺼내놓고 논의하며 구체화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이후 지속 가능한 여행에 동참하고 싶다면, 여러 환경 문제나 과잉 여행을 걱정하기에 앞서 '이 여행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여행인가'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 계획해보기를 꼭 권하고 싶다.
여행 트렌드 전문가
『여행의 미래』와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등 3권의 책을 썼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 대상 여행 교육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소비 트렌드 분석을 통해 업계 종사자와 스타트업 대상 교육을 하고 있다. 팟캐스트 <김다영의 똑똑한 여행 트렌드>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코로나19 이후, 과잉 여행에서 지속 가능한 여행으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 이후, 과잉 여행에서 지속 가능한 여행으로
- 오늘, 키워드 인문학 -
김다영
2021-11-19
여행 소비의 최종 목적이 '인생샷 수집'으로 옮겨 온 것은, 일종의 생존 본능에 가깝다.
플랫폼 경제가 도래한 21세기에는 콘텐츠 창작자가 소비자와 디지털상에서 직접 거래하는 '크리에이터 경제(creator economy)'가 떠오르고 있다.
금전적 자산이 부족한 20대에게, 경험은 중요한 무형 자산이 된다.
여행은 유튜브나 인스타 피드를 채우는 '자산'으로 기능하며, 타인의 반응과 조회수는 사회적 평판과 경제적 가치로 연결된다.
여행이 제한된 시대, 여행을 의미를 묻다
여행이 일상처럼 흔했던 시대에는 아무도 여행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에 여행 강사로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다녀보니 어디가 제일 좋아요?" 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행이 강제로 사라진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여행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되묻고 있다.
팬데믹 이후 여행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 이전 해외여행의 대중화는 인류에게 더 넓은 견문과 경험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여행지의 수용 범위를 넘어 관광객들이 몰리는 현상)과 과도한 항공 여행으로 인한 탄소 발생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과잉 여행이 코로나19 이후 일시에 완전히 중지되면서 처음에는 여행의 부재가 가져오는 상실감이 크게 다가왔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이 정화되고 로컬 문화 파괴가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뒤따랐다.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로 '지속 가능한 여행'은 필수 불가결한 지향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논의가 '친환경, 탄소 배출, 공정 여행'과 같은 기존의 틀에서만 머무른다면, 코로나19 이전 환경을 파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과잉 여행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여행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재화를 뜻하는 필수재가 아닌, 사치재에 속한다. 그런데 사치재는 인간관계에서 경제적 계급이나 과시성 신호를 발신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의 대중화는 타인의 과시성 여행 소비를 즉각적으로 동경하고 욕망하도록 만들었고, 이는 여행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지난 여행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지금,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무엇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과잉 여행의 뒷면, 남의 욕망을 열망하다
여행 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열망'이, 그리고 그 앞줄에는 열망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소셜미디어 환경이 있다. 고급 호텔과 항공 관련 팁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네이버 여행 카페 '스사사' 의 회원 수는 무려 96만 명이나 된다. 이러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항공 마일리지를 탑승 횟수가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쌓아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하는 루트가 널리 알려지면서, 항공사들은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몇 천만 원짜리 좌석, 실제로 타보니"와 같은 영상을 제작했고, 기내에 탑승하면 이코노미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이 먼저 보이도록 동선을 디자인했다.
퍼스트석이 이코노미석보다 탄소를 6배나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퍼스트석은 하늘 위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니 면적당 탄소 배출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이에 대해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2019년까지 해마다 한국인의 항공 이용률은 가파르게 성장만을 거듭해 왔으며 항공사는 일반 탑승객들이 더 선명하게 계급 경제를 반영하게 하고 상류 지향 소비를 부추기고 동경하게 만들어 더 상위 좌석을 갈망하게 했다. 사회적 불평등이 만들어내는 비즈니스를 벨벳 로프 이코노미(Velvet rope economy)라 칭하는데 아마도 비행기의 탄소 배출량에 대한 논란이 거센 지금 퍼스트석과 비즈니스석에 자연스레 양가감정이 드는 이유는, 이들 좌석이 사회적으로 상징하는 벨벳 로프(경계선)가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여행업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소셜미디어는 인스타그램이라 할 수 있다. 능동적인 검색을 통해 얻는 여행 정보와 달리, 인스타그램은 이용자들이 수동적으로 타인의 시각화된 메시지에 끊임없이 노출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검색 또한 구조화되어 있어서, 해시태그라는 정해진 키워드를 활용하면 자신의 콘텐츠를 불특정 다수에게 손쉽게 노출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인스타그램은 시각화에 뛰어난 인플루언서들이 광고주와 더 빠르게 매칭되고 돈을 벌 수 있는 인프라로 기능해왔다. 사실상 인스타그램은 최근 들어 인류가 여행지를 탐색하고 선택하는 의사 결정에 끊임없이 개입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 페이스북이 13개국 사용자 21,000명에게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인스타그램 콘텐츠 관심 분야 1위는 여행(45%)이었다.1) 2017년의 페이스북 조사에서도 여행에 관심이 높은 응답자의 67%가 새로운 여행의 영감을 인스타그램에서 찾는다고 답했으며, 61%는 여행 중에 '무엇을 할지' 찾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이용한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2) 즉 인스타그램은 여행자에게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볼 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주는 미디어로 작동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영감은 소비의 기준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저비용 항공사의 성장, 기술 발전으로 인한 여행 예약의 간소화 등이 더해져 과잉 여행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1) 더욱 흥미롭고 새로운 Instagram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 Facebook, 2019.02.15.
2) Facebook Provides New Insights on Industry-Specific Trends Among Instagram Users, Social Media Today, 2017.05.06.
모두가 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계급화가 발생한다. 대중화 이전에는 여행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계급을 갈랐다면, 대중화 이후에는 어떤 항공 좌석을 타고 몇 성급 호텔에 묵고 어떤 여행과 음식 사진을 남기느냐가 남과 나를 구분하는 주요 지표가 된 것이다. 이런 지표를 따라가다 보면 여행 산업이 자본과 계급에 따라 설계되어 있고 그 시스템 내에서 소비를 부추기도록 세팅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한 여행의 중단 때문에 과시 지향적 소비 여행을 성찰할 시간이 어렵사리 주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과잉 여행,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유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찰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현시키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오버투어리즘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하와이는 경제 활동이 재개된 2021년 7월에 미국 본토로부터 매일 3만 5,000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마우이 섬의 경우 물 부족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도 같은 이유로 코로나19 이후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대형 유람선이 서서히 복귀하자 지난 6월 환경 단체와 주민들이 항구에서 시위를 벌이며 오버투어리즘의 귀환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오버투어리즘을 겪고 있는 스페인 (이미지 출처: theguardian)
특히나 MZ 세대의 여행 인증샷 행태는 이제 단순히 과시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여행 소비의 최종 목적이 '인생샷 수집'으로 옮겨 온 것은, 일종의 생존 본능에 가깝다. 플랫폼 경제가 도래한 21세기에는 콘텐츠 창작자가 소비자와 디지털상에서 직접 거래하는 '크리에이터 경제(creator economy)'가 떠오르고 있다. 금전적 자산이 부족한 20대에게, 경험은 중요한 무형 자산이 된다. 여행은 유튜브나 인스타 피드를 채우는 '자산'으로 기능하며, 타인의 반응과 조회수는 사회적 평판과 경제적 가치로 연결된다. 델타 변이가 창궐하던 지난 8월부터 한국의 유명 유튜버들이 빠르게 출국해 '코시국 해외여행'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여행이 중단된 시기에 여행을 하는 모험은 관심(돈)이 되며, 조금 지나 누구든 여행을 갈 수 있게 되면 그 모험의 희소성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렇게 소셜미디어에 노출한 ‘나’의 경험이 사회적 가치가 되는 세상에서, 여행은 여행지와의 정서적 연결성을 갖는 행위라기보다는 관심을 얻는 경쟁의 도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여행이 경험 자산이자 계급 상징으로 기능하는 MZ 세대에게 '환경을 파괴하니 항공 여행을 줄여라' 같은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 수용되기 어렵다. 따라서 과잉 여행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일어나려면, 단순 과시로 얻어지는 효용을 대체할 새로운 효용성을 좀더 선명하게 제시하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지속 가능한 여행'에 대한 담론에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향한 개인, 사회적 차원의 노력
첫째로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자체를 갑자기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 영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서 연대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의 저자 홀리 터펜은 인스타그램으로 인해 파괴되는 여행지를 열거하며, '어떤 장소가 여행 책자에 실리면 유명해지는 데 몇 년이 걸리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단 몇 초면 충분하다'며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따라서 여행자가 자신의 책임과 영향력을 직시하고 다른 후발 여행자에게 이 지역을 지속 가능하게 여행하는 방법을 제대로 소개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홀리 터펜의 책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둘째, 여행자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미국의 괴짜 항공사로 불리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의 차이를 처음부터 없앴다. 고객을 등급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호텔 체인 시티즌 엠 역시 스위트룸을 만들지 않았다. 이들 회사가 실패했다면 모르겠지만, 두 회사 모두 팬데믹을 극복하며 자신만의 성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의 소비를 교란시키거나 파괴하는 대규모 관광 시설이 부도덕하다고 느껴진다면, 우리가 그런 시설을 '소비하지 않는' 것도 큰 틀에서 여행 문화를 바꿀 수 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만큼 ‘나’의 관심사와 취향, 새로운 배움에 집중하는 여행을 만들 수 있다는 효용성이 있다.
셋째, 시민 차원에서도 정책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8월부터 대형 유람선의 기항을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코로나19 이후 자신의 일상을 관광객에게 침해받지 않는 쾌적함을 경험하고 환경이 정화되는 효과를 눈으로 확인한 현지 주민들의 적극적 노력에서 비롯됐다. 하와이 현지인들은 관광 산업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요구를 통해 비행기 운항 편수를 줄여가고 있다. 피렌체에서는 우피치 미술관의 유명 작품을 5년 내에 100여 곳의 소도시로 나누어 배치하겠다고 발표하며 미술관 여행 루트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앞둔 지금, 우리는 과잉 여행으로 되돌아가느냐, 아니면 지속 가능한 여행의 새로운 길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개인적으로 지난 20년간 여행을 하고 관련업에 종사해 오면서, ‘여행을 소비와 동일시하는 여행 문화를 어떻게 하면 생산적 여행으로 바꿀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책을 써왔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 많이 꺼내놓고 논의하며 구체화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이후 지속 가능한 여행에 동참하고 싶다면, 여러 환경 문제나 과잉 여행을 걱정하기에 앞서 '이 여행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여행인가'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 계획해보기를 꼭 권하고 싶다.
[오늘, 키워드 인문학] 코로나19 이후... 과잉 여행에서 지속 가능한 여행으로
- 지난 글: [오늘, 키워드 인문학] 친절 격차
여행 트렌드 전문가
『여행의 미래』와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등 3권의 책을 썼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 대상 여행 교육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소비 트렌드 분석을 통해 업계 종사자와 스타트업 대상 교육을 하고 있다. 팟캐스트 <김다영의 똑똑한 여행 트렌드>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코로나19 이후, 과잉 여행에서 지속 가능한 여행으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댓글(0)
6. 문학은 어떻게 윤리적인가
이광호
‘관계들의 총합’으로서의 나 그리고 대학의 책무
이재영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