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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처럼 게으를수록 문제가 생기는 뉴스 보기

- 가짜 뉴스 전성시대의 단상을 보여준 영화 〈나이트크롤러〉 - 철학자, 드라마(영화)에 빠지다 -

이남석

202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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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영화와 드라마(웹툰, 만화 등 포함)는 내 일도 아닌데 마치 내 일처럼 함께 웃고 울고 한숨쉬고 기쁘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대중문화콘텐츠이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대리만족을 통해 잠시 재밌고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도록 하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평소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영화(드라마) 속에 숨겨져 있어 미처 눈치채기 힘들었던 세상과 인생에 관한 질문, 이들을 낳은 시대적 상황,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을 해당 작품을 흥미롭게 살펴본 철학자들을 통해 알아보자.

 

인간은 어떤 정보를 접하면 그게 일단 사실이라고 여길 확률이 훨씬 높다. 가짜 뉴스라고 해도 말이다. 이는 인간이 성악설에 맞는 존재여서, 선보다는 악, 진짜보다 가짜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의 주장처럼 인간은 애초에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제한된 인지능력을 쥐어짜며,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ㅣ가짜 뉴스 제작자로 변신한 좀도둑 이야기

 

북미 박스오피스 1위, 특종을 위한 완벽한 조작 당신이 본 뉴스는 진실인가? 특종 추적 스릴러 〈나이트 크롤러〉

지난 2015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나이트 크롤러〉의 영화 포스터에는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스터에서 주인공 루이스 블룸은 방송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그런데 그의 눈빛은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연출하고 심은경이 출연한 2019년 일본 영화 〈신문기자〉에 더 어울릴 듯하다. 고위 관료들까지 의문사하고 있고 노골적으로 권력자의 압력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언론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루이스 블룸은 철조망 등을 훔쳐 팔아 연명하는 좀도둑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도둑이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청년이라 여긴다. 훔친 물건을 사주는 사람에게도 열정 가득한 자신을 회사 직원으로 채용하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다. 상대는 당연히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몰라준다고 치부한다.

 

그러다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에서, 방송국 직원도 아닌 사람들이 사고 처리 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본다. 그렇게 촬영한 영상을 방송국에 짭짤한 가격에 팔아넘긴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업계에 뛰어든다. 그리고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들고 방송국 팀장을 만나 칭찬을 듣고 돈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은 내 안의 뭔가를 확실히 건드리고 있어요.”

 

“그가 촬영한 영상은 단숨에 지역 방송 최고의 시청률을 갱신하고 방송국은 그에게 더욱 자극적인 영상을 요구한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 포토 예고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주인공은 밤에 지렁이처럼 거리를 조용히 어슬렁거리며 뉴스거리를 찍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돈을 더 받을 만한 영상이 될 수 있게 교통사고 현장을 더 자극적으로 보이게 조작하기도 한다. 급기야 가짜 뉴스를 만들었다.

 

 

ㅣ미디어들이 가짜 뉴스를 배포하는 세 가지 이유

 

이렇듯 이 영화는 초반부에 미디어 종사자들이 가짜 뉴스를 배포하는 이유가 명확히 나온다. 첫 번째 이유는 타인의 관심이다. 수많은 언론 미디어 중에서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자신의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다. 스스로 기대했던 것만큼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던 주인공은 진짜 성실히 진실을 파헤쳐 관심을 끌기보다는, 조작으로라도 관심을 끌려고 했다.

 

『가짜 뉴스의 시대: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퍼져 나가는가』 “오염된 정보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영향력이 작동하는 방식부터 이해해야 한다” | 반니

책 『가짜 뉴스의 시대』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영화에서뿐 아니라 실제 언론들은 스스로 조작하지는 않는다 해도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어떤 뉴스가 나오면 이를 자신들의 매체에 인용하기도 한다. 독자나 시청자들이 다른 정보원을 찾아 떠나지 않게.

 

『가짜 뉴스의 시대』의 저자들은 이런 방법을 편향적 산출(biased production), 선택적 공유(selective sharing)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중에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대해서만 후원하고 제보를 받아서 보도하는 게 편향적 산출이다. 방송국에서는 자극적인 사고 영상만을 받으려 했기에 영화 속 주인공은 영상을 점점 더 극악하게 촬영할 뿐 아니라 심지어 만들어가기까지 했다. 한편 다양한 정보 중에서 자신의 입장에 맞는 것만 선택해서 전체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선택적 공유도 교묘한 사실 왜곡이 이뤄지는 조작이다. 이런 행태는 기존 미디어 종사자만이 아니라 특정 입장에 치우친 뉴스를 게재하는 유튜버와 블로거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적 수익 때문이다. 주인공이 영상을 판 미디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통해 얻어낸 시청률, 발행 부수, 클릭 수 등을 바탕으로 광고 수익을 얻는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당연히 발행 부수와 클릭 수도 떨어지기 때문에 논란이 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수익을 올리려 한다.

 

세 번째 이유는 지속적 영향력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방송국 사람들은 가짜 뉴스일 수 있는 영상을 특종이라는 이름으로 특별 취급하려고 한다. 나중에 가짜 뉴스라는 게 밝혀져도 일단 대중의 관심과 수익을 거둘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도 있다. 일단 사람들이 가짜 뉴스에 노출이 되면 그것이 허위라는 제보가 들어와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질 못하며 오히려 반동(反動) 효과를 얻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

 

 

ㅣ정정 보도를 하더라도 일단 널리 퍼지기만 하면……

 

가수 마이클 잭슨 같은 경우 생전에 백인이 되기 위해 성형수술을 여러 번 감행했다는 가짜 뉴스에 시달렸다. 사후에 경찰과 의사들이 흰 피부와 진한 화장은 백반증 때문이라고 공식 발표까지 했지만, 원래 가짜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유족들이 돈으로 입막음을 한 것이다’ ‘뒤에 모종의 거래가 있어서 진실이 묻힌 것이다’라는 식으로 더 의심하기도 했다.

 

이렇게 허위 정보를 시청자들의 뇌리에 한 번 심으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해도 존재감과 수익 확보에 도움이 되는 가짜 뉴스를 계속 내놓는다. 그러면 사과 및 정정 보도를 하더라도 일단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고, 앞으로도 비슷한 정보를 내놓을 때 다시 영향을 줄 확률이 높아지니까.

 

만약 어떤 가짜 뉴스에 접했을 때 오랜 시간이 흘러 정정 보도를 하는 게 아니라 곧바로 그게 가짜 뉴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1990년 하버드대 심리학과의 대니얼 길버트(Daniel T. Gilbert) 교수의 연구팀도 이 점을 알아보려 실험을 했다.

 

해당 논문 제목의 pdf화면 (이미지 출처: 구글스콜라)

해당 논문 제목의 pdf화면 (이미지 출처: 구글스콜라)

 

 

ㅣ인간은 제한된 시간, 인지능력, 정보 안에서만 판단해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신문기사처럼 “인도어로 두 스탯은 영어로 닥터라는 뜻이다”, “마이클은 행복하다”와 같은 문장을 줬다. 그 문장만 준 게 아니라 그다음에 바로 그게 참인지 거짓인지 알려주는 표지를 넣었다. 그리고 실험 종료 전 참가자들에게 여러 문장의 참과 거짓을 판단하도록 했다.

 

내용을 제시하자마자 거짓이라는 명백한 표시가 있었으면 당연히 아예 거짓이라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실험 참가자의 33%가 거짓이라고 표시되었던 문장을 참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참이었는데 거짓이라고 착각한 사람은 17%로 약 두 배가 차이 났다. 추가 실험으로 방송처럼 영상을 보여주고 참, 거짓을 곧바로 이야기한 조건에서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왔다. 이 연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은 어떤 정보를 접하면 그게 일단 사실이라고 여길 확률이 훨씬 높다. 가짜 뉴스라고 해도 말이다.

 

이는 인간이 성악설에 맞는 존재여서, 선보다는 악, 진짜보다 가짜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의 주장처럼 인간은 애초에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전적 합리주의 철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성적 가치를 당연히 추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제한된 인지능력을 쥐어짜며,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ㅣ인지적 구두쇠들을 쉽게 속여넘기는 가짜 뉴스

 

『생각에 관한 생각』 2018 최신판,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힘리학자! | 대니얼 카너먼 지음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n)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거기에 역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n)이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과 논문에서 줄곧 주장했던 것처럼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이기도 하다. 인지적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이왕이면 적은 노력으로 그런대로 비슷한 결과물을 얻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허위 정보인지 아닌지 철저히 파헤치기보다는 대충 사실 같아 보이면 게으르게 그냥 받아들인다. 가짜 뉴스는 조작된 사진, 자세한 정황을 제시해 더 진짜 같아 보이게 하는 것으로 인지적 구두쇠를 속인다.

 

그래서 가짜 뉴스에 속지 않으려면 정보를 그냥 넘기지 않고 믿을 만한 출처인지,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사태를 더 깊게 파악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정보로 이득을 얻을 세력이 누구인지 등을 따지는 인지적 부지런함을 가져야 한다. 기본 인지적 성향과 반대되는 노력이기에 힘들지만, 이는 가짜 뉴스에 빠져 속거나, 가짜 뉴스를 진실로 알고 퍼뜨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꼭 갖춰야 할 정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생활 태도이다. 힘들고 귀찮지만 그럴 가치가 있다. 힘들고 귀찮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하는 것처럼.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운동처럼 게으를수록 문제가 생기는 뉴스 보기

- 지난 글: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인간은 어떻게 해야 참된 자기 자신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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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석 작가
이남석

작가, 심리변화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융합과학인 WCU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변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주로 심리학 관련 집필과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인지편향 사전』, 『선택하는 힘』, 『너 때문에 내일 회사 가기 싫어!』, 『거짓말쟁이의 뇌를 해부한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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