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극복하려면 공동체의 가치를 조사·탐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여 함께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인 합의 과정을 통해 조사·탐구된 공동체 가치를 그 사회가 지켜야 할 보다 구체적인 가치와 규범으로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확정되면 이제 이를 기준 잣대로 삼아 사회갈등 해소와 사회문제 해결을 합당하게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공동체의 가치가 내면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
요즘 우리 사회는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남녀 간 그리고 진영 간 갈등과 분열, 반목과 대립 그리고 차별과 혐오가 매우 심각하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고 소통은 불가능하며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격렬한 충돌의 상황까지 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권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진영 논리 또한 매우 강력하여 생각이 다른 편은 곧 적으로 간주되고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점점 심화되고 있는 편 가르기, 혐오, 차별, 불평등, 불공정, 부정의 등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무엇이 한국 사회를 이렇게 갈등과 분열, 대립과 반목, 차별과 혐오로 가득 찬 곳으로 만들었을까?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며 서로 소통하려는 배려와 포용의 자세가 부족한 것이 표면적인 이유라면, 개인 간 또는 집단 간 충돌이 있을 때 이를 조율해줄 보편적인 인문 정신과 그에 바탕한 공동체의 가치, 곧 사회적 가치라는 정신적 공감대의 부재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갈등·대립·반목·차별 (이미지 출처: 세계일보)
현재와 다가올 미래 사회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상호 연결돼 다양한 인간관계와 사회관계를 맺는 초연결 디지털 사회다. 하지만 조작과 통제가 손쉬운 디지털을 매개로 사회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면, 예상치 못한 심각한 윤리적·사회적 문제들이 새로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박사방’ 사건에서 보였듯이 인간을 경시하는 반인륜적 범죄들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사회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반인간적인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현상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또한 2021년 인공지능 ‘이루다’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경제적인 이윤 추구에 치우쳐 카톡 대화 내용 등의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않아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는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초연결 사회에 적합한 인문 정신과 그에 바탕한 새로운 공동체의 가치가 필요하다. 또한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는 암 정복의 경우처럼 암 환자 개개인의 빅데이터가 필요한데, 이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개인정보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예상된다. 이를 균형 있게 조율해줄 공동체의 가치 또한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인문정신의 필요
한편 4차 산업혁명은 인류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지능정보 사회로 이끌어가고 있다.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똑똑해지는 자율적인 인공지능(자율주행차, 자율형 군사 킬러 로봇 등)의 등장은 분명 인간 생활세계의 혁신을 불러올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 자율성의 약화와 새로운 위험의 출현, 기계의 인간화 경향 등 때문에 휴머니즘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우려를 새롭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2020년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국가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발표하면서, ‘인간성’을 최고의 가치로 제시하고 인공지능의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지켜야 할 ‘인간성’을 위한 3대 기본원칙으로, ‘인간의 존엄성’, ‘사회의 공공선’, ‘기술의 합목적성’을 강하게 내세웠다. 한마디로 21세기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인문적인 성찰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면서도 인간 그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다움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인문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기반된 4차 산업혁명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포함한 오늘날 전 세계는 점점 고조되고 있는 전 지구적 차원의 기후 재앙과 환경 위험 그리고 팬데믹 위기로 인해 인류 전체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이는 사실상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이기적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다. 현대 과학기술문명은 주로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결과 경제적 가치 제일주의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과 윤리적 일탈 문제, 지구 온난화와 전염병 확산 같은 전 지구적 재앙이 한층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려면, 경제적 가치에 치우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공동선에 바탕한 책임 있고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요구된다. 즉 과학기술이 단순한 경제적 가치의 창출을 넘어, 공동체의 이익을 증진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며 인류의 공동 위기를 해결하는 등 공동선을 반영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위기를 헤쳐갈 지혜로 작동할 공동체 가치
공동체의 가치란 무엇이고, 우리 사회를 포함한 인류 공동체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어떤 가치가 필요할까? 공동체 가치란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철학사를 보면,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공동체 가치를 매우 소중한 철학적 화두로 삼아 왔다.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도덕적·윤리적 가치들, 그리고 공동체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들을 모든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로 강조해온 것이다. 가령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서의 휴머니즘, 형평성에 바탕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돌봄, 연대성에 기반한 상생과 협력, 사회적 존재로서의 책임감과 윤리 의식,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 공공성, 다양성의 존중과 상호 평등, 공정성에 바탕한 차별 금지, 미래 세대를 염려하는 지속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는 현재 또는 미래의 인류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공동선이다. 이러한 공동체 가치는 개인 또는 집단 간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할 때 또는 서로 다른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할 때, 이들을 큰 틀에서 포용하여 조율하는 조정자 역할을 할 것이다.
공동체
하지만 공동체 가치는 오늘날과 같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보편적 단일성을 지니기 어렵다. 어쩌면 각 공동체가 지닌 역사적 배경과 시대 상황 삶 그리고 문화의 양식에 따라, 공유하는 가치의 중심 덕목과 우선순위 그리고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그런 연유로 공동체 가치의 내용은 개별 공동체 곧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동체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 공동체의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될, 그래서 갈등과 대립이 있을 때 이를 조율해줄 공동선은 무엇인가? 지금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공동체 가치가 진정 존재하고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때문이다.
공동체 가치 발굴과 적용을 위한 제언
사실 우리 사회는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남녀 간 그리고 진영 간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다르고 다양할 뿐 아니라 이해관계 또한 첨예하게 대립하는, 매우 복잡한 다원화된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훨씬 더 커져만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대립과 갈등, 반목과 충돌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 구성원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사회에 가장 기본이 되는 공동체 가치가 있다면 모를까. 따라서 공동체의 회복을 바란다면 그 무엇보다 먼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가치를 발굴해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동체 가치를 어떻게 조사·발굴해내고, 이를 위기의 해결 과정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이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결코 녹록하지 않은 과제다. 그런 연유로 여기서는 생산적인 시도를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해볼까 한다.
첫째,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위기를 냉정하게 그리고 심도 있게 분석·연구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바탕이 되는 공동체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조사·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의견을 직접 묻는 여론 조사 방식을 통해 상향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고 여론 조사 자체의 숫자적 한계로 인해 이것만으로는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공동체의 가치를 연구하는 전문 연구기관(가칭 ‘공동체 가치 연구원’ 혹은 ‘사회적 가치 연구원’)의 설립을 통해 하향식의 심도 깊은 전문 연구와 상향식의 조사·분석을 결합하여 진행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해 보인다.
한 예로 2013년에 미국의 정보 정책 싱크 탱크로 설립된 정보책임재단(Information Accountability Foundation)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재단은 정부, 기관, 기업, 시민 사회, 개인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의 협력하에, 책임에 기반한 정보 거버넌스를 강화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 및 자율성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정보 중심의 사회 혁신을 촉진하고자 설립되었다. 이 재단은 중점 사업의 하나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자원인 빅데이터의 경제적 가치를 증대시키면서도 개인정보의 공정하고 안전한 처리라는 기본 권리를 존중하는 정보 거버넌스의 바람직한 구축을 위한 연구 및 조사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들 간에 충돌을 조율해줄 미국 사회의 공동체 가치로 공익성, 진취성, 지속가능성, 상호존중, 공정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빅데이터를 실제로 수집·분석·활용·보관하는 과정에 이들 가치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도록 윤리 평가표를 만든 후, 정부, 기관, 기업, 시민 사회, 개인 등 각각의 이해당사자들의 활동에 대해 상황별, 사안별로 세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빅데이터의 활용으로 인해 개인이나 사회가 얻게 되는 이익과 위험 간의 균형을, 이해당사자 간 상호존중과 공정한 평가에 바탕을 두고 공익성, 진취성,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조화롭게 확립함으로써, 사전에 갈등이나 충돌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으로 조사·탐구된 공동체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여 함께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적인 합의 과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성화하여, 조사·탐구된 공동체 가치를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구체적인 규범으로 확정해야 한다. 이것이 확립되면 이를 잣대로 사회갈등 해소와 사회문제 해결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공동체의 가치가 내면화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공동체의 가치와 연관된 교육이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가치를 이해시키는 인지 교육도 필요하겠지만,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삶에 적극 반영하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이는 타인에 대한 관용, 자신에 대한 절제, 그리고 상호 연대의 덕목을 필요로 하는 데 이 모두가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인성 교육이나 민주시민 교육을 포함한 인문소양 교육이 지금이라도 더 활성화돼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뿐 아니라 인류 공동체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지혜가 필요한데, 앞서 언급한 공동체 가치가 이의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철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인문대학 학장 및 교육대학원장, 그리고 교육인증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과학철학회 회장 및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관심 분야는 과학철학과 기술철학으로 현대 물리학인 양자이론과 상대성 이론의 철학, 정보 철학, 현대 첨단기술의 윤리적・법적・사회적 쟁점 관련 문제들이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철학에 집중하고 있다. 관련 주요 저서로 『양자, 정보, 생명』, 『정보혁명』, 『인공지능의 존재론』, 『인공지능의 윤리학』 등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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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가치는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공동선이다
-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문 탐색 -
이중원
2021-09-30
음성으로 듣기
12분 53초 읽기위기를 극복하려면 공동체의 가치를 조사·탐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여 함께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인 합의 과정을 통해 조사·탐구된 공동체 가치를 그 사회가 지켜야 할 보다 구체적인 가치와 규범으로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확정되면 이제 이를 기준 잣대로 삼아 사회갈등 해소와 사회문제 해결을 합당하게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공동체의 가치가 내면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
요즘 우리 사회는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남녀 간 그리고 진영 간 갈등과 분열, 반목과 대립 그리고 차별과 혐오가 매우 심각하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고 소통은 불가능하며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격렬한 충돌의 상황까지 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권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진영 논리 또한 매우 강력하여 생각이 다른 편은 곧 적으로 간주되고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점점 심화되고 있는 편 가르기, 혐오, 차별, 불평등, 불공정, 부정의 등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무엇이 한국 사회를 이렇게 갈등과 분열, 대립과 반목, 차별과 혐오로 가득 찬 곳으로 만들었을까?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며 서로 소통하려는 배려와 포용의 자세가 부족한 것이 표면적인 이유라면, 개인 간 또는 집단 간 충돌이 있을 때 이를 조율해줄 보편적인 인문 정신과 그에 바탕한 공동체의 가치, 곧 사회적 가치라는 정신적 공감대의 부재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갈등·대립·반목·차별 (이미지 출처: 세계일보)
현재와 다가올 미래 사회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상호 연결돼 다양한 인간관계와 사회관계를 맺는 초연결 디지털 사회다. 하지만 조작과 통제가 손쉬운 디지털을 매개로 사회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면, 예상치 못한 심각한 윤리적·사회적 문제들이 새로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박사방’ 사건에서 보였듯이 인간을 경시하는 반인륜적 범죄들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사회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반인간적인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현상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또한 2021년 인공지능 ‘이루다’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경제적인 이윤 추구에 치우쳐 카톡 대화 내용 등의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않아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는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초연결 사회에 적합한 인문 정신과 그에 바탕한 새로운 공동체의 가치가 필요하다. 또한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는 암 정복의 경우처럼 암 환자 개개인의 빅데이터가 필요한데, 이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개인정보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예상된다. 이를 균형 있게 조율해줄 공동체의 가치 또한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인문정신의 필요
한편 4차 산업혁명은 인류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지능정보 사회로 이끌어가고 있다.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똑똑해지는 자율적인 인공지능(자율주행차, 자율형 군사 킬러 로봇 등)의 등장은 분명 인간 생활세계의 혁신을 불러올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 자율성의 약화와 새로운 위험의 출현, 기계의 인간화 경향 등 때문에 휴머니즘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우려를 새롭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2020년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국가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발표하면서, ‘인간성’을 최고의 가치로 제시하고 인공지능의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지켜야 할 ‘인간성’을 위한 3대 기본원칙으로, ‘인간의 존엄성’, ‘사회의 공공선’, ‘기술의 합목적성’을 강하게 내세웠다. 한마디로 21세기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인문적인 성찰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면서도 인간 그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다움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인문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기반된 4차 산업혁명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포함한 오늘날 전 세계는 점점 고조되고 있는 전 지구적 차원의 기후 재앙과 환경 위험 그리고 팬데믹 위기로 인해 인류 전체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이는 사실상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이기적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다. 현대 과학기술문명은 주로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결과 경제적 가치 제일주의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과 윤리적 일탈 문제, 지구 온난화와 전염병 확산 같은 전 지구적 재앙이 한층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려면, 경제적 가치에 치우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공동선에 바탕한 책임 있고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요구된다. 즉 과학기술이 단순한 경제적 가치의 창출을 넘어, 공동체의 이익을 증진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며 인류의 공동 위기를 해결하는 등 공동선을 반영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위기를 헤쳐갈 지혜로 작동할 공동체 가치
공동체의 가치란 무엇이고, 우리 사회를 포함한 인류 공동체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어떤 가치가 필요할까? 공동체 가치란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철학사를 보면,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공동체 가치를 매우 소중한 철학적 화두로 삼아 왔다.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도덕적·윤리적 가치들, 그리고 공동체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들을 모든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로 강조해온 것이다. 가령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서의 휴머니즘, 형평성에 바탕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돌봄, 연대성에 기반한 상생과 협력, 사회적 존재로서의 책임감과 윤리 의식,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 공공성, 다양성의 존중과 상호 평등, 공정성에 바탕한 차별 금지, 미래 세대를 염려하는 지속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는 현재 또는 미래의 인류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공동선이다. 이러한 공동체 가치는 개인 또는 집단 간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할 때 또는 서로 다른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할 때, 이들을 큰 틀에서 포용하여 조율하는 조정자 역할을 할 것이다.
공동체
하지만 공동체 가치는 오늘날과 같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보편적 단일성을 지니기 어렵다. 어쩌면 각 공동체가 지닌 역사적 배경과 시대 상황 삶 그리고 문화의 양식에 따라, 공유하는 가치의 중심 덕목과 우선순위 그리고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그런 연유로 공동체 가치의 내용은 개별 공동체 곧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동체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 공동체의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될, 그래서 갈등과 대립이 있을 때 이를 조율해줄 공동선은 무엇인가? 지금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공동체 가치가 진정 존재하고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때문이다.
공동체 가치 발굴과 적용을 위한 제언
사실 우리 사회는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남녀 간 그리고 진영 간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다르고 다양할 뿐 아니라 이해관계 또한 첨예하게 대립하는, 매우 복잡한 다원화된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훨씬 더 커져만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대립과 갈등, 반목과 충돌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 구성원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사회에 가장 기본이 되는 공동체 가치가 있다면 모를까. 따라서 공동체의 회복을 바란다면 그 무엇보다 먼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가치를 발굴해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동체 가치를 어떻게 조사·발굴해내고, 이를 위기의 해결 과정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이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결코 녹록하지 않은 과제다. 그런 연유로 여기서는 생산적인 시도를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해볼까 한다.
첫째,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위기를 냉정하게 그리고 심도 있게 분석·연구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바탕이 되는 공동체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조사·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의견을 직접 묻는 여론 조사 방식을 통해 상향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고 여론 조사 자체의 숫자적 한계로 인해 이것만으로는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공동체의 가치를 연구하는 전문 연구기관(가칭 ‘공동체 가치 연구원’ 혹은 ‘사회적 가치 연구원’)의 설립을 통해 하향식의 심도 깊은 전문 연구와 상향식의 조사·분석을 결합하여 진행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해 보인다.
한 예로 2013년에 미국의 정보 정책 싱크 탱크로 설립된 정보책임재단(Information Accountability Foundation)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재단은 정부, 기관, 기업, 시민 사회, 개인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의 협력하에, 책임에 기반한 정보 거버넌스를 강화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 및 자율성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정보 중심의 사회 혁신을 촉진하고자 설립되었다. 이 재단은 중점 사업의 하나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자원인 빅데이터의 경제적 가치를 증대시키면서도 개인정보의 공정하고 안전한 처리라는 기본 권리를 존중하는 정보 거버넌스의 바람직한 구축을 위한 연구 및 조사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들 간에 충돌을 조율해줄 미국 사회의 공동체 가치로 공익성, 진취성, 지속가능성, 상호존중, 공정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빅데이터를 실제로 수집·분석·활용·보관하는 과정에 이들 가치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도록 윤리 평가표를 만든 후, 정부, 기관, 기업, 시민 사회, 개인 등 각각의 이해당사자들의 활동에 대해 상황별, 사안별로 세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빅데이터의 활용으로 인해 개인이나 사회가 얻게 되는 이익과 위험 간의 균형을, 이해당사자 간 상호존중과 공정한 평가에 바탕을 두고 공익성, 진취성,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조화롭게 확립함으로써, 사전에 갈등이나 충돌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정보책임재단(Information Accountability Foundation) 홈페이지 모습 (이미지 출처: Information Accountability Foundation)
둘째,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으로 조사·탐구된 공동체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여 함께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적인 합의 과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성화하여, 조사·탐구된 공동체 가치를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구체적인 규범으로 확정해야 한다. 이것이 확립되면 이를 잣대로 사회갈등 해소와 사회문제 해결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공동체의 가치가 내면화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공동체의 가치와 연관된 교육이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가치를 이해시키는 인지 교육도 필요하겠지만,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삶에 적극 반영하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이는 타인에 대한 관용, 자신에 대한 절제, 그리고 상호 연대의 덕목을 필요로 하는 데 이 모두가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인성 교육이나 민주시민 교육을 포함한 인문소양 교육이 지금이라도 더 활성화돼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뿐 아니라 인류 공동체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지혜가 필요한데, 앞서 언급한 공동체 가치가 이의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문 탐색] 공동체 가치는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공동선이다
- 지난 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문 탐색] 알지 못하는 것을 마주할 용기와 도전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철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인문대학 학장 및 교육대학원장, 그리고 교육인증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과학철학회 회장 및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관심 분야는 과학철학과 기술철학으로 현대 물리학인 양자이론과 상대성 이론의 철학, 정보 철학, 현대 첨단기술의 윤리적・법적・사회적 쟁점 관련 문제들이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철학에 집중하고 있다. 관련 주요 저서로 『양자, 정보, 생명』, 『정보혁명』, 『인공지능의 존재론』, 『인공지능의 윤리학』 등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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